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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부터 조선 젠더사 (하여주, 푸른역사, 2025.)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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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부터 조선 젠더사 (하여주, 푸른역사, 2025.)

Dog君 2026. 5. 3. 07:56

 

  '역사 속 여자, ○○하다'와 이 책은 무척 닮았습니다. 같은 출판사에서 나왔다는 공통점은 빼더라도 여성의 욕망과 주체성을 서술의 중심에 놓았다는 점이나 사료의 겉면에 직접 드러나지 않는 행간을 읽어내기 위해 분투한 결과물이라는 점 등이 그러합니다. 그러니 이 책의 가치와 성취는 '역사 속 여자, ○○하다'와 비슷하게 설명할 수 있습니다. 나온 시점까지 고려하면 이 책을 '역사 속 여자, ○○하다' 시리즈의 프리퀄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네요.

 

  그렇지만 여성을 서술의 중심에 둔다거나 여성을 주체적인 존재로 서술한다는 것이, 보기에 따라서는 별달리 대단해 보이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기존의 역사서술에서 여성의 존재가 상당 부분 누락되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은 그저 당대 사회가 지극히 남성 중심적이었기 때문이지 역사서술이 의도적으로 여성을 선택적으로 배제했기 때문이라고만 말할 수는 없으니까요. 이 시리즈에 담긴 사례들을 모두 받아들인다 해도 우리가 알고 있는 기존의 역사상이 바뀌지도 않습니다. 조선시대의 여성들이 '며느리'와 '딸' 사이에서 애매하고 유동적인 지위를 유지하며 친가와의 긴밀한 관계를 지켜내기 위한 수단으로 '효 이데올로기'를 이용할 수 있었다 한들, 자신의 노소귀천을 가리지 않고 기호와 취향을 드러내며 흡연을 즐겼다 한들, 이들은 돌출적 사례일 뿐 남성 위주의 사회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키지도 우리로 하여금 그 시대를 완전히 달리 보게끔 하지도 않습니다.

 

  하지만 그런 독자에게는, 역사란 단지 과거에 대한 지식이 아니라 사람을 바라보는 관점의 문제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나와 다른 시공간 속에서 나와 다른 욕망을 가진 이의 관점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연습이라고 역사를 이해해보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역사 속에서 이름 없이 스러져간 그 많은 이들에게 일일이 감정이입을 하다 보면, 이들이 역사의 흐름을 바꾸는 거대한 존재는 되지 못했을지언정 주어진 조건 속에서 나름 최선을 다해 분투하고 욕망하는 존재였음이 어렴풋이 느껴집니다. 그들이 그저 서술의 '대상'이나 '도구'가 아니라 지금의 나와 똑같은 존재라는 것도요. 그리고 그런 태도가 지금 당장 내 주변의 세상을 대하는 태도에까지 영향을 주는 것 또한 물론이고요.

 

  유교 이념에 따르면 효는 하늘이 정한 이치이며, 부모에 대한 효를 단절하는 것은 인간이길 포기한, 인륜을 망치는 패륜이다. '시집온' 여성은 출가외인이므로, 부모를 시부모보다 낮은 위치의 존재로 배치해야 한다. 여성이 효를 다하는 주 대상은 시부모이고, 보조 대상은 부모이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효부 표현'은 효녀로 이름이 났고, 천성이 효성스러웠다는 것이다.
  심지어 어느 시어머니는 며느리에게 친부모 봉양하기를 잊지 말아야 한다고 훈계까지 한다. 시어머니가 며느리에게 본인에 대한 효는 물론이고, 친어머니에 대한 효심도 잃지 말라고 하는 것이다. (...)
  태어나면서부터 타고났다는 기질이라는 의미의 '천성', 무릇 천성은 변하지 않는 법이다. 효부 담론은 이중적이며 자기모순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천편일률적인 효부 표현을 만든 것이다. 양반 남성들은 효를 옮겼다는 둥, 천성이 효성스러웠다는 둥, 이런 현실성 없는 말을 지어냈다.
  왜 이러한 표현이 반복되었던 것일까. 이에 대해서 실제로 조선의 양반 여성들은 '며느리와 딸 사이의 어느 지점'에 있었던 존재라고 결론을 내려볼까 한다. 물론 앞서 알아본 출가외인 이념은 여성과 친가의 완전한 단절을 추구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시가 입장에서 며느리가 친가와 가까운 관계를 유지하는 것 또한 마땅치 않은 것이었다. (...) (91~92쪽.)

 

  (...) 효 이념은 유교에서 가장 중시하였던 실천 이념이었기에 양반 여성에게 전략의 도구로 이용될 수 있었다. 17세기에는 상대적으로 많은 비율의 양반 여성들이 친가와 더 가까운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물론 시간이 흐르면서 친가와의 관계 유지 방법이 조금 소극적으로 바뀌었지만, 그들이 딸로서 살아가는 모습에는 변함이 없었다. 그들은 시가와 친가 사이에서 애매하고도 유동적인 입장을 갖고 유교식 효 이념을 이용해 친가를 위해 다양한 경로를 통해 적극적으로 행동했다. 그렇기에 양반 남성들은 출가외인의 틀에서 벗어났던 기혼 여성의 모습을 유교 이념의 최상위 가치인 효로 포장하는 수밖에 없었다. 정신 승리가 따로 없다. 이렇듯 효 이념은 젠더에 따라 달리 이용되는 역설을 낳았다. (106~107쪽.)

 

  (...) 조선 여성들은 결코 유교 세상 안에 갇혀 있지많은 않았다. 그들은 남성들이 만든 단단한 틀에서 틈새를 찾아 경계를 넘나들며 원하는 것을 얻어내었다. 그들은 일상적으로 친가 식구들과 대면·비대면으로 소통하면서 내 가문을 지켰다. 이러한 젠더 규범 이탈자에 대한 남성들의 반응은 어떠했는가? 그들은 여성들을 막을 수 없었기에 '효' 이념을 동원해서 정신 승리하고야 말았다. 그뿐만이 아니다. 여성들은 보란 듯이 조선의 젠더 규범에 균열을 내어 남성들의 신경을 긁었다. 여성들은 지치고 힘든 일상에서 벗어나려고, 혹은 기호와 취향에 따라 흡연을 즐겼다. 신분과 나이를 막론하고 말이다. 지배계층으로서 유교 이념을 잘 따랐으리라 예상되는 한국 전통 여성상의 전형인 양반 여성의 얼굴은 생각보다 다양했다. (147쪽.)

 

교정. 1판 1쇄

20쪽 밑에서11줄 : 처벌법은 1876년 갑오개혁 때 -> 제한은 1894년 갑오개혁 때 (경국대전의 재가자 자녀 과거 응시 제한을 "처벌법"으로 표현하는 것은 신중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107쪽 4줄 : 이용되는, 역설을 -> 이용되는 역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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