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g君 Blues...
뛰는 사람 (베른트 하인리히, 윌북, 2022.) 본문

저는 달리기를 좋아합니다. 그래서 달리기에 관한 책이라면 거의 가리지 않고 사는 편이고, 이 책도 그러한 이유로 샀습니다.
저자인 베른트 하인리히는 미국의 저명한 생물학자라고 합니다. 그러면서도 대학 학부까지 전문적인 육상 선수로 활동했고 이후로도 꾸준히 달리기를 즐겨온 러너라고 하지요. 이러한 이력만 보아도 저자의 달리기 기량이 저 같은 자가 감히 비겨볼 정도가 아니라는 것 정도는 쉽게 짐작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저자는 현역 크로스컨트리 선수였을 때는 1마일을 4분 30초에 뛰는 것을 몇 분 간격으로 세 번 연달아 할 정도였고(시합도 아니고 평가에서...), 40세에는 보스턴 마라톤을 2시간 25분 25초에 완주했으며, 80세까지 울트라 마라톤 대회 출전을 진지하게 준비했고, 휴식기 심박수는 30대 초중반에, 100마일(160km) 기록은 12시간 27분 2초, 24시간 기록은 252.2km... 이렇게 계속 이어지는 어마어마한 기록 앞에서 저는 그저 시정잡배의 발가락에 내려앉은 먼지 아이겠습니까...
사실 이런 식의 '독자 기죽이기'는 달리기를 소재로 한 꽤 많은 책에서 흔히 발견됩니다. 미우라 시온의 『바람이 강하게 불고 있다』와 이케이도 준의 『육왕』이야 육상 선수가 주인공(급)으로 등장하니 그렇다 치더라도 무라카미 하루키의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같은 에세이에 이르게 되면 매일매일 십몇 킬로미터씩 달리거나 울트라 마라톤 정도는 하지 않으면 달리기를 말할 자격이 없는 건가 싶어서 막막해집니다. SNS에 올라오는 달리기 인증샷들도 마찬가집니다. 왜 저만 빼고 그렇게들 잘 달리시는 거죠;; (물론 '인간적'인 달리기 책도 많습니다. 가쿠타 미쓰요의 『어느새 운동할 나이가 되었네요』나 김상민의 『아무튼, 달리기』 같은 책들은 저 같은 필부에게도 위화감이 전혀 느껴지지 않지요!)
그런데 이렇게 어마어마한 기량을 가진 베른트 하인리히가가 쓴 이 책의 후반부가 신체의 노화와 기량의 감퇴를 받아들이는 이야기로 채워져 있다는 것은 어쩐지 의미심장합니다. 생의 거의 대부분을 생물학 연구와 달리기에 쓴 저자는 여기에서 얻은 통찰을 바탕으로 인생에서 무엇을 포기해야 하고 어디까지 목표할 수 있는지를 말합니다.
집 앞의 천변길을 종종 달리는 것으로 만족하는 제게는 그래서인지 이 책의 후반부가 훨씬 더 인상깊었습니다. 안 그래도 여러 저자들과 SNS의 셀럽들에 비하면 초라한 수준인 제 달리기 기량은 그나마도 1~2년 전부터 뚝뚝 떨어지는 중입니다. 저도 이제 40대 중반이니 어쩔 수 없는 노화가 시작된 거겠죠. 그래서 요즘 저는 작년보다 더 떨어진 (그리고 재작년보다는 훨씬 더 많이 떨어진) 속도와 거리에 만족하고 적응하는 중입니다.
어쩌면 그게 달리기라는 운동의 본디 성격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나이 들어서도 할 수 있는 운동이지만 동시에 나이듦을 받아들이면서 해야 하는 운동이라는 것 말입니다. 에고, 그러고보니 달리기 기량만 나빠지는 것도 아니군요. 요즘은 시력도 함께 나빠지는 중입니다. 저는 앞으로 얼마나 더 달리고, 얼마나 더 읽을 수 있을까요. 기량이 점점 감퇴한다는 것은 조금 서글프지만 그렇다고 해서 제 일상이 바뀌지는 않기를 바랍니다. 저자가 자기 신체의 한계를 받아들이고 팔십 평생을 '뛰는 사람'으로 살 수 있었던 것처럼, 저 역시도 계속 '읽기도 하고 뛰기도 하는 사람'으로 살고 싶습니다.
며칠 뒤, 학기 첫 수업을 듣고 이런저런 일을 서둘러 정리한 다음 다시 코치를 만나러 트랙에 갔다. 다가오는 크로스컨트리 시즌에 내보낼 후보 주자 평가 중이었다. 코치는 주전공인 해머던지기로 뉴햄프셔대학교에서 뉴잉글랜드 챔피언인 적이 있었지만 이제는 전혀 다른 크로스컨트리 종목에서 선수들을 관리했다. 그는 활짝 웃으며 나를 반겨주었다. 돌아와서 좋았고 달릴 수 있게 되어 더 좋았다. "1마일 어때, 벤?" 코치가 물었다. "좋아요." 나는 출발선에 섰다. "제자리에, 준비, 출발!" 늘 들고 다니는 초시계를 누르며 코치가 외쳤다. 트랙을 뛰는 기분이라니! 새로운 검정 컨버스 신발을 신고 달리니 한결 부드럽고 가벼웠다. 그 느낌이 참 좋았다. 네 바퀴는 식은 죽 먹기였다. 달리기를 마치자 코치가 초시계를 확인하며 씩 웃었다. "4분 30초!" 딱히 힘들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코치가 한 번 더 뛰어보지 않겠냐 권했고, 몇 분 뒤에 나는 다시 뛰었으며 그러고도 한 번 더 뛰었다. 거의 같은 시간대의 기록이 나오자 코치의 얼굴이 밝아졌다. (88~89쪽.)
