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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처럼 보기 (제임스 C. 스콧, 에코리브르, 2010.)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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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처럼 보기 (제임스 C. 스콧, 에코리브르, 2010.)

Dog君 2025. 12. 23. 10:15

 

  '국가처럼 본다'라는 표현은 19세기부터 20세기 전반까지 서구 사회에 팽배했던 과학적·기술적 진보에 대한 강력한 낙관과 관련이 있습니다. 유럽사에서 벨 에포크(Belle Époque)라고들 불렀던 이 시기는 인간의 역량에 대한 무한한 낙관이 지배하는 시대였습니다. 세상의 모든 지식과 질서와 법칙을 인간이 언젠가는 다 파악할 수 있을 것이고 이를 통해 사회구조와 인간의 삶을 최대한 효율적이고 합리적으로 재정할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죠. 그리고 이러한 계획은 당대의 모든 역량이 집결된 국가를 통해 비로소 실현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저자는 이러한 야심을 '하이 모더니즘'이라고 부릅니다. 구체적인 사례로는 국가 내에 존재하는 인구, 토지, 농업 수확량, 부의 규모 등을 정확히 파악하는, 빈틈 없는 행정 체계의 수립을 꼽을 수 있습니다. 무정형의 현실이었던 것을 국가가 파악하게 되는 과정을 저자는 '읽을 수 있게 한다'라고 표현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읽을 수 있다'라는 것은 단지 이해하고 파악할 수 있게 되었다는 소극적인 의미가 아닙니다. 국가가 행정 체계를 통해 무정형의 현실을 통제하고 재배치할 수 있는 역량을 가지게 되었다는, 더 적극적인 의미에 가깝습니다.

 

  물론 이러한 역량이 가능해진 것에는 나름의 역사적인 이유가 있습니다. 첫 번째로는 시장 규모가 커지면서 도량형 같은 측정 기준이 통일되고 대규모의 통계 체계가 확보될 필요성이 제기되었다는 것을 들 수 있습니다. 두 번째로는 18세기 이후 가속화된 국민국가의 등장과 성숙에 따르는 대중적인 정서가 이를 요구하고 뒷받침하였다는 것, 그리고 세 번째로는 국가권력의 입장에서도 국가 단위(국경 내)의 통합력이 필요했고 동시에 그러할 수 있는 역량도 확보되었죠.

 

  하이 모더니즘적 야심의 구체적 사례는 르코르뷔지에입니다. 교통의 편의를 위해 격자형으로 구획되고 기능에 따라 엄격하게 구분되는 계획도시, 즉 그가 구상했던 '300만 거주자를 위한 현대 도시'는 하이 모더니즘의 극치를 보여줍니다. 이러한 하이 모더니즘은 역사와 전통과의 단호하고 급진적인 단절, 그리고 권위주의적인 국가권력, 잘 훈련된 엘리트의 등장과 연결될 수밖에 없죠. 르코르뷔지에가 좌우를 막론하고 권위주의적인 국가들에서 호응을 받아 그가 그런 국가들과 함께 일했다는 것은 의미심장합니다. 르코르뷔지에의 지향은 엘리트의 권위를 인정하고 이들의 지도에 따라 사람들의 삶과 지향이 재조직되어야 한다는 점에서는 레닌의 전위정당 이론과 상통하는 면이 있기도 합니다.

 

  하지만 저자는 이러한 하이 모더니즘의 시도는 성공보다는 실패한 경우가 더 많다고 평가합니다. 하이 모더니즘적 계획도시로 기획된 브라질리아의 경우 도시 중심부는 계획도시로 잘 정돈되어 상층계급의 모던한 삶을 구현했지만, 도시 주변부는 여전히 하층계급이 거주하는 무정형의 공간으로 남았다는 거죠. 도시 중심부의 하이 모더니즘은 주변부의 非하이 모더니즘 덕에 비로소 가능했다는 것입니다.

 

  책 말미에 이르러 저자가 하이 모더니즘과 대별되는 개념으로 제시하는 것은 '메티스metis'입니다. 굳이 번역하자면 실행지(實行知, practical knowledge) 정도인 메티스는 주어진 환경과 반복된 경험으로 습득된 지식을 일컫는 말로 규격화·공식화된 지식이라기보다는 임기응변과 국소적인 지식에 좀 더 가깝습니다. 물론 저자는 메티스와 하이 모더니즘을 대비하고 둘 중 하나만 골라야 한다는 이분법적 주장을 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보다는 그간 하이 모더니즘의 세계가 메티스를 전혀 수용하지 않았다는 점을 지적하고, 하이 모더니즘이 메티스의 세계까지 포괄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절충적인 입장에 더 가까워 보입니다.

 

  1960년대를 전후한 개발의 역사를 주로 연구하는 저로서는 훌륭한 참고자료를 얻은 느낌입니다.  (어쩌다가 이걸 이제야 읽었나 싶습니다;;) 다만 제가 연구하는 대상은, 대체로 하이 모더니즘이 승승장구하는 경험들이라 저자와는 조금 다른 결론이 나올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물론 이것은 어디까지나 잠정적 가설일 뿐, 실제로 연구에 적용시켰을 때 어떤 결론이 나올지를 예단할 필요는 없겠지요. 무엇보다 이런 이론적 도구를 통해 제 연구주제를 더 일반화하고 추상화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이미 큰 기쁨입니다. 결과적으로는, 게으른 연구자인 제게 또다시 채찍질이 되는 책을 만난 셈입니다. ㅎㅎㅎ

 

