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g君 Blues...
수학의 숲을 걷다 (송용진, 블랙피쉬, 2025.) 본문

중2 때였던 거 같습니다. (1차함수에서 이미 조짐이 보이긴 했지만) 2차함수에 이르러 그래프가 곡선으로 바뀌는 순간 저는 다짐했습니다.
'이렇게 된 이상, 수학은 버린다.'
언어라는 것은 그 자체로 힘이 있어서, 일단 스스로 '수포자'라고 생각을 하고 나니 그 이후로는 수학이라고 하면 일단 손사래부터 치는 것이 버릇이 됐습니다. 함수부터 무너지기 시작한 제 수학 관심은 결국 행렬 즈음에 이르러서는 내 인생에 무슨 도움이 되는지 알 수도 없는 이 숫자들을 붙들고 내가 왜 시간과 노력을 쏟아야 하나 하는 마음으로 세상을 원망하는 지경에까지 이르렀습니다. (행렬은 지금 이 순간까지도 어따 써먹는 건지 모릅니다.)
그런데 수학을 포기하고 수학 점수를 잘 받아야 한다는 강박이 사라지니 의외로 수학이 재미있을 때가 종종 있었습니다. 작도나 도형은 시각적으로 확인이 되니 어쩐지 숫자놀음 같지 않아서 재미있었습니다. 무한과 극한도 숫자라기보다는 추상적인 개념에 가까워 보여서 그 역시도 재미있었구요. 미분은 변화량(운동량)의 변화라는 식으로 이해하니 그 또한 재미있었습니다. 급기야는 (수학을 포기하는 계기가 되었던) 함수조차 달리 보였는데, 국민학교 6학년 2학기에 배웠던, 수식이 쓰여진 상자 입구에 숫자를 집어넣고 거기서 또다른 숫자가 튀어나오는 것이 실은 함수의 개념이었다는 걸 뒤늦게 알고 나니 함수가 전보다 훨씬 재미있게 느껴졌습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제 수학 점수가 마땅히 더 나아지지는 않았고 위와 같은 제 이해가 그다지 좋은 것도 아니었습니다. 예컨대 함수를 '숫자가 입력되고 출력되는 상자'로 간주했던 저의 이해 방식은, 이 책에 따르면 딱히 좋은 이해가 아닙니다. '규칙'과 '대응'이라는 함수 본래의 개념과 어울리지 않을 뿐더러 역함수 같은 것들을 설명하기에도 부적절하기 때문입니다.(145쪽.) 지금도 숫자만 보면 심장이 쿵쿵 뛰고 겁부터 나는 지금 제 꼴을 보면 딱히 수학에 대한 울렁증이 고쳐진 것 같지도 않습니다. ㅎㅎㅎ;;
하지만 제가 수학에서 배운 것이 아주 없는 것은 또 아닌 것 같습니다. 어떻게든 뭐라도 이해해보겠다고 혼자서 고민하고 나름의 방식으로 찾아가는 과정 자체가 수학이 제게 가르쳐준 것 아닌가 싶습니다. 결과적으로 그 이해가 틀렸다 하더라도 그게 무슨 큰 문제겠습니까. 오류를 인정하고 더 나은 이해를 수용할 수 있는 마음의 자세만 있으면 되겠지요. 오히려 그렇게 골똘히 고민하고 궁리한 경험이 있다면 새로운 설명도 더 쉽게 받아들일 수 있겠지요.
저희 책에서, 비전공 독자가 역사책을 읽는 것을 두고 "시즌이 20개쯤 되고 각 시즌에 에피소드가 100개씩 있는" 넷플릭스 드라마를 보는 것과 같다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제게는 수학이 꼭 그렇습니다. 역사책만큼 많이 읽지는 못하겠지만 그래도 틈틈이 시간날 때마다 수학(그리고 아마 과학도...)책도 읽어볼까 싶습니다.
그저 일해서 돈이나 벌고 여가 시간이나 즐기면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는 수학이 필요 없습니다. 하지만 지적인 삶을 추구하는 사람이라면 역사, 문학, 예술, 지리에 대한 지식이 필요하듯이 수학에 대한 지식도 필요할 것입니다. 수학은 인류가 오랜 세월에 걸쳐 어렵게 얻은 소중한 지식을 간직한 보물창고와 같습니다. 지적 호기심이 있는 사람에게는 수학 지식이 어떻게 실용적으로 활용되느냐보다는 그것이 우리의 자연과 우주를 이해하는 데 어떻게 쓰이는지, 그것이 얼마나 체계적이고 아름다운 언어인지, 그것들의 궁극적인 의미는 무엇인지 등이 더 궁금할 것입니다.
세계 어느 나라에서나 수학공부 때문에 마음고생을 하는 학생들이 많습니다. 수학 학습 부진아 문제는 어느 나라나 심각하긴 마찬가지입니다. 교육열이 높은 우리나라에서는 이 문제가 사회의 여러가지 문제들과 얽혀 있어서 획기적인 방안을 마련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이 문제에 대해 한 가지만 알아주면 좋겠습니다. 수학 자체는 죄가 없습니다. 수학 때문에 발생하는 여러 가지 문제점들은 학생들이 과다한 경쟁을 하면서 공부를 하는 상황이어서 발생하는 것이지 수학 자체가 지나치게 어렵다거나 보통 사람들에게는 별 필요가 없기 때문인 것은 아닙니다. (19~20쪽.)
