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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민지의 일상, 지배와 균열 (공제욱·정근식 편, 문화과학사, 2006.) 한번더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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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민지의 일상, 지배와 균열 (공제욱·정근식 편, 문화과학사, 2006.) 한번더

Dog君 2025. 11. 2. 20:50

 

  최근 들어 유독 역사 관련 기관장들이 뉴스에 오르내리는 일이 잦습니다. 이 뉴스들에서 으레 문제가 되는 것은 식민지를 보는 역사적 관점이고, 이는 대체로 수탈론과 미화론으로 양분되는 것처럼 보입니다. 긍정과 부정, 빛과 어둠, 좋은 놈과 나쁜 놈, 뭐 그런 식으로 말이죠. 이러한 이분법에 대한 문제제기는 역사학계 내에서는 오래 전부터 제기되었습니다. 일단 이분법 그 자체가 이미 현실을 설명하기에는 너무 단순한 틀입니다. 검정색과 흰색만으로-심지어 회색조차 없습니다!- 총천연색의 현실을 재구성할 수는 없으니까요. 더욱이 두 주장은 서로 정반대인 것처럼 보이지만 식민(지)성과 근대성을 양립할 수 없는 관계로 본다는 점에서 인식의 기반을 공유하기도 합니다.

 

  수탈론은 식민(지)성이 근대성의 올바른 성취를 저해했다고 봅니다. 식민지가 '근대'의 온전한 성취를 방해한(했)다는 거죠. 그러니 이 관점에서 식민지와 근대는 상충합니다. 반면 미화론은 식민지기에 이뤄진 근대화를 일단은 있는 그대로 봐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근대화의 성취 여부가 중요한 것이지 당대를 평가하는 데 있어서 '식민지'라는 조건과 배경은 부차적이라는 거죠. 이 관점에서는 근대성의 성취 여부만이 중요할 뿐 식민(지)성의 여부가 애초부터 중요하지 않기에 식민(지)성과 근대성을 동시에 논하는 것 역시 불가능합니다.

 

  하지만 서구에서 근대 자본주의가 출발하고 성숙하는 과정이 기실은 비서구에 대한 식민화와 함께 이뤄졌다는 것을 생각하면 이러한 관점들은 현실을 설명하는데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이러한 논쟁 구도에 대해 근본적인 문제를 제기한 것이 바로 '식민지근대성'론이었습니다. 대략 1990년대 중후반 정도부터 본격적으로 제기되기 시작한 '식민지근대성'론은 한국에서 '근대'를 말할 때 '식민지'라는 조건과 배경을 생략할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현실을 설명하는 데 한계가 많을 수밖에 없는 기존의 논쟁 구도에 의문을 제기하면서 역사적 선善으로 당연시되었던 '근대'를 의문시하고 역사학자의 '언어'에 녹아들었던 이데올로기적 전제들을 성찰할 수 있게 했다는 점에서 '식민지근대성'론의 지적 성취는 적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저 역시도 당시에 이러한 문제의식에 크게 공감하며 여러 책들을 게걸스럽게(!) 읽었던 기억이 납니다.) 지난 2006년에 공제욱과 정근식 등이 함께 펴낸 『식민지의 일상, 지배와 균열』은 이러한 지적 흐름 위에 있습니다.

 

  다만 나온지 20년 쯤 지난 이 책을 지금 갓 나온 책처럼 논하기는 어렵습니다. (제 최근 독서리스트가 대충 다 그 시기에 나온 책들인 것은 왜때문일까요.) 그보다는 이 책으로 대표되는 식민지근대성론의 성취에 대해 (다소 냉정하게) 살펴보게 됩니다.

 

  무엇보다 식민지기의 경험을 현재를 기준으로 단순히 판결내리기 전에 식민지의 복잡성을 먼저 이해해야 한다는 주장이 결과적으로 식민지에 대한 우리의 판단을 무한히 유보시키는 것으로 귀결되지는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식민지기의 복잡함을 이해해야 한다는 말이야 당위적으로 옳습니다만 혹시라도 그것이 극단적 실증주의로의 매몰로 귀착된 나머지 당대의 경험에 대한 판단을 불가능하게 한 것 아닌가 하는 것이죠. 더욱이 과거에 대한 공감과 이해가 괴상한 방향으로 치닫는 바람에, 식민지기의 부도덕과 비윤리가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라거나 매우 당연한 일이라는 식의 판단까지 가능케 했다고도 볼 수 있을 겁니다.

