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g君 Blues...
쇳돌 (이라영, 동녘, 2026.) 본문

철광석을 의미하는 '쇳돌'은 대한철광 양양광업소, 즉 양양철광의 폐광 이후 수도권으로 이주한 광산노동자들이 만든 모임의 이름입니다. 양양철광의 노조위원장이었던 저자의 아버지 역시 이 모임의 구성원이죠. 저자의 아버지는 젊었을 적에는 양양을 떠나고 싶어 했지만 이런저런 이유로 끝내 광산노동자로 양양에 눌러앉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양양철광이 폐광되면서 반강제로 양양을 떠나게 되었고, 수도권으로 이주하여 주택관리사로 살아갑니다. '쇳돌'의 나머지 구성원들 역시 삶의 궤적이 비슷합니다. 그러니까 '쇳돌'이라는 이름에는 양양철광에서의 노동과 폐광, 그리고 이주의 경험이 농밀하게 압축되어 있습니다.
이라영의 『쇳돌』은 저자의 아버지를 중심으로 써내려 간 노동이주사입니다. 크게는 식민지기의 할머니부터 학업과 생업을 위해 양양을 떠나 외국으로 유학까지 다녀온 저자에 이르는 3대의 이야기지만 어디까지나 이야기의 핵심은 아버지와 광산노동에 있죠.
한반도에서 본격적인 공업화가 시작된 1930년대 이래로 오랜 시간 광업은 한국 산업의 중심이었습니다. 석탄을 비롯한 지하자원은 공업화의 가장 중요한 바탕이니까요. 그런 덕분에 산업화 시대에 광부는 꽤나 각광받는 직업이었습니다. 1971년 북한의 땅굴을 발견한 공로로 을지무공훈장을 받은 사람이 포상으로 요구한 직업이 광부였다는 사실이나 으레 광산촌에는 '개도 만 원짜리를 물고 다닌다'는 말이 돌곤 했다는 이야기들은 광산노동의 사회경제적 지위가 결코 낮지 않았음을 보여줍니다.
하지만 석탄의 수요가 줄면서 광업도 함께 위축되었고, 광산노동자의 삶도 마찬가지로 후퇴했습니다. 정부가 1989년부터 시행한 '석탄산업합리화'는 대부분의 광산노동자에게는 그저 실직失職의 다른 표현에 불과했습니다. '합리화' 정책은 국가 경제에게는 '합리적'이었는지 모르지만 실직한 광부들과 그들의 가족, 그리고 그들이 속한 지역공동체에게는 별달리 '합리적'이지 않았던 겁니다. 『쇳돌』은 그렇게 클리오의 수레바퀴 밑으로 사라져가는 산업과 지역공동체를 뒤로 한 채 노동과 생활의 현장을 반강제적으로 떠날 수밖에 없었던 사민徙民의 행렬에 대한 애틋한 감정을 아낌없이 표현합니다.
제가 생각하는 『쇳돌』의 미덕은 이 지점에서부터 발휘됩니다. 『쇳돌』은 자신과 가족의 삶을 학문적 언어로 반추하는 과정에서 여전히 그 지역에서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에 대한 배려심을 놓지 않습니다. 우리는 종종 '지식인'의 자기기술지autoethnography가 지금 여전히 거기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 대한 일방적 연민 내지는 희화화로 빠지고 마는 광경을 목격합니다. 스스로를 돌아본다는 미명 하에, 안전거리 바깥에서 '지금 그곳'을 타자화하는 거죠. 하지만 『쇳돌』은 퇴락한 광산촌일지언정 여전히 그곳에서 자기 삶을 일구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을 잊지 않으려고 애쓰고, 이들을 추상적이고 계급적인 편견에 가두지 않으려 노력합니다. 이 책이 후반부에 상당한 분량을 할애하여 '지금 거기'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담아낸 것은 아마도 그런 때문일 겁니다.
책이 말미에서 지적하듯, 이 책의 이야기는 광업에만 국한되지 않습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수많은 노동과 일자리들이 '사양산업'이라는 이름으로 사라지는 중입니다. 산업구조 전환이야 어쩔 수 없는 일이라지만 그 속에 있는 개개의 삶까지 쉽게 외면당해서는 안 되겠지요. 기실 외면당하는 노동은 지금 당장 우리 곁에도 많습니다. 출근 전에 건물을 말끔하게 치워야 하는 (그래서 근무시간에는 잘 보이지 않는) 청소노동, 매일 새벽 싱싱한 식재료를 현관문 앞에 대령하는 배달노동, 세련된 말투와 옷차림으로 고객을 응대하되 고객 화장실에는 출입할 수 없는 백화점 판매노동 등, 이들 노동은 물리적으로 사라지기 이전에 이미 우리의 인식에서부터 사라진 상태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인식에서 슬며시 사라진 순간, 그 안에 존재하는 개별 노동자의 삶과 인격은 훨씬 더 쉽게 '(폐기 가능한) 자원'이 되겠지요.