제가 하고 있는 수학 연구의 경우에도 똑같습니다. 수학 연구에서는 어떤 한 문제를 풀기 위해 오랫동안 숙고하게 되는데 몇 날 또는 몇 주를 파고들어도 전혀 진전이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럴 때는 나아갈 길을 전혀 찾지 못해 깜깜한 어둠 속을 헤매는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앞으로 아무리 오랫동안 연구하더라도 진전의 기미가 없을 것 같다고 느껴질 때도 있습니다. 그런데 제 오랜 경험으로는 신기하게도 예외 없이 시간을 들인 만큼 조금씩 진전이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결국에는 진전이 있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으면 중도에 포기하지 않고 계속 가던 길을 가게 되고 결국에는 무언가 좋은 것을 얻게 됩니다. (24~25쪽.)
집합이 수학에서 매우 중요한 개념이라는 것은 우리 독자들도 익히 알고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논리적으로 사고하고 서술하는 것보다는 계산해서 답을 구하는 것을 더 중시하는 우리나라 수학교육에서 집합은 너무 개념적이어서 부담된다고 느끼는 모양입니다. 그래서 수십 년 동안 중학교 1학년 수학 교과서 첫 단원이었던 집합이 교과과정을 바꾸는 과정에서 어느 날 슬쩍 없어졌습니다. '수학을 쉽게 하자'는 취징니데요, 어려운 수학을 따라가기 힘들어하는 학생들을 위해 그냥 공식과 전형적인 문제 형식을 외워서 답을 구하는 수학, 논리적 사고와 풀이 과정은 무시하고 답만 맞으면 되는 수학 위주로 가르치겠다는 것입니다. 개념이나 논리가 부족하더라도 답을 구할 수 있다면 수학 부진아들도 어느 정도는 따라올 수 있다는 생각입니다.
논리적 사고 대신 계산을 통해 답을 내는 것만을 추구하다 보면 그것이 당장은 어느 정도 효과가 있을지 모르지만 결국 이것은 수학교육 본연의 목적과 부합하지 않습니다. 또한 그렇게 공부한 학생들은 나중에 언젠가 (고등학교 졸업 이전에) 논리적 사고를 요구하는 진짜 수학을 만났을 때 좌절하게 됩니다. (110~111쪽.)
하지만 저는 함수를 input, output의 개념으로 이해하라는 설명이 그리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그 첫 번째 이유는, 함수란 정의역에 있는 원소에 대하여 어떤 새로운 원소를 어떤 규칙에 따라 '대응'시키는 것이지 뭔가를 뽑아내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자동으로 뽑아낸다니요. 오히려 설혹 뭔가를 뽑아내는 기계를 상상하더라도 기계의 작동 원리에 더 신경을 써야 할 텐데요. 더구나 역함수와 같은 것을 다루기 위해서는 뭔가를 뽑아낸다는 개념보다는 대응시킨다는 개념이 더 어울린다고 생각합니다.
첫 번째 이유보다 더 중요한 것은 두 번째 이유인데 그것은 함수를 다룰 때에는 그 함수의 정의역, 공역, 치역을 살펴보는 것이라든가 그 함수가 일대일(단사)함수인지 전사함수인지를 따져 보는 게 매우 중요하므로 함수를 두 집합의 원소를 대응시키는 법칙이라는 형식적인 정의에 충실할 필요가 있습니다. 어차피 초등학교 때부터 학생들은 함수라는 개념을 대응을 통해 배웁니다. 초등학교 때는 함수라는 용어는 쓰지 않지만 규칙과 대응이라는 이름으로 함수의 개념에 대해 배웁니다. (145쪽.)
(...) 미분과 적분을 생각해 보면, 미분이란 어떤 함수의 (한 점에서의) 함숫값의 순간변화율이고 그것은 그래프의 접선의 기울기로 나타나죠. 그리고 적분이란 원래 어떤 영역의 넓이(또는 부피)를 계산하는 것인데요, 비분과 적분 사이에는 전혀 연관성이 없어 보이지 않나요? 뭔가 잘게 쪼개서 살펴본 후 그것의 극한을 취한다는 점은 비슷하지만 구하고자 하는 값의 성격이 전혀 달라 보입니다.
역사적으로는 수학자들이 미분보다 적분의 개념을 먼저 생각했습니다. 어떤 대상의 넓이를 구할 때 (곡선의 길이나 물체의 부피도 유사하게) 그 대상을 작은 사각형들로 쪼갠 후에 이것들의 넓이를 더함으로써 구하고자 하는 전체 넓이의 근삿값을 구하는 노력(이것을 구분구적법이라고 합니다)은 고대 그리스의 수학자들부터 시작했습니다. 그 대표적인 수학자가 역사상 3대 수학자 중 한 명으로 꼽히는 아르키메데스Archimedes, BC 287-212입니다. 그가 구의 부피와 원기둥의 부피를 (아마도 구분구적법을 통해) 정확하게 알고 있었다는 것은 유명한 이야기이죠.