 

  그런 점에서 식민지근대성론을 말하는 몇몇 논자들이 식민(지)성과 근대성이 양립 가능하다고 말하는 과정에서 결국 '식민지'라는 조건/배경을 근대국가의 여러 형태 중 하나인 것처럼 다루었던 것은 아닌가 싶습니다. 즉, '식민지 근대'의 의미를 '식민성과 근대성의 착목'이 아니라 '식민지 기간 동안 이뤄진 근대'를 무비판적으로 나열하는 정도로 이해했다는 비판도 가능하다는 것이죠. (그런 점에서 김낙년 선생님이 「'식민지 근대화' 재론」(『경제사학』 43, 2007.)에서 식민지근대성론과 식민지근대화론이 상통하는 지점이 있다고 말한 것은 대단히(!) 의미심장합니다.)

 

  그런데 이런 냉소적인 우려는, 다름아닌 식민지근대성 연구자들 스스로가 애초에 이미 잘 알고 있던 것 같습니다. 『식민지의 일상, 지배와 균열』에서 선행연구 정리에 해당하는 조형근 선생님의 「한국의 식민지 근대성 연구의 흐름」에 이런 제 냉소에 대한 우려가 이미 상당 부분 선행되어 있거군요.

 

  이 글은 식민지근대성 연구에서 서구학계의 접근과 한국학계의 접근을 애써 구분합니다. 사람에 따라서는 지나치게 어색해 보일 수도 있는 이러한 구분은 ('apple'과 '사과'를 굳이 다르다고 말하는 그런 어색함이지요...) 서구학계의 접근(예컨대 신기욱·마이클 로빈슨의 『한국의 식민지 근대성』)이 '식민지적colonial'이라는 관형어의 의미를 부차화시키며 식민성을 온전히 비판하지 못한다고 지적합니다. 아마 여기에는, 민족 비슷한 것만 이야기해도 단박에 썩소부터 날리는 서구학계의 고약한 반反내셔널리즘적 고정관념도 깔려 있을 겁니다...

 

  그러니 식민지 역사를 말할 때는 어떤 식으로든 식민주의와 식민(지)성을 까먹지 않는 것이 가장 중요하지 않나 싶습니다. 식민지근대성론의 지난 20~30년 간의 연구성과가 결국 '식민지 기간 동안 이뤄진 근대를 나열하는 정도'로 그쳤던 것으로 보인다면, 이 역시도 식민(지)성에 대한 자각을 어느 순간 망실했기 때문이겠지요. 그리고 식민(지)성에 대한 비판이 전제되지 않는 한 (일전에 제가 어느 학술대회에서 들었던) '식민지근대성론 논의 그거, 결국에는 조선일보 같은 놈들만 가장 좋아했던 거 아닌가' 같은 비판 역시 앞으로도 계속 거듭되겠지요.

 