2026년 현재 우리는 AI가 어쩌고저쩌고 하며 급격한 산업구조의 전환을 논하고 있습니다. 과거의 그것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빠르고 급격한 산업구조의 전환을 목도하는 중이지요. 그러한 변화들이 어쩔 수 없는 일임을 저도 모르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 '어쩔 수 없음'을 인정하면서도 그 안에 여전히 사람이 살고 있다는 사실 또한 망각하지 않으려 노력해야지 않을까요.
세상이 변화하고 발전하면서 직업도 사라지고 새로 생겨난다. 어떤 직종은 어차피 '없어질 직업'이기에 사라지는 수순으로 가는 게 자연스럽게 여겨진다. 그러나 직업이 사라진다고 해서 그 일을 하는 사람이 사라지진 않는다. 직업은 사라져도 사람들은 사라지지 않고 어딘가로 꾸준히 이동한다. 그들이 다 죽을 때까지 사회가 그들의 이동 경로에 무심할 뿐 사람들 대부분은 사는 동안 꾸준히 일을 바꿔가며 생존한다. 무언가를 '이루는' 삶이 아니라 '견디는' 삶은 이름 없이 소멸하고, 이 삶의 경력은 무수한 노동으로 채워진다. (45~46쪽.)
드라마 〈응답하라 1994〉가 방영된 이후 '하숙의 추억'이 흘러 넘쳤다. 물론 하나같이 하숙생의 추억이다. 그중 얄궂은 시각도 있다.
"주인 가족은 절대 하숙생들과 함께 식사하지 않았다. 주인네 밥상을 한 번이라도 본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왜 겸상을 하지 않는지 짐작할 수 있다."
주인 가족이 하숙생과 함께 식사하지 않는 이유를 '주인네 밥상'에서 찾는 시각은 내게 새로웠다. 하숙생들이 먹는 음식과 달리 주인이 먹는 밥상이 더 좋다는 암시다. 나와는 완전히 반대의 기억이다. 맛있는 반찬은 하숙생들이 다 골라 먹고 나는 남은 것들을 먹었다. 게다가 주인 가족도 식사 시간만큼은 가족끼리 앉아서 보내고 싶다는 것, 그들도 사생활을 유지하고 싶어한다는 것을 생각하지 못한다는 걸 알 수 있는 발언이다. 하숙집은 영업장이면서 동시에 가정이다. 그러나 하숙생은 자신들이 돈을 지불했기에 영업장으로 여길 뿐 그곳이 누군가의 가정이라는 생각을 하지 못한다. 또한 하숙노동에 대한 몰인식에 기반한 짐작이다. 하숙집 가족들은 하숙생들이 식사하는 동안 한가하게 함께 식사하기 어렵다. 그들이 밥을 먹기 위해 누군가는 주방에서 계속 분주하게 일해야 한다.
하숙집은 사생활을 포기하고 돈을 버는 구조다. 밥이라도 가족끼리 먹으려고 애쓰지만 이조차 쉽지 않다. 그러려면 하숙생들 오기 전에 먹거나 하숙생들 식사가 끝난 후에 먹어야 한다. 대체로 하숙생들 식사가 끝난 후에 우리가 식사를 했는데, 그러다 보니 오히려 우리 가족이 먹을 음식이 떨어지기도 했다. 혈기왕성한 스무 살 언저리 남자들이 예고 없이 친구들을 데려오기라도 하면 우리가 먹을 밥까지 싹싹 먹고 갔다. 나는 '남은 찌끄러기'를 먹는다고 어느 날 어머니에게 불평했다가 혼이 났다. 그러나 그보다 가장 필요했던 것은 가족끼리 앉아서 편히 먹을 수 있는 시간의 확보였다. 밥시간이 되면 나는하숙생들을 부르고 밥상으로 음식을 날랐다. 그들이 앉아서 먹기 시작하면 방으로 들어갔다. 식사가 끝나고도 자리를 뜨지 않고 티브이를 보며 이상아가 더 예쁘다, 이미연이 더 예쁘다를 논하는 학생들은 우리의 저녁 식사 시간을 늦췄다. 24시간 '남의 식구'와 어울려 사는 가정에서는 그 작은 밥상조차 편안히 누리기 어렵다. 밥에 묶인 삶이니 외식은 아예 불가능하다. (195~196쪽.)
