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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3 간토대학살, 침묵을 깨라 (민병래, 원더박스, 2023.)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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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3 간토대학살, 침묵을 깨라 (민병래, 원더박스, 2023.)

Dog君 2024. 1. 8. 21:54

 

  1923년 9월 1일 낮, 대규모 지진이 일본 간토지방을 강타했습니다. 지진 자체도 문제였지만 지진이 하필이면 점심시간에 일어난 것도 비극이었습니다. 불을 피워 식사를 준비하던 중이라 지진이 화재로 이어진 경우가 많았기 때문입니다. 수없이 많은 인명과 재산 피해가 발생했습니다. 그런데 비극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비극 앞에 흉흉해진 마음이, 서로 달래고 도우며 진정되기보다는 사회적 소수자들에 대한 분노와 폭력으로 분출되었습니다. 일본으로 이주했던 조선인과 중국인을 비롯해 평소부터 일본 우익과 군부가 눈엣가시로 여겼던 사회주의자나 무정부주의자 등이 그 대상이었습니다. 그 결과 최소 수천 명이 살해당하는 최악의 학살이 자행되었습니다.

 

  이게 우리가 아는 '간토대학살'입니다. 그런데 약간 의아한 것이 있습니다. 올해는 간토대지진과 간토대학살이 일어난지 꼭 100년이 되는 해인데 사건의 규모와 심각성에 비하면 이상하다 싶을 정도로 조용했던 것 같기 때문입니다. 물론 현 정부의 대일외교와 관련하여 짐작가는 바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만, 뭐... 그건 여기까지만.

 

  그렇다고 아무런 움직임도 없는 것은 아닙니다. 유기홍 의원 등 100명의 의원이 지난 3월 8일에 발의한 '간토 대학살 사건 진상규명 및 피해자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안'이 현재 국회 행정안전위원회에 상정된 상태입니다. (물론 언제 통과될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그리고 그에 앞서 간토대학살을 잊지 않기 위해 훨씬 오래 전부터 분투했던 사람들이 있습니다. 민병래가 쓴 『1923 간토대학살, 침묵을 깨라』에 담긴 사람들 말이죠. 이 책은 간토대학살을 기억하는 한편 피해자의 진상규명을 위해 각자의 방식으로 분투했던 이들에 대한 기록입니다. 역사학자부터 사진작가, 음악가 등 분야도 다양하죠.

 

  사실 간토대학살을 잊지 말아야 하는 이유는 그것이 단지 대규모이고 끔찍했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지금의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작지 않거든요.

 

  대지진 이후 흉흉해진 민심이 곧장 사회적 소수자에 대한 끔찍한 폭력으로 이어질 수 있었던 것은 지진 전부터 이미 소수자에 대한 사회적 '혐오'가 만연해 있었다는 뜻입니다. 그렇기에 간토대학살을 비판적으로 성찰하는 것은 지금의 우리 사회에도 유의미한 작업입니다. 실제로 이 책에 등장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폭력의 연쇄를 끊고 지금 우리 사회를 더 낫게 만들기 위해 간토대학살을 추모한다고들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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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추도모임'의 이사 신민자 씨가 말하듯, "죽이지 말자, 죽임을 당하지 말자, 죽이게 하지 말자"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재일조선인인 한 회원도 비슷한 말을 했다. 나와 내 아이, 내 손자가 죽으면 안 되기 때문에 나는 이 일을 한다고. (...) (78쪽.)

 

  권재익은 평화의 반대말이 전쟁이 아니라, 혐오와 증오라고 생각한다. 혐오와 증오가 쌓이면 내부를 향해서건 외부를 향해서건 주먹과 총을 쓰기 때문이다. 그는 조선인에 대한 멸시와 차별이 쌓이고 쌓여 인류사에서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조선인 대학살이 벌어졌다고 본다. (19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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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는 잊지 않아야 하고, 잊지 않기 위해서는 기억해야 합니다. 대충 쉬쉬하고 덮어두는 것이 아니라 과거를 온전히 직시해야 합니다. 그래야 한국과 일본도 진정하게 화해할 수 있고 더 나은 미래도 꿈꿀 수 있습니다. 애초에 없었던 일처럼 애써 언급하지 않고 넘어가기만 해도 마음 속 앙금이 절로 녹아 없어질 거라 여기는 저 오만방자한 생각은 대체 언제쯤 사라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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