  그동안 식민지기의 일상생활의 연구는 문학 분야를 제외하고는 그다지 큰 관심을 받지 못했다. 민족독립이나 계급투쟁이라는 거대담론 속에서 주민들의 생활은 단순히 고통과 고난으로 상징화되었고, 이에 관한 언급은 대체로 개량주의의 영역으로 간주된 측면이 있다. 그러나 습속의 역사에서 보면, 이 기간의 변화는 매우 큰 것이고, 식민지체제 자체를 이해하는 데도 상당히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것이다. 이 영역은 식민지 권력과 민족내부의 근대적 엘리트 집단, 그리고 민중들의 생활습속이 서로 부딪치는 장이다. 식민지 권력은 한편으로 주민들의 일상에 대한 체계적 관찰과 이에 기초한 일상의 재조직을 시도하며, 다른 한편으로 조선인 엘리트들은 나름대로 조선의 전통적 생활양식을 성찰의 대상으로 삼으면서 이를 바꾸기 위한 계몽에 열심이었다. 그러나 민중들의 일상생활은 이들의 정책이나 계몽에 영향을 받아 변화할 뿐 아니라 동시에 이에 대한 습속화된 보수성에 의해 지속된다. 일상생활은 도시화와 산업화, 국권의 상실과 이를 회복하려는 의식적 운동 등 다양한 요인들이 경합하는 장이었다.
  일상생활 연구는 무엇인가. 일상은 기존의 구조나 제도의 상대적 대개념이기도 하고, 지배나 정책의 대개념이기도 하다. 일상생활 연구는 기존의 구조제도사나 지배정책사에서 배제된 연구주제를 선택한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하고, 구조주의나 제도주의의 설명이 갖는 한계를 넘어가는 대안적 연구방법을 의미하기도 한다. 즉 일상은 대상으로서의 일상과 방법으로서의 일상으로 구별된다. 일상생활에 대한 관심은 기존의 식민규율권력을 체현하고 있는 주체가 이론부과적인 측면이 강하다는 반성에서 주체의 경험을 어떻게 보다 적극적으로 인식할 수 있는가라는 문제의식의 산물이며, 구조나 제도와 주체성을 매개하는 영역을 발견하려는 노력이기도 하다. 일상에 관한 연구는 흔히 제도와 일상이라는 이분법적 틀에서 접근한다. 이것은 근대주체의 문제를 구조나 제도사로부터 벗어나 생활의 영역에서 포착하자는 시도이다. 거시적 구조에 의해 주체의 구체적 실천이 사라지는 상황을 벗어나 민중의 능동성 또는 하위주체들의 목소리의 복원을 위해 일상을 주목할 필요가 커진 것이다. 일제시대 일상생활이 중요한 관심사로 떠오른 것은 기존의 침략과 저항, 억압과 동화라는 이분법적 틀에서 벗어나서 보다 복잡하고 다양한 현실을 보자는 것이다. 저항 또한 지금까지 항일운동이나 독립운동으로 규정된 것들 외에 일상적 저항들이 포함되어야 하며, 협력과 저항 이외에 무수한 무관심과 회피, 유흥과 향락이 어떻게 배치되는가를 보려는 것이다.
  (...) 일상에 관한 연구는 이를 구성하는 각각의 요소들에 대한 세세한 관심으로부터 나오며 이 때문에 일상연구는 미시사적 접근을 취한다. 그러나 그것이 사회사적 의미를 획득하려면, 두말할 필요없이 일상의 단편들이 항상 전체의 구조나 제도의 맥락 속에 위치지워져야 한다. 이는 일상연구가 소재주의로 흘러서는 안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정근식, 「식민지 일상생활 연구의 의의와 과제」, 16~18쪽.)

 

  일상은 정의상 매일매일 반복되고, 무의식적으로 개인이나 집단의 몸에 각인된 것이다. 일상생활은 연구대상이나 소재를 의미하기도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방법으로서의 일상연구이다. 전자의 입장에 서면 일상은 구조나 제도와 확실히 구별되는 영역이지만, 후자의 입장에 서면, 반복되고 무의식적으로 체화된 것을 잘라낸 단면 속에서 구조나 제도, 또는 지배정책을 재발견하는 것이 중요하다. 일상의 미시적 현상 속에 깃들어 있는 제국의 문제를 포착해가는 것이 방법으로서의 일상연구가 갖는 문제틀이다.
  (...)
  일상연구에서 핵심적 관심은 지배와 저항, 강압과 동의의 관계에 관한 것이다. 일상생활은 지배전략과 저항전술이 만나는 지점이기도 하다. 일제시대 일상생활이 중요한 관심사로 떠오른 것은 기존의 침략과 저항, 억압과 동화라는 이분법적 틀에서 벗어나서 보다 복잡하고 다양한 현실을 보자는 것이다. 저항 또한 지금까지 항일운동이나 독립운동으로 규정된 것들 외에 일상적 저항들이 포함되어야 하며, 협력과 저항 이외에 무수한 무관심과 회피, 유흥과 향락이 어떻게 배치되는가를 볼 필요가 있다. 그러나 일상을 통한 연구는 지배의 관철보다는 식민권력이나 지배층이 의도하는 것과는 다른 균열, 어긋남이 있다는 점을 확인할 때 최소목표가 달성된다. (정근식, 「식민지 일상생활 연구의 의의와 과제」, 18~19쪽.)