추위에 민감한 점, 털이 없는 몸, 두껍고 부스스한 머리카락, 특히 땀을 다량으로 흘리는 것과 같은 인간의 특징을 생각해보면, 우리는 달리도록 태어났고 뜨거운 기후에서 기원한 게 분명하다. (...) 인간의 땀 흘리는 반응이 사라졌다면, 진화의 요람인 열대 아프리카 위 광활한 평원에서 인류는 진작에 멸종했을 것이다.
땀을 흘리는 반응은 인간이 뜨거운 환경에서 살았을 뿐 아니라 그 안에 본거지를 두었다는 고대 유산의 강력한 증거다. 또 땀을 흘리려면 물을 마셔야 하므로 믿을 만한 수원이 근처에 있어야 했다. (...)
나는 달리기보다 더 많은 시간, 노력, 감정을 과학에 투자했다. 달리기는 과학처럼 외로운 스포츠이며 개인주의자들을 위한 종목이다. 100미터, 1.6킬로미터, 10킬로미터, 100킬로미터, 160킬로미터에는 모두 각자만의 마법이 있다. 각각의 거리는 능력과 자질을 간단하고 진실하게 시험한다. 100미터 달리기가 속도를 검증하고, 100마일(160킬로미터) 달리기가 체력, 즉 장거리를 달리는 능력을 확인한다는 데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필요한 조건과 결과가 명백하며 거기에는 일말의 모호함도 없다.
시계는 우리가 정확히 어디에 서 있는지 말해준다. 오직 자신만이 출발 여부와 어디로 얼마나 멀리 갈 수 있는지를 결정할 수 있으며 투자한 만큼 돌려받을 수 있다. (...) (121~122쪽.)
정신적으로 성숙해진다는 건 무엇이 가능하고 가능하지 않은지를 정확히 판단하고 그 차이를 안다는 뜻이다. 나는 갈수록 투자를 하기 전에 이게 내게 얼마나 유리한지 확률을 알고 싶어졌다. 지금의 내게 사슴을 사냥한다는 것은 희박한 기회를 의미한다. 지금 내가 사는 세상은 아프리카 초원에서 진화하는 동안 유전적으로 사냥이 각인되어 영양의 뒤를 쫓던 세상과는 다르고, 오래전 농장에서 일을 배우던 시절과도 다른 세상이다. 한때는 어렸고 사냥꾼이었지만, 이제는 나이가 들어서 사슴 사냥에 열을 올린 게 언제였는지조차 기억이 안 날 정도다. 본능이 사그라든 지금, 사슴 고기를 집에 들고 가봤자 별 의미가 없다. 먹을 것은 식료품점에서 언제든지 살 수 있기 때문이다. 달리기 선수는 고사하고 열정적인 사냥꾼이 되기에도 이제는 너무 늙은 걸까? 어쩌면 과거의 타오르는 열정을 식히는 것 자체가 노화의 일반적인 과정 중 하나일지도 모르겠다. (...) (193쪽.)
사슴의 흔적을 따르간 진정한 산길 달리기였지만, 대부분은 길에서 벗어나 부츠를 신고 라이플을 든 채 가파른 경사를 오르내리는 엄청난 행군이었다. 이제야 깨달았지만 그 사건은 예상치 못한 지구력 생리학 실험이었다. 더 젊고 빨랐다면 그 수사슴을 잡을 수 있지 않았을까. 내 전성기는 이미 오래전에 지나가버렸다. 목숨이 달린 시합이었다면 자연선택의 작용으로 내가 지고 수사슴이 이겻을 것이다. 그러나 현실에서 그런 건 적용되지 않으므로 나는 쓰러지지 않은 것만으로도 이긴 셈이었다. 다행히 무사하게 집에 돌아왔으니 앞으로 도 달릴 수 있었다. 그날 나는 특정한 시간 기록을 달성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옳다고 느낀 길로 달리기 위해 무의식적으로 속도를 조절했고, 그리하여 계속 버틸 수 있게 속도를 유지하고자 에너지를 분배했다.
(...)
