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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크스주의 역사학의 새로운 시작을 위하여 (강성호, 책세상, 2003.)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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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크스주의 역사학의 새로운 시작을 위하여 (강성호, 책세상, 2003.)

Dog君 2025. 10. 5. 08:46

 

  중고등학교 때 역사 과목이 그렇게 싫었던 것은, 그것이 단순한 암기과목이었기 때문일 겁니다. 역사란 인과관계에 따라 이해하면 되는 것이라고는 하지만 (선생님께서는 항상 이렇게 말씀하셨죠!) 그 인과관계라는 것도 특별한 규칙이나 법칙 없이 무질서하게 부여된 경우가 대부분이라 결국에는 원인 따로 결과 따로 암기해야 하는 대상일 뿐이었죠.

 

  사실 이는 전통적인 역사 서술 방법과 거의 같습니다. 오랜 시간 역사란 그저 여러 이야기들의 풍성한 다발 정도로 통용되었기에 한편으로는 이야기의 무질서한 조각들에 불과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니 이로부터 일반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 규칙이나 교훈을 찾아내는 것도 언감생심이었구요.

 

  이런 점에서 마르크스주의는 역사학에서 가히 혁신이었습니다. 무질서하게 흩어진 역사적 경험들에서 모든 사회공동체에 적용할 수 있는 보편적이고 일반적인 법칙을 추출해냈으니까요. 이를 통해 역사학은 지금까지의 세상을 설명할 수 있었고 앞으로의 지향점도 제시할 수 있었습니다. 이를 통해 역사는 무질서하고 무규칙적인 변수에 의해 좌우되는 우연의 연쇄가 아니라 설명할 수 있고 예측할 수 있는 규칙과 필연이 되었습니다. 강성호의 『마르크스주의 역사학의 새로운 시작을 위하여』는 이런 마르크스주의 역사학의 궤적을 다룹니다.

 

  마르크스주의 역사학의 등장은 역사학의 입장에서 분명 환호할만한 일이었지만 얼마 가지 않아 마르크스주의 역사학은 저 스스로 위기를 초래합니다. 전세계 마르크스주의를 대표하는 소련이 국가권력으로 역사 해석을 독점하면서 오히려 마르크스주의는 역사의 역동적 해석을 가로막는 기계적인 이론이 되고 말았거든요. 저자는 이를 '속류 마르크스주의'라고 명명하고, 뒤이어 이를 극복하기 위한 다양한 이론적 모색으로 계급'의식'에 주목한 톰슨에서 시작하여 아날학파, 일상사, 서발턴 연구, 세계체제론 등을 소개합니다.

 

  이상의 문제의식들은 (약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역사를 객관적 법칙의 영역에서 파악하고자 했던 노력의 산물이라는 점에서 마르크스주의 역사학과 공통분모를 가집니다. 하지만 책의 말미에 등장하는 포스트모더니즘은 생산관계나 계급 같은 거대서사를 거부한다는 점에서 마르크스주의와는 애초부터 전제를 달리 하는 것이었습니다. 이에 대해 저자는 1990년대 이후 나타난 다양한 문제들, 예컨대 세대, 인종, 젠더 등의 문제에 착목할 수 있는 장점을 인정하면서도 객관적 역사 지식의 존재가 부정될 수 있다는 우려를 거두지 않습니다.

 

  이 책이 나오고 20년도 더 넘게 지난(2003년에 나왔습니다...) 지금의 관점에서 보면 저자의 염려가 그렇게까지 크게 생각할 것은 아니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실제로 우리 사회와 역사학이 그간 겪은 일은 마르크스주의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것이 대부분이었기 때문에 마르크스주의가 아닌 다른 방식으로 세상을 설명하기 위한 노력이 오히려 더 자연스럽게 이뤄졌던 것 같습니다. 따라서 그러한 모색들은 (저자인 강성호와 그가 책에서 인용한 리처드 에번스 등이 우려한 것처럼 객관적 지식 획득을 회의하거나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세대, 젠더, 기후 등 지금껏 우리가 대면하지 못했던 새로운 문제(갈등)들을 더 잘 이해하기 위한 노력이었다고 해야겠지요.

