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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비평 153호 (역사비평사, 2025.) 본문

잡冊나부랭이

역사비평 153호 (역사비평사, 2025.)

Dog君 2026. 2. 25. 08:58

 

  역사학의 이야기들이 양극단으로 나뉜 정치적 구도로 빨려 들어가는 것에 대한 비판은 이제는 별달리 새롭지 않긴 합니다. (저만 해도 틈만 나면 했던 이야기...) 사회적으로는 민주주의의 원칙에 위배되기도 하지만 역사학이라는 학문의 관점에서 보면 학문적 성취를 퇴행시킨다는 점을 짚어야 합니다. 일전에 『진보를 위한 역사』를 이야기하면서도 말씀드렸습니다만, 역사학자들이 수십 년간 묵묵히 연구성과를 쌓아올리면 뭐하나요, 마이크 큰 사람들이 여전히 『해전사』와 『다현사』 붙들고 싸우고 있으면 다 말짱도루묵 아입니까. (물론 그럼에도 가장 분발해야 하는 것은 역사학자들이겠지요 ㅠㅠ)

 

  다시 한번 강하게 말씀드립니다. 좋은 역사책은 지금 이 순간에도 계속 나오고 있습니다!

 

  현재 한국 사회의 일부에서는 여전히 20세기 전반 식민주의 역사관의 틀에 기대어 고대사를 해석하는 사람들이 있다. 일제의 역사관을 극복하자고 주장하면서도, 정작 그 이면에 자리한 타율성론과 지리적 결정론의 논리에서 스스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다. 더 나아가 한반도에서 전개된 고대사의 실상을 부정하고, 그역사적 무대를 오히려 '중국대륙'으로 옮겨야 한다고 주장하는 논자들 역사 이러한 인식의 연장선상에 놓여 있다. 한반도에서 전개되었다면 '열등한' 역사로 간주되고, 다른 지역에서 전개된 것으로 보아야만 '온전한' 역사로 평가된다면, 과연 그것을 식민주의 사학의 극복이라 할 수 있을까. (안정준, 「낙랑군(樂浪郡) 해석을 둘러싼 반(反)식민 담론과 역사의 도구화」, 190쪽.)

 

  양분화된 극단의 구도 속에서 생산적인 논의는 불가능하고, 학문에서 반드시 필요한 비판과 창의성은 고사한다. 그간 극우 혹은 뉴라이트가 국가(남한 정부)의 정통성에 집중하기 위해 제기한 1948년 8월 15일 건국절에 대한 주장에, 민족주의 경향의 학자와 그 외피를 활용한 정치 집단은 대한민국임시정부로 대응했다. 양쪽 모두 '정치적 정통성 쟁취'를 위해 역사를 소비했다는 점에서, 도구화의 구조는 묘하게 닮아 있다. 대한민국임시정부에 대한 평가와 의의, 입장이 학자마다 다르며, 나름의 논쟁이 있었다는 것은 역사학계에 있는 사람이라면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사실이다. 하지만 이제 이 극단의 시대에 다른 의견을 말할 수 있는 여지는 사라졌다. 후자에 이의를 제기하면 뉴라이트가 되어버리는 이상한 구도 속에서, 많은 학자들은 자아검열을 하거나 냉소 지으며 침묵하거나 엄혹한 시절이 지나가기만을 바랄 뿐이었다. 혹은 임시정부의 법통성을―강하든 약하든, 암묵적이든―인정하기에 이르렀다. 이렇듯 임시정부 법통론에 문제를 제기했던 민중사학자들이 '올바른 역사인식'이라는 명분하에 이전의 문제제기를 취하하는 것을 두고 '전향'이라고까지 표현할 수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에 대한 성찰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2019년 4월 12일에 개최된 역사3단체(역사문제연구소, 역사학연구소, 한국역사연구회) 주최의 학술대회' 국가 정통론의 동원과 '역사전쟁'의 함정'이 대표적인 예다. 이 학술대회에서는 역사학계의 중진 학자들이 '정통론', '법통론'을 비판하며 건국절 논쟁의 역사적 함의를 검토하였다. 특히 당시 발표된 학술대회 취지문을 보면, 임시정부 정통론과 1948년 건국론 모두 전형적인 국가 중심주의이며, "여타의 모든 역사적 행위자들은 다른 국가의 종속 변수로만 재현된다"고 지적했다. "전자가 한국형 극우정치의 본령이라면 후자는 자유주의에 기반한 민족주의"라는 것이다. (...)
  내란을 일으켰던 전 정부에서 본인들이 원하는 역사관을 주입하려 '리박스쿨' 따위를 운영 및 지원했던 것을 비판하고 그것을 멈추게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하지만 정치적 효과를 노려, 또다시 정부나 정치인이 개입해 '보기 좋고 매끈한 역사' 따위를 만들려 한다면, 나는 그에 대해서도 비판하고 저항할 것이다. 캐나다의 역사학자 마거릿 맥밀런(Margaret MacMillan)은 다음과 같이 이야한 바 있다. "역사는 현세대를 만족시키기 위해 쓰여서는(written) 안 되고 인간사가 복잡하다는 사실을 일깨워주기 위해 쓰여야 합니다." 나는 그의 발언에 적극 동의하며, 자유롭게 논쟁할 장을 열어두는 것이야말로 민주주의 사회에 걸맞은 역사적 실천이라 생각한다. 앞서 언급한 '리박스쿨' 따위를 절대 받아들일 수 없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근거한다. 역사가 국가나 민족의 외피를 둘러쓴 특정 인물이나 집단을 만족시키는 도구로 다시 전락하지 않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정일영, 「역사의 정치 도구화를 우려한다―건국절, 국적 논쟁 비판」, 219~221쪽.)

 

  (...) 더 중요한 건 책이 출간된 지 이미 40여 년이나 지났고, 학계에는 새로운 자료와 연구들이 제출되는 상황에서 이들의 학계에 대한 인식이 1979년에 처음 발간된 『해방 전후사의 인식』과 1988년의 『다시 쓰는 한국 현대사』에 머물러 있다는 것이다. (윤성준, 「〈건국전쟁 2〉와 기억의 왜곡―역사(가) 혐오로 만들어진 '자유의 투사'」, 427~42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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