  나는 매우 강력하고 전형적인 사례를 부각시키고자 노력하면서, 나 자신이 하이 모더니스트들은 비난받아 마땅하다는 오만함을 드러내는 위험을 무릅쓰고 있다는 점을 깨달았다. 만약 당신이 당신의 관점을 변화시키는 쪽으로 렌즈를 손질하면 세상만사를 똑같은 안경을 통해 바라보려는 엄청난 유혹에 빠질 것이다. 그러나 나는 이 책을 정독하게 되면 결코 그렇지 않다는 사실을 알아차리게 될 두 가지 비난에 대해 결백을 주장하고자 한다. 첫 번째 비난은 내 주장이 토착적이고, 전통적이고, 관습적인 것들을 무비판적으로 예찬한다는 것이다. 내가 서술하는 실행지가 근대 자유주의적 감수성에 반하는 지배와 독점 그리고 배제의 관행과 종종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는 사실을 나는 알고 있다. 나는 결코 실행지가 모종의 신비한 그리고 평등주의적인 그 무엇의 산물이라고 주장하지 않는다. 대신 내가 주장하는 바는 이렇다. 곧, 질서의 공식적 체계는 그것들이 간과하기 십상인 몇몇 실행지와 관련된 요소 없이는 유지될 수 없다는 사실이다. 이 책에 대한 두 번째 비난은 내 주장이 국가 자체를 부정하는 무정부주의적 성향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내가 이미 수차례에 걸쳐 분명히 밝혔듯이 국가는 우리의 자유와 속박 모두의 기반이 되는 아주 골치 아픈 제도다. 내 주장은 이렇다. 어떤 종류의 국가는 주민의 가치와 욕구 그리고 반대를 유토피아적 계획과 권위주의적 묵살을 통해 밀어붙임으로써 실제로 인간의 복지에 치명적인 위협이 된다는 사실이다. 비록 이처럼 극단적이지는 않을지라도 많은 경우에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은 우리가 어떤 국가 개입에 의해 발생한 수익과 그것이 초래한 비용을 신중하게 서로 비교하지 않을 수 없다는 점이다.
  이 책의 집필을 끝낼 무렵 나는 일련의 국가 개입에 대한 이 책의 비평이 자본주의의 승리라는 1989년 이후의 역사적 관점에서 볼 때 일종의 낡은 고고학처럼 비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과학적 농경이나 산업적 영농 그리고 자본주의 시장 일반을 검토하며 분명히 지적한 것처럼 동질화, 획일성, 격자 그리고 용감무쌍한 단순화의 조직이라는 점에서 대규모 자본주의와 국가는 사실상 똑같은 존재다. 차이점이 있다면 전자의 경우 단순화의 비용을 자본가들이 지불한다는 사실 정도다. 시장은 가격 메커니즘을 통해 질을 양으로 환원시키며 표준화를 촉진한다. 이를테면 시장에서 말하는 것은 사람이 아니라 돈이다. 오늘날에는 아마도 글로벌 자본주의가 동질화를 촉진하는 가장 강력한 힘일 것이다. (...) 단도직입적으로 말하면, 어떤 종류의 국가에 대해 내가 보내는 고지서가 매우 세부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고 해서 그것이 곧 프리드리히 하이에크(Friedrich Hayek)나 밀턴 프리드먼(Milton Friedman)이 권고하는 것처럼 정치적으로 아무런 규제도 받지 않는 시장의 자율적 조정을 지지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우리가 이제 곧 살펴보겠지만, 사회공학이라는 근대적 계획의 실패에서 도출할 수 있는 결론은 관료주의적 동질화에 적용되는 것만큼 시장 주도적 표준화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28~30쪽.)

 

  과학적 상품인 삼림을 대략 살펴봄으로써 얻을 수 있는 은유적 가치는 이를 통해 극도로 복잡한 그러나 잘 알지 못하는 관계와 과정의 조합으로부터 중요한 가치를 위해 한 가지 요소를 분리시킬 경우 초래되는 위험성을 잘 설명해준다는 점이다. 원시적인 삼림을 개척했던 새로운 도구, 그 칼은 단일 상품 생산에서 면도날처럼 예리한 이해관계였다. 핵심 상품의 효율적 생산을 방해하는 모든 것은 무자비하게 제거되었다. 효율적 생산과 무관해 보이는 모든 것이 무시되었다. 삼림을 하나의 상품으로 바라보려 했기 때문에 과학적 삼림 관리는 삼림을 상품 생산 기계로 개조하려 했다. 삼림에서 공리주의적 단순화는 중·단기적 차원에서는 목재 생산을 극대화하는 효과적인 방법이었다. 하지만 결국 산출량과 장부상 이익에 대한 강조, 상대적으로 짧은 시간적 안목 그리고 무엇보다 과학적 삼림이 매사를 일사불란하게 처리했던 엄청난 결과는 유령처럼 되돌아와 삼림을 괴롭혔다.
  오래지 않아 가장 거대한 이익 영역, 즉 목질 섬유 생산에서조차도 나무를 보느라 숲 전체를 못 본 결과가 명백해졌다. 많은 경우, 관리상의 수월함과 경제적 보상을 좇는 이해관계가 강요하는 근본적 단순화와 직접 관련되는 것은 단일 수종 재배이다. 보통 단일 수종 재배는 복합 수종 재배에 비해 충격에 취약하고, 따라서 질병에 대한 스트레스나 일기 변화에도 취약하다. (...) 관리되지 않는 여느 삼림도 폭풍, 병해, 가뭄, 척박한 토양, 혹한에서 비롯한 스트레스를 경험할 수 있다. 하지만 많은 수종과 새, 곤충, 포유류가 완전한 보완 관계를 갖춰 구성이 다양하고 복잡한 삼림은 단일 수종 삼림에 비해 훨씬 더 건강하며 여러 가지 난관을 견디고 회복하는 능력이 한층 뛰어나다. 바로 그러한 다양성과 복잡성이 황폐화를 방지하는 데 도움이 되는 것이다. 폭풍이 어느 한 종의 크고 오래된 나무를 쓰러뜨려도 같은 종에 속하는 작은 나무와 다른 종의 큰 나무는 대부분 화를 면할 수 있다. 참나무를 위협하는 병충해의 공격에도 린덴(linden)이나 서어나무는 피해를 입지 않을 수 있다. (...) (48~49쪽.)