 

  물론 아직은 그 어떤 '모색'도 마르크스주의를 대체할만한 지위, 그러니까 세상 전체를 아우를 수 있는 '세계관'의 지위까지는 얻지 못한 것 같습니다. 무엇이 낡은 것인지는 이미 알고 있으나 새로 오는 것이 무엇인지는 아직 알 수 없는 상태라고나 할까요.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역사 발전 과정을 객관적인 사실에 근거하여 일정한 방향성을 지닌 채 나아가는 총체적인 '거시사'로 파악했다. 그들은 역사를 일정한 법칙을 따르는 자연의 역사와 비슷한 과정으로, 인간 자신이 쓰고 실행하는 인류의 드라마로 보았다. 그들은 역사적 사건을 시간의 흐름에 따라 서술하는 데 그치지 않고 이론적으로 설명하고자 했다. 마르크스주의 역사학은 이를 기본 전제로 하여 역사의 발전 과정 속에서 역사 세계에 존재하는 특유한 역사 법칙을 찾고자 했다.
  (...)
  "인간들은 생활을 사회적으로 생산하는 가운데, 자신들의 의지와는 독립된 필연적 관계들, 즉 자신들의 물질적 생산력들의 일정한 발전 단계에 조응하는 생산 관계들에 들어선다. 이러한 생산 관계들의 총체는 사회의 경제적 구조의 실제적 토대가 된다. 다시 말해 이 토대 위에서 법률적·정치적 상부 구조가 서며 일정한 사회적 의식 형태들이 조응한다. 물질적 생활의 방식이 사회적·정치적·정신적 생활 과정 일반을 규정한다. 의식이 인간 존재를 규정하는 것이 아니라 거꾸로 사회적 존재가 인간의 의식을 규정한다. (...)"
  결국 마르크스는 인류 역사 발전 과정 전체에 관철되는 법칙과 자신들이 살고 있는 자본주의 사회에 관철되고 있는 법칙을 발견하려 한 것이다. 마르크스는 이 역사 법칙의 추출 과정이 선험적이고도 추상적으로 그리고 갑자기 이루어진다고 보지 않았다. 그는 높은 추상 수준의 법칙은 구체적인 수많은 사실들에 대한 연구의 결과로 나온다고 파악했다. 또한 이러한 과정을 통해 나온 높은 추상 수준의 법칙은 계속 유지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구체적인 역사 상황을 분석·연구하여 계속 수정·보완할 수 있다고 상정했다. (20~23쪽.)

 

  이러한 톰슨의 주요한 업적으로는 노동 계급의 역사적 형성과정을 '동태적'으로 파악한 점, 계급과 계급 의식을 통합적으로 파악한 점, 역사 구조 속에서의 인간의 능동성을 파악하고 계급 형성 과정에서 문화의 역할을 적극적으로 파악('연극'과 '반연극')한 점, 그리고 새로운 방법으로서 '경험' 개념을 도입하고 토대 상부 구조로 도식적 모델을 설명하는 것을 비판한 점 등을 들 수 있다. 이중에서 계급 형성 과정의 역동성을 강조하고 계급 의식과 계급을 통합적으로 파악한 점, 그리고 인간의 능동성과 문화를 강조한 점 등은 역사를 풍요롭게 해석하는 데 일정한 역할을 했다고 보인다.
  또한 톰슨이 역사를 정태적이며 구조주의적으로 파악하는 것을 비판하면서 인간의 능동성과 문화를 강조한 것은 서구의 상황에서는 나름대로 상대적 의미를 지닌다. 다시 말해 그 사회의 역사적 형성 과정과 역사적 구조에 대한 연구가 많이 축적되어 있는 서구에서 인간의 능동성이나 문화에 대한 톰슨의 강조는 기존 연구의 한계를 극복해주는 상호 보완적 성격을 지닌다고 할 수 있다. (52~53쪽.)

 

  쿠진스키는 브로델의 영향을 받았지만 일상 생활의 역사를 그와 다르게 보고자 했다. 그는 마르크스주의 역사가들이 일상 생활의 역사를, 큰 차이는 없겠지만 몇 가지 점에서 브로델 학파와 다르게 보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 점은 일상 생활의 역사를 보는 그의 기본 시각에서 잘 드러난다. 그는 일상 생활의 역사를 기존의 역사 서술에 대한 대안으로 보지 않았다. 동시에 일상사와 기존의 역사를 서로 대립하는 것으로도 보지 않았다. 그는 이러한 '두 종류의 역사 서술을 결합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보았다. 또한 일상 생활의 역사를 단순히 기술적인 측면에서 과거를 풍부하게 이해하기 위한 수단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혁명으로 이어지는 일상적 과정을 이해하기 위한 좋은 수단으로 보고자 했다. (...)
  일상 생활의 역사에 대한 쿠진스키의 이러한 입장은 매우 적극적으로 보인다. 그가 이야기한 것처럼 새롭고 완벽한 일상 생활의 역사가 출현하기까지는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할테지만, 일상 생활의 역사와 마르크스주의 역사학을 결합하고자 했던 그의 시도는 높이 평가할만 하다고 생각된다. 더욱이 이러한 그의 입장이 독일에서 일상 생활의 역사의 한계를 극복하려는 과정에서 나온 최근의 대안을 미리 담고 있었다는 점에서 그 의의는 더 크다고 할 수 있다. (72~75쪽.)