(...)
수학적인 표현으로 말하자면 미분은 국소적인local 성격의 값이고 적분은 전체적인global 성격의 값입니다. 우리는 그래프의 각 점에서의 미분값(접선의 기울기)을 통하여 그래프의 개혁을 알 수 있고, 물리학적으로는 물리량의 각 점에서의 순간변화율을 미분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반면에 우리는 적분을 통하여 어떤 물건의 전체 넓이나 전체 부피를 계산합니다. 물리학적으로는 (속도는 매 순간마다의 값이지만) 속도를 적분해서 총 이동 거리를 얻기도 하고, 힘을 경로에 따라 적분해서 (힘이 한) 일의 총량을 얻기도 합니다. (189~190쪽.)
미적분이 중요한 이유는 세상 만물이 움직이고 변화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변화하는 세상은 미적분을 통하여 이해되고 설명될 수 있습니다. 경제 현상, 사회 현상 등을 설명하는 데에도 미적분이 쓰입니다. 반드시 이공계 전공자가 아니더라도 지성을 추구하는 자라면 누구나 미적분에 대해 알아야 하는 이유입니다. 미적분의 개념과 의의를 모르는 자는 지성인임을 자처할 수 없는 시대가 된 지 오래됐습니다. (203~204쪽.)
(...) 저는 여러 날 깊이 생각해 보았습니다. '수학을 가르칠 때 너무 정확하게만 가르치려고 하는 것보다는 덜 정확하더라도 조금 쉬워 보이게 가르치는 게 더 좋은 것일까?' 하고요. 하지만 그런 것은 저 같은 수학자에게는 생리적으로 맞지 않는 것 같다는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어떤 개념을 (반드시 수학적 개념이 아니더라도) 진정으로 깨닫는 것은 결국 본인의 몫일 것입니다. 누군가의 좋은 설명이 이해에 큰 도움이 되기는 하지만 최종적으로는 자기 자신이 머릿속에서 소화하고 되새김하는 과정을 통해서 진정으로 이해하게 되는 경우가 많을 거예요. 수학의 경우에는 그렇게 하기 위해서 해당 개념과 연관된 문제를 푸는 행위를 하는 것이기도 하고요. (253쪽.)
평소에 논리를 중시하고 정확하게 말하고 판단하는 것을 중시하는 태도를 가져야 합니다. 수학공부를 머리가 아니라 몸으로 하듯이 논리적 사고도 몸에 밴 습관으로 하는 것입니다. 우리 뇌의 자동처리시스템은 매우 우수합니다. 우리가 의식하지 않을 때에도 뇌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근육을 조정하는 일도 의식으로 넘기지 않고 잘 처리합니다. 뇌도 우리 몸의 다른 장기들처럼 자율적으로 작동됩니다. 뇌는 경험으로 얻은 것이나 의식 중에 처리하던 것들을 사람들이 의식하지 못하는 동안에 잠재의식을 통하여 축적하고 발전시킵니다. 운동선수들은 중요한 승부처에서 뛰어난 정신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평소에 훈련을 합니다. 운동선수의 정신력도 일반인들의 논리적 사고력도 모두 반복 연습과 습관 들이기를 통하여 증진될 수 있는 것입니다.
논리적 사고력도 결국은 평소에 정확한 언어를 구사하는 것으로부터 길러집니다. 틀린 말을 하는 것을 기피하는 문화의 확대가 필요합니다. 어린 학생들은 문화적 감수성이 상상 이상으로 예민하기 때문에 기성세대가 '정확함을 중시하는 문화'를 이루어 준다면 학생들의 논리적 사고력과 서술력은 자연스럽게 증진될 것이라고 믿습니다.
수학문제를 풀 때 적용되는 논리적 사고는 거창한 것이 아닙니다. 앞서 수학공부의 필요성 부분에서 언급했듯이 단순한 두 가지 과정을 반복적으로 밟는 것입니다. 첫 번째는 문제에 등장하는 기초적인 개념과 조건을 머리에 담는 것이고, 두 번째는 그것을 토대로 아주 작은 걸음을 내딛는 것입니다 .이러한 작업기억을 토대로 조금씩 나아가는 과정이 바로 논리적 사고 또는 그것을 통한 문제 풀이가 됩니다. (309~310쪽.)
실수는 유리수와 무리수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유리수와 무리수 중 어느 쪽이 더 많을까요? 다음과 같은 질문도 가능할 것입니다. "임의로 선택한 실수 1억 개 중에 유리수는 몇 개나 될까요?"
아무래도 유리수와 더 친숙해 왔던 우리는 막연히 '유리수도 무한히 많은데 실수 1억 개 중에 유리가 그래도 몇 개 정도는 있겠지' 하고 생각할지 모릅니다. 하지만 이 질문에 대한 정답은 "0개이다"입니다. 즉, 1개라도 있을 확률은 0입니다. 그 이유는 무리수가 유리수보다 '무한대 배' 더 많기 때문입니다. (34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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