 

  국가가 자국 영토의 각 지역 구석구석까지 인구, 토지 소유, 수확량, 부, 교역 규모 등을 측정하고 체계적으로 성문화하기 시작한 배경은 무엇인가? 이러한 과업과 관련해 가장 초보적인 지식에 도달하는 길에서부터 그 장애는 엄청났다. 단일한 도량형을 확립하고 토지 소유 지적도를 완성하기 위한 노력이 그 특징을 잘 드러내는 사례에 해당한다. 이들 각각의 경우는 강렬한 저앟에 맞서기 위해 엄청난 비용이 드는 장기 캠페인을 필요로 했다. 저항은 일반 대중뿐만 아니라 지역의 토호들에게서도 일어났다. 그들은 종종 공직 사회 내부에서 분화된 이해관계와 임무가 만들어내는 행정상의 모순을 이용하기도 했다. 그러나 다양한 캠페인과 국가별 특성의 성쇠에도 불구하고 단일 도량형을 채택하고 지적도를 작성하는 패턴이 결국에는 보급되었다.
  이들 각각의 사업은 지역 특유의 인식 및 관행과 국가 행정의 일상화된 절차 사이의 관계 패턴을 보여주기도 한다. (...) 측정 및 토지 소유와 관련해 각 지방의 관행은 가공되지 않은 형태로서 국가가 '읽을 수 없는' 것들이었다. 그것들은 국가가 아니라 순전히 지방적인 갖가지 이해관계를 반영하는 다양성과 복잡함을 대변했다. 곧, 그들의 이해관계는―부분적으로 허구이기는 하지만―편리한 약기(略記)로 변형되거나 환원되지 않고서는 하나의 행정적 격자망으로 동화할 수 없었다. 필수적인 약기의 이면 논리는 과학적 삼림 관리에서처럼 통치자의 물질적 이해관계를 강요함으로써 제공되었다. 재정 인수, 군사력 그리고 국가 안보가 그것이다. (...) 기록, 법정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강압을 통한 국가 권력의 지원을 받으면서 이러한 국가 픽션(fiction)―비록 격자망에 전체적으로 정확히 부합한 적은 없을지라도― 측정하고자 한 현실을 나름대로 변형시킬 수 있었다. (52~53쪽.)

 

  결국, 쿨라가 일컬은 '계량 혁명'이 가능하게 된 것은 세 가지 요인이 공히 작용했기 때문이다. 먼저, 시장 교환의 성장이 측정에서의 통일성을 촉진했다. 둘째, 대중적인 정서와 계몽주의 철학이 프랑스 전역에 걸친 단일 표준화에 유리하게 작용했다. 마지막으로, 혁명, 특히 나폴레옹의 국가 건설은 프랑스와 그 제국에서 계량 시스템을 실질적으로 강제했다. (63쪽.)

 

  지적도는 강의 흐름을 찍은 스틸 사진과 매우 비슷하다. 측량이 이루어지는 그 순간의 구획 배치와 소유 상태를 그대로 재현한다. 하지만 강물은 지속적으로 움직인다. 그리고 중요한 사회적 격변과 성장의 시기에 지적 조사는 거대한 소용돌이 광경을 정지시킨 듯 찍을 뿐이다. 변화는 땅의 경계에서 일어난다. 곧, 토지는 상속이나 구매로 인해 나뉘거나 병합되고 새로운 수로, 길, 철도가 놓이며, 이용 방법도 늘 변화한다. 이와 같은 특정한 변화는 세금을 매기는 데 직접 영향을 주므로 그것을 지도나 토지 등기부에 기록하기 위한 조항이 있게 마련이다. 이렇게 주석(註釋)과 방주(旁註)가 특정한 지점 위에 계속 쌓이게 되면 지도의 가독성이 떨어진다. 그다음에는 더 최신의 그러나 여전히 정태적인 지도를 그려야 하고, 이러한 과정은 다시 반복된다.
  (...) 비록 정태적인 것이라 하더라도 다른 개략적 사실 또한 지속 가능한 징세에 필요한 나름의 판단을 내리기 위해 도출되어야 한다. 토지는 배수가 잘되는지, 어떤 작물이 잘 자라는지 그리고 추정 산출량이 얼마인지 등에 대해 표본 수확을 통해 확인함으로써 토양의 등급을 매길 수 있다. 이렇나 사실은 늘 변화하며, 평균값이 그들 간의 크고 다양한 편차를 감출 수도 있다. 지적도의 스틸 사진처럼 이러한 사실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더욱 비현실적이 되므로 반드시 재조사해야 한다.
  국가의 다른 모든 단순화와 마찬가지로 이런 종류의 국가 단순화는 그것이 대표한다고 가정하는 실제 사회 현상보다 언제나 훨씬 더 정태적이고 도식적이다. 농부가 평균 수확량, 평균 강우량, 작물의 평균 가격을 경험할 일은 거의 없다. 근대 초기에 유럽을 비롯한 다른 지역에서 나타난 농촌 조세 저항의 역사 중 대부분은 한편으론 융통성 없이 납세를 요구하고 다른 한편으론 그러한 요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농촌 주민의 역량에 기복이 클 경우, 이들을 조정하지 못했기 때문에 발생했다고 말할 수 있다. 선의에서 나온 지적 체계가 아무리 공평하다 하더라도, 측량과 계산의 안정적인 단위에 기초하지 않고서는 균일하게 운영될 수 없다. (...)
  실용적이고 구체적인 목적이 지배하므로 지적도라는 안경 역시 매우 뚜렷이 정의되는 관점 바깥에 놓인 일체의 것을 무시해버린다. 이는 측량 과정 그 자체에서 구체적인 사항의 손실로 나타난다. 최근 스웨덴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측량 기사는 지면을 실제보다 더욱 기하학적으로 정형화한다. 구불구불하고 울퉁불퉁한 것을 제거해보리면 작업이 수월할뿐더러 결과에도 실질적인 영향을 주지 않기 때문이다. 상업적인 삼림 관리자가 삼림의 소소한 상품을 못 본 척하는 게 더욱 편리하다는 사실을 발견한 것과 마찬가지로, 토지 조사 관료 역시 주요 상업적 토지 이용을 제외한 다른 모든 것을 무시하려 했다. (...) 물론 근시안적 접근의 가장 두드러진 사례는 지적도와 토지 사정 체계에서 토지와 그 가치의 차원을 오직 생산적 자산 혹은 판매 상품으로 국한시킨다는 점이다. 생계 목적이나 지역 생태와 관련해 차지할 수 있는 토지의 가치가 심미적, 제의적(祭儀的), 감상적 가치로 치부되어 고려 대상에서 제외되고 마는 것이다. (86~88쪽.)

