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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의 사상자들 (Casualties of War) 본문

잡畵나부랭이

전쟁의 사상자들 (Casualties of War)

Dog君 2009. 2. 8. 2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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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갑자기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어둠의 경로를 통해 영화를 구해다 보고 있는데 화질 좋게 뻥뻥 터지는 요즘 영화도 좋지만 어쩐지 예전에 재밌게 봤던 영화들을 다시 구해보자...는 마음이 일어 보게 된 영화 중 하나.

1-1. 분명 담당과목은 '국민윤리'였지만 학생들이 '국민윤리'를 습득하는 것에는 아무런 관심이 없었던 (정확히 말해서 '국민윤리'를 거부하기를 원했던) 내 고2때 담임선생님은 밀려버린 진도를 단 한장의 핸드아웃으로 말끔하게 정리해내는 탁월한 능력을 가진 터라 남는 시간을 최대한 활용해 아이들에게 이런저런 영화들을 많이 보여주시곤 했다. (그 당시 감독과 평론가들의 의도와는 전혀 다르게, 당대 최고의 뽕빨 영화로 자리매김하고 말았던 '감각의 제국'을 보았던 것도 '국민윤리' 시간이었다.)

1-2. 나는 그런 선생님의 의식화 전략에 꽤나 충실하게 반응했던 녀석이었던지라 한창 호기심 왕성하고 감수성 풍부했던 10대 후반에 본 이 영화는 굉장히 강한 이미지로 남았다는 거.

2. 베트남전 참전군인들의 평균연령은 19살이었다던가 20살이었다던가. 스스로를 통제할만한 충분한 자제력을 미처 기르지 못한 젊은이들이 '조국'으로부터도 환영받지 못하는 살육의 현장에서 결국 광기의 화신으로 전락하고 마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보는 이를 진정으로 섬뜩하게 만드는 것은 이러한 광기의 사건이 엄연히 실제로 일어났던 사건이라는 점이다. 영화를 보며 덜덜 떨었던 나도 같은 현장에 놓이면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것. 미저브(숀 펜)와 같은 주동자가 될 수도 있고 디아즈(존 레귀자모) 같은 수동적 호응자가 될 수도 있지만, 에릭슨(마이클 J. 폭스) 같은 저항자가 되긴 힘들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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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아마도 마이클 만의 책에서 읽었던 것 같다. 정확한 문구는 기억이 안 나는데 아마도 이런 내용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우리들 중 누구도 학살의 책임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으며 동시에 평범한 민간인들이 학살의 실행자였다고 주장하는 것은 책임 소재를 흐리거나 위정자들에게 면죄부를 주려는 것이 아니라, 또다시 그러한 상황이 발생하지 않도록 그리고 그러한 상황이 되어도 우리가 학살의 실행자가 되지 않을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기 위함이다... 뭐 대충 이런 내용.

3-2. 나름 50년대를 연구해보겠답시고 그 시대 관련 서적들을 탐독하는 중이다. 50년대 최대의 화두는 역시 전쟁이다. 심성여린 한국전쟁 연구자들이 가장 고통스러움을 호소하는 부분은 '악의 평범성'이 광범위하게 발견된다는 사실. 전쟁의 가운데 벌어졌던 참혹한 학살의 묘사를 읽노라면 그 자체도 무섭지만 그 피해자와 가해자 모두 얼마 전까지 같은 동네에서 농사짓고 막걸리 나눠마시던 동네사람들이었다는 사실이 나를 더 절망케 한다.

4. 이런 따위의 영화는 학살이 존재했던 거대한 조건을 조망하지 못하고 학살의 원인을 개개인의 인격적 결함으로만 돌리기에 결국 한계로 남을 수 밖에 없다고 생각했던 적이 있었는데, 진짜 큰 문제는 그게 아닐지도 모른다는게 요즘 제 생각입니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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