R양 언니를 유난히 부모님이 챙겨줬던 이유는 차차 알게 되었다. R은 노조 민주화 과정에서 함께했던 동지였다. 소장이나 다른 간부들이 있는 사무실에도 경리로 일하는 여성 직원들이 있었다. (...) 그러나 여성들은 결혼 후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거나 연락이 끊겼는지 이 자료집에서도 당사자들의 목소리는 찾기 어렵다. 하지만 분명히 나를 비롯해 여러 사람이 기억하는 여성들이 있고, 고모를 통해 이야기를 들은 사무직 여성들도 많다. 아버지와 다른 노동자들의 기억에도 사무직 여성들이 등장한다. 게다가 나는 1988년 비대위가 노조를 점거하고 노조 민주화를 이루는 과정에서 활약한 이 여성들의 이야기를 예상치 못하게 전해 들을 수 있었다.
기존의 노조 위원장, 지부장, 총무부장 등이 1988년에 어용 노조로 불신임을 받고 모두 자리를 떠나는 동안 노조에서 유일하게 자리를 지킨 인물은 R이었다. 어릴 때도 이 사실을 모르지 않았으나 나는 무의식 중에 이를 별로 중요하지 않게 넘겼다. 어용 노조 불신임-비대위-민주 노조라는 흐름에서 '사무실 여직원'이 어떤 주체적 역할을 했으리라는 생각을 미처 못했던 것이다. 투쟁과 무관한 사람이라 경리직은 바뀌지 않은 것이라고 나는 막연히 생각해왔다. 나의 무지와 선입견이었다. R은 노조 사무실에서 일하며 어용 노조를 민주 노조로 바꾸는 데 동참한 동지였다. 아버지와 이인수는 공통적으로 "R양은 이 모든 과정을 목격한 사람"이라며 "소리 없이 지지"했다고 말한다. R의 '목격'은 가장 구체적이고 확실한 증거를 제시하는 역할을 했다. 회계 업무를 하면서 노조 위원장의 부정을 누구보다 정확하게 숫자로 아는 사람이었다. R은 비대위 사람들과 조심스럽고도 가깝게 지내면서 다른 부서의 여성 경리 직원들이 협력해서 위원장의 부정한 정황이 담긴 회계 자료를 비대위에 제공했다. 그것이 노조 위원장의 비리 정황을 회사에 구체적으로 밝히는 결정적 증거 자료를 만드는 데 일조했다. (...)
노조 위원장이 물러난 후에 R은 비대위에 함께 일했다. "비대위 때 우리는 사무 업무를 잘 모르잖아. R이 업무를 분담해서 알려줬어. R이 좋은 일 많이 했어. 노동조합법에 나오는대로, 임시대의원 뽑고, 직선제로 선거 개편하면서 그걸 법으로 명시하고, 이런 일을 도와줬지."
광산을 그만두고 결혼 후 R은 보험 설계사로 일했다. 이 여성들에 대한 이야기를 전해 들으며 나의 편견도 발견했다. 대학생도 아니며, 공장노동자도 아니며, 노동 현장에 있지만 사무직인 소수의 젊은 여성들이 1980년대 민주화 흐름 속에서 어떤 활동을 했는지 간과했다. 정작 내가 생각한 그 '아저씨들'은 "R이 좋은 일 많이 했지", "걔가 우리 편이었어", "걔가 입이 무거워. 말은 안 하지만 다 보고 있었지", "말은 안 하는데 판단을 하는 애였어"라며 동료의식을 가졌다. 한편으로는 자신의 생각이 있지만 말 없이, 조용하게 참여했던 여성들이 직장을 떠난 후에도 자신이 했던 일을 남성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덜 말한다는 점도 확인할 수 있었다. 아버지는 1988년에 노조에 복귀한 뒤 조용히 중요한 활동을 했던 몇몇 경리 직원들에게 고맙다는 말을 전하러 찾아갔으나 일부는 이미 그만두었다. 아버지는 건너 건너서 '어디로 시집 갔대'라는 말을 전해 들었다. (222~224쪽.)
