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g君 Blues...
백촌 강상호 (조규태, 펄북스, 2020.) 본문
나는 역사 공부가 사람 사는 세상에 대한 공부라고 생각한다. 역사에서 만나는 온갖 천태만상이 곧 우리가 세상에서 만나는 복잡한 이야기들이니까. 나는 그래서 역사란 응당, 이쪽 끝도 아니고 저쪽 끝도 아닌 그 사이의 회색지대에 대한 이야기이어야 한다고 믿는다. 뉴스에서 보여주는 세상이란 민주와 진보, 여당과 야당, 친일과 반일, 좋은 놈과 나쁜 놈으로 명확히 나뉘는 듯 보이지만 어디 세상살이가 그렇던가. 당장 내 삶부터가 그 사이 어딘가에서의 끝없는 부유의 연속이다.
그래서 강상호라는 인물이 참말로 흥미롭다. 같은 동네 사람이라서 그런게 아니고... 한평생 다양한 활동에 발을 담갔지만 그의 행적은 하나같이 이쪽 끝도 아니고 저쪽 끝도 아닌, 어떤 모호한 중간 지대에 걸쳐 있기 때문이다.
진주의 부호 집안에서 태어난 강상호는 일찍부터 신학문에 눈을 뜬 젊은 지식인이었고 일찍부터 진주 지역의 실력양성운동을 주도했다. 또 한편으로 독립을 쟁취하기 위한 즉각적인 활동도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그는 1919년 진주 지역의 만세운동을 주도하는 실천가의 모습도 보여주었다. 그리고 동시에 그는 앞에 나서기를 꺼리고 자기 활동이 동네방네 알려지는 것을 원치 않았던, 조용하고 온화한 사람이기도 했다. 동네의 가난한 이들의 세금을 몇 년씩 대납해주고도 그 일이 알려지는 것을 극히 꺼렸던 겸손한 사람이었다.
강상호의 가장 큰 업적은 형평운동이다. 백정의 권익을 주장하는 형평운동은 여전히 신분제의 유제가 강고했던 당시의 관점에서 볼 때는 매우 급진적인 운동이었다. 형평운동과 교감이 있었던 일본의 수평운동이 매우 급진적인 신분해방운동이었고, 형평운동을 함께 했던 인물 중에는 이후 급진적 마르크스주의자가 된 강달영 같은 이도 있었으니까 그런 평가가 아주 틀린 것은 아니다. 여기까지만 보면 강상호는 봉건제의 구습을 타파하고 신분 해방을 부르짖은 급진적인 활동가처럼 보인다.
하지만 강상호는 그런 급진성과는 거리가 멀었다. 장지필을 비롯한 '급진파'와 달리 그는 합법의 틀을 굳이 벗어나려고 하지 않았다. 급진적인 신분해방운동과도 일정하게 선을 그었던 것은 물론이고, 총독부와의 불필요하게 갈등을 유발하려고 하지도 않았던 거다. (이 책에서는 형평운동의 분열을 '서울파'와 '진주파'로 구분하지만, 역사학계는 대체로 그 차이를 급진성의 차이로 본다.)
익히 알려진 것처럼, 총독부와의 갈등을 회피하면서 온건한 합법운동에 집중했던 당대의 지식인들 중 상당수는 이후 친일의 길로 빠지고 말았다. 당장 해방의 전망이 보이지 않는 상황이라면 일제식민권력에 어느 정도 타협하는 것이 오히려 더 나을 수 있다는 논리로 기울었기 때문이다. 그러면 강상호 역시도 그런 논리에 따라 일제와 타협했을까.
그런데 그게 또 그렇지가 않다. 강상호는 친일단체로 변질된 형평사에서 손을 뗀 이후 진주에서 조용히 은둔하며 지내는 삶을 택했다. 이 때의 강상호는 끝까지 창씨개명을 거부했고, 일제가 운영하고 가르치는 학교에 아이들을 보낼 수 없다며 자식들을 학교에 보내지도 않았다. 적극적이고 과격한 독립운동을 택한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일제와 적당히 타협하지도 않았던 거다.
조용한 은둔자로 지내던 강상호는 한국전쟁을 계기로 다시 세상에 끌려나온다. 진주를 점령한 공산군이 강상호를 억지로 인민위원장으로 끌어내 앉혔기 때문이다. 공산군 입장에서야 형평운동이 반봉건적인 신분해방운동으로 보였을테니 자기네의 이데올로기에도 잘 부합했을 것이고, 진주에서 강상호의 명망이 높았던 것도 매력적이었을게다.