 

  《서발턴 연구》는 처음에는 인도 마르크스주의 내의 한 주장으로서 출발했다. 이 집단의 초기 목적은 방법론적 측면에서 엘리트주의를 반대하면서 '더 나은' 마르크스주의 역사를 만들어내는 것이었다. 그러나 연구가 진행됨에 따라 이러한 성격의 비판은 마르크스주의 사상 자체에 내재한 '보편주의/유럽 중심주의'에 대해서도 문제를 제기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 분명해졌다.
  서발턴이라는 개념은 민족, 계급 하는 식으로, 서구식 개념에 근거해 역사 주체를 파악하는 것을 비판한다. 다시 말해 이 개념은 인민을 민족이나 계급 구성원으로만 파악함으로써 인도 인민의 사회적 존재와 의식을 구성하는 다양한 요소들 이를테면 젠더·카스트·종교·인종·종족성과 같은 요소들을 주변화하거나 배제하려는 시도를 거부한다. 서발턴 연구 집단은 이러한 개념에 근거해 민족주의 역사학과 전통적 마르크스주의 역사학의 서구 중심주의적이고 엘리트주의적인 역사 인식과 역사 서술을 비판한다. (...) (95쪽.)

 

  이러한 포스트모던 역사학은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기 때문에 그 본질을 정리하기가 쉽지 않다. 여기서는 포스트모던 역사학의 대표적인 학자인 젠킨스Keith Jenkins의 주장을 중심으로 정리해보기로 하겠다. 젠킨스는 프랑스 철학자 리오타르의 개념 정의를 따라 포스트모더니즘을 '중심들의 죽음'을 입증하고 '메타 이야기들에 대한 불신'을 드러내는 것이라고 규정했다. '중심들의 죽음'이 의미하는 것은, 여러 중심의 특권을 미리 설정해놓은 모든 낡은 조직 틀(예를 들면 앵글로 증심, 유럽 중심, 인종 중심, 남성 중심, 음성 중심)을 정당하거나 자연스러운 것으로 볼 수 없기 때문에, 이러한 조직 틀을 보편적인 이해가 아니라 허구로 간주해야 한다는 것이다. '메타 이야기에 대한 불신'은 서구의 발전에 의미를 부여했던 구조화된 거대 이야기들이 생명력을 잃게 되었음을 의미한다.
  젠킨스는 이에 대한 구체적인 예로 19세기 말과 20세기에 확신주의자들이 만들어낸 이성과 과학에 대한 모든 담론이 와해되었음을 지적했다. 계몽 사상의 기획, 예컨대 휴머니즘이나 자유주의, 마르크스주의 등으로 표명된 인간의 진보, 개혁, 해방에 대한 다양한 프로그램들이 해체되었다는 것이다.
  젠킨스는 현실에서도 객관적인 산업 구조가 변화했기 때문에 포스트모더니즘이 출현했다고 보았다. 좌파들의 해방적 비전은 좌파의 연구 대상이거나 실천 대상인 프롤레타리아 계급이 사실상 사라져버렸기 때문에 혼란에 빠지게 되었다. 새로운 기업가나 서비스 관행이 출현함으로써 낡은 산업 관행이 다시 구조화되고, 그 과정에서 기존의 중공업과 프롤레타리아 계급이 해체되었다. 그 결과 지금 그 자리에는 소수의 핵심 노동 계급, (다소) 새로운 하층 계급, 한층 더 불안정한 청년 그룹, 실업자, 흑인, 여성, 동성 연애자 그리고 녹색주의자들이 다양하게 들어섰다. (124~125쪽.)

 

  그러나 에번스는 포스트모던 역사학이 이러한 장점들에도 불구하고 근본적으로 한계를 안고 있다고 파악했다. 에번스는 과거는 실제로 있었던 일이라는 포스트모던 역사학과 근본적으로 다른 전제에서 출발했다. 그는 이러한 전제에 근거해서 우리가 실제로 꼼꼼하고 주의 깊고 자기 비판적일 경우에는 과거가 어떻게 발생했는가와 과거가 지니는 의미에 대해 조리 있는 결론을 내릴 수 있다고 생각했다. 결국 에번스는 객관적 역사 지식에 이를 수 있다는 낙관적 입장에서 포스트모던 역사학을 비판한 것이다. (12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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