1989년부터 시행한 '석탄산업합리화'란 공식적으로 말하면 '비경제탄광을 폐광하고 경제성 있는 탄광을 건전 육성'하겠다는 취지의 정책이다. '비경제탄광'과 '경제성 있는 탄광'이라는 구별로 폐광이 결정될 때 이 '경제'의 개념은 어디까지나 광산 회사의 '경제'이지 광업소에서 일하는 수많은 노동자의 '경제'는 고려되지 않았다. 항상 경제를 말할 때 국가와 기업의 경제를 말할 뿐 노동자 개개인의 경제사정은 전혀 언급되지 않는다. 노동자만이 아니라 광산 주변의 상권도 큰 타격을 받는다. 정부에서는 석탄산업합리화를 시행하지만 광산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탄광촌에는 대안이 마련되지 않아 갑작스러운 시행이었다. 석탄산업합리화로 1980년대 후반부터 석탄광은 대폭 축소되었다. 1988년 전국 347개에 이르던 석탄광업소는 석탄산업합리화 시행 후 10년도 채 지나지 않은 1996년에 11개로 급감했다. 6만 8,500명이던 탄광노동자는 2000년에 들어서는 8,200명으로 줄어들었다. 강원도 탄광의 경우 1989년부터 1996년 사이에 171개 탄광 중 166개가 폐광했다. 무려 97퍼센트의 탄광이 문을 닫았다. 우리나라 최대 석탄 산지인 강원도의 1988년 탄광노동자의 수는 4만 3,831명이었는데, 1996년에는 9,280명으로 줄었다. 이렇게 한 산업이 정부 정책에 의해 극단적으로 감소했지만 그 수많은 노동자에 대한 '합리화'는 없었다. 석탄산업합리화 여파로 탄광촌인 강원도의 태백시, 삼척시, 정선군, 영월군 등은 인구가 급감했고, 광산 마을에는 폐교와 폐가가 늘어났다. 공동체가 붕괴될 위기에 처했다. 경제성, 합리화, 건전성 등의 언어로 포장된 정책은 국가 경제를 위해서는 경제적이며 합리적이고 건전한 방향일지 모르나 개개인의 삶을 총체적으로 붕괴시키는 사건이 되었다. '합리화'는 노동자들의 언어가 아니다. 석탄산업합리화 정책이라는 이름은 어떠한 문제도 지시하지 않는다. 직장을 잃은 광부에게, 그의 가족들에게, 이들이 거주하던 마을에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말해주지 않는다. '합리화'는 어떠한 부정적 의미도 드러내지 않는다. (251~252쪽.)
"똑똑한 사람들은 다 떠났지." 폐광 전에 떠난 사람들을 세월이 흘러 다시 만났을 때 그들은 그렇게 말했다. 이인수는 내게 "경비하던 삼촌"은 잘 지내냐고 물으며 "그때 떠나길 잘했지. 외삼촌이 머리가 좋아. 광업소 있었으면 망가지고 말아"라고도 했다. 나는 뒤늦게 궁금해졌다. 그렇다면 아버지는 왜 폐광 때가지 광업소를 떠나지 않았을까. 동지도 친구도 처남도 다 떠나고, 젊은 시절 그토록 떠나려고 했던 광산인데 왜 정작 아버지는 폐광이 현실로 성큼성큼 다가오는 와중에 끝내 떠나지 않는 사람이 되었을까. 그때 아버지는 왜 떠나지 않았냐고 30년이 지나 물었을 때 아버지는 별다른 답을 하지 않았다. 젊은 시절 광산을 벗어나려고 했던 아버지는 어느새 광산이 아버지를 뱉어내기 전에 스스로 먼저 떠나기는 어려웠다고만 했다. 아버지에게 광산은 이제 떠나야 하는 직장이 아니라 "광산이 있어서 우리가 학교도 다니고 먹고살 수 있었던" 장소가 되었다. 노조 위원장으로서의 책임감 때문만은 아니다. 그렇게 비장한 이유가 아니었다. 쉰 살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어가면서 아버지는 이제 다른 장소에서, 다른 일을 선뜻 시작하기 어려워했다. "할 줄 아는 게 없어서." 직업 선택의 자유를 박탈당했던 아버지는 20년 넘게 광산/노조에 몰두하며 살았고, 그사이 다른 직업을 생각조차 못하는 사람이 되었다. (260~261쪽.)
