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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청년 마이클의 한국전쟁 (이향규, 창비, 2019.)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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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청년 마이클의 한국전쟁 (이향규, 창비, 2019.)

Dog君 2021. 5. 19. 16:12

 

(…) 만약 그때 유엔군이 참전하지 않았다면 전쟁은 북한군의 승리로 끝났을 겁니다.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사회가 어떤 모습일지 상상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그 사회는 지금 북한의 모습과는 다르겠지만, 그러핟고 지금 남한 수준의 경제력과 민주주의가 보장될 것 같지도 않습니다. 우리가 이 참전군인들에게 빚진 것은 사실입니다. 그래도 만약 기념비에 이렇게 적혀 있었다면 제 마음속의 저항은 훨씬 적었을 것 같습니다. “영국군 장병의 희생으로 대한민국이 자유와 민주주의를 발전할 기회를 갖게 된 것에 감사드립니다.”
  그래도 아쉬움은 있었습니다. 왜 이른바 ‘진보적 가치’를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들은 전쟁에서 희생된 이들을 기억하는 일을 하지 않았을까? 이 기념비를 만든 대한민국 대통령의 이름으로 노무현이나 김대중이 새겨져 있었다면 어땠을까? (…) (39~41쪽.)

 

  “나는 리버풀항으로 들어왔어요. 헌병이 우리를 검열했습니다. 총기류를 다 반납했지요. 그때 담배 반입 한도는 개인당 200개비였습니다. 그는 내게 담배가 너무 많다고 반납하라고 했어요. 나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는 전쟁터에 2년 동안 있다가 지금 돌아온 거예요. 얼마 전까지도 전투 현장에 있었다고요! 그런데 담배 250개비도 못 가져간다고요?’
  ‘전쟁? 어느 전쟁? 어디에 있었다는 거야?’
  ‘한국전쟁에서 돌아오는 길이에요.’
  ‘한국이 어디 있는데’ (110쪽.)

 

  얼마 전에 린아가 영어문학 시간에 있었던 일을 이야기해주었습니다. (…)
  “일기는 시대를 담아두는 힘이 있는 것 같아요. 한 개인의 일상이지만 거기에는 그 시대도 같이 적혀 있는 거잖아요. 그래서 일기는 다음 세대 사람들이 그 시대 사람들의 삶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돼요. 우리 할아버지는 어릴 때 전쟁을 겪으면서 매일 일기를 쓰셨어요. 우리 엄마는 요즈음 할아버지의 일기장을 읽으며 전쟁에 대한 글을 쓰고 있어요.” (121~122쪽.)

 

  11월 11일이 추모일이 된 것은 전쟁이 끝난 다음해인 1919년부터라고 합니다. 저는 처음에 ‘추모일’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뭔가 빠진 느낌이었습니다. ‘무엇을’ 추모한다는 내용이 없어서 그랬나봅니다. 현충일에는 ‘충忠’ 자가 들어 있어서인지 저는 묵념을 할 때도 자꾸 국가에 대한 충성이 떠올랐는데, ‘추모’라는 말에는 그저 기억하는 행위만 있었습니다. (…) 사람들에게 묻기도 했습니다. 당신은 무엇을 기억하냐고요. 대답은 다 달랐고, 가장 많은 답은 그저 ‘그들’을 기억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도돌이표에 걸려 제자리로 돌아온 기분이었습니다.
(…)
  전사자를 추모하는 상징이 무덤가에 핀 붉은 양귀비꽃인 것이 마음에 듭니다. 거기에는 ‘국가’의 그림자가 드리워 있지 않아서 좋습니다. (…) (177~178쪽.)

 

  대학생들은 행사준비를 많이 해왔습니다. (…) 극진했습니다.
  그런데 저는 이 극진함이 어느 순간부터 불편해지기 시작했습니다. (…) 절정에 달한 것은 세배를 드리겠다고 학생들이 바닥에서 큰절을 할 때였습니다. 불편함을 참느라 제 온몸에 힘이 들어갔습니다. (…)
  우습죠? 이 젊은이들이 한 일은 사실 지난봄에 제가 하고 싶었던 일과 다르지 않았습니다. 그때 저는 참전군인 노인들을 찾아 그들이 잊히지 않았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지금 그걸 열심히 하는 청년들에게 심술을 부리고 있으니. 트집도 옹졸합니다. 저는 ‘적당히 감사’하려고 했는데 청년들은 ‘너무 많이 감사’하는 것 같고, 저는 그들이 겪은 ‘개인의 희생’을 이해하려 했는데 청년들은 ‘대한민국을 위한 희생’을 강조하는 게 못마땅했다고 할까요? 유치하게도, 제가 하지 못한 일을 하는 이 젊은이들을 대견하게 여기기는커녕 내심 그들의 정성을 깎아내리고 있었습니다. (…) 왜 그리 심술이 났을까요? 이 심술도 제 안에서 벌어지는 이념전쟁 때문이라고 하면 핑계일까요? (189~191쪽.)

 

  트램을 타러 가기 전에 박물관을 다시 돌아보았습니다. 차갑고 날카로운 모양의 건물이지만 그 안에 미움을 담고 있지 않아서 좋았습니다. 제가 이날 본 전시는 ‘적군의 만행’에 대해서는 거의 아무것도 이야기하지 않았습니다. 적이 얼마나 잔인했는지, 그에 맞서 우리가 얼마나 용감하게 싸웠는지가 아니라 이 전쟁이 얼마나 많은 이들에게 고통을 줬는지, 얼마나 많은 상처를 남겼는지를 보여주려는 것 같았습니다. 우리도 언젠가 한국전쟁을 이렇게 볼 때가 오겠죠. 전투가 아니라 전쟁에 대해 이야기할 날이, 적의 잔혹함이 아니라 전쟁의 잔혹함을 이야기할 날이, 오랫동안 끝나지 않았던 전쟁이 사람들에게 남긴 상처를 이야기할 날이, ‘평범하지 않은 시대를 산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할 날이요. (206쪽.)

 

교정.

147쪽 13줄 : 쓰봉[양복 바지] -> “양복”의 글꼴이 다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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