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g君 Blues...
조지 오웰 뒤에서 (애나 펀더, 생각의힘, 2025.) 본문

어느 유명한 소설가가 사회적으로는 시대의 스승처럼 대우받았지만 정작 가족에게는 걸핏하면 폭력을 휘둘렀다는 이야기라든지 또다른 유명 소설가는 제 손으로 밥상 차릴 줄도 몰라서 평생 아내의 가사노동에 의존하며 살았다는 이야기, 한번쯤 들어보셨을 겁니다. 한국만 그렇지도 않은지 독립적이고 목가적인 삶을 찬미했던 미국의 어떤 작가도 실제로는 대부분의 가사노동을 어머니가 다 해줬다고 하지요. 이처럼 사회적으로 명성이 높은 인물이 알고 보니 실제 행동은 전혀 일치하지 않더라는 이야기는, 하도 많이 들어서 그런지 이제는 딱히 새삼스럽지도 않습니다. 하지만 그런 무덤덤함을 가지고 봐도 조지 오웰과 그의 아내 아일린 오쇼네시의 이야기는 놀랍습니다. 그저 위선적이라고 이야기하고 넘어가기에는 조지 오웰의 행적이 너무나도 기이하고 충격적이기 때문입니다.
호주의 작가 애나 펀더는 본디 조지 오웰의 팬이었습니다. 하지만 그의 글 곳곳에서 드러나는, 기묘할 정도로 강력한 여성혐오에 의아함을 가지고 이를 조지 오웰의 창작활동을 추적합니다. 추적의 결과, 애나 펀더는 조지 오웰의 창작활동과 가정생활 전반이, 인간의 자유와 양심을 위해 싸웠다는 조지 오웰의 평판과는 전혀 달랐다는 사실을 알아냅니다. 애나 펀더가 『조지 오웰 뒤에서』를 통해 폭로하는 조지 오웰의 모습은 그에 대한 세간의 평판을 완전히 재고해야 할 정도입니다. 그는 결혼 후에 아내인 아일린을 그저 밥하고 청소하는 사람 정도로만 취급했습니다. 아일린은 생계를 책임지고 온갖 궂은 일을 도맡았지만 조지 오웰은 메모 곳곳에서 아일린에 대한 여성혐오적 감정을 숨기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또한 노골적으로 혼외관계를 추구하며 아일린의 인격을 무시하기 일쑤였고, 지인에 대해 강제적인 성관계 시도도 서슴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태도는 단지 사생활에만 그치지 않았습니다. 그의 창작활동 이면에도 충격적인 이야기가 많아서, 그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1984』는 핵심적인 아이디어를 아일린이 그보다 한참 전에 쓴 시에서 가져왔음이 분명하고, 『동물농장』이 만들어질 때는 기획자와 편집자의 역할을 했으며, 『카탈로니아 찬가』는 취재와 창작 과정 대부분에서 아일린의 조력이 핵심적인 역할을 했음에도 아일린의 존재는 의도적으로 삭제되어 있습니다. 이런 식으로 조지 오웰의 문학적 명성 대부분이 타인에 대한 폭력과 착취 위에 쌓아올려진 것임을 알아가는 독자의 마음은 그저 참담할 뿐입니다.
그런 참담함 뒤에 드는 궁금증은, 그러면 이렇게 폭력적인 관계가 어떻게 가능했고 또 유지되었는가 하는 것입니다. 책에 따르면, 아일린은 옥스퍼드에서 영문학을 공부한, 여성에 대한 당대의 사회적 제약만 아니었다면 학위를 받고 교수가 될지도 모를 정도로 촉망받았던 재원이었습니다. 타자 에이전시에 취업한 후에는 고용주의 부당한 조치에 항의하는 행동을 조직하기도 했습니다. 그랬던 그가 조지 오웰과의 폭력적이고 종속적인 결혼생활에서 벗어나지 못했는지(혹은 않았는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 책도 그 원인을 속시원히 말하지는 못합니다. 두 사람 사이의 내밀한 관계를 제삼자가 충분히 재구성할 수도, 당사자의 증언을 직접 들을 수도 없으니까요. 다만 이 책은 대체로 가부장제라는 제도가 우리의 생활과 심리를 완전히 장악하고 있는 상황에서 원인을 찾습니다. 아일린은 누구보다 빛나는 재능과 영민함을 가졌음에도 결국에는 공부를 포기해야 했습니다. 이를 시작으로 아일린은 여러 차례 사회적 좌절을 맛보면서 시나브로 가부장제에 순치되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면서 자기자신의 이름을 빛내기보다는 남편의 이름을 빛내는 것으로 스스로의 존재이유를 찾게 되도록 길들여진 탓이 아닐까 싶지요.