그사이 아버지의 동료들도 서울과 수도권에 자리를 잡았다. 부천, 인천, 서울, 수원 등으로 이주해온 아버지의 동료들이 늘어나면서 그들은 모임을 만들었다. 모임의 이름은 '쇳돌'. 철광석으로 모인 이들이다. 아버지는 주택관리사로 자리 잡은 뒤에는 기술이 있는 옛 광산 동료들을 아파트 기술직으로 추천했다. 아버지에게 세차를 소개했던 도준과 아버지와 가장 가까웠던 박열도 아파트에 기술자로 취직했다. 박열과 도준은 같은 아파트에서 일했다. 같은 직장에서 교대근무를 하는 도준과 박열은 동시에 쇳돌 모임에 참석할 수는 없었다. 2교대 근무를 하는 아파트 업무 특성상 그들은 같은 직장에서 일하지만 같은 시간에 근무하진 못했다. 두 사람은 10대 때부터 광산촌에서 함께 일했다. 중학교 졸업 후 광산 극장에서 함께 일하던 그들은 성인이 되어 광산에 취직했고 폐광을 앞두고 수도권으로 이주해 아파트 기술자로 일했다. 평생을 동지로 살았다. 광산에서 3교대 근무를 하며 땅속에 일하던 노동자들은 이제 도시로 이주해 아파트 지하에서 2교대 근무를 했다. (287쪽.)
페미니즘이 본격적으로 정치적 의제가 되는 시점부터 보수화되는 페미니스트가 있다. 한때는 스스로 여성주의자라고 하던 여성 중 '메갈리아'의 등장 이후 오히려 '요즘 젊은 여성들'을 향해 저들은 진정하지 않다고 비난하는 이들도 있었다. "우리 때와는 다르다"라는 익숙한 말이었다. 진보라는 이름이 현실 정치에 자연스럽게 들어오면 진보와 거리 두는 사람이 있다. 이념이 현실과 약간의 긴장관계를 유지할 때는 이념을 외치지만 정작 이념이 현실에 적용되려고 하면 한 발짝 물러나 "아직은 시기상조"라 주장하는 얼굴을 본다. 그렇게 한때의 급진적 인물들은 보수화되고, "내가 해봐서 아는데"라는 대사를 읊는다. 저들은 이제 권력을 가졌고 진정하지 않다고 주장한다. 투쟁이 세대를 거듭하며 뒤에 오는 세대의 방식을 앞선 세대가 불편해하곤 한다. 아버지는 서서히 진보 정치를 비판했다. 더 좋은 방향으로 비판하는 것이 아니라 보수적 입장에서 비판한다. 그럼에도 아버지는 심상정이 언젠가 꼭 대통령이 되길 바랐다. 2017년 대선 당시 유세장에서 "사람을 완전히 끌어들여!"라며 심상정에게 환호했다. 연단에서 내려와 지나가는 심상정을 가까이에서 봤다며 "대통령 꼭 하세요!"라고 말하는 걸 미처 못 했다고 아쉬워했다.
진보 정당에 소신 투표를 하던 아버지는 언젠가부터 내가 정확히 파악하기 어려운 어떤 '미움'에 사로잡혔다. '위선자들'이 싫다며 점점 아버지는 그들을 혼낼 수 있는 반대 세력을 차라리 옹호하기에 이르렀다. 지향하는 가치를 따라가는 게 아니라 증오심이 판단의 기준이 되어버리면 사람이 얼마나 급격하게 다른 방향을 향할 수 있는지 아버지의 모습에서 보았다. 그러다 비상계엄이라는(윤석열의 12·3 비상계엄이라는) 충격적인 사태를 마주하고 다시 아버지는 혼란에 빠졌다. "그럴 줄 몰랐지." 내게는 많은 물음표가 생겼고, 어머니는 "네 아빠가 이상해졌어"라고 말한다. (307~308쪽.)
나는 노동계층의 문화가 더 성차별적이라고 보는 것을 경계한다. 마치 백인의 시각에서 흑인의 가부장제를 비판하고, 유럽인의 시각에서 아시아의 가부장제를 비판할 때 드러나는 묘한 우월감이 깔려 있기 때문이다. '유리천장'이라는 말이 있듯이 세련된 방식으로 감춰져 있을 뿐 여성은 고위층으로 올라갈수록 여전히 문화적 금기의 대상이다. 게다가 '방석집 논문 심사'라는 기가 막힌 일화나 이건희 성매매 의혹 동영상, 김학의 별장 성접대 사건은 어떠한가. 권력이 있는 사람들은 더욱 성을 은밀하고 체계적으로 착취한다. '요정 정치', '기생 회합' 등 남성 중심 정치의 한복판에서 '형님 정치'가 만개하는 동안 여성은 한국사회 어디에서든 여전히 정치적 비주류이다. 오늘날 '평범한' 회사원도 룸살롱에서 접대하고 영업한다. 여성에 대한 성적 우월감으로 남성에게 자부심을 주는 구조는 계층을 막론하고 이 사회에 뿌리가 깊다. (327쪽.)