 

  여기서 식민성과 근대성이라는 두 범주가 맺어온 이 길항성이 사실 한국사회만의 고유한 상황이 아니라는 점과, 그 관계가 단순히 길항관계로 협애화될 수 없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두 범주간의 긴장, 갈등, 상호침투는 우선 식민지 경험을 공유한 많은 사회들에서 거의 공통적으로 재생산되어온 문제다. 동시에 이 긴장과 상호작용의 관계는 식민지를 경영했던 과거의 제국들 내부의 이질적 구성을 심화시키면서, (서구적) 근대성의 균열 지점들을 생산하고 있다. 이런 상황은 식민성과 근대성이 맺고 있는 복잡하고 중층적인 관계가 특정한 식민주의 국가와 식민지 사이의 1 대 1 대응 현상으로 제한될 수 없는, 어떤 종류의 일반성을 띠고 있음도 시사한다.
  이러한 일반성은 이른바 서구적 근대의 출발, 특히 근대 자본주의의 출발이 비서구에 대한 식민화를 내재적 조건으로 하고 있었다는 사실에 대한 인식에 의해 더욱 분명해진다. 마찬가지로 서구 근대의 '풍부한 문화적, 역사적 세부들'은 식민주의의 경험 속에서 성립되고 실천되었다. (...)
  이런 점들을 고려한다면, 근대 자본주의 체제를 포함한 서구 근대성의 성리은 그 출발부터 비서구에 대한 식민지화 과정과 결합되어 있었다고 말할 수 있다. (...) 요컨대 서구의 근대적 '발전'이 선행한 다음 식민주의의 발호와 식민성이라는 속성이 부가된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근대성은 식민성 없이는 존재할 수 없었고, 역으로 식민성은 근대성과 결합된 형태로만 존재할 수 있었다는 주장이 가능하게 된다. 월터 미뇰로의 주장처럼 근대성은 그 형성과 팽창의 내부로부터만이 아니라 그 외부성과 경계로부터도 파악되어야 한다. 이 때 식민성과 근대성은 별개의 원리나 힘이 아니라 식민지 근대성이라는 사태 혹은 근대 식민지 세계체제라는 하나의 세계의 양측면으로만 존재한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조형근, 「한국의 식민지 근대성 연구의 흐름」, 51~54쪽.)

 

  현재 형성 중인 식민지 근대 혹은 식민지 근대성론은 매우 흡사하면서도 구별되는 면을 가진 두 흐름으로 구별할 수 있다. 한 흐름은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서구의 한국학자들을 중심으로 형성되고 있는 Colonial modernity approach로서, 이들은 기존의 지배적 서사인 민족주의적 담론의 한계를 지적하면서, 민족주의, 식민주의, 근대성이 상호작용했던 복잡한 양상을 추적하고자 한다. 다른 한 흐름은 이른바 수탈론과 식민지 근대화론이 사유할 수 없었던 영역, 즉 근대성에 대한 급진적 비판의 관점과 식민성 비판을 통합적으로 사유하려는 시도의 일환으로 식민지 근대성 접근을 채택하고 있는 일련의 작업들이다. (조형근, 「한국의 식민지 근대성 연구의 흐름」, 59쪽.)

 

  박명규는 신기욱을 비롯한 이들 논자들에게서 colonial이라는 수식어가 부차화되어 있다고 비판한다. 에컨대 신기욱의 식민국가론은 일반적인 국가의 한 유형으로 제시될 뿐, 그 특수한 성격은 거의 고려되지 않는다. 지주계급에 맞선 식민국가와 농민의 전략적 연합을 설명하기 위한 개념인 식민지적 조합주의(colonial corporatism)에 대한 설명에서 '식민지적'이라는 형용사는 제거되어도 좋을 만큼 조합주의 일반의 정의가 사용되고 있다. 요컨대 그에게서 근대성에 대한 인식은 분명히 관찰되지만, 식민성은 형해화되어 사라지고 보이지 않으며, 다시 한번 식민지를 '이식된 근대' 차원으로 왜소화시킨다는 것이 박명규의 비판이다.
  (...) 실제로 신기욱과 로빈슨은 근대성이 그 기원과 본성에서 '본래부터' 서구적 현상이라고 본다는 점, 따라서 근대성을 모델과 변형이라는 확산 모델을 통해 설명한다는 점에서 이들의 식민성 개념은 사실상 '식민지시기에 이루어진 근대성'에 불과하다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조형근, 「한국의 식민지 근대성 연구의 흐름」, 60~61쪽.)