사슴을 뒤쫓으며 나는 구석기 조상들이 수백만 년 동안 해온 일을 비슷하게 해냈다. 이들은 언제, 무엇을 쫓든 굳이 더 빨리 앞서려고 애쓰지 않았다. 열에 잘 견디는 이점을 살려 더운 한낮에 먹잇감을 꼼짝 못하게 하며 사냥했다. 물론 독이 든 무기를 사용해 먹잇감에 상처를 입히고 속도를 느리게 만들어 멀리 달아나지 못하게 하기도 했다. 내가 그날 사슴을 따라다니다가 끝내 밤에 숲에서 살아 돌아오지 못했을 가능성이 적은 건 아니었다. 자연선택은 무작정 속도를 폭발시키는 대신 에너지를 아껴 씀으로써 지구력을 증진시키는 일을 해왔을 것이다. (201~203쪽.)
경주가 끝난 뒤 양쪽 무릎이 뻐근하고 아파서 몇 시간은 걷지를 못했다. 그리고 이렇게 생각했다. 다시는 하지 말자. 그럼에도 완주했다는 데서 오는 만족감이 물밀 듯이 밀려왔다. 경기를 끝냈다는 사실 자체가 피로와 통증을 상쇄시켰고 너무나 다행히도 내 무릎은 다음 날 완벽하게 멀쩡해졌다. (210쪽.)
지금 내 앞에서는 피터 리겔이 《울트라 러닝》에 〈노화와 둔화〉라는 제목으로 실은 그래프가 있다. 80킬로미터 경주에서 1.6킬로미터를 가는 데 걸린 시간(분 단위)을 연령에 대한 함수로 나타낸 것이다. 이 그래프를 보면 80킬로미터 달리기에서 생체시계가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명확하게 알 수 있다.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예상한 대로 나이의 놀라운 효과다. 10세에서 80세까지는 느림에서 빠름으로, 이후부터는 다시 느림으로 가는 알파벳 U 자 모양의 곡선이 그려진다. 가장 어린 10세 완주자의 최고 기록은 1.6킬로미터당 9분이고, 마지막인 80세에서는 1.6킬로미터당 12분이다. 그 사이에서는 곡선의 가장 아래 지점이 연령대를 통틀어 세계 최고 기록인 5분인데, 28세 주자의 기록이다. 그래프의 곡선은 매끄럽게 연결되고 전 연령에서 맨 밑에 있는 시간, 즉 가장 빠른 기록은 나이가 적은 사람에서 많은 사람 순으로 다음과 같이 이름이 적혀 있다. 브레이넌(10세), 코르테스(15세), 코르테스(20세), 클레커(28세), 키리크(34세), 하인리히(41세), 코빗(50세), 라텔(58세), 카사디(67세), 모스토우(78세). 코르테스를 제외하고 어느 나이대에서도 동일 인물이 연속적으로 나타나지 않는다는 점은 의미심장하다. 20세 이후에는 최고 성적을 낸 사람이 항상 다른 사람이었다. 다시 말해 기록 달성은 젊어서든 나이가 들어서든 평생 한 번의 짧은 시기에만 가능하다는 뜻이다. (...) (215~216쪽.)
달리기의 미덕을 기념하는 행사는 누구나 참여할 수 있다. 달리기에서 가장 어려운 단계는 문을 열고 나가 어떤 길이든 일단 올라서는 것이지만, 사실 달리기는 경제적 지위, 인종, 성별, 정치적 연관성 같은 성향과는 상관없이 모두가 접근할 수 있는 야외 스포츠다. 경기장도, 구장도, 동호회도 필요 없다. 심지어 신발을 신지 않아도 좋다. 맨발로 기록을 세우는 사람들도 있다. 사는 곳이 어디인지도 중요하지 않다.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는 법이다. 모든 사람이 환영받을 뿐 아니라 뇌에서 더 많은 뉴런을 생산하고, 속도와 지구력을 위해 근육이 강화되고, 잠재적으로 수명이 더 길어지는 것을 포함해 건강한 몸으로 가는 동등한 발판 위에 서서 시작하는 운동이 달리기다. 달리기에는 타인의 성공을 바라보는 기쁨이 있으므로 4분 달리기와 두 시간짜리 마라톤, 어린 소녀와 80세 할머니의 뜀박질이 모두 위대한 성취가 되어 노력을 인정하고 눈물을 흘리는 사회적 활동이 된다. 이것은 어떤 게 성취될 수 있는지를 보는 우수함의 아름다움이며, 이는 곧 영감이 되어 몸이 아니더라도 영혼으로 공감하고 동참하는 현실로 자리 잡는다. 올림픽 같은 최고의 대회에서는 우리를 대신해 출전한 선수를 통해 영광스러움을 함께 누리고 즉각 참여하게 해서 모두를 하나로 만든다. 하나가 된다는 것만으로도 달리기는 소중하다. (227~228쪽.)
'잡冊나부랭이'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진주 죽이기 (김경현, 곰단지, 2024.) (0) | 2025.10.31 |
|---|---|
| 20세기 사학사 (조지 이거스, 푸른역사, 1999.) 또 한번더 (0) | 2025.10.14 |
| 문화로 보면 역사가 달라진다 (개정판) (조한욱, 책세상, 2020.) (0) | 2025.10.06 |
| 마르크스주의 역사학의 새로운 시작을 위하여 (강성호, 책세상, 2003.) (0) | 2025.10.05 |
| 더 파이브 (핼리 루벤홀드, 북트리거, 2022.) (0) | 2025.10.02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