아버지가 광부였던 데이비드 허버트 로렌스는 작가로 성공한 후 제 고향에 잠시 돌아가는데, 그의 시선에는 여전히 고향에 대한 혐오 감정과 낭만화가 동시에 드러난다. 정확히 말하면 로렌스는 고향에 '방문'했을 뿐 결코 자신의 고향에 돌아가지 않았다. 에리봉이나 에르노도 물리적으로 다시 고향에 정착하는 되돌아가기를 한 것은 아니다. 그들의 되돌아가기는 자기 자신을 되돌아보는 행위였다. 이들은 모두 사회에서 성공한 후 자신의 계급적 출신에 대해 되돌아본다. 제 감정의 근원을 파헤치려고 하지 않은 로렌스와는 달리, 에르노와 에리봉이 남긴 계급적 수치심을 파헤친 자기기술지autoethnography는 중요한 시선이다. 많은 찬사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들의 책을 망설임 없이 옹호하진 못한다. 여전히 그 지역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수많은 노동계층에게 이러한 자기기술지가 어떻게 읽힐지 궁금하다. 그래서 이런 책을 읽을 때 양가적 감정이 찾아온다. 공감하는 면이 있으나 쓰는 사람과 읽는 사람이 모두 적어도 현재는 노동자가 아닌 사람들이라는 점 때문이다. '지금 여기에' 사는 사람이 아니라 '그때 거기에' 살았던 사람들의 말이라는 점에서 한계를 느낀다. 수치심의 고백조차 지식인이 된 사람의 안전한 고백이다. (442쪽.)
그는 태백에서 미술 기획을 하면서 광산과 이 지역의 관계를 자연스럽게 다루긴 하지만 아직 조심스럽다. 미술 공간을 운영한 지 1년 됐을 때였다. 그 미술 공간은 광산 화약고 부근에 있는데, 가끔 술 먹은 남자가 주변을 배회했다. 그 남자와 조금씩 알게 되면서 대화를 나누었다. "하루는 그분이 울면서 올라와요. 동료가 죽은 거지. 저 사람 괜찮을까. 진폐 보상만이 아니라 정신적이 보상도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광산과 노동자들을 주제로 문화 기획을 해보려 생각했지만 알면 알수록 자신이 아직은 담아내기가 어렵다며 고개를 저었다.
(...)
그동안 김신애는 태백에서 다양한 문화 기획을 하면서 광산이라는 추상적인 세계를 많이 다뤘는데 더 구체적으로는 다루지 않았다. 가까이에서 알면 알수록 사람들의 다양한 삶이 보였다. 그 다양한 삶을 자칫 잘못 다뤘다가는 오히려 단순한 이미지의 반복만 만들어내지 않을까 우려되어 망설이게 되었다.
(...) 어떤 대상을 멀리서 보는 사람들일수록 그 대상을 하나의 이미지로 만들고 싶어한다. 어떤 집단을 일반화할 수 있는 면은 분명히 있다. 하지만 그 집단 안의 다름을 계속 탈락시키면 같은 이미지만 지루하게 반복 재생된다. 안전모를 쓰고 있는 순간도 있지만 안전모를 벗고 일상을 살아가는 순간도 있다. 그 삶 안에 다양한 개인, 그 개인의 관계, 취미와 같은 일상이 있다. 나는 계급을 강조하는 진보적인 사람들에게서 때로 누구보다 계급적 편견에 사로잡힌 사고를 발견할 때가 있다. 구체적 개인을 모를수록 계급과 취향에 대한 도식적 상상에 갇힌다. (...) (454~456쪽.)
노동자들이 새로운 직업을 찾아 이주하면서 서로 동료들을 소개해주다 보니 같은 직장에 예전 동료들이 함께 모이곤 한다. 아버지의 양양 동료들이 수도권으로 이주한 뒤 같은 아파트에서 기술자로 근무하는 것처럼 태백과 정선 노동자들도 서로 동료들의 일자리를 소개하며 안산으로 많이 이주했다. 그즈음 수도권 곳곳에 지역 향우회가 늘어났다. 재안산강원도미회는 1983년에 만들어졌으며 부천강원도민회는 1991년에 만들어졌다. (476쪽.)
