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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로 보면 역사가 달라진다 (개정판) (조한욱, 책세상, 2020.)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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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로 보면 역사가 달라진다 (개정판) (조한욱, 책세상, 2020.)

Dog君 2025. 10. 6. 12:31

 

  2000년에 초간되어 벌써 사반세기가 지난 (시중에 판매되는 것은 2020년에 나온 리커버판입니다. 내용은 동일합니다.) 이 책에 대해 지금 시점에서 독후감을 길게 덧붙일 필요는 없겠습니다. 이 책이 나왔던 시기가 기존의 역사학적 접근(예컨대 마르크스주의 역사학)과는 다른 방식의 서술에 대한 모색이 한참이었던 것 정도만 떠올리면 되겠지요.

 

  다만 이 책과 연관지어 이후의 한국 역사학계가 거둔 성과들을 톺아볼 필요는 있어 보입니다. 저자는 책의 말미에서 미시사(신문화사)의 문제의식이 한국에서의 서양사 연구에 좋은 자극이 되리라고 기대했지만 이러한 문제의식이 자극한 것이 비단 서양사 연구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물론 반드시 이 책의 영향이라고 말할 수는 없겠습니다만, 이 책 이후로 미시적인 일상을 통해 당대의 시대상을 재구성하려는 노력이 많아졌던 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저희가 다뤘던 책만 해도 권내현의 『노비에서 양반으로, 그 머나먼 여정』과 『유유의 귀향, 조선의 상속』은 상대적으로 사소해 보이는 흔적(사건)을 통해 신분제와 상속관행의 변화를 읽어내려 했던 노력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비슷한 맥락에서 대상이자 방법으로서의 '일상'을 발견한 것 역시 빼놓을 수 없습니다. '일상'이란 일찌기 독일의 일상사alltagsgeschichte의 문제제기에서 시작하여, 미시적 생활공간이자(대상으로서의 일상) 지배와 저항이 균열하고 교차하는 현장으로서(방법으로서의 일상) 주목받기 시작했습니다. 이러한 문제의식의 끝단에는 종래 수탈론과 미화론으로 양분되어 있던 식민지기를 새로이 보려고 노력했던 '식민지 근대성론'이 자리합니다. (물론 '식민지 근대성론'의 성과란 따로 좀 더 이야기해볼 주제입니다만...) 이렇게 '일상'을 재발견할 수 있었던 것에는 다시 푸코가 재정의한 '권력' 개념이 크게 작용했구요.

 

  개개인의 주관적 경험에 착목한 구술사의 연구방법론이 광범위하게 채용되기 시작된 것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특히 이 책의 언급대로(123쪽) 구술사는 기존의 연구방법을 완전히 대체하기보다는 보완하면서 기존보다 훨씬 더 풍부한 역사상을 제시하는 데 혁혁한 공을 세웠다고 하겠습니다. (저희가 다룬 책으로는 『마을로 간 한국전쟁』을 꼽을 수 있겠네요.) 이외에도 이 책에서 지나가듯 언급했던 『세계를 바꾼 어느 물고기의 역사』는 『대구』라는 이름으로 다시 나온 것도 빼놓을 수 없겠네요. (이것도 저희가 다뤘지요!)

 

  (...) 이 이야기에서 메노키오는 우유에서 치즈가 만들어지고 치즈가 벌레가 스는 것처럼 자연주의 적이고 범신론적인 우주관을 말한다. 이것은 종교개혁의 소용돌이 속에서 기독교와 관련된 논쟁이 열을 뿜던 16세기의 기독교 사회 속에도 여전히 기독교 이전의 태고적인 가치와 신념들이 생명력을 발하며 지속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메노키오는 그런 생각을 자신이 읽은 책들을 통해 자율적으로 얻었다는 점에서 당시의 사회상에 비추어볼 때 거의 혁명적이었다고까지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심문의 기록에서 보이는 종교재판관의 질문과 메노키오의 대답 사이의 현격한 불일치는 그 당시 지배층의 문화와 구전적인 농민들의 문화 사이의 심각한 불일치를 반영한다. 재판관은 질문을 하면서 당연히 기독교 교리에 부응하는 대답이 메노키오에게서 나올 것으로 기대한다. 그러나 메노키오는 그 질문을 자기 나름대로 해석하여 오히려 이단에 가까운 대답을 제시한다. 뿐만 아니라 기독교의 관점에서 대중들을 교화시키기 위한 목적으로 씌어진 책을 읽으면서도, 메노키오는 거기에서 단지 그가 이미 갖고 있던 생각을 확인시켜주는 것만을 왜곡시켜 받아들일 뿐이다. 이것을 통하여 긴즈부르그가 제시하려던 명제 중의 하나는 지배문화와 민중문화가 각기 자율성을 지니고 존재하면서 서로에게 영향을 미쳤다는 것이다. 즉 민중문화는 아무런 저항 없이 수동적으로 지배문화를 수용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것은 민중문화는 고급문화의 영향을 받는다는 종래의 관념을 타파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더 나아가 《치즈와 벌레》는 역사 연구의 방법론에서도 중요한 시사점을 던져준다. 즉 메노키오의 심문 기록을 해독할 때 우리는 그것을 사실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 기록은 엘리트 문화의 대표자인 심문관에 의해 작성된 것이므로 그것을 문자 그대로 사실로 받아들이기에 앞서, 그 심문의 대화 속에 담긴 권력구조를 파악하려고 시도해야 한다는 것이다. (96~97쪽.)