이 책을 읽은 저는 이제 더이상 조지 오웰과 그의 작품들을 예전과 같은 시선으로 볼 수 없게 되었습니다. 물론 어떤 '작품'과 그 창작자의 개인적 삶은 별개로 판단해야 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역사학을 전공한 저로서는, 즉 어떤 텍스트와 그것의 창작자를 결코 분리해서 해석할 수는 없다고 전제하는 역사학을 전공한 저로서는, 조지 오웰의 작품 역시 앞으로 그저 텍스트 그 자체로만 볼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오웰의 생각들은 읽기 고통스럽다. 여자들은 그를 혐오하고, 그는 자신을 혐오한다. 그에게는 피해망상이 있는데, 거짓된 '자신들의 모습'을 세상에 '기만적으로 내세우는' 추잡한 여자들의 정치적·성적 음모에 속았다고 느끼는 것이다. 오웰은 여자들을, 다시 말해 아내들을 그들이 자신에게 무엇을 해주는지, 혹은 무엇을 '요구하는지'의 관점에서만 바라본다. 청소는 충분하지 않고 섹스는 너무 많이 요구한다고 말이다. 그럼 아내의 입장에서는 어땠을까? 내게 첫 번째로 떠오른 생각은 이렇다. 아마 청소는 너무 많이 해야 했고, 섹스는 충분치 않았거나 충분히 근사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렇게 해서 나는 작품에서 삶으로, 그 남자에게서 그의 아내에게로 옮겨 가게 되었다. (35쪽.)
아일린은 옥스퍼드에 계속 머무르며 교수가 되기를 바랐을 것이다. 하지만 "예측할 수 없는 우연의 장난으로" 1등급 학위를 받지 못했다. 리디아의 말에 따르면 "그 실패의 경험은 아일린의 허를 찔렀고, 그 애의 동력을 앗아갔으며, 어떤 노력도 할 가치가 없다고 느끼게 만들었다." 아일린이 스스로 좀 더 나은 것을 받아야 마땅하다고 느긴 것은 그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무언가 부당하고 사람을 완전히 무너뜨리는 일이, 아일린이 받아들일 수 없는 어떤 일이 일어난 것 같았지만, 아일린은 한 번도 그 일이 무엇인지 말하지 않았다. 적어도 기록된 바로는 그렇다. 어쩌면 당시에는 여학생에게는 1등급 학위를 주지 않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확실히, 아일린이 졸업한 1927년에는 그 과정을 듣던 어떤 여학생에게도 1등급은 주어지지 않았다. 여성에게 학위 수여 자체가 허용된 것도 겨우 다섯 해 전의 일이었다. 만약 내가 쓰고 있는게 소설이었다면, 나는 그런 종류의 성차별, 마치 공기처럼 보이지 않지만 어디에나 있는 성차별을 행하는 인물을 만들어 넣었을 것이다. 그런 성차별은 아일린의 허벅지에 올려진 한쪽 손(털이 부숭부숭하든 창백하든, 반지를 끼고 있든 그렇지 않든), 점수를 대가로 암묵적으로 요구되는 키스, 혹은 더 나쁜 무언가의 모습을 하고 있을 수도 있다. 혹은, 그런 상황은 아일린이 "나중에 심리학 수업에서 그랬듯", 그저 한 남자의 말을 정정함으로써 그를 분노하게 만들었기 때문에 찾아온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어쨌거나 이 시점 이후로 글쓰기를 삶의 중심에 두려는 아일린의 노력은 좌절되고 만다. 아일린은 문학을 주제로 학술적인 글을 쓰지 않을 것이다. 쓰고 있던 시들을 끝까지 쓰지도 않을 것이다. 이제 아일린의 문학적 재능은 다른 사람들의 문학적 재능의 실현을 돕는 일로 승화될 것이다.
1920년대에 여성의 진로는 엄격하게 제한되어 있었고, 보통 결혼과 함께 끝났다. 급료가 있는 형태의 가사노동을 하는 게 아니라면 말이다. 아일린은 졸업한 뒤 다양한 일을 시도했다. (...) 아일린은 또 타자 에이전시에 들어가 "신경질적으로 잔인한 데다 직원이란 직원은 모두 울리는 데 몰두해 있는 어느 만만찮은 여성 사업가" 밑에서 일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그 여성이 "자기 직원들을 모욕하고, 그들의 노력을 너무도 가혹하고 파괴적인 방식으로 비난하고, 그들을 해고해 버리겠다고 끊임없이 위협하는 데서 즐거움을 느끼는" 걸 지켜보았다. 몇 달 뒤, 아일린은 전 직원을 결집시켜 그 폭군 같은 고용주에 맞서는 "억압된 자들의 저항"을 성공적으로 끌어냈고, "의기양양하게 사무실을 걸어 나갔다". (74~76쪽.)
