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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테라와 카스텔라 사이 (고영, 포도밭, 2019.)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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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테라와 카스텔라 사이 (고영, 포도밭, 2019.)

Dog君 2021. 5. 20. 08:01

 

  원체 미각이 둔한 탓에 음식 그 자체의 맛과 향을 온전히 즐기지 못하는 나 같은 사람에게는 음식에 얽힌 이야기를 읽고 듣는 것도 음식을 즐기는 좋은 방법이다. 나는 그래서 음식에 관한 이야기를 듣고 읽는 것을 참 좋아한다. 하지만 음식에 관한 이야기에 빠져들다보면 어느새 음식에 관한 낭설 혹은 이야기조각이나 주워섬기고 있는 제 모습을 발견하곤 한다. 아무런 맥락과 의미 도 없이 조각난 지식파편의 갯수만 늘리고 있는 거지.

 

  음식에 얽힌 이야기를 안다는 것은 아마도 그 음식이 만들어지기까지의 과정을 온전히 이해한다는 의미일 거다. 내 눈 앞에는 놓인 것은 그저 한 그릇의 음식이지만 그 한 그릇의 음식이 어떤 과정을 거쳐 내 앞에 당도했는지를 알게 되면 그순간부터 그 한 그릇의 의미는 완전히 달라지기 때문이다. 음식을 구성하는 재료와 조리법을 알면 음식의 맛을 더 깊이 음미할 수 있고, 음식에 녹아든 노동의 가치를 알면 더 조심스럽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음식을 누릴 수 있게 된다. 그리고 더 나은 음식을 먹을 수도 있는 방법도 어렴풋하게나마 알 수 있고.

 

  나는 고영의 『카스테라와 카스텔라 사이』가 그런 노력의 산물이라고 생각한다. 일회성으로 소비되고 마는 이야기파편이 아니라 내 앞에 놓인 음식 한 그릇의 의미를 온전히 담아낼 수 있는 있도록 하려는 노력 말이다. 일전에 이은희의 『설탕, 근대의 혁명』을 이야기할 때도 썼다만, 소재에 천착하되 그것을 함부로 낭만화하지 않는 미덕은 이 책에도 있다. 요즘의 블로그 와 SNS에서 '음식'이란 그저 허세스런 맛집 후기와 음식 사진 속에서 기호로만 존재하지만 본디 음식이란 고단하고 반복적인 노동 그 자체이자 그 노동의 재생산을 위한 수단이었다. 그것을 생략하고 음식의 의미를 온전히 말할 수 는 없겠지.

 

  그 반대도 마찬가지다. 음식을 즐긴다는 것은 음식의 맛을 입과 혀로 느끼는 것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남들이 맛있다고 하는 것 똑같이 따라서 먹고 똑같은 감탄을 내뱉는 것이 아니라 내 주변 사람들과 함께 즐기며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것, 그게 바로 음식을 진짜로 즐기는 것이겠지. 그러니까 음식을 먹는다는 것은 달리 말해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과정이기도 하다.

 

  그러고보면 음식을 즐긴다는 것은 역사를 공부하는 것과도 꽤 닮았다는 생각이 든다. 음식 이야기가 눈 앞에 놓인 음식 한 그릇에만 집중하기보다는 그 한 그릇이 만들어지기까지의 과정에서 의미를 찾는 것처럼, 역사 공부도 결과를 놓고 재단하고 심판하는 것이 아니라 그 과정 속으로 들어가서 생각하고 고민하는 과정에서 진짜 통찰을 얻을 수 있으니까. 지금 당장의 우리 삶의 조각 하나하나가 어떤 '의미'를 만들어가는 과정임을 아는 것도 마찬가지고.

 

  국수의 시작이란 전에는 소면 한 뭉치 사오기, 밀가루 한 포 사오기가 아니었다. 시작은 자가제분이었다. 그것도 동력 장치의 힘을 빌릴 수 없는, 하루종일 여성 노동으로 감당한 제분이 시작이었다. 그래서 조선 시대 조리서 속의 국수 항목을 보면 국수를 어떻게 맛나게 말아라, 반죽에 어떻게 맛을 들여라 하는 소리 이전에, 흰 가루 얻기부터 설명한다. 그때 밀가루는 "진말眞末"이라고 따로 높여 일컬을 지경이었다. 진말의 시대에는 치고 또 친 밀가루로 반죽해, 칼질 거쳐, 국수가락까지 내면 일단 국수가 "됐다"고 여겼다. 가루도 없고, 가락도 내기 전에, 맛타령을 할 틈은 별로 없었다. 반죽을 해냈음이 우선 대단했고, 국수가닥이 나온 것만으로도 우선 흐뭇했다. (49~50쪽.)