 

  파리의 경우 도시의 가독성은 계급과 기능에 따른 인구 분할에 의해 높아졌다. 도시 각 부분은 부르주아의 쇼핑 공간, 부유층 거주지, 공업 지역, 예술가 지구, 보헤미안 지구처럼 의복이나 행위 그리고 부의 수준 등에 따라 차별적인 특징을 갖기 시작했다. 오스망의 대담한 단순화 덕분에 도시는 한층 관리하기 쉬워졌고, '읽기'가 더욱더 편해졌다.
  근대 도시 계획의 야심작 대부분이 그러하듯 오스망에 의해 넓어지고 당당해진 새 수도에는 그것에 버금가는 어두운 측면이 있었다. 파리 중심지를 고위층이 차지하는 도시 공간의 새로운 위계 구조에는 도시 빈곤층을 도시 외곽으로 쫓아내야 하는 전제가 깔려 있었다. (...) (110쪽.)

 

  국가 단순화는 '가독성 프로젝트'의 진행상 일부로 간주할 수 있으며 결코 완전할 수 없는 성질을 갖고 있다. 비록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이런 단순화를 만들어내는 자료는 부정확성, 생략, 잘못된 합산, 부정, 부주의, 정치적 왜곡 등으로 가득 차 있다. 사회를 조작하려는 어떤 국가 통치에도 가독성 프로젝트가 내재해 있지만, 그것은 국가 내부의 경쟁자, 기술적 장애 그리고 무엇보다 국민들의 저항에 의해 약화된다.
  국가 단순화에는 적어도 다섯 가지 정도의 강조할 만한 특징이 있다. 그중 가장 분명한 것은 국가 단순화가 사회적 삶의 측면 중에서 공공의 이해에 부합하는 것들에 대한 관찰일 뿐이라는 사실이다. 그것은 '이해관계가 결부된' 공리주의적 사실들이다. 둘째, 국가 단순화는 거의 항상 (언어 또는 숫자로 나타내는) '문서상의 사실'로 작성된다. 셋째, 국가 단순화는 전형적으로 '정태적 사실'이다. 넷째, 가장 잘 양식화된 국가의 사실은 거의 언제나 '집합적 사실'이다. 집합적 사실은 (대중교통 네트워크의 밀도처럼) 비인격적인 것일 수도 있고 (취업률이나 문맹률, 거주 유형처럼) 개인들에 관한 사실을 단순 수집한 것일 수도 있다. 마지막으로 국가 관료들은 대부분의 경우 집단적 평가가 가능한 방법으로 시민을 분류할 필요가 있다. 평균 혹은 분포로 집성되고 표현할 수 있는 사실은 따라서 '표준화된 사실'이다. 집성된 자료를 구성하는 다양한 개인의 실제 상황이 아무리 독특하더라도 관심 있는 내용은 그들의 유사점, 아니면 더 정확히 말해서 표준화된 척도 혹은 연속선상에서 나타나는 그들 간의 차이점이다. (134~135쪽.)

 

  그렇다면 도대체 하이 모더니즘이란 무엇일까? 그것은 대략 1830년대부터 제1차 세계대전까지 서유럽과 북미 지역이 경험한 산업화와 관련 있는 것으로, 과학적·기술적 진보에 대한 신념의 강력한(근육질이라고도 말할 수 있다) 형태로 가장 잘 이해할 수 있다. 그 핵심에는 다음과 같은 것들에 대한 최고 수준의 자기 확신이 있다. 곧, 선형적 진보의 지속, 과학적이고 기술적인 지식의 발전, 생산의 확대, 사회 질서의 합리적 설계, 인간의 요구에 대한 만족의 증가 그리고―이것들에 비해 결코 덜 중요하지 않은―자연 법칙에 대한 과학적 이해에 상응하는 것으로서 자연(인간을 포함해)에 대한 통제의 증대. 하이 모더니즘은 따라서 인간 활동의 모든 영역에서―일반적으로 국가를 통해―기술적이고 과학적인 진보의 혜택이 어떻게 적용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아주 획기적인 비전이다. 우리가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만약 국가 관료의 단순화되고 공리주의적인 '묘사(description)'가 국가 권력의 행사를 통해 사실을 자신들이 내세우는 것에 일치시켜왔다면, 하이 모더니즘 국가의 경우에는 새로운 사회를 만들기 위한 포괄적인 '처방(prescription)'을 갖고 시작했으며 그것들을 의도적으로 강요했다고 말할 수 있다. (147쪽.)

 

  무엇보다도 먼저 하이 모더니즘은 역사와 전통에 대한 단호하고도 급진적인 단절을 암시한다. 합리적 사고와 과학적 법칙이 모든 구체적 질문에 대해 유일한 대답을 제공할 수 있는 한 어떤 것도 당연하게 받아들일 수는 없다. 가족 구조와 거주 패턴에서 도덕적 가치와 생산 형태에 이르기까지 인간이 물려받은 모든 관습과 실재는 과학적 추론에 입각해 있지 않기 때문에 재검토되고 재설계되어야 했다. 과거의 구조는 전형적으로 신화와 미신 그리고 종교적 편견의 산물이었다. 생산과 사회 생활을 위해 과학적으로 설계된 계획은 과거로부터 물려받은 전통보다 분명히 나아 보였다.
  이러한 견해의 원천은 본질적으로 권위주의적이다. 만약 계획된 사회 질서가 역사적 현실의 우연적이고 비합리적인 발현보다 더 낫다면 두 가지 결론이 뒤따른다. 이와 같은 최상의 사회 질서를 식별하고 차조할 수 있는 과학적 지식을 갖춘 사람들만이 새로운 시대에 세상을 지배할 자격이 있다. 또한 퇴행적인 무지에 의해 그와 같은 과학적 계획에 복종하지 않는 사람들은 그 혜택을 얻을 수 있도록 교육받아야 하며, 만약 그렇지 않으면 거세되어야 한다. 레닌과 르코르뷔지에 같은 인물이 갖고 있던 하이 모더니즘의 강성(强性) 버전은 그들이 개입할 대상에 대해 가공할 만한 잔인성을 배양했다. 가장 급진적인 경우, 하이 모더니즘은 과거를 철저하게 청산한 다음 원점에서 다시 시작하는 것을 고려했다. (153~154쪽.)