 

  근대성에 대한 발본적 문제제기는 근대성 논리가 자신의 보편화 담론에서 은폐하고 있던 서구 중심주의적 세계사관에 대한 문제제기를 동반한 것이기도 했다. (...)
  유재건은 월러스틴의 세계체제론을 원용하여, 근대성과 어긋나는 것으로 간주되는 반봉건성, 인종주의, 식민주의 등을 유기적 일부로 갖는자본주의 세계경제의 필수적인 작동원리라는 차원에서 자본주의적 근대성과 식민지 경로의 '보편성'의 역사적 공존을 이해한다. (...)
  여기서 유재건은 식민지적 경로의 보편성에 덧붙여서, 그렇다면 식민지적 차이는 어떤 것인지를 질문한다. 근대성의 부정적 측면이 좀더 전면화되는 것이 식민지적 차이의 내용인가? 그의 발걸음은 이보다는 좀 더 복잡하게 보인다. 그는 식민지 근대화론에 대한 정태헌의 수탈론적 비판을 평가하면서, 식민지하 자본주의의 '특수성'이 '본래'의 자본주의와 다르다는 뜻의 특수성이 아닐 수 있다고 조심스럽게 질문을 던진다. 즉 "근대 자본주의 일반과 다른 식민지 자본주의의 역사성을 해명하는 것이 아니라 근대자본주의의 역사성 안에서 식민지적 관계를 내화시켜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
  이런 점에서 식민지적 차이를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라는 문제는 식민성과 근대성을 통합적으로 다루고자 하는 입장들을 준별하고 그 스펙트럼을 그려볼 수 있는 리트머스 시험지 같은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고 판단된다. 김진균·정근식의 경우 식민지적 근대를 서구적 근대와는 다른 유형으로 파악하고, 그 차이의 특질을 일상생활에서 심득(心得)의 내면화로 대표되는 규율권력(disciplinary power)의 형성과 식민지 근대적 주체의 생산에서 찾고 있다. 그런데 이 때의 규율권력은 근대성만이 아니라 천황제적 요소, 즉 봉건적 유기체성을 포함하는 것이었다며, 따라서 식민지 근대의 주체 또한 근대적 규율을 내면화한 '황국신민'으로 주조되었다는 점에서 서구적 근대화는 구별된다.
  (...)
  반면 배성준의 제안은 식민지적 차이에 대한 미묘한 분기를 보여준다. 그는 '식민지 근대' 혹은 '식민지적 근대' 같은 개념화가 서구의 근대와 식민지의 근대를 차별화하고 근대의 부정적 측면을 사고하려는 노력의 일환이라며 일단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하지만 식민지 근대라는 개념이 서구적 근대와는 다른 식민지적 근대의 차별성을 제기하는 순간, 식민지적 근대는 일국적 차원에 갇히면서 조선 사회 내부의 보편성과 특수성, 근대와 전근대의 관련을 해명하는 문제로 황원된다. 결과적으로 근대성 자체는 서구에 귀속되며(서구적 근대성의 보편화), 식민지적 차이는 또다시 권력의 폭압성, 전통적 부문의 잔존 등과 같은 식민지적 특수성으로 환원된다. 한국사회의 식민지 근대성은 또다시 저 익숙한 이식 근대화 테제로 회귀하게 된다. (조형근, 「한국의 식민지 근대성 연구의 흐름」, 62~64쪽.)