 

  미시사가 '새로운 문화사'의 한 대안으로 떠오르는 것은 단지 그것이 흥미로운 특이한 사건들을 다루고 있기 때문만은 아니다. 미시사가들은 고급문화에 가려져왔을 뿐만 아니라 마르크스주의와 아날학파의 거시적이고 비인격적인 설명의 틀 속에서 잊혀졌던 인간 개개인의 실제적인 삶을 구체적으로 그리려고 했으며, 더 나아가 역사적 관계망을 소집단의 차원에서 설명합으로써 흔히 그늘에 묻혀왔던 소외된 사람들이 역사에서 차지하는 정당한 몫을 찾아주려고 시도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한층 실제적인 차원에서 '밑으로부터의 역사'라는 명제를 실현시키려는 노력이라고 말할 수 있다.
  실지로 카를로 긴즈부르그 자신이 마르크스주의자로서 아날학파의 망탈리테 연구에 마르크스주의의 시각을 불어넣으려고 시도했던 인물이라는 사실을 감안한다면, 미시사의 연구가 '밑으로부터의 역사'를 실행에 옮기려는 작업이라는 주장은 더 큰 설득력을 가질 것이다. 풀어 말한다면, 아날학파의 망탈리테는 어떤 시기에 어떤 주민들 전체가 같은 종류의 집단적 무의식을 갖고 있다는 것에 암묵적으로 동의하고 있다. 긴즈부르그는 지배층과 피지배층의 망탈리테 사이에는 차이가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하며, 이런 시각을 자신의 연구에 반영시키고 있는 것이다. (100쪽.)

 

  푸코는 1966년에 발간된 《말과 사물》에까지 이르는 초기의 저작에서 담론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기는 하지만, 아직 정확한 개념 규정을 하지는 않다가 1969년에 발표된 《지식의 고고학》에서 비로소 담론 자체에 대해 연구하기 시작한다. 담론과 권력 사이의 관계에 대해 언급하기 시작한 것은 1971년에 발간된 《담론의 질서》에 이르러서였다. 여기서 그는 담론이 갖는 억압적인 측면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데, 담론을 소유한 사람들이 타자들을 배제하는 기능에 대해 중점적으로 언급했다. (...)
  1968년의 학생운동을 체험한 푸코는 자신의 시각을 크게 바꾸게 되고, 이것은 1970년대 중반에 발간된 《감시와 처벌》 및 《성의 역사》에 반영되었다. 여기에서 푸코는 담론을 권력과 지식의 복합체로 이해하며, 권력은 새로운 지식의 생산을 가능케 하고 이 지식의 활용은 동시에 새로운 권력 효과를 수반한다는 권력의 생산적인 측면을 강조하는 논지를 펼쳤다. 변화하는 사회 속에서 권력은 항상 새로운 지식을 필요로 했고, 새로운 지식은 권력 메커니즘의 변화를 가능하게 만들었다. 그리하여 근대 이후 권력과 지식의 관계는 더욱 확고하고 긴밀해졌다. 단정적으로 말해서 "근대 이후 새롭게 형성된 담론들의 역사가 바로 근대 권력 메커니즘의 역사인 것이다."
  그런데 푸코는 권력을 논하긴 했지만 그것은 국가의 권력이 아니었다. 그에게는 국가에 대한 도식과 비슷한 것조차 없었다. 그는 권력의 공학을 통하여 문화를 연구했을 뿐이다. 권력은 부르주아지와 같은 어느 한 계급이나 지배하는 엘리트에 귀혹하는 것이 아니라 "소권력의 무한히 복잡한 그물망으로서, 사회생활의 모든 측면에 침투해 있는 관계"로서 존재한다. 권력을 억압만 하는 것이 아니라 진리를 창출하고 따라서 진리의 정당성의 근거가 되기도 한다. 권력은 무수히 많은 소권력의 그물망으로 이루어져 있고 어디에나 존재하기 때문에, 이제 국가와 같은 조직이 아니라 그 어떤 사회적 관계라 할지라도 권력 관계의 대상으로 연구될 수 있다. 어떤 면으로는 미시사의 이론적 기반 중 하나를 마련해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국가가 지니는 역할을 사실상 부인한 결과, 그는 대다수 역사가들의 격렬한 반발에 부딪칠 수밖에 없었다. (104~106쪽.)

 

  그런데 사람들은 새로운 문화사가 사회경제사를 대체한 패러다임이라고 너무도 쉽게 말한다. 여기에 오해가 발생할 소지가 있다. 새로운 문화사는 정치사나 사회경제사를 대체한다는 의미에서 새롭다는 것이 아니다. 많은 부분에서 새로운 문화사는 사회경제사에서 출발하는 '밑으로부터의 역사'를 계승하여 발전시키고 있다. 그러므로 새롭다는 것은 단지 역사 해석의 틀에서 거대한 설명의 틀이 포착하지 못하던 측면을 예리하고 민감하게 감싸안을 여유가 문화사에 있다고 하는 점이다. 하늘 아래 완전히 새로운 것은 없다. (12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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