 

  두 전통과 관련해 가장 눈에 띄는 것은―다시 한 번 말하거니와―만약 그렇지 않았을 경우 정치적으로 정반대 입장을 취했을 교육받은 엘리트들에 의해 공통적으로 신봉되었다는 사실이다. "테일러주의와 기술관료주의는 세 가지 좌우명을 갖고 있는 이상주의인데, 그것은 경제적·사회적 위기의 제거, 과학을 통한 생산성 확대 그리고 기술의 재신비화를 의미한다. 기술적·과학적 필요를 위해 사회적 갈등을 제거해야 한다는 식의 사회관은 자유주의, 사회주의, 권위주의, 공산주의, 심지어 파시스트적 해결조차도 포용할 수 있게 했다. 요컨대 생산제일주의는 정치적으로 문란했다.
  정치적 스펙트럼의 우파 및 중도파의 대부분에 걸쳐 생산제일주의의 이런 저런 매력은 주로 계급투쟁에 대한 기술적 '해결'이라는 전제에 기인했다. 그 지지자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만약 생산제일주의가 노동자의 생산성을 크게 증가시킬 수 있다면 재분배의 정치는 계급 협력에 의해 대체될 수 있고 그런 가운데 이윤과 임금이 동시에 증가할 수 있을 터였다. 한편 대다수 좌파의 경우, 생산제일주의는 자본가를 기술자 또는 국가의 전문가나 관료로 대체할 것을 약속했다. 또한 노동조직에서 어떤 문제와 관련해서든 한 가지 최선의 해결책 또는 '최선의 실천'을 제안했다. 그 논리적 결과는 짐작컨대 모든 사람의 이익을 위한다는 일종의 맞춤식 권위주의와 같은 형태였다. (161~162쪽.)

 

  계획되지 않은 브라질리아, 곧 진짜로 실존하는 브라질리아는 원래 계획안과 상당 부분 달랐다. 무계급의 행정 도시 대신 사회적 계급에 따라 뚜렷하게 공간이 분화된 도시가 되었다. 가난한 사람은 도시 주변부에 거주하면서 대다수 일리트 계층이 살고 일하는 도심까지 먼 거리를 통행해야 했다. 많은 부유층 역시 그들만의 단독 주택과 사적인 클럽을 갖춘 자신들만의 거주 지역을 만들어냈으며, 그 결과 브라질 어느 곳에서나 발견할 수 있는 풍요로운 생활양식을 재현했다. 부유층의 도시이든 저소득층의 도시이든 계획되지 않은 브라질리아는 단순히 부차적인 것이나 지엽적인 것이 아니었다. 곧, 계획의 중심부에서 이런 종류의 질서와 가독성을 유지하는 비용은 주변부에 위치한 계획되지 않은 브라질리아가 실질적으로 부담하도록 요구되었다. 두 개의 브라질리아는 서로 달랐던 것만이 아니었다. 이를테면 공생 관계였다.
  (...)
  하이 모더니즘 유토피아 공간으로서 브라질리아는 얼마나 성공적이었을까? 우리가 만약 그 점을 과거의 브라질 도시에 벗어난 정도로 얘기한다면 그 성공은 상당하다. 마약 우리가 그것이 브라질의 다른 지역을 변화시키거나 새로운 삶의 방식에 대한 애정을 고무시키는 데 얼마나 효과적이었는지를 묻는다면 그 성공은 미미하다. 설계 도면 속에 있는 가상의 브라질리아와 반대로 실제 브라질리아는 저항, 전복 그리고 정치적 계산에 의해 크게 얼룩졌다. (205~206쪽.)

 

  내 생각에 제이콥의 핵심적 관점은―달리 더 나은 표현이 없기에― '여성적 시각'이다. 물론 많은 남자들이 하이 모더니즘 도시 계획에 대해 통찰력 있는 비평을 했고, 제이콥스 역시 그들의 저작 가운데 다수를 참고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논쟁이 남성들의 비평과 똑같은 방법으로 수행되었다고 상상하기란 어렵다. 제이콥스의 비평 중 몇 가지 요소가 이러한 인상을 강하게 뒷받침한다. 첫째, 제이콥스는 상품과 서비스를 획득하거나 노동을 위해 매일 출퇴근하는 환경 그 이상의 것으로 도시를 경험했다. 따라서 그녀가 거리를 바라보는 관점은 볼일을 보러 나선 쇼핑객, 유모차를 미는 엄마, 뛰어노는 아이, 커피를 마시거나 간식을 먹는 친구, 함께 걷는 연인, 창밖을 내다보는 사람, 손님과 거래하는 상점 주인, 공원 벤치에 앉아 있는 노인의 시각이었다. 제이콥스의 설명에서 직장이 배제되지는 않았지만, 그녀의 관심은 직장 주변이나 직장 바깥에서 벌어지는 거리에서의 일상적인 것들에 집중되었다. 공적 공간에 대한 관심은 집 안 내부나 바깥의 공장 사무실 모두를 그녀의 연구 범위 안에 두게 했다. 산책하는 것부터 아이쇼핑하는 것에 이르기까지 그녀가 주의 깊게 관찰한 행동은 넓은 의미에서 보면 단 한 가지 목적만을 가진 것이 아니고, 좁은 의미에서 보면 뚜렷한 목적이 전혀 없었다.
  이러한 관점을 하이 모더니즘 도시 계획의 핵심 요소와 비교해보라. 후자의 경우는 인간의 활동을 명확하게 정의한 단일 목적에 일치시키는 단순화된 형태를 요구한다. 정통주의 도시 계획에 의하면, 이러한 단순화는 직장과 거주지 간의 엄격한 기능적 분리 그리고 그 둘과 상업 지역 간의 격리라는 원칙으로 이어진다. 르코르뷔지에 같은 사람에게 교통의 문제는 어떻게 사람들을 (주로 자동차로) 가능한 한 신속하고 저렴하게 이동시킬 수 있는가라는 데 있다. 쇼핑 활동은 일정한 규모의 쇼핑객과 상품을 위해 적절한 연면적과 접근성을 제공하는 문제였다. 심지어 여가 활동의 범주도 특화된 행위로 세분되어 운동장, 체육관, 극장 등의 공간으로 분리되었다.
  따라서 제이콥스가 여성적 시각을 가진 두 번째 결과는 (당연히 직장을 포함한) 인간의 수많은 활동이 사실은 광범한 목표와 만족을 추구하고 있다는 사실을 이해하는 것이었다. (...) 이런 일을 하다 보면 초대받지 않은 또 다른 '목적'이 새로 생겨나기도 한다. (...) 제이콥스는 '거리에 대한 관점'을 풍부하게 갖춘 인물로서, 인간의 행위 속에 내포된 목적의 엄청난 다양성을 충분히 인식하고 글을 썼다. 도시의 목적은 바로 이처럼 풍부한 다양성을 북돋우고 조화시키는 것이지 결코 방해하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제이콥스는 현재와 같은 도시 계획 이론이 이러한 목적을 달성하는 데 끊임없이 실패하는 것은 젠더(gender) 문제와 상관이 있다고 주장했다. (217~219쪽.)

