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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의 시선 (정찬, 문학과지성사, 2018.)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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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의 시선 (정찬, 문학과지성사, 2018.)

Dog君 2022. 8. 28. 18:17

 

  정찬의 소설을 읽을 때는 마음의 준비가 많이 필요하다. 죄의식이나 역사적 책임감 같은 것을 느끼는 거야 다른 소설에서도 흔히 찾아볼 수 있지만 그의 소설은 그런 감정이 주는 무게감을 어떻게 하면 더 절실히 드러낼 것인가에 집중하는 듯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때로는 그의 글이 너무 추상적으로 느껴지기도 하고 그의 글이 가진 무게감에 괜히 나까지 짓눌려서 호흡이 곤란해지는 것 같은 느낌도 든다. 그래서 그의 글을 읽을 때 마음의 준비가 많이 필요하다는 것이고, 책을 다 덮고나도 그 무게감에 한동안 멍-한 느낌이 가시질 않는다.

 

  정찬의 소설에서 이제는 좀, 뭐랄까, 적극적인 실천과 분투하는 사람을 만나고 싶은 마음이 있다. 실천하고 분투한다고 해서 답답한 현실이 바뀌는 것은 아니지만, 실천하고 분투하는 그 자체가 이미 무게감을 이겨내는 과정이니까. 「작가의 말」에서처럼 그저 견디는 것은 작가에게도 독자에게도 너무 힘든 일 아닌가 모르겠다.

 

  "놀런 감독은 저에게 잭 니컬슨의 조커가 강렬히 보여줬던 광대 이미지보다 감정이 없는 정신분열증 살인광의 모습을 보여주기를 원했습니다. 연기는 홀로 하는 작업입니다. 홀로 낯선 존재와 대면해야 하고, 홀로 낯선 인물의 마음속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저는 집을 떠나 호텔로 갔습니다. 저를 스스로 가둔 것이죠. 조커와 홀로 대면해야 하니까요. 미셸은 말없이 저를 배웅했습니다. 애써 짓는 그녀의 미소에 슬픔과 원망이 어려 있었습니다. 호텔 방에 틀어박혀 조커라는 허구의 인물에 집중했습니다. 저는 캐릭터의 감정과 가장 흡사한 감정을 저에게서 찾아내어 그것을 매개로 캐릭터에게 다가갑니다. 조커가 저에게 유독 힘들었던 것은 극단적인 악의 감정을 저에게서 끌어내야 했기 때문입니다. 호텔 방에서 저는 열세 갈래로 균열된 거울만 보았습니다. 다른 거울은 절대 보지 않았습니다. 거울 속의 제 얼굴은 열세 갈래로 균열되어 있었습니다. 열세 갈래로 찢긴 채 허공을 떠다니는 얼굴과 함께 열세 갈래로 찢긴 의식의 파편들이 허공에 떠다니는 모습을 집요하게 상상했습니다. 그 모습이 어느 날 꿈에 나타났습니다. 찢긴 얼굴은 물론 찢긴 의식도 또렷이 보였습니다." (「양의 냄새」, 24쪽.)

 

  "고흐가 동료 화가인 베르나르에게 보낸 편지에 자신이 최근에 그린 풍경화에 대한 설명이 있습니다. 고흐는 그 풍경화를 언덕 위에서 새의 시선으로 내려다본 풍경이라고 표현했습니다. 고흐가 단순히 언덕 위에서 내려다보았기 때문에 새의 시선이라는 말을 사용했을까요? 저는 고흐가 새의 감각으로 풍경을 보려고 했다고 생각합니다. 새의 감각을 갖는다는 것은 새의 영혼을 갖는다는 뜻입니다. 저는 고흐의 그 풍경화를 들여다보면서 새의 감각을 생각했습니다. 사람의 감각은 어머니 몸속에서 형성됩니다. 양수의 아늑한 촉감 속에서, 어머니의 움직임이 빚는 율동에 싸여 먼 우주 공간에서 들려오는 듯한 어머니 몸의 소리를 듣습니다. 이 순수한 감각을 깊이 꿈꾸면 새의 감각에 닿을 수 있으리라고 저는 생각했습니다." (「새의 시선」, 59~60쪽.)