지금, 친구는 내게 그 남자와 함께 있는 게 왜 좋았는지 말해준다. "그런 재능 있는 사람이랑 한패가 되는 일엔 어딘가 멋진 구석이 있어 보였거든. 후광 효과였지." 그 사람의 궤도 안에 존재할 가치가 있는 사람으로 여겨지는 일에는 따스한 빛을 쬐는 듯한 기쁨이 있었다. 하지만 그 기쁨에 따라붙는 건 당신 자신의 재능을, 그리고 그것을 길러내기 위해 확보해야 하는 자기중심성을 포기하는 일이다. (...)
나는 궁금하다. 자신의 야망이 부서지고 불탄 자리에 오웰을 대신 들여놓으면서 아일린도 이것과 비슷한 일을 하고 있었던 걸까. 그리고 일단 오웰이 거기 들어서자 아일린은 그를 떠날 수 없게 되었다. 오웰의 작업은 아일린의 목표가 되었다. 오웰과 그의 작업은 아일린과 그의 작업이 있어야 했던 자리를 차지했다. 아일린은 오웰의 후류 속에 있었다. (113쪽.)
아일린은 다시 원고를 본다. "하지만 여기가 아닌데. 아, 여기 있다. '만약 셰익스피어가 내일 이 땅에 돌아온다면, 그리고 그가 가장 좋아하는 취미가 열차 칸 안에서 어린 소녀들을 강간하는 것이라고 밝혀진다면, 우리는 그가 또 다른 《리어왕》을 쓸지도 모른다는 이유로 그에게 그런 짓을 계속하라고 말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머릿속에 두 가지 사실을, 즉 달리가 훌륭한 화가라는 사실과 역겨운 인간이라는 사실을 동시에 품을 수 있어야 한다. 하나는 다른 하나를 무효화하지 않으며, 어떤 의미에서든 영향을 끼치지도 않는다."
(...)
"내 말은," 아일린은 등 뒤의 베개들을 다시 정리한다. "여기 이 글 속에 두 가지 생각이 뒤섞여 있다는 거예요. 하나는 열차 칸 안에서 어린 소녀들을 강간하는 일이―아니면 당신이 그 천재한테 시키는 일이 뭐든, 그게―어째선지 달리한테 활력을 줘서 걸작을 쓰게 만든다는 생각이에요." 아일린은 오웰을 올려다보며 콧등에 걸친 안경을 손가락으로 밀어 올린다. "다른 하나는 우리가 그 이후에 그 이후에 그 걸작에 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관한 생각이고요. 그 걸작을 만든 사람이 당신이 표현한 것처럼 이렇게 '역겨운 인간'이라는 걸 알게 되었을 때요. 아니면 그냥," 아일린은 오웰을 바라본다. "보통의 결함 있는 인간일 수도 있겠죠. 우리는 그런 대가를 받아들일 수 있을까? 이해되죠?"
(...)
"난 그냥," 오웰이 말한다. "셰익스피어가 정말로 그런 짓을 했다고 해도 《리어왕》의 가치는 여전히 유효하다는 걸 말하고 싶었어요."
"하지만 여기 적혀 있는 건 그런 얘기가 아닌데요." 아일린은 원고를 들어 올린다. "당신은 어떤 천재가 열차 칸 안에서 어린 소녀들을 강간해야만 한다고 해도, 그게 우리가 그 사람의 작품을 바라보는 방식에 영향을 끼쳐서는 안 된다고 암시하고 있어요. 그리고 그런 뒤에 우리는 그 대가를 외면한 채 작품을 즐길 수 있다고요. 모두가 자신이 원하는 걸 얻는 거죠." 아일린은 오웰과 시선을 맞추고 어깨를 으쓱한다. "내 생각에는, 어린 소녀들만 빼고 말이에요." (326~327쪽.)
몇 번, 아일린은 오웰의 행동 때문에 심하게 괴로워한다. 그리고 적어도 한 번은 그에게 다른 여자와의 관계를 정리하지 않으면 떠나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자신의 가장 심오한 자아를 해치는 일에도 괜찮다고 느끼게 되는 것. 그것이야말로 가부장제에서 여성이 길들여지는 방식의 정점이 아닐까 싶다. 우리는 우리를 이용하는 체제에 동조하도록 길들여진다. 그러고는 결국 우리가 동의했다고, 기분 나쁘지 않았다고, 심지어는 우리 스스로 원한 일이라고 말하게 된다. 어떤 경우든 우리는 '분명 그것을 감내할 준비가 되어 있다'고 간주되고, 우리가 고통받는지 아닌지는 알 수 없는 일로 남을 것이다. (39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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