 

  계획가들의 시각과 공식에 대항해 제이콥스는 자신만의 것을 제시했다. 그녀의 주장에 따르면, 자신의 미학은 실용적이고 일상적인 것으로서 도시에 실제 거주하는 사람을 위한 경험 속 삶의 질서를 중시한다. 그녀는 이렇게 질문한다. 어떤 물리적 환경이 사람을 끌어들이고, 사람들 간의 순환을 촉진시키며, 사회적 교류와 접촉을 증진시키고, 공리주의적이고 비공리주의적인 수요 두 가지 모두를 충족시키는가? 이러한 질문을 통해 그녀는 많은 결론에 도달했다. 작은 블록이 큰 블록보다 나은 것은 더 많은 활동을 엮어내기 때문이다. 대형 트럭 터미널 혹은 보행자의 이해와 상관없는 주유소는 가급적 회피해야 한다. 시각적이고 물리적인 장애물로 작용하는 폭 넓은 도로와 금단의 넓은 공적 공간 역시 최소화해야 한다. 여기에도 논리는 있다. 하지만 그것은 시각적 논리를 최우선으로 내세우는 것도 아니고, 좁은 의미에서의 순수한 공리주의적 논리도 아니다. 대신 하나의 공간 배치가 도시민의 실제 활동 속에서 드러나는 그들의 수요, 곧 그들의 사회적이고 실천적인 요구를 얼마나 잘 만족시키는지를 평가하는 기준이 제이콥스의 논리이다. (223~224쪽.)

 

  레닌이 구상한 전위 정당과 보통 사람 사이의 관계는 아마도 '대중' 또는 '대중들'이라는 용어에서 가장 잘 드러날 것이다. 이 용어가 사회주의자들의 어법에서 하나의 표준이 되었음에도 그것이 뜻하는 함의는 꽤 강력하다. 우선 질서가 없는 상태에서 단순한 양이나 숫자를 뜻할 때 '대중'보다 나은 단어는 없다. (...) 그들에게는 역사도 없고 이념도 없고 또한 행동 계획도 없다. 레닌 역시 노동자 계급이 자신만의 역사와 가치를 갖고 있다는 사실을 당연히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러한 역사와 가치는 과학적 사회주의라는 역사적 분석과 진보적 혁명 이론으로 대체되지 않는 한 노동자 계급을 잘못된 길로 이끌 뿐이라고 보았다.
  따라서 전위 정당은 대중의 전술적 결합에 필수적일 뿐 아니라 자신의 생각을 반드시 대중을 위해 실천해야 한다. 당은 역사와 변증법적 유물론에 통달함으로써 계급투쟁에서 정확한 '전쟁 목표'를 창안할 수 있는 일정의 집행 엘리트로서 기능하게 된다. 그러한 권위는 과학적 지식에 근거한다. (...)
  바로 이 점이 자발성에 반대하는 레닌의 핵심적 입장이다. 이 세상에는 두 개의 이데올로기밖에 없는데, 부르주아지와 사회주의자가 그것이다. 부르주아 이데올로기의 일반성과 역사적 권력을 감안한다면 노동자 계급의 자발적 발전은 언제나 부르주아 이데올로기의 승리를 초래할 뿐이다. 레닌의 유명한 공식에 의하면 "노동자 계급은 배타적인 그들 스스로의 노력만으로는 고작 노조(勞組) 의식만 키울 수 있을 뿐이다." 이에 반해 사회민주주의 의식은 외부에서, 곧 사회주의 지식인에게서 비롯되어야 한다. 전위 정당은 양심적이며 과학적인, 따라서 완벽하게 사회주의적인 것으로 묘사된다는 점에서, 비양심적이고 전(前)과학적이며 항상 부르주아적 가치를 흡수할 위험에 처한 대중과 더욱더 대조된다. 규율 부재에 대한 레닌의 엄숙한 경고는―사회주의 이데올로기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나는 것은 결국 부르주아 이데올로기의 강화를 의미한다―강력한 통제만이 언제든 해체되고 방황할 수 있는 혁명 대중을 바로잡을 수 있는 유일한 평형추라는 인상을 참모들에게 남겼다. (236~237쪽.)

 

  레닌과 르코르뷔지에는―훈련과 목적에서 나타나는 양자 간의 엄청난 차이에도 불구하고―하이 모더니즘 전망에 관해서는 몇 가지 기본 요소를 공유했다. 비록 우리가 그들 각각의 과학적 주자을 받아들이기는 어렵지만, 두 사람 모두 소수 계획 엘리트의 권위를 주장하는 데 활용할 수 있는 대표 과학(master science)의 존재를 믿었다. 르코르뷔지에는 근대적 건축과 효율적 설계의 과학적 진실이 자신으로 하여금 도시주의의 조화롭지 못하고 혼란스러운 역사적 침전물을 유토피아적인 도시로 대체할 수 있도록 한다고 믿었다. 레닌은 변증법적 유물론이 당에게 혁명 과정에 대한 각별한 통찰력을 제공하며, 조직화되지도 않고 이데올로기적으로 오도되기 쉬운 노동자 계급에 대한 리더십의 근원이 된다고 주장했다. 레닌과 르코르뷔지에 모두 자신의 과학적 지식이 도시를 설계하는 방식에서, 혹은 혁명이 결실을 맺는 방법에서 정확하고도 유일한 정답을 제시한다고 확신했다. 자신의 방법론에 대한 두 사람의 자신감은 '도시 설계 과학'이나 '혁명 설계 과학' 모두 기존의 관행이나 그것이 의도하는 혜택에서 거의 배울 게 없다는 사실을 의미했다. 이와 반대로 두 사람은 자신이 다루게 될 원재료인 인간에 대한 개조를 기대했다. 물론 두 사람 모두 인간 조건의 개선을 자신의 궁극적인 목표로 생각했고, 둘 모두 근본적으로 위계적이고 권위적인 방식으로 그것을 달성하고자 시도했다. 레닌과 르코르뷔지에 두 사람의 저작은 군대와 기계에 대한 은유로 가득 차 있다. 르코르뷔지에의 경우에는 주택과 도시가 삶을 위한 기계였으며, 레닌의 경우에는 전위 정당이 혁명을 위한 기계였다. 그들의 글에는 관료주의적 조정―특히 작업장과 연병장―의 중앙 집권적 형태가 자연스럽게 녹아 있다. 두말할 나위 없이 그들은 하이 모더니즘과 관련해 가장 영향력 있는 위대한 인물이면서 동시에 대표자이기도 했다. (246~247쪽.)

