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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재가 노래하는 곳 (델리아 오언스, 살림, 2019.)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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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재가 노래하는 곳 (델리아 오언스, 살림, 2019.)

Dog君 2023. 12. 3. 20:58

 

  델리아 오언스가 쓴 '가재가 노래하는 곳'을 읽었습니다.

 

  성장소설로나, 스릴러소설로나, 경이로운 자연풍경에 대한 묘사로나, 대체로 다 만족스럽습니다. 책장이 잘 넘어갑니다.

 

  카야는 갈수록 아무하고도 말을 섞지 않고 갈매기한테만 이야기했다. 아버지한테 배를 사용해도 좋다는 허락을 받으려면 어떤 거래를 해야 할까 고민이었다. 습지에 나가면 깃털과 조개껍데기를 모으고 가끔은 그 소년을 볼 수도 있을 텐데, 카야는 친구를 가져본 적은 없지만 친구가 왜 필요한지는 알 것 같았다. 매혹적인 이끌림이 느껴졌다. 강어귀도 함께 돌아다니고 소택지를 샅샅이 탐험할 수도 있을 것이다. 소년은 카야를 그저 꼬마라고 생각할 테지만, 습지를 빠삭하게 꿰고 있으니 데리고 다니면서 가르쳐줄지도 모른다. (69쪽.)

 

  다음 날은 보통 때보다 일찍 일어났다. 아직 물이 얕을 때를 틈타 멜빵바지를 입고 양동이와 호미와 빈 자루들을 들고 살며시 밖으로 나갔다. 개펄에 주저앉아 엄마가 가르쳐준 대로 홍합을 땄다. 네 시간 동안 내리 쪼그리고 앉아 일해 자루 두 개를 꽉꽉 채웠다.
  느린 해가 바다에서 쑥 빠져나오자 카야는 통통배의 모터를 돌려 점핑의 주유소 겸 미끼 가게로 갔다. 카야가 다가오자 점핑이 벌떡 일어났다.
  "어이, 미스 카야, 연료가 필요해요?"
  카야는 고개를 푹 숙였다. 마지막으로 피글리 위글리에 간 후로 사람들과 이야기한 적이 없어서 말이 좀 이상하게 나왔다.
  "연료면 좋겠는데요. 먼저 좀 봐주세요. 아저씨가 홍합을 산다는 얘기를 들어서 좀 가져왔어요. 현금 조금하고 연료 괜찮을까요?" 카야가 자루를 가리켜 보였다.
  "그럼요, 그거면 되겠네. 신선해요?"
  "해뜨기 전에 땄어요. 방금요."
  "좋아요, 그럼. 한 자루에 50센트 줄 수 있어요. 또 한 자루 값으로 탱크에 연료 가득 채워줄게요."
  카야는 살풋이 미소를 띠었다. 진짜 돈을 벌었다. "고마워요"밖에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
  점핑이 탱크를 채우는 사이 카야는 좁은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장은 늘 피글리에서 봐서 이 가게 안은 유심히 본 적이 없었다. 이제 보니 미끼와 담배 말고도 성냥, 돼지기름, 비누, 정어리, 비엔나소시지, 그리츠, 소다크래커, 휴지에 등유도 팔았다. 세상에서 카야에게 필요한 모든 게 바로 여기 있었다. 카운터에는 싸구려 사탕이 가득 담긴 커다란 유리 단지들이 나란히 놓여 있었다. 온 세상 사탕을 다 합친 것보다 더 많아 보였다.
  카야는 홍합 판 돈으로 성냥, 양초, 그리츠를 샀다. 등유와 비누는 다음번에 자루를 가득 채울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 양초 대신 사탕을 사고 싶은 마음을 힘들게 억눌러야 했다.
  "일주일에 몇 자루나 사주세요?" 카야가 물었다.
  "어이구, 지금 우리 거래 트는 거예요?" 점핑은 특유의 웃음을 지었다. 입은 꼭 다물고 고개를 한껏 젖힌 너털웃음. "이틀이나 사흘마다 20킬로그램쯤 삽니다. 하지만 홍합 따오는 사람들이 미스 카야 말고도 또 있다는 걸 명심해요. 미스 카야가 따왔는데 이미 홍합이 좀 있으면, 뭐, 그럴 땐 못 사요. 선착순이니까요. 이렇게밖에 할 수가 없답니다."
  "좋아요. 고마워요, 그러면 돼요. 안녕히 계세요, 점핑 아저씨." 그리고 덧붙여 말했다. "아, 그런데요, 아버지가 안부 전해달라고 하셨어요."
  "그렇군요. 좋아요, 제 안부도 전해주세요. 잘 가요, 미스 카야." 통통배를 몰고 가는 카야를 보고 점핑이 활짝 웃었다. 카야도 하마터면 웃을 뻔했다. 직접 벌어 연료와 먹을거리를 샀더니 어른이 된 기분이었다. 판잣집에 돌아와서 소담한 생필품 꾸러미를 풀어보니 봉투 밑바닥에 노란색과 빨간색 깜짝 선물이 들어 있었다. 점핑이 슬쩍 넣어준 슈거 대디 사탕에 홀리는 걸 보면 생각만큼 철이 든 건 아닌 모양이었다. (98~100쪽.)

