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g君 Blues...
서울리뷰오브북스 20호 (알렙, 2025.) 본문

이번 호에서는 같은 서평을 연달아 두 번 읽었습니다. 여지껏 없던 일입니다. 벌써 몇 년 전에 읽고 다시 열어보지도 않았던 『나는 가해자의 엄마입니다』에 대한 김선경의 서평이었습니다. 평소에 관심이 가는 주제도 아니고, 제가 잘 알아서 몇 마디 보태고 싶은 분야도 아닌 책의 서평을, 거듭해서 읽은 것은 아마 저의 개인적인 경험과 관련이 있을 겁니다.
개인적인 어려움 때문에 심리상담을 꽤 오래 받은 적이 있습니다. 그 때 가장 많이 이야기했던 주제는 제 마음 속의 '엄격한 규칙'이었습니다. 너무 엄격하고 도덕적인 원칙과 규범을 제 마음 속에 세운 다음 거기에 저 스스로와 타인을 강박적으로 꿰어 맞추느라 심리적 에너지를 너무 많이 소모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거였죠. 물론 오랜 상담 덕분에 지금은 그런 강박이 훨씬 덜합니다만 지금도 가끔씩은 내가 또 그러고 있지는 않은지 스스로 묻고 돌아보곤 합니다.
그 '엄격한 규칙'을 김선경의 서평에서 "왜곡된 이상주의"라는 이름으로 다시 만났습니다. 그래서인지 서평을 읽는 내내, 남한테 들키기 싫었던 제 모습을 정확히 간파당한 것 같아서 살짝 부끄러웠습니다. 그런데 같은 서평을 두 번째로 읽을 때는 이런 고민과 고통을 나 혼자만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구나 싶어서 마음이 꽤 많이 편해지기도 했습니다. 큰 위로를 얻은 것은 물론입니다.
무릇 글에는 여러 가지 역할과 힘이 있다고들 합니다. 그에는 위로를 주는/얻는 것도 포함되어 있겠지요. 서평 또한 글이고, 따라서 서평을 통해서도 큰 위로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을 김선경의 서평을 통해 새삼 깨닫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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룰루 밀러가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Why Fish Don't Exist)』에서 조명한 우생학은 바로 그런 왜곡된 이상주의의 극단을 보여 준다. 미국 사회에서 자행된 우생학 정책들은 더 나은 인간을 만들겠다는 명분 아래 특정 인종과 계층, 장애가 있는 이들을 배제하고 통제했다. 특히 열등한 존재로 판명된 경우 강제 불임이나 낙태 시술이 합법적으로 자행되었다는 사실은 매우 충격적이다. 이런 사례들은 왜곡된 이상주의가 미국 사회에서 인간의 가치를 선별하는 사고의 구조로 작동했음을 분명히 드러낸다.
이런 극단적인 사례가 아니더라도 왜곡된 이상주의는 우리 주변에서 흔히 마주하는 심리 구조다. 다만 이상은 모두에게 같은 얼굴로 나타나지 않는다. 어떤 이에게는 성취와 권력, 또 어떤 이에게는 규율과 도덕, 신앙의 형태로 드러난다. 수에게는 '선하고 올바른 사람이 되는 것' 그 자체가 기준이었던 것 같다. 그녀는 타인을 돕고 윤리적으로 살아가려 애쓴 사람이었고, 실제로도 사회에 공헌하는 삶을 살았다. 그렇기 때문에 그녀는 자신을 지배하던 무의식적 구조를 충분히 자극하기 어려웠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녀가 놀라울 만큼 깊고 진솔하게 자신의 내면을 드러냈기에 우리는 이 책을 통해 그녀의 무의식적 구조를 더욱 선명히 마주한다. 자신의 무의식은 스스로 인식하기 어렵다. 바로 그 점에서 『나는 가해자의 엄마입니다』는 한 가정의 비극을 넘어 인간 내면의 구조를 비추는 성찰의 기록이 된다. 수의 고백은 우리를 불편하게 하지만, 그 불편이야말로 내면의 왜곡된 이상주의를 인식하는 기회가 된다. 그것을 응시할 때 우리는 비로소 그 구조의 반복을 멈추고 자신과 타인 모두를 파괴하지 않는 새로운 경계를 세울 수 있다. (김선경, 「콜럼바인 사건: 완전함의 신화와 통제의 구조 - 『나는 가해자의 엄마입니다』」, 91~92쪽.)
나는 아이에 대한 걱정과 불안이 생길 때면 아이를 무의식적으로 통제하려 했다. 아이의 감정 조절 능력이나 학업 성취, 뛰어난 자질이 긍정적으로 평가될 때면 나는 잠시 안도했고 좋은 엄마라는 확신에 기분이 고양되었다. 그러나 그렇지 않을 때면 불안이 밀려왔고 나는 그것을 자극하지 못한 채 아이를 통제했다. 그 불안의 밑바닥에는 자신에 대한 불신이 있다는 것은 이 책을 읽기 전부터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나는 아이가 나처럼 될까 두려웠다. 통제가 아이를 위한 것이라고 믿었지만, 그건 내 마음을 지키기 위한 것이었다.
실은 이 책을 읽는 내내 감정이 요동쳤다. 연민과 분노, 이해와 경멸이 교차했고 그 복잡함이 가장 괴로웠다. 나는 그런 혼란 속에 오래 머물렀다. 그 안에서 두려워하는 일을 피하려다 보면 오히려 되풀이된다는 사실을 깨달은 순간이 잊히지 않는다. 개인적으로 수가 내면의 불안과 공포를 억압하고 통제했기에 오히려 실현됐다고 느꼈다. 나 또한 내가 겪은 결핍이나 상처를 아이는 겪지 않길 바라는 마음이었지만, 그것은 아이를 존중하는 형태가 아니라 통제의 방식으로 나타났다. 결국 그 사랑은 안정적이지 않았고 아이의 마음에 내가 품었던 것과 같은 두려움과 불안을 남겼다.
『나는 가해자의 엄마입니다』는 그런 인간의 내면을 거울처럼 비춘다. 그녀가 끝내 넘지 못했던 구조를 마주하며 우리는 그 안에서 자기 자신 또는 가까운 누군가를 본다. 왜곡된 이상주의 때문에 자기를 잃거나 타인과 단절되지 않기 위해서는 어떤 기준이나 관념에 우열이 있다는 믿음을 의심해야 한다. 누구도 완전해질 수 없고, 우리가 믿고 배워 온 우열의 기준이 절대적인 것이 아님을 깨달을 때 비로소 불안과 두려움을 마주할 수 있다. 그 고통이 보편적이라는 걸 알 때 우리는 서로를 이해한다. 이해는 판단이 아닌 공감을 낳고 단절이 아니라 연결을 만들어 낸다. 결국 비극을 막는 힘은 도덕이나 신념이 아니라 타인의 고통에 닿으려는 감응에서 비롯한다. 완전이 아닌 이해를, 옳음이 아닌 관계를 택하는 일은 어쩌면 우리가 이어가야 할 새로운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김선경, 「콜럼바인 사건: 완전함의 신화와 통제의 구조 - 『나는 가해자의 엄마입니다』」, 101~10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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