 

  "전 우리 명호를 세상 누구보다도 잘 안다고 생각했어요. 엄마니까요. 명호가 차가운 바닷속으로 가라낮은 후로는 거의 하루 종일 명호 생각만 했어요. 그렇게 생각하다 보니 제가 명호에 대해 정말 중요한 것은 모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어요. 명호가 정말 하고 싶었던 것이 무언지도 몰랐어요. 제 관심은 명호 성적에 쏠려 있었어요. 명호의 꿈은 제 관심의 중심에서 먼 곳에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거예요. 얼마 전 명호 또래 학생이 인터넷에 올린 글을 보고 소스라치게 놀랐어요. 그 아인 자신은 세월호 바깥에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했어요. 시험을 보면 돼지처럼 등급이 매겨지고, 점수가 내려가면 스스로를 쓰레기라고 부르는 우리도 죽어가고 있다고 했어요. 제가 가장 두려운 것은 혹시 우리 명호도 그런 생각을 하지 않았나, 하는 거예요. 그 생각만 하면 눈앞이 캄캄해요. 명호가 조금이라도 그런 생각을 했다면......"
  명호 어머니의 안색이 창백해진다.
  "엄마를 진심으로 사랑할 수 있었을까요?"
  명호 어머니의 눈에서 눈물이 뚝뚝 떨어진다. (「새들의 길」, 129~130쪽.)

 

  "자네의 죽음은 나의 죽음이었어. 자넨 나의 일부였으니까. 지금은 자네와 이렇게 다정하게 마주 앉아 이야기를 하지만, 처음에는 자네를 본다는 것이 너무 끔찍했어. 왜냐하면...... 자넨 나였으니까. 우리는 우리 자신을 볼 수 없어. 거울에 비치는 모습은 자기 자신이 아냐. 얇은 거죽일 뿐이니까. 신이 인간에게 자기 자신을 볼 수 있는 능력을 주지 않은 것은, 그런 능력을 주었을 경우 일어날 수 있는 혼란을 우려했기 때문이었을 거야. 자신을 본다는 것이 너무 끔찍하니까. 모든 진실이 자신을 보는 데서 시작되는 이유는 여기에 있어. 이런 점에서 예술가라는 족속은 신의 의지를 거역하는 자들이야. 진실의 끔찍함을 드러내는 자들이니까. 끔찍함을 견디면서. 졸라는 자네를 통해 내 모습을 냉혹하게 그려냈어. 난 그 끔찍함을 견뎌야 했지. 졸라와 교류를 끊은 것은 내가 견뎌야 했던 끔찍함의 고통을 그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아서였어. 그것은 뭐라 할까...... 일종의 자존심이었어." (「플라톤의 동굴」, 228~229쪽.)

 

  (...) 소설 작업이 힘겨워진 것은 언젠가부터 쓰는 행위가 넋을 견디는 행위가 된 듯한 느낌이 들면서였습니다. 넋은 사람의 눈으로는 볼 수 없습니다. 보이지 않는 넋들에게 육신을 부여하는 것이 저의 소설 작업이었습니다. 넋 속으로 파고들려면 우선 넋을 견뎌야 했습니다. 넋을 견디는 힘이 넋 속으로 파고드는 힘이었습니다. 제가 얼마만큼 견뎠는지 지금도 모르겠습니다. (「작가의 말」, 259쪽.)

 

교정. 1판 1쇄

24쪽 밑에서 3줄 : 보였습니다. -> 보였습니다." (큰따옴표)

234쪽 밑에서 8줄 : 가시 풀 -> 가시풀 / 가시, 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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