 

  서구에서 본격적으로 일상, 일상생활에 대한 이론적 관심이 고조되는 것은 프랑스 68혁명과 더불어 생활의 변화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면서부터였다. 이것은 규격화되어감에 따라 일어나는 소외의 문제를 지적하고 일상적 규준으로 순응(conform)하는 것에 대한 거부와, 소비주의화되는 세계에 대한 저항의 의미가 있었다. 한편 독일에서 일상사 연구는 파시즘과 대중동원 문제가 제기되면서 본격화된 측면이 있다. 즉 파시즘의 동원이 일상적 영역으로 확대되는 문제에 기반한 일상영역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어, 기존의 지배와 저항이라는 틀로 설명되지 않았던 영역들에 대한 연구가 가능하게 되었다. 또한 80년대 이후 영국 좌파지식인들의 문화연구의 학문화 경향과 맞물려, 고급예술, 고급문화만이 아닌 보통사람들의 일상적 삶에 대한 연구가 증가하면서 일상연구가 더욱 빈번하게 행해진 것이다.
  한국에서 일상에 대한 관심은 90년대 이후 문화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면서 생겨났고, 또 한편으로는 90년대 이후부터 근대성 논의의 돌파구가 되기 시작했다. 근대성과 포스트모더니즘에 대한 연구와 논쟁은 한국에서 근대의 탄생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켰으며 특히 대중저술적 측면에서 일상에 대한 관심을 증가시켰다. 독립운동사, 민족운동사 측면에서 읽혀지던 자료들을 새로이 일상의 발견, 문화의 발견이라는 측면에서 독해하며 한국의 식민지적 근대성 형성의 기원을 추적하고자 하는 시도와 식민권력의 균열성을 지적하는 연구들이 등장했다.
  더욱이 다수이나 역사의 장에서 목소리를 갖지 못하고 있던 역사적 소수자에 대한 관심, 운동가나 특정 지식인의 역사가 아닌 이름없는 다수 민중의 역사를 재구성하고자 하는 관심 또한 증가했다. 이렇게 한국에서의 일상연구는 한국의 90년대 이후 변화하는 사회문화적 상황과 그로 인한 문제제기와 맞물려 있다고 할 수 있다. (주윤정, 「일상생활 연구와 식민주의」, 87~88쪽.)

 

  일상에 대한 연구가 가능해진 또 다른 중요한 이유는 의미발생에 대한 이해가 바뀌면서이다. 의미가 본질적으로 정초되었다는 기존의 이해와 달리 의미는 그 쓰임에서, 즉 구체적 맥락에서 발생한다는 시각이 등장했다. 의미는 사용함으로써 생겨나고, 인간이 실체들을 사회적 관계들 속에서 사용함으로써 의미가 발생한다고 본다. 드 세르토 등은 발화행위 자체를 통해 의미가 발생하는 점을 강조하는데, 그래서 문학연구에서도 수용자 중심의 연구들이 이루어지기 시작했다. 저자나 문학작품의 의미 자체보다 그 텍스트가 독자들에게 어떻게 수용 해석되는지, 의미지워지는지, 독자의 해석의 전략이 무엇인지를 묻는 연구들이 그것이다. 이런 이해는 점차 확산되어 사회·문화적 관계에 있어서도 생산자의 의도와 생산방식만이 아니라 생산된 생활양식이 소비되고 수용되는 구체적 과정을 통해 의미를 구성하고자 하는 시도가 등장했고 이는 일상생활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졌다. (주윤정, 「일상생활 연구와 식민주의」, 89~90쪽.)

 

  그러나 일상생활 연구에서 주의해야 할 문제가 있는데, 그것은 경험을 지나치게 특권화하는 방식이다. 일상적인 개인들의 경험은 자신의 위치에 근거해 바라본 시선의 산물인데, 그런 시선은 사회 전체를 조망하지 못하는 파편화된 것이다. 경험을 근거로 역사를 본질화하기 이전에 그들의 주체성을 형성하게 만든, 사회적 제약, 조건들에 대한 탐구가 필요하다. 다시 말해 일상의 경험을 구성하게 하는 역사, 사회, 경제적 물적 조건과 상징적, 문화적 조건이 맥락화된 후, 다양한 주체들의 경험이 제시되어야 한다. 이는 식민지 연구에 있어서 일상생활 연구가 문제라고 지적받고 있는 지점과도 만나는 곳인데, 식민지적 근대를 규정하는 조건, 맥락에 대한 엄밀한 검토와 더불어 일상의 경험이 논의되어야 할 것이다. (주윤정, 「일상생활 연구와 식민주의」, 10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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