짐작할 수 있는 것처럼, 그는 이것도 한사코 거절했다. 그는 형평운동을 그런 거창한 이데올로기 틀 안에서 이해하지는 않았으니까. (하지만 이후 그는 그것만으로도 공산군에 협력했다는 혐의를 받아 많은 고초를 겪는다.)
글타. 강상호, 이 양반 참 애매한 사람이다. 뭐라고 한 마디로 정리가 안 된다. 적극적인 독립운동가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일제에 타협하지도 않았던, 무릇 사람이란 모두 평등한 권리를 누려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그렇다고 급진적인 이데올로그는 또 아니었던, 이쪽 끝도 아니고 저쪽 끝도 아닌 그 중간 어딘가에서 자기 자리를 찾았던 사람이다.
하지만 좀 더 찬찬히 따져보자. 강상호의 삶은 분명 분명 자기 나름대로의 기준과 철학에 따른 삶이었을 것이다. 그게 애매해 보이는 건, 세상일이란 무릇 이쪽 끝 아니면 저쪽 끝이 되어야 한다는 우리의 강박관념에 그의 삶을 끼워맞춘 탓은 아닐까. 어디 멀리 갈 것도 없다. 그런 어느 한쪽 끝으로만 수렴하지 않는 것은 강상호만이 아니라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모습이기도 하잖냐.
그간 형평운동에 대해 여러 연구들이 이뤄진바 있지만 정작 그 운동을 주도했던 강상호 개인에 대한 이야기는 의외로 드물었다. 그런 점에서 이런 책은 일단 나와주는 것만으로도 감지덕지다. 형평운동에 대한 최근의 몇몇 연구가 내 기대만큼 충분히 반영되지 못한 점을 비롯해 몇 가지 아쉬움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꼭 그게 저자와 출판사의 몫이 될 필요는 없다. 그 아쉬움은 나 같은 다음 세대 연구자가 숙제로 삼을 일이니까. 언젠가는 이 책도 개정증보판이 나올 때가 있을 것이다. 그 때 한톨이라도 보탬이 될 수 있도록 지금부터라도 내공을 열심히 갈고 닦아야겠다. (....라는 하나마나한 다짐;;)
그 날 백촌은 한나절 동안에 긴 편지를 썼다. (...) 그리고 옛 선비의 편지처럼 봉투에 '大韓民國 副統領 金性洙 閣下(대한민국 부통령 김성수 각하)'라고 큰 글씨로 적었다. 그런 후 그 편지를 아들인 인수를 시켜 반성우체국에 가서 등기우편으로 부쳤다. 시골의 작은 중학생이 난데없이 나타나 '대한민국 부통령 김성수 각하'에게 가는 편지를 내니 우체국 직원들이 수군거렸다. 온 반성에 그 소문이 퍼졌다. 남산에 보통이 넘는 사람이 산다고들 했다. (161쪽.)
교정. 1판 1쇄
12쪽 9줄 : 경호(璟鎬)였으나 -> 한자의 글꼴이 다른 부분과 다름
71쪽 1줄 : 경상좌도의 -> 경상우도의
78쪽 5줄 : 스콜스(Nellie Schloses)와 -> 스콜스(Nellie Scoles)와
92쪽 11줄 : 벡촌은 -> 백촌은
100쪽 9줄 : 도우기 -> 돕기
138쪽 18줄 : 고려혁명단 -> 고려혁명당
153쪽 17줄 : 결찰관이 -> 경찰관이
154쪽 11줄 : 무근 죄가 -> 무슨 죄가
158쪽 20줄 : 동내 청년들을 -> 동네 청년들을
161쪽 7줄 : 시켜 반성우체국에 -> 시켜 반성우체국에 (띄어쓰기 2칸)
162쪽 14줄 : 상치 -> 상추
162쪽 20줄 : 그런데 아니나 -> 그런데 아니나 (띄어쓰기 2칸)
167쪽 4줄 : 내가 오늘 아니면-> '내가 오늘 아니면
195쪽 각주 1번 : 기념탐에는 -> 기념탑에는
196쪽 3줄 : 평평운동기념사업회가 -> 형평운동기념사업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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