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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을 꿈꾼 독서가들 (강성호, 오월의봄, 2021.)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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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을 꿈꾼 독서가들 (강성호, 오월의봄, 2021.)

Dog君 2022. 8. 28. 18:20

 

  (...) 홍명희의 독서는 완독完讀과 남독濫讀의 책 읽기였다. 일단 그는 책을 한번 집어 들었으면 끝까지 보고야 말았다는 점에서 완독을 지향했다. 중간에 필요 없는 내용이 있다 하더라도 그 책을 다 읽기까지 다른 책은 거들떠보지 않았다. 재미있는 책은 재미있는대로, 재미없는 책은 다른 재미있는 책을 얼른 읽기 위해 악을 쓰고 빨리 보았다. (...) (18쪽.)

 

  (...) 근우회를 새롭게 이끌게 되면서 그는 식민지 조선의 여성혐오와 맞서 싸웠다. 그 당시 언론은 공공연하게 '구여성'을 계몽의 대상이자 불쌍한 존재로, '신여성'을 풍자와 오락거리로 삼았다. 이 가운데 '취미 잡지'를 표방한 《별건곤別乾坤》은 신여성의 사생활과 여성운동을 조롱하는 일에 앞장섰다. 가령 두창의 후유증으로 얼굴에 곰보자국이 남아 있는 정종명의 외모를 비하하는 식으로 말이다. 이에 대해 정칠성은 집행위원장 명의로 각 지회에 〈별건곤 박멸이유서〉를 보내 불매운동을 전개하는 방식으로 대응했다. (166~167쪽.)

 

  유학이 끝나갈 무렵 최영숙은 고민에 빠졌다. 미국으로 갈지 중국으로 갈지 아니면 고향으로 돌아갈지를 말이다. 결국 최영숙은 자신의 조그마한 힘으로나마 역경에 처해 있는 식민지 조선의 여성을 위해 일해보겠다는 결심을 하기에 이르렀다. (...)
  문제는 집으로 돌아온 뒤에 벌어졌다. 스웨덴까지 유학을 갔다 왔으니 그의 귀국은 큰 주목을 받고도 남았다. 그런데 어렵게 유학을 마치고 돌아왔음에도 그를 불러주는 곳은 단 한 군데도 없었다. 어느 인터뷰에서 최영숙은 한 1년 동안만 신문기자 노릇을 해보았으면 하는 바람을 비추었으나 결국 헛된 희망이었다. 이화학교 은사인 김활란의 의뢰로 공민독본을 편찬하는 일을 맡은 게 전부였다. 5개 언어를 구사할 수 있고 스웨덴에서 경제학 학사학위를 딴 엘리트였으나 마땅한 일자리를 구하지 못했다. (...)
  거기다 그의 죽음은 진지한 애도의 시간을 가지지 못했다. 그가 세상을 떠난 후 인도 남성과의 결혼과 혼혈아 출산이라는 개인사가 알려졌기 때문이다. 그 당시 대중잡지인 《삼천리》, 《동광》, 《별건곤》 등은 처녀로 알고 있던 여성 엘리트 최영숙의 스캔들을 대서특필했다. 그가 힘들게 유학생활을 보내면서 이루고자 했던 꿈은 사람들의 가십거리에 묻혀 사라져버렸다. 이렇듯 최영숙의 삶은 남성 지식인들에 의해 타자화되었다. 더욱 큰 문제는 최영숙이 〈인도 유람〉이라는 글을 통해 인도 남성의 존재를 이미 밝혔지만, 아무도 이 글을 확인하지 않은 채 최영숙을 스캔들의 대상으로 소비했다는 점이다. 애석하게도 최영숙의 죽음은 공론장에서 소비되는 전형적인 여성 이야기를 보여준다. 이는 여성의 육체를 구경거리로 대상화한 식민지 조선의 민낯을 드러내고 있다. (187~189쪽.)

 

  1920년대는 독서회뿐만 아니라 웅변대회, 강연회, 야학, 소인극 무대, 동화회 등 수많은 모임이 우후죽순 등장하면서 자기를 표현하는 방식이 매우 다양해진 시기였다. 그 가운데 근대적 문자문화의 확산과 함께 만들어진 비밀독서회는 혼자서 읽기 어려운 책을 함께 연구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었다. 회독을 통해 난해한 책을 함께 읽어내고 있다는 기쁨은 독서를 촉진했고 동맹휴학을 가능케 한 원동력으로 작용했다. 단순한 독서 토론 동아리에 그치지 않고 정치적인 결사로 거듭나는 순간이었다. 요컨대 비밀독서회의 저력은 질문의 힘을 키우고, 대등성을 구현하고, 비밀결사로서 행동을 하는 데서 비롯되었다고 할 수 있다. (240쪽.)

 

교정. 초판 1쇄

49쪽 1줄 : 평생 -> 평생을

122쪽 2줄 : 최승구(崔承九, 1892~1917)가

126쪽 밑에서 1줄 : 나혜석은 1916년에 최승구를 떠나보낸 후 (122쪽과 126쪽에 최승구가 사망한 해가 다르게 표기되었다. 최승구가 사망한 시점에 대해서는 1916년 2월, 1916년 4월, 1917년 등으로 설이 갈린다. 이 점을 부기해주거나 혹은 한쪽으로 숫자를 통일하는 것이 좋겠다. 학계에서는 대체로 1916년 2월에 무게가 실리는 듯하다.)

129쪽 10줄 : 받아들이기 어려워 힘들어했던 -> 받아들이기 어려워했던 / 받아들이기 힘들어했던

136쪽 밑에서 2줄 : 해리엇 비처 스토(Harriet Beeche Stowe, 1811~1896)를 -> 해리엇 비처 스토(Harriet Beecher Stowe, 1811~1896)를

208쪽 밑에서 10줄 : 요리법Recipe이라는 -> 요리법recipe이라는

249쪽 밑에서 3줄 : 죠코 오네타로 -> 죠코 요네타로

297쪽 밑에서 5줄 : 자신의 민족주의 역사학을 -> 자신의 역사학을 (신채호의 역사관 일반을 말할 때 '민족주의'라는 수식어는 부적절하다. 중국에 망명한 후로 한정해도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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