(...) 산업이 전환되는 과정에서 노동자 개개인의 일자리 전환은 보장되지 않는다. 단지 '없어질 직업'이기에 감수하면 될 일일까. 회사가 문을 닫을 때마다 노동자들이 반복적으로 마주하는 문제다. 광산촌이 폐광촌이 된다는 건 수익성이 떨어지는 장소가 되었다는 뜻이다. 자본의 기준에서 이윤이 나지 않는 동네가 되면 자본은 미련없이 그 장소를 벌니다. 그 장소에 살았던 사람들이 이룬 공동체는 그렇게 붕괴된다. 모범산업전사 표창, 대통령 표창장, 대통령 하사품 등으로 추켜세우는 듯 했지만 사람은 끝내 소모품 취급을 받았다. 경제는 성장하고 국가의 위치는 바뀌건만 노동자들은 그저 대체될 뿐이다. (...)
(...) 기술 발달과 산업의 변화에 따라 새로 생기는 일자리가 있다면 사라지는 일자리도 있기 마련이다. 언제나 직업의 종류는 꾸준히 생겨나고 사라져왔다. 인공지능이 인간의 직업을 대체할 가능성에 대해 논의가 분분하다. 어떤 직업이 사라질 것인가. 어떤 직업이 살아남을 것인가. 인공지능이 예술을 창작하는 게 가능한가. 사라질 직업에 대한 불안, 자신의 일이 기술에 의해 대체될 가능성에 대해 우려하는 목소리가 곳곳에서 들린다. 그러나 수많은 노동자들이 지금까지 그렇게 대체되어왔다. 노동자들은 진동벨이 되고, 키오스크가 되고, 계산기가 되고, 서빙 로봇이 되었다. 어떤 직군은 마땅히 기술로 대체되고 그 직종이 사라지는 것을 기술과 사회의 발전이자 역사적 진보로 받아들인다. 머리가 없다고 여겨지는 손과 발이 대체될 때는 발전이라 여긴다. 머리가 없는 존재이기에 이때 사라지는 이들의 목소리는 쉽게 소거당한다. 직업이 사라지는 게 문제가 아니라 그 직업 안의 사람을 돌보지 않는 게 문제다. 사양산업 속에 있는 사람들의 삶을 그렇게 외면해왔다.
이처럼 '없어질 직업'에 해당하는 사람들이 일을 잃어버리는 것은 상대적으로 불안한 담론을 만들지 않는다. 여성의 노동이, 이주민의 노동이, 수많은 저소득층의 노동이 그렇게 쓰고 버려지고, 쓰고 버려진다. 어떤 이들은 죽어도 충격적이지 않고, 처음부터 그러한 위험을 알면서도 스스로 선택한 길이라 여길 뿐이다. 경제를 위해서 인간의 삶과 생명이 희생되는 것을 무덤덤하게 받아들인다. '석탄은 꺼내도 사람은 꺼내지 않는다'는 말은 여러 위험한 직종에 적용할 수 있다. 저임금 노동자들의 삶은 경제 발전을 위해 폐기 가능한 삶이 된다. 그들의 일은 대체 가능해질수록 사회가 좋아진다는 방증으로 여기기 때문이다. 노동자는 대체될 위험, 폐기될 위험과 늘 만난다. 사람도 곧 자원으로 불린다. 인적 자원, 끝없이 지구의 자원을 캐듯이 국가는 노동력을 캐내어 필요한 만큼 쓴다. 자원이 되어버린 인간은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는다. 다만 소모될 뿐이다. '안전보다 생산', '제철보국', '증산보국'. 자원이었던 사람이 몸담은 세계가 사양산업이 되면 사람은 폐기처분해야 할 귀찮은 골칫덩어리, 산업의 짐, 곧 산업폐기물이 된다. 광산노동자는 대표적인 산업폐기물이 되었다. 돌이 돈이 되는 동안 사람은 돌처럼 내팽개쳐졌다. (517~519쪽.)
