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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문제연구 57호 (역사문제연구소, 2025.) 본문

잡冊나부랭이

역사문제연구 57호 (역사문제연구소, 2025.)

Dog君 2025. 12. 7. 20:31

 

  이번 호에는 제 전공분야만이 아니라 「역사 연구자들이 말하는 12.3 계엄과 응원봉 시위」에 유달리 밑줄을 많이 그었습니다.

 

  1963년 상공부는 「전원개발사무일원화 조치의 건」을 경제장관회의에 안건으로 상정, 한전 주관의 소양강댐 착공을 주장하였다. '전원개발 일원화'라는 논리로 이후의 댐 건설을 관장하려는 시도였다. 그러나 건설부는 '수자원개발 일원화'를 내세우며 반발하였다. 또한 같은 해 7월 「특정다목적댐법」을 만들어 국무회의에 상정하는 등 댐 건설사업에 대한 업무 소관을 제도적으로 확인하고자 하였다. 하지만 본 법안은 상공부의 반대에 부딪혀 통과되지 못했다. (고나은, 「1960~70년대 수자원개발 정책 하 안동다목적댐의 건설 추진 과정과 성격」, 115쪽.)

 

  (...) 수자원개발과 안동댐 건설 계획은 당시의 정치적·경제적 상황과 역학관계를 이루고 있었다. 이는 ① 박정희 정부 1차 계획 단계에서부터 계속해서 이어진 상공부와 건설부 간의 주도권 경쟁이 수자원개발 정책에 영향을 주고 있었던 점에서 드러난다. 이는 단순한 업무 권한 분쟁이 아니었다. 다목적댐과 단일목적댐, 수자원개발 일원화와 전력개발 일원화를 주장하는 정책 담론의 경합이었다. 이러한 경합 과정에서 계획된 안동댐의 사례는 정책입안자 및 수문공학자들의 불안정한 정체성과 정부의 개발 정책이 공명하는 과정 속에서 수자원개발 패러다임의 정책적 전환이 발생했음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 (고나은, 「1960~70년대 수자원개발 정책 하 안동다목적댐의 건설 추진 과정과 성격」, 136쪽.)

 

김대현: (...) 서로 정체성이 다르더라도 그 자리에 한 번 있는 사건으로서의 경험은 너무 중요해요. 사실 그 사건의 힘이 필요하기 때문에 운동단체들이 무언가를 계속 조직하는 것이고요. 거기서 일어나는 어떤 연쇄들과 가능성은 우리의 닫힌 정체성을 열게끔 만들고, 거기에 있었다는 것은 곧 서로가 서로에게 한번 연루된 경험으로 남게 되죠. 퀴어 퍼레이드(퀴퍼)가 대표적인 예죠. 가령 어떤 게이가 페미니스트가 싫다고 하면, 저는 웬만해서는 거기에 대해 논쟁하지 않아요. 논쟁한다고 그 사람의 생각이 바뀌지 않으니까요. 그 대신 일단 퀴퍼를 한번 같이 가요. 거기에 한번 가보는 경험이 그 사람이 이전까지 페미를 비롯한 낯선 사람에게 가졌을 생각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내게 한번도 묻어본 적 없는 것보다 퀴퍼든 뭐든 내게 한번 묻은 사건을 사고하는 것이 그 사람의 인식을 더 크게 좌우하고, 그 인식을 더 탄실히 뒷받침한다고 믿어요. 나아가 저는 역사학의 최종심급 또한 어떤 민족성이나 역사철학이 아니라 그러한 사건의 우발성과 의외성이라고 생각하는 쪽입니다. (「역사 연구자들이 말하는 12.3 계엄과 응원봉 시위」, 500쪽.)

 

최성용: 결국 제 고민의 핵심은 이런 것 같아요. 이준석을 제압하려면 격국은 "나 되게 합리적인 문명인이야."라는 자의식을 깨는 게 정답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들거든요. (「역사 연구자들이 말하는 12.3 계엄과 응원봉 시위」, 526쪽.)

 

김대현: (...) 제가 지금 뭔가를 다 아는 것처럼 떠들고 있지만 사실 10년 전만 하더라도 그렇게 뭘 몰랐던 시절이 있었고, 그 사이에 제가 경험했던 사건의 힘이 모여서 언젠가 그것들을 깨닫게 만드는 변화의 힘으로 추동되는 것이겠죠. 그런 시간의 흐름을 생각했을 때, 내가 그렇게 뭔가를 모르는 상태일 때 나를 분명히 곁에서 참아준 사람이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그 모든 걸 한번에 다 알아야 한다고, 너는 지금 이렇게 해야한다고 얘기하기보다 그냥 천천히 퀴퍼같은 현장을 경험하게 하면서 스스로 문리를 알 수 있게끔 저를 기다린 사람이 있는 거죠. 그런 게 좀 서로에게 필요한 시대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고, 사실 오프라인에서 사람을 자주 대하라는 것도 그런 경험을 하라는 속뜻이 아닌가 생각이 들어요. 그렇게 남을 참아주고, 기다려주는 일이 온라인에서는 참 하기 힘든 것이기 때문에.
  앞에서도 말씀드렸지만 저는 온라인에서 키배(키보드배틀)로 논쟁하는 사람들이 상대방의 생각을 바꾸는 걸 본 적이 없어요. 사람은 그런 식으로는 바뀌지 않는다고 생각해요. 그냥 어떤 사건들을 겪다가, 그 사건들의 의미가 어느날 문득 "아, 그런 거였구나" 하고 훅 다가올 때 사람이 바뀌죠. 그랬을 때 미숙했던 나를 누군가가 여태껏 참아주었듯이, 지금 미숙해보이는 남을 참아주고 기다려주는 경험, 그런 것들이 이 숱한 극우와 극단의 현재를 좀 변하게 만들 수 있는 전기가 되지 않을까, 그런 희망을 가지고 있습니다. (「역사 연구자들이 말하는 12.3 계엄과 응원봉 시위」, 535~53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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