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g君 Blues...
과학의 품격 (강양구, 사이언스북스, 2019.) 본문
정말로 죄수의 딜레마는 세상을 설명하는 절대 법칙일까? 심리학자 리 로스(Lee Ross)는 죄수의 딜레마 게임을 살짝 비틀어서 흥미로운 결과를 보여 준다. (...)
애초 그다지 다를 게 없었던 평범한 사람을 나눈 두 집단의 반응은 극적으로 달랐다. (...) '이타주의'를 상징하는 '공동체', 그리고 '이기주의'를 상징하는 '월스트리트'를 언급하는 것만으로도 사람의 행동이 바뀌었다.
경제학자 아이리스 보넷(Iris Bohnet)과 브루노 프레이(Bruno Frey)의 실험도 흥미롭다. (...)
이런 심리 실험 결과는 의미심장하다. 애초 '신뢰'가 중요하다는 신호를 주거나(이것이 공동체 게임의 핵심이다.) 자신의 평판을 염두에 둬야 하는 상황을 만들면 사람은 대부분 타인을 배려하는 이타적인 행동을 하게 된다. (...) (69~70쪽.)
우리는 '인간 없는 로봇'만 떠올린다. (...) 하지만 조금만 생각을 바꾸면 손을 못 쓰는 장애인이 입거나 낄 수 있는 '웨어러블 로봇(wearable robot)' 같은 전혀 다른 로봇의 등장이 가능하다.
요즘 유럽이나 일본에서 고민 중인 로봇과 인간이 협력하는(Human-Robot Collaboration) 공장 모델도 좋은 본보기다. 이런 공장에서는 로봇이 노동자를 쫓아내는 것이 아니라, 노동자가 힘을 덜 쓰고 안전하게 일을 할 수 있도록 돕는다. (...)
(...) 과학 기술에 인간의 얼굴을 새기는 일은 (...) 과학자나 엔지니어뿐만 아니라 공동체의 구성원이 함께 머리를 맞대야 한다. 장담컨대, 이 미션이 얼마나 성공하느냐에 따라서 우리의 미래가 조금 더 밝아질 것이다. (「로봇, 해방의 상상력」, 80~81쪽.)
고양이! 그들을 키우는 사람은 그 실체를 안다. 반려 동물 가운데 야생성을 잃 지 않은 고양이는 인간 없는 도시의 주인 역할을 할 수도 있다. 고양이가 일단 야생 생활에 빠른 속도로 적응하면 쥐, 개는 물론이고 너구리, 족제비, 여우와 같은 작은 동물은 이 엄청난 숫자의 포식자에 밀려서 기를 못 펼 가능성이 크다. 인간 없는 도시에서 고양이는 가장 무서운 존재다. (「인간 없는 도시의 주인」, 99쪽.)
이 미스터리를 풀려면 미국 역사학자 루스 코완(Ruth Cowan)의 연구를 살펴야 한다. (...)
미국도 우리와 마찬가지로 가전 제품 덕에 가사 노동이 수월해졌다. 하지만 여성의 가사 노동은 줄기는커녕 오히려 늘어났다. (...)
세탁기를 들여놓은 뒤 상황은 이상한 방향으로 변했다. 어느 정도 부피가 큰 빨래까지 세탁기로 빨 수 있게 되자, 빨래는 온전히 여성의 몫이 됐다. (...)
이뿐 아니다. (...) 세탁기가 매일 빨래를 하자 공동체의 청결 기준이 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높아졌다. 전에는 흉이 아니던 아이 옷의 얼룩이 문제가 됐다.
(...) '얼룩이 있는 옷을 입고 다니는 아이들은 엄마로부터 사랑을 못 받는 아이'라는 식의 편견을 퍼트리는 광고가 당시 미국 중산층 여성 사이에 유행하던 잡지에 실리기 시작했다. 당연히 세탁기 판매량은 증가했고, 덩달아 엄마의 가사 노동 시간도 늘어났다. (「지영 씨, 세탁기 때문에 행복하세요?」, 125~126 쪽.)
(...) 2008년 노벨 화학상을 받는 자리에서 챌피와 첸은 이 자리에 꼭 있어야 할 과학자를 한 명 언급했다. 바로 더글러스 프래셔(Douglas Prasher)였다. 그는 빛을 내는 형광 단백질 유전자에 주목해서 1992년에 그것을 처음으로 분리하는 데 성공한 과학자였다.
