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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너 (존 윌리엄스, 알에이치코리아, 2015.)

Dog君 2015. 5. 25. 18:13



1. 몽골로 가는 길에 내 가방에는 책이 딱 한 권 있었는데, 어쩐지 가는 비행기 안에서 그 책을 다 읽어버릴 것만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약간 활자중독증세가 있는 내 입장에서는 읽을 수 있는 책이 없을 때 살짝 공황상태 비슷한 것이 오기 때문에 그런 상황만은 피해야겠다 싶어서 공항 내 서점에 가서 책을 골랐는데, 하나는 '유시민의 글쓰기 특강'이었고 나머지 하나가 이것이었다. 뭐 결과적으로 몽골에서는 처음의 그 한 권으로도 충분했고, 이 책은 몽골 여행이 끝난 후에야 겨우 읽을 수 있었다.


2. 결론을 먼저 말하자면, 이 책은 '싱글맨'과 함께 '2015 내가 읽은 올해의 최고의 소설' 자리를 두고 치열하게 경합 중이다. 특별히 대단한 반전이나 현란한 이야기 전개가 있는 것도 아닌데, 뒷표지를 덮은 후에도 묵직한 여운이 오래간다.


3. 결혼생활은 (그야말로 완전히) 파탄났고, 자식과의 관계도 원만하지 않고, 대단한 학문적 성취를 거두지도 못했고, 학교에서는 따돌림 당하는 교수였고, 학생들의 존경을 받는 따뜻한 스승이 되지도 못했다. 우리 인생에 대해서 주어진 평가항목이 '성공'과 '실패' 둘 뿐이라면, 확실히 주인공의 인생은 '실패'이다.


4. 하지만 말이다, 인생이란걸 어떻게 '성공'과 '실패'로만 결정지을 수 있겠냐. 인생이란게 어디 테레비나 영화에 나오는 것처럼 극적이기만 하던? 아마도 우리 인생 거의 대부분이 주인공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런 면에서 주인공이 점차 노쇠해가면서 결국에는 서서히 죽음을 준비하는 마지막 부분은 이 소설에서 가장 아름다운 부분 아닐까 싶다.


5-1. '스토너(Stoner)'라는 이름을 이렇게 해석해도 될런지는 모르겠지만... 주인공의 삶은 돌(stone)처럼 움직이지 않는다. 딱 한 번, 부모님과 함께 살던 마을을 벗어나 대학에 갔을 때, 그 때 딱 한 번 주인공의 삶은 변화한다. 그 이후로 주인공은 변하지 않았다. (어떻게 정말로 안 변했겠냐만은, 이 소설이 (사실상의) 1인칭 주인공 시점을 택한 것은 주인공 스스로의 변화를 최소한으로만 노출하겠다는 의도인 것 같다) 그 외의 모든 변화는 주변 사람들, 특히 주변 사람들이 자기 위치를 이탈했을 때 혹은 주인공의 바깥에서 일어난다.


5-2. 그러니까 이 소설은 고정되어 변하지 않(으려)는 것과 움직여서 변화하(려)는 것을 맞닿은 이야기처럼 보인다. 2차대전에 지원한 두 친구가 그랬고, 친정에 다녀온 아내가 그랬고, 아내가 개입하며 떨어지게 된 딸이 그랬다. 학과 내 권력 다툼도 주인공의 바깥에서 온 것이었고, 제자와의 만남도 의도치 않은 외적 상황으로부터 외삽된 것이었다.


6. 나무는 가만히 있고자 하는데, 끝없이 바람에 흔들리는 게 인생 아이겠나 말이다. 원래 인생이란 게 그 모양이다. 주체적으로 살고, 스스로 많은 것을 선택할 수 있고, 그래서 뭘 많이 이뤄내고 막 그러면 그보다 더 좋은 인생이 오데 있겠냐만은, 그런 인생이란 역사책에 이름을 남긴 몇몇 분들한테나 가능한 거였지, 우리 같은 장삼이사 필부필부한테는 아나콩콩이지.


7. 여기까지 생각이 이르니까 마음이 많이 편해졌다. 요새 내 멘탈이 성수대교 삼풍백화점 마냥 처참하게 바스러져 있는데, 이 생각을 하니까 마음이 많이 편해졌다. 부서진 멘탈을 잘 쓸어담아서, 계속 읽고 쓰면서 살아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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