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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기술의 문화사 (김명진, 궁리, 2018.)

Dog君 2019. 1. 21. 11:30


  방사능이라는 새로운 현상은 특정한 물질들이 에너지를 계속해서 내뿜는다는 점에서 기존에 알려져 있던 물리 법칙을 완전히 깨뜨리는 것이었고, 이는 원자 속에 숨어 있는 무진장한 에너지의 원천에 대한 대중적인 흥미와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한편에서는 원자 내부에 저장된 무진장한 에너지를 끌어내 쓸 수 있다면 “에덴동산”, “황금기”, “순백의 도시(white city)”가 도래할 거라고 예언했다. (…)

(…) 가령 미국에서는 라듐을 함유한 일종의 강장제인 ‘라디토르(Radithor)’가 시판되어 고가에도 불구하고 인기를 끌었다. (…) (32~33쪽.)


  이 시기에 핵 유토피아주의가 득세한 이유에는 서로 다른 집단들의 동상이몽이 자리 잡고 있었다. 먼저 미국 정부는 핵에 관한 모든 것이 폭탄과 연관되어 대중의 반대 정서가 커지는 것을 막을 필요가 있었다. (…) 다른 한편으로 과학자들은 원자폭탄을 만들어 수많은 인명을 살상하는 데 기여했다는 죄의식에서 벗어나기 위해 핵에너지의 민간 용도에 매달렸고, 이를 이용해 엄청나게 값싼 동력을 제공할 수 있다는 생각에 빠져 있었다. 그런가 하면 동시대의 일반 대중은 첨단 과학기술이 상징하는 진보의 힘에 매혹돼 있었고, 그런 점에서 핵에너지에 대한 과장된 비전에 넘어가기 쉬웠다. 당대를 풍미한 핵 유토피아 이미지와 이를 실현하기 위한 여러 프로젝트들은 이러한 여러 집단들의 이해관계와 인식이 맞물린 결과였다. (71~72쪽.)


  핵에너지를 활용하려는 아이디어 가운데 가장 기발했던 것 중 하나는 핵폭탄을 대형 토목공사에 활용하겠다는 발상이었다. 이러한 발상의 주창자들은 수소폭탄의 엄청난 폭발력을 바닥에 구멍을 내고 다량의 흙을 치우는 데 활용할 수 있다고 생각했고, 더 나아가 이를 산불을 끄거나 빙산을 녹이거나 수로 내지 항구를 준설하는 데 이용하려했다. (…)

  마지막으로 핵에너지를 농업과 식량 생산에 응용한다는 생각 역시 1950년대에 크게 힘을 떨쳤다. (…) 일각에서는 방사능을 이용한 돌연변이로 식량 작물을 크게 만들어 농업생산성을 향상시킬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을 품기도 했다. (77~79쪽.)


(…) 핵발전은 1950년대에 핵전쟁에 대한 거대한 공포를 완화하는 한편으로 핵에너지의 활용에 투사된 엄청난 기대를 충족시키려 했던 핵 유토피아의 이미지 속에서 태동했다. 그런 엄청난 기대와 함께 냉전기의 국가안보 및 체제경쟁이라는 맥락이 존재하지 않았다면 핵발전은 아예 실용화되지 않았거나 훨씬 늦게 더 적은 규모로 도입되었을 것이다. (…)

  따라서 ‘평범한 기술’로서의 핵발전은 애초에 존재 의의를 가질 수 없었고, 오직 신화적 힘이자 유토피아의 원동력으로서만-흔히 ‘너무나 값이 싸서 계량기로 요금을 매기는 것이 불가능한 에너지(power too cheap to meter)’로 표현되었던-생겨날 수 있었다는 것이 핵발전의 탄생 비화이다. (…) (84~85쪽.)


  냉전 초기의 로켓 개발에서 미국이 소련에 뒤처진 이유도 부분적으로 군사적 필요성의 차이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2차대전 직후의 시점에서 미국은 원자폭탄을 독점적으로 보유하고 있었고, 서유럽 곳곳에 위치한 공군 기지와 함께 전세계 어디에나 원자폭탄을 실어나를 수 있는 장거리 폭격기를 이미 보유하고 있는 데다, 독일의 로켓 기술자들도 거의 독차지한 상황이어서 새롭게 로켓 같은 신무기를 개발하는 데 높은 우선순위를 둘 이유가 없었다. (…)

  이와 함께 위협으로 작용했던 것은 국제사회에 대한 소련의 선전공세였다. 소련은 우주기술에서 뒤떨어진 미국이 신뢰할 만한 우방이 되지 못한다고 선전하면서 냉전기의 세력 재편을 시도하고 있었고, 스푸트니크 발사 직후 각국에서 실시된 여론조사에 따르면 실제로 미국의 대외적 위신은 상당한 정도로 추락하고 있었다. 따라서 우주개발에서 소련을 따라잡는 것은 국가 안보를 위한 것이기도 했지만, 국제사회에서 짓밟힌 국가적 자존심을 되찾고 이른바 ‘자유 진영’과 ‘공산 진영’의 세력 균형을 유지하기 위해서도 극히 긴요한 과제였다. 이즈음부터 우주개발은 그것의 실질적 유용성을 넘어 이데올로기적 중요성을 갖게 되었다. (…)

  스푸트니크가 발사되었을 때 미국의 아이젠하워 대통령은 이에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았다. 그는 일반 대중에 비해 더 많은 정보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스푸트니크의 군사적 가치가 제한적임을 잘 알고 있었고, 이후 설립된 NASA가 제안한 원대한 유인 우주계획에 예산을 투입하는 데도 적극적이지 않았다. 그는 우주탐사에 대해 좀 더 ‘현실적’인 접근을 선호했고, 인간을 우주로 보내기보다는 인공위성 기술과 자동화된 우주선으로 필요한 목적을 모두 달성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 그러나 스푸트니크 이후 대중적 패닉이 빚어지면서 아이젠하워의 대안적 관점은 사실상 붕괴하고 말았다. 언론은 아이젠하워의 보수적 태도를 미국이 처한 위기에 대한 안목의 결여로 받아들였고, 당시 야당이었던 민주당 지도자들은 이를 정치적으로 이용했다. (120~125쪽.) (121~124쪽.)


  이러한 현실은 현재 한국의 우주개발 사업에도 중요한 함의를 던진다. 한국항공우주연구원(항우연)을 중심으로 추진 중인 야심적인 계획들이 과연 현실적이고 타당한 목표를 설정하고 있는가 하는 것이다. (…) 그러나 지금까지 본 것처럼 현재 미국과 러시아 등이 위성 발사에 사용하는 로켓들은 냉전 하에서의 장거리 미사일 경쟁에서 얻어진 성과물이며, 유인 우주비행은 냉전이 끝난 이후 군사적·경제적·과학적 측면 모두에서 그간 당연시돼 왔던 근거가 뒤흔들리며 논쟁이 진행되고 있는 형국이다. 한국이 재정 압박과 숱한 과제들 속에서 그런 프로그램들에 뒤늦게 뛰어드는 것이 과연 바람직한 일인지는 생각해볼 여지가 있다. (148쪽.)


교정.

124쪽 16줄 : 스푸크니크 -> 스푸트니크

125쪽 6줄 : 스푸크니크 -> 스푸트니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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