하지만 프래셔는 연구를 계속할 수 없었다. 당장 쓸모가 없어 보이는 해파리 연구에 돈을 대려는 정부 기관이나 기업이 없었기 때문이다. 결국, 그는 과학자로서의 경력에 종지부를 찍는다. 그가 과학계를 떠나면서 자신의 연구 결과를 동료 과학자 몇몇에게 넘겨주는데, 그 가운데 바로 노벨상을 받은 챌피와 첸이 포함돼 있었다.
2008년 노벨 화학상 결과가 발표될 때, 프래셔는 미국 앨라배마주 헌츠빌의 토요타 매장에서 시간당 8.5달러(약 1만 원)을 받고서 셔틀버스를 운전하고 있었다. (...) (「해파리 연구에 세금을 나눠 줘야 하는 이유」, 135쪽.)
공유 경제는 바로 이렇게 노동 시장 바깥으로 밀려난 사람의 노동력을 시간 단위로 쪼개서 헐값에 부리는 일이다. 일찌감치 미국의 경제학자 로버트 라이히(Robert Reich)가 공유 경제의 진짜 이름이 "부스러기를 나눠 갖는 경제 (share-the-scraps economy)"라고 꼬집은 것도 이 때문이다. 왜냐하면, 그런 노동을 통해서 그들이 얻는 대가가 고작 "부스러기"에 불과하니까. (「'작은 노동자'를 만드는 '부스러기 경제'」, 143쪽.)
인공 지능 학습의 전제조건은 엄청난 양의 '빅 데이터'다. 인공 지능은 이런 데이터를 토대로 얼굴 알아보기, 바둑, 번역 등 특정 능력을 학습하면서 자신의 능력을 강화한다. 그런데 학습의 전제조건이 되는 데이터에 문제가 있다면 어떤 일이 발생할까?
(...) 예를 들어, "지난 30년간 국내 대기업의 여성 고용 및 승진 데이터를 훈련 데이터로 학습한 인공 지능"이 있다고 가정하자. 이 인공 지능은 "대기업에서 여성의 승진 비율이 높지 않은 것을 업무 성과가 좋지 않은 것으로" 학습할 수 있다.
만약 이런 인공 지능이 채용에 나선다면 어떻게 될까? (...)
마지막으로 생각해 볼 문제가 또 있다. 사람 판사는 (...) 때로는 시대 변화에 발맞춰 기존의 판례를 뒤집는 판결을 내린다. 노예제 폐지, 남녀 차별 폐지, 인종 차별 폐지, 동성애자 결혼 허용 등이 모두 이런 혁명적인 판결을 통해서 가능했다.
인공 지능 판사는 전적으로 과거에 축적한 데이터에 의존한다. 2017년 3월 10일, 헌법 재판소에 인공 지능 판사가 있었다면 현직 대통령을 파면하는 초유의 판단을 할 수 있었을까? (「인공 지능도 '갑질'을 한다」, 147~148쪽.)
(...) 과학 기자든 누구든 과학자에게 좋은 질문을 던지려면 그전에 무엇인가를 알고 싶은 열망, 즉 호기심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대다수 보통 사람은 과학을 놓고서 알고 싶은 것이 별로 없다. (...)
한국 언론의 과학 기자 상당수가 이공계 출신인 것도 바로 이런 사정과 무관하지 않다. 아무도 과학에 관심이 없다 보니, 나처럼 이공계를 전공한 이들이 어쭙잖은 과학 지식을 내세우며 과학 기자의 적임자로 행세한다. (...)
(...)
그런데 대학 심지어 대학원까지 다니면서 과학자기 되기 위해서 훈련을 받았고 또 머릿속에 든 것이 어쭙잖은 과학 지식밖에 없는 이들이 기자가 되면 무슨 일이 생길까? 보통 사람 눈으로 보면 낯설고 심지어 이상하기까지 한 과학자 공동체의 문화가 이들에게는 당연한 관행처럼 여겨진다. 그 결과, 당연히 질문을 던져야 할 것들이 누락된다. (「"과학 기자는 과학을 전공해야 하나요?"」, 185쪽.)
(...) 산업 통상 자원부-한국 전력 공사가 일사불란하게 에너지 정책을 짜고, 그에 맞춰서 중앙 집중식으로 에너지를 공급하는 모델에 익숙한 처지라면 핵발전소가 없어진 30퍼센트의 공백을 도대체 무엇으로 채워야 할지 아득할 것이다. (...)
하지만 이런 중앙 집중식 에너지 공급 모델을 머릿속에서 지우고 나면 의외로 다양한 모습의 미래를 상상할 수 있다. 석탄 화력 발전소(약 52퍼센트)와 핵 발전소(약 30퍼센트)가 전력 생산의 80퍼센트 이상을 차지하는 모습이 아니라, 여러 가지 에너지원이 섞인 '모자이크 에너지(Mosaic Energy)' 모델이 가능하다. (「에너지, 슈퍼 히어로는 없다」, 211~212쪽.)