 

  룩셈부르크는 레닌과 트로츠키가 프롤레타리아 계급 독재에 대한 적절한 이해를 완전히 변절시켰다고 믿었다. 그녀에게 이는 프롤레타리아 계급 전체의 지배를 의미하는 것으로, 모든 노동자(적대 계급은 빼고)에게 가장 광범한 자유를 제공함으로써 사회주의 건설에서 그들의 영향력과 지혜를 발휘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다. 이를테면 레닌과 트로츠키의 주장처럼 당 지도자라는 소집단이 프롤레타리아라는 이름으로 독재 권력을 행사하는 것을 의미하지 않았다. (...)
  이러한 논쟁 밑바닥에는 단지 전술상의 차이뿐 아니라 사회주의의 본질에 대한 근본적인 불일치가 있다. 레닌은 사회주의로 가는 길은 이미 지도에 상세하게 그려져 있으며, 당의 역할은 당 조직의 강철 같은 규율을 사용해 혁명 운동이 바로 그와 같은 길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와 대조적으로 룩셈부르크는 사회주의의 미래는 찾아가는 것으로서, 노동자와 혁명적 국가 사이의 진정한 협력을 통해 만들어진다고 믿었다. 여기에는 사회주의 실현을 위한 "미리 처방된 규칙"도 없고 "어떠한 사회주의 정당의 프로그램 혹은 교과서에 통용될 수 있는 열쇠"도 존재하지 않는다. 사회주의적 미래의 특성인 개방성은 약점이 아니라 오히려 강점의 지표로서, 이미 결정된 유토피아적 사회주의와의 변증법적 과정을 의미한다. 사회주의 창조는 "새로운 영역으로서, 1000가지 문제에 대해 오직 경험만이 교정하고 새로운 방법을 열어준다. 오직 방해받지 않고 활력 있는 생활만이 1000가지 새로운 형태와 '즉흥적 대처'를 가능케 하며, 모든 잘못된 시도를 스스로 시정할 수 있는 창조적 힘을 불러일으킨다. 레닌이 사용한 지령과 테러 그리고 룩셈부르크가 '공장 감독관의 독재 권력'이라고 부른 것은 이와 같은 대중의 창조적 능력과 경험을 박탈해버리는 것이었다. 노동자 계급 전체가 정치 과정에 동참하지 않는 한 "사회주의는 책상 뒤에 있는 몇몇 지식인의 명령에 따르게 될 것"이라고 룩셈부르크는 비관적으로 덧붙인다. (271~272쪽.)

 

  나는 한층 일반적으로 권위주의적 하이 모더니즘과 특정한 제도적 장치 사이에는 '선택적 친화력'이 존재한다고 말하는 게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다음에 얘기하는 것은 다소 생경하고 잠정적이긴 하지만 하나의 출발점 역할은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이 모더니즘 이데올로기는 모종의 사회적 장치에 대한 교리적 선호를 구체화한다. 반면 권위주의적 하이 모더니즘 국가는 그다음 단계로 접어든다. 그런 국가들은 이런 것을 국민에게 부과하려고 노력하며, 종종 성공하기도 한다. 국가가 선호하는 것 대부분은 가독성, 징수, 통제의 중앙 집중화라는 기준에서 추론할 수 있다. 중앙에서 쉽게 감시·감독할 수 있고, (과세의 의미를 가장 포괄적으로 규정하더라도) 세금을 쉽게 거둘 수 있는 한 이런 제도적 장치를 장려하는 경향이 있다. 이러한 비교의 이면에 깔린 암묵적 목표는 전근대적 국가 통치의 그것들과 다르지 않다. 가독성이란 결국 권위주의적인 전환뿐만 아니라 징수를 위한 하나의 전제 조건이다. 차이가 있다면―사실 이것이 결정적인데―하이 모더니즘이 내포하고 있는 야망과 개입이 완전히 새로운 규모를 갖고 있다는 것이다. (332~333쪽.)

 

  소비에트의 집단 농장화와 대조적으로, 탄자니아의 촌락화는 징발을 위한 총력 동원이 그 발단은 아니었다. 니에레레는 어떤 누구도 자기 의지에 반해 새로운 마을로 떠밀려 들어가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며 행정적 또는 군사적 강권을 행사하지 말라고 강력히 경고했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자마아 캠페인은 강압적이고 때로는 폭력적이었다. 게다가 경제적으로나 생태적으로 실패로 판명되었다.
  이와 같은 권위주의적 하이 모더니즘의 '부드러운' 버전에서도 어떤 근본적 유사점은 존재한다. 첫째는 '개량'의 논리이다. '개량되지 않은' 삼림처럼 탄자니아의 기존 정주와 사회생활 패턴은 가독성이 낮고, 국가의 편협한 목적에서 보면 저항적이기까지 했다. 정주 패턴을 철저히 단순화함으로써 국가는 학교와 병원, 상수도 같은 양질의 서비스를 효율적으로 제공할 수 있었다. 단순한 행정적 편의가 국가 관료 집단의 유일한 목적은 아니었다는 얘기인데, 바로 이것이 우리의 두 번째 요점이다. 촌락화 이면에 감춰진 또 다른 목적은 주민 공동체를 정치적 통제에 더 적합한 대상으로 만들고, 국가가 정책적으로 추진하는 공동 농업이라는 새로운 형태로 재조직하는 것이었다. (...)
  그러나 관료주의적 관리라는 두 번째 기준을 넘어서는 세 번째 유사점은 효율성과 아무런 직접적 관련이 없다. 소련의 경우가 그랬던 것처럼 여기에는 미학적 측면도 강력하게 존재했다고 나는 믿는다. (...) 어떤 계획이 실제로 작동할지 여부보다 그것들이 외관상 반듯해 보인다는 사실이 더 중요한 셈이다. 말을 바꾸면, 배치가 똑바르게 보이면 그 자체로서 기능도 제대로 발휘될 것이라고 전제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재현의 중요성은 소형화시키려는 경향, 곧 견본 촌락과 시범 사업, 새로운 수도 등과 같은 외형적 질서의 미시적 환경을 창조하려는 경향에서 잘 드러난다. (338~340쪽.)