산업구조의 전환 과정에서 관련 산업에 종사하는 노동자가 소외되고 지역의 상공인, 시민 등의 삶에 크고 작은 피해가 발생한다. 기후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오늘날 탄소중립 사회로 변화하는 과정에서도 누군가의 삶은 크게 흔들린다. 이러한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정책 방향이 정의로운 전환just transition이다. 개인이 그 피해를 감당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가 함께 나누고 고민해야 한다. 가능한 모두에게 정의로운 전환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이얼 프레스는 사회에 필요한 필수노동이지만 '도덕적으로 문제 있다'고 취급하여 보이지 않게 숨기는 노동을 '더티 워크'라 정의했다. 그가 언급한 더티 워크를 수행하는 이들은 교도관, 전쟁에서 드론 조종사, 도살장 노동자, 석유 시추선 노동자이다. 사회 곳곳에 이런 노동이 숨어 있다. 내 손에 더러움을 묻히기 싫고 힘들고 어려운 일을 하고 싶지 않으나 반드시 필요한 노동일 경우 이 노동의 세계를 모르려고 한다. 빌딩마다 투명하게 존재하는 청소노동자, 도로 위를 질주하는 배달노동자도 이에 해당한다. 오늘날 그들이 없는 삶을 상상할 수 없지만 그들의 노동에 대해서는 알려고 하지 않는다. 윤리적 혼란 없이 육식을 즐기는 '선량한' 사람이 되려면 축산노동자에 대해 몰라야 한다. 그처럼 현대사회에서 배터리 없는 일상은 거의 불가능함에도 광산노동자의 삶에는 무관심하다. 그 무관심 속에서 사람들은 생물학적으로 사라진다기보다 인식 속에서 사라진다. 광산도 광산노동자도 '아이티IT 선진국 한국'에서는 '사라졌다'. 어딘가에서 누군가가 우리의 일상을 위한 광물을 캐다가 사라져도 아무것도 모른 채 살아간다. 오히려 광물을 캐는 노동자가 보이는 것에 놀라워한다. 유튜브에서 광산노동을 소개하는 영상 밑에는 이런 댓글이 달려 있다. "아직도 우리나라에 이런 곳이 있군요." (520~521쪽.)
서러움을 넘어선 상상력이 필요하다. 사회적 약자가 분노를 표출하기보다 서러운 존재로 재현될 때 기득권은 더 안전하다. 예를 들어 여성들이 서러움을 표현할 때 가부장제는 그다지 불편하지 않다. 한맺힌 '우리 어머니'나 서러운 '딸' 혹은 '며느리' 등은 오히려 가부장제와 공존한다. 희생이 곧 역할이기에 서럽다고 하면서도 자신처럼 희생하지 않는 사람에게 분개한다. 물론 1980년대에는 이 서러움을 기반으로 노동자 정체성을 가지고 자신들의 언어를 만들어가던 시기였다. 서러움이 서러움에서 멈추지 않고 이 서러움을 공격의 무기로 전환시키면 사정이 달라진다. 이 감정을 기반으로 연대할 때 투쟁이 가능해진다. 그렇기에 서러움에 저항적 힘이 내재되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 감정은 한계도 명확하다. '덕분에'와 같은 말로 대응해버리고 구체적인 문제는 회피할 수 있다. 또한 '나의 서러움'을 바탕으로 분노하지만 '타인의 서러움'에 대한 공감과 연대로 확장되는지는 별개의 문제다. 막연한 서러움보다는 정확한 고통의 실체와 부당함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사회의 많은 고통들이 연결되지 못한 채 방치되어 있다. 방치된 고통은 어떻게 변화하는가. 개인의 고통은 정치적이고 제도적으로 발생하지만 무책임한 정치는 이 사회적 고통의 결과를 사적으로 감당하도록 방치한다. 희생하는 노동자라는 감정이 방치되었을 때 나타나는 양상은 꽤 복잡하다. 시대의 변화 속에서 밀려났다는 생각과 동시에 밀려나지 않으려는 마음, 과거에 옳았던 나와 현재에 부정당하는 나 사이를 오가며 '요즘 세상이 잘못 가고 있다'로 향한다. (563~564쪽.)
교정. 초판 1쇄
327쪽 밑에서5줄 : 롬살롱에서 -> 룸살롱에서
345쪽 밑에서3줄 : 등료들과의 -> 동료들과의
442쪽 2줄 : 벤스처럼 -> 밴스처럼
445쪽 14줄 : 굉장이 -> 굉장히
519쪽 2줄 : ' 석탄을 꺼내도 사람을 꺼내지 않는다'는 -> '석탄은 꺼내도 사람은 꺼내지 않는다'는
519쪽 9줄 : '안전보다 생산'. -> '안전보다 생산',
612쪽 1줄 : 한에서는 -> 한해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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