정재승 교수의 연구 결과는 여러 가지 생각거리를 던진다. (...) 그동안 선거 때마다 부동층이라고 불리던 이들의 상당수는 알게 모르게 지지 후보가 있었던 '숨은' 지지자였을 가능성이 크다.
(...) 선거 캠페인은 대부분 열성 지지자가 아니라 부동층을 겨냥하는 경우가 많 다. 그런데 애초 그 부동층의 존재가 과장되었다면 그런 캠페인의 효과 역시 제한적이다. (...)
(...) 앞에서 소개한 연구 결과는 역설적으로 '이미지 정치'가 아니라 '삶의 정치'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어떤 정치인 또는 정당이 선거 때만 일시적으로 그럴 듯한 감언이설을 내놓으며 지지를 호소해도 효과는 거의 없다.
반면에 그 정치인 혹은 정당이 평소에도 일상 생활 곳곳으로 파고들어 한 사람의 삶 전체를 흔든다면 어떨까? 그 사람의 이해, 가치 심지어 비전까지 공유하는 정치인과 정당이 삶 한복판에 깊숙이 자리 잡고 있다면, 당연히 마음속에 는 그 정치인이나 정당에 대한 강한 호감이 형성될 것이다. 그리고 그런 호감은 그렇게 쉽사리 변하지 않는다. (「선거 미스터리, 부동층의 속마음」, 282~283쪽.)
도대체 호모 사피엔스와 네안데르탈인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을까? 서남아시아 같은 곳에서 이 둘은 서로 교류하면서 때로는 사랑하고 때로는 싸우면서 상당히 긴밀한 상호 작용을 했다. (...)
이런 과정이 반복되면서, 어쩌다 네안데르탈인 유전자를 전달받은 호모 사피엔스는 생존할 수 있었고, 그렇지 못한 호모 사피엔스는 사라졌다. 그 결과 몸 속에 2퍼센트 정도 네안데르탈인 유전자를 가진 현생 인류가 최종적으로 살아 남은 것이다. 결국, 호모 사피엔스-네안데르탈인 이종 교배의 신인류가 최종 승자였다.
아이러니다. 네안데르탈인이든 호모 사피엔스든 '다름'을 배척하고 '순수'에 집착하던 이들은 결국 도태되었다. 반면에 (그 과정이야 어떻든 간에) '다름'을 받아들이고 기꺼이 '잡종'이 되었던 이들은 마지막에 살아남았다. (...) (「내 안 에 너 있다」, 338~339쪽.)
알다시피 오랫동안 수많은 이가 천연두에 걸려 죽거나, 살아남더라도 얼굴에 얽은 자국이 남았다. 하지만 일단 천연두로부터 살아남으면 다시는 그것에 걸 리지 않았다. 이런 사정을 염두에 두고 인도, 중국 같은 곳에서 1,000년 전부터 천연두 환자의 딱지를 갈아 코로 흡입하기도 하고, 피부를 살짝 째서 집어넣기도 했다. 최초의 예방 접종 '인두(人痘)'가 시작된 것이다.
인두는 자칫 심각한 천연두로 번질 위험이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영국 시골 의사 에드워드 제너(Edward Jenner)는 소젖을 짜는 여성은 천연두에 걸리지 않는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그는 젖 짜는 여성의 손에 생긴 물집에서 짜낸 고름을 8세 남자아이 팔의 생채기에 넣었다. 그 소년은 나중에 천연두도 이겨 냈다. '우두'가 탄생한 것이다.
예방 주사가 '백신(vaccine)'이라는 이름을 얻은 것도 우두 덕분이다. 라틴 어로 소를 가리키는 단어가 바로 '바카(vacca)'니까. (「'안아키'는 왜 공공의 적인가」, 377~378쪽.)
교정.
185쪽 18줄 : 보통 사람 눈으로 보이면 -> 보통 사람 눈으로 보면
231쪽 마지막 문단 : 틀린 것은 아니다. 다만 상업용 핵발전은 하지 않되 매장된 우라늄을 수출하기만 하는 오스트레일리아의 사례를 인용한 것은, 핵발전 자체에 대해 비판적인 저자의 전체적인 논조와 어긋나는 것처럼 보인다.
269쪽 2줄 : 5500만 광년 전에도 존재했다 -> 광년은 거리 단위인데 이 문장에서는 시간 단위처럼 쓰고 있다.
283쪽 5줄 : 정치인 또 정당이 -> 정치인 또는 정당이
309쪽 제목 : 과학과학이라고 -> 과학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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