 

  (...) 맛있으면 그만이지 무슨 공부? 물건이나 잘 뽑으면 됐지 피곤해 죽겠는데 무슨 공부? 하면서 기어코 짜증을 낼, 생활에 지친 장삼이사들의 속내를 모르지 않는다. 아울러 그 피곤과 짜증을 넘지 못하면 내 식생활이 지금 여기서 털끝만큼도 더 나아질 수 없음을 예감한다. 그러므로 기어이 아득인다. 어느 분야에서나 마찬가지로, 음식에서도 행동이 필요하다고. 행동의 출발은 공부라고. 정말 줏대 있는 식생활을 하기 위해서는 기본을 이해해야 한다. 제몫을 하는 기술자란 내일을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이다. 만드는 쪽이나 유통하는 쪽이나 사 먹는 쪽이나 모두의 출발은 결국 기본을 다지는 공부일 테다. (53~54쪽.)

 

  (...) 모두들 부디 좋은 음식 들기 바란다. 단, 검색 말고, 텔레비전 먹방과 유명하다는 맛집 사냥꾼 말고, 내 일상과 내 추억에서 우러난 저마다의 도문대작을 펼쳤으면 좋겠다. 고기를 좋아하지도 않으면서 검색에 등 떠밀려 유명하다는 푸줏간 앞에 줄 서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하나 마나 한 소리지만 우리 부모자식, 형제자매, 사제, 도반, 동지 사이, 그리고 소중한 휴일을 얼마든지 함께할 친구, 연인 사이는 검색의 결과가 아니다. 뜬세상에 먹방도 쓸 데가 있으리라. 다만 저마다의 추억은 잊지 말자. (133쪽.)

 

  (...) 〈대한매일신보〉 관계자가 아닐까 싶은 누군가도 이미 세태에 술을 잇대고 있었다. (...)

  당당히 양요리루 의자에서
  커피를 압음狎飮하며[즐겨 마시며]
  샴페인을 혈파决破하니[들이켜니]
  문명개화 이 아닌가
  - 〈대한매일신보〉 1906년 1월 10일자 "피개화皮開化" (172~173쪽.)

 

  갈무리한 곡식이 세금이며 영농비용으로 빠져나가고, 조반석죽으로 절제하며 지내야 하지만, 사람들은 한 입의 별미로 자신을 위로하고 격려했다. 낙심하지 않고 다음 해를 준비했다. 내 흥미에 따라, 내 필요에 따라, 책을 베껴 간직하고, 보다 깊은 독서도 했다. 보통 사람들의 재미난 이야기 베껴 쓰기와 돌려 읽기는 문학과 대중문화의 가장 오래된 바탕이다. 일하는 사람이 책에 파고들면서 세상에는 교양이 쌓인다. 아이들은 책 읽는 어른들로부터 말과 글을 배우며 자랐다. 겨울이 이렇게 깊어갔다. (202쪽.)

 

  (...) 나는 (...) 음식 문화사 탐구를 잘 가늠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잘 삐진다. 가령 "설렁탕은 선농제에서 시작됐다" "한국사상 최초로 커피를 마신 사람이 고종이다" 하는 사람 앞에서는 순간 얼굴이 발그레해지고 어김없이 한 번은 쏘아 붙이게 된다. "낭설 수집을 음식 문화사 공부로 착각하면 그 다음이 없어요." (251쪽.)

 

  이 아래 부분을 읽으며, 기름때에 찌들어 시커멓게 된, 고된 노동으로 굳은살이 군데군데 박힌, 그 손이 떠올랐다. 내 한쪽 손에는 절반쯤 뜯은 빵봉지를, 나머지 한 손에는 손때라도 묻을까봐 조심스레 뜯은 우유를 쥐어주며 “두 손에 단디 잡고 무야 된다이. 안 체하그로 꼭 우유하고 같이 묵고.”하고 당부하던 그 손. 아마 자기 먹을 때는 똑같은 그 손으로 빵을 허겁지겁 입 안에 밀어넣기 바빴을 것이다.

  버스에서 읽다가 여기서 갑자기 눈물이 왈칵 터지는 것을 꾹꾹 눌러 참느라 혼났다.

 

  빵은 1960년대 후반 시작한 산업화와 드디어 맞아떨어졌다. 정은정 농촌사회학 연구자에 따르면 공장에서 나온 빵은 건설현장, 공장, 농촌에서 참으로 요긴했다. 손 씻을 것도 없이 봉지만 뜯으면 참 또는 끼니가 해결됐다. 수분이 덜한 만주 계통은 동네 구판장에 방치해도 한참을 팔 수 있었다. 일에 쫓기던 도시 서민과 농어민 부모는 공장 빵 한 봉지를 자녀에게 쥐어주고는 일터로 달려갔다. 1980년대까지 이어진 풍경이다. (...) (58쪽.)

 

교정.

25쪽 21줄 : 준바하지 -> 준비하지

59쪽 17줄 : 과정 생략한 -> 과정을 생략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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