 

  우리가 지금까지 다룬 광범한 사례를 살펴보면 메티스의 본질과 그 관련성에 대해 어느 정도 초보적인 일반화를 시도해볼 수 있을 것이다. 메티스는 대체로 유사하지만 결코 정확하게 동일하지 않은 상황에 대해 가장 적용하기 쉬운 것으로서 그것을 실천하는 사람들에게는 거의 제2의 천성이 될 만큼 기민하고 실용적인 적응을 요구한다. 메티스의 기교는 경험 법칙을 나름대로 포함할 수도 있지만 그러한 법칙은 대개 연습(종종 공식적인 도제 관계 속에서)이나 전략을 통해 발달된 육감 또는 요령에 의해 획득된다. 메티스는 합리적 의사 결정의 형식적 과정을 적용할 수 없는 너무나 복잡하고 반복 불가능한 환경을 가정한다. 따라서 책을 통한 학습에 의해 성공적인 전달이 가능한 연역적 법칙으로의 단순화를 거부한다. 어떤 의미에서 메티스는 어떠한 공식도 적용할 수 없는 천재성이라는 영역과 기계적인 반복으로 습득할 수 있는 성문화된 지식 영역 사이의 넓은 공간에 가로놓여 있다. (476쪽.)

 

  이성적인 차원에서 우리는 상황적·지역적 지식을 보편적 기반 지식과 대비되는 일종의 당파적 지식으로 생각해볼 수도 있다. (...)
  이전의 장들에서 우리가 살펴본 국가 단순화와 유토피아적 계획은 모두 시공간적으로 특수한 상황에서 수행하는 활동이 그 대상이었다. 삼림, 혁명, 도시 계획, 농업, 농촌 정착 등에 대해 일반적으로 무언가를 말할 수는 있다. 하지만 우리에게 더욱더 의미 있는 것은 '이러한' 삼림, '이러한' 혁명 그리고 '이러한' 농장을 이해하는 일이다. 모든 농업은 특정한 장소(들판, 흙, 농작물)와 특정한 시간(기상 패턴, 계절, 해충 수의 주기) 그리고 특정한 목적(가족 나름의 수요와 기호)을 배경으로 갖는다. 이런 특수성을 무시하는 보편적 법칙을 기계적으로 적용하는 것은 실질적인 실패, 사회적 환멸감 혹은 양쪽 모두를 초대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 어떤 법칙이 더 일반적일수록 그것이 실제 현장에서 성공하기 위해서는 일종의 번역 과정이 필요하다. 이는 단순히 선장 또는 항해사의 경험 법칙이 도선사의 친근한 현장 지식보다 어떤 측면에서 열등한지를 깨닫는 문제가 아니다. 오히려 그들이 갖고 있는 경험 법칙이 대부분 항해와 조종에 대한 실제 경험에 입각해 성문화되었다는 사실을 제대로 깨닫는 문제다. (479~480쪽.)

 

  (...) 하위 체계는 흔히 비공식적이거나 선례에 따르는 다양한 과정에 의존하는데, 이런 것들은 결코 스스로 창조하거나 유지할 수 없다. 어떤 공식적 질서가 좀더 도식적이고, 좀더 얇고, 또한 좀더 단순화될수록 그 제한적 카테고리 바깥에서 발생하는 교란에 대해 탄력성이 낮고 저항력도 약하다. 하이 모더니즘에 대한 이러한 분석은 따라서 시장을 조정하기 위한 보이지 않는 손을 위미하며, 이는 중앙 집중적 경제와 반대되는 것이다. 하지만 한 가지 조심할 대목이 있다. 곧, 시장 그 자체가 조정을 위한 제도적 및 공식적 체계이긴 하지만, 시장은 참여자에게 나름대로 운신의 폭을 제공하며 그만큼 시장 역시 사회관계라는 좀더 큰 체계에 의존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이와 같은 사회관계의 좀더 큰 체계는 시장 자체의 계산법으로는 알 수 없는 것일 뿐만 아니라 시장이 스스로 만들거나 유지하지도 못한다. 내가 여기서 염두에 두고 있는 것은 계약법이나 재산법상의 명백한 요소 또는 그것을 집행하는 국가의 강제력만이 아니다. 동시에 나는 시장 교환 관계를 가능하게 해주는 사회적 신뢰, 공동체 및 협력의 선행(先行) 패턴과 규범까지도 고려하고 있다. 결국, 가장 중요한 점은 경제란 "유한하면서도 비성장적인 생태계의 하위 체계"로서, 그 추진 역량과 상호작용을 그것을 지속시키기 위한 필수 조건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점이다.
  내가 생각하기에 조정을 위한 거대하고도 형식적인 체계가 갖고 있는 한 가지 예외 없는 특징은―겉으로 보기에는 비정상적으로 보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바로 그와 같은 형식적 질서에 필수적인 것으로 간주되는 그 무엇을 동반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 중 대부분은 '구원용 메티스'라고 이름 붙일 수도 있다. 비록 권위주의적 사회공학 구상에 빠져 있는 사람에게는 그러한 임기응변이 혼선과 발악의 징표로 보일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제3세계의 도시뿐만 아니라 현대의 많은 도시조차 슬럼이나 불량촌의 거주민들이 제공하는 필수적인 서비스 덕분에 기능을 유지하며 살아남고 있다. (...) 이들 각각의 경우, 비순응적 관행은 공식 질서의 필수불가결한 조건이다. (534~535쪽.)

 

교정. 초판 3쇄

48쪽 밑에서9줄 : 일사분란하게 -> 일사불란하게

206쪽 밑에서7줄 : 브라질이아의 -> 브라질리아의

252쪽 밑에서1줄 : 카렌스키 -> 케렌스키

447쪽 밑에서6줄 : 학생 모습이었다 -> 학생의 모습이었다

504쪽 밑에서9줄 : 권련을 -> 궐련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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