 

  오래 기다릴 필요도 없었다. 잠시 후 대포 소리처럼 요란한 난리법석이 북쪽에서부터 일었다. "자, 온다." 테이트가 그렇게 말했다.
  얇고 검은 구름이 지평선에서 나타나더니 그들 쪽으로 다가오다 하늘로 치솟아 날아올랐다. 날카로운 울음소리의 강도와 울림이 점점 커지고 구름이 금세 하늘을 꽉 채우더니 단 한 점의 푸른색도 남지 않았다. 수십만 마리의 흰기러기가 날개를 퍼덕이고 꽥꽥 울어대고 활공하면서 온세상을 뒤덮었다. 소용돌이처럼 휘몰아치는 새떼가 미끄러지며 착륙하기 위해 선회했다. 족히 오십만 개는 될법한 하얀 날개들이 똑같은 소리를 내며 펄럭이고, 핑크와 오렌지 빛깔의 말들이 달랑거리더니, 새들은 마치 눈 폭풍처럼 착륙하기 위해 한꺼번에 하강했다. 가까운 곳과 먼 곳, 이 지상의 만물이 사라지는 진정한 화이트아웃 현상이었다. 한 번에 한 마리, 그러다 열마리, 다음엔 수백 마리의 기러기들이 고사리 아래 앉은 카야와 테이트에게서 불과 몇 미터 떨어지지 않은 거리에 내려앉았다. 하늘이 텅 비고 축축한 초원이 포슬포슬한 털의 눈보라에 파묻혔다.

  아무리 고급 식당이라도 그곳에 비길 수 없었다. (...) (408~409쪽.)

 

  석양이 하늘에 줄무늬를 그릴 때면 카야는 가끔 혼자 바닷가로 걸어가 파도가 심장을 두드리는 느낌에 젖었다. 허리를 굽히고 손으로 모래를 만지다 구름을 향해 두 팔을 쭉 뻗었다. 유대를 만끽하며. 엄마와 메이블이 말한 그런 유대가 아니었다. 카야는 가까운 친구들 패거리나 조디가 묘사한 연대감을 누려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녀만의 가족도 없었다. 고립된 세월로 행동이 변해 이제는 보통 사람들과 달라졌다는 걸 알았지만, 혼자 지낸 건 그녀 잘못이 아니었다. 그녀가 아는 것은 거의 다 야생에서 배웠다. 아무도 나서지 않을 때 자연이 그녀를 기르고 가르치고 보호해주었다. 그 결과 그녀의 행동이 달라졌다면, 그 역시 삶의 근본적인 핵심이 기능한 탓이리라. (44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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