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g君 Blues...
요즘 역사 : 근대 (황현필, 역바연, 2024.) 본문

이 책은 흥선대원군 집권기부터 한일병합까지를 다룹니다. 이 시기의 역사를 읽는 것은 한국인에게는 고통스러운 일입니다. 나라 망하는 이야기를 유쾌하게 읽을 수는 없으니까요. 그럼에도 이 시기를 직시할 수밖에 없는 것은 망국의 역사를 냉정하게 따져봄으로써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것이 적지 않기 때문입니다. (일전에 『조선의 갈림길』에서도 그랬던 것처럼 말이죠.) 이 책 역시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출발합니다. 무엇보다 『요즘 역사 : 근대』라는 제목에서 근대의 역사를 통해 "요즘"의 현실을 이해하려고 한다는 목표가 명확히 드러납니다. 서론에서 "요즘 역사인 근현대사를 알게 되면 (...) 삶에 대한 올바른 방향을 설정할 확률이 높아진다"(4쪽)고 한 것 역시 이러한 목표와 상통합니다. 이처럼 과거의 역사를 통해 현재와 미래를 위한 교훈을 얻자는 관점은 그다지 낯선 것이 아닙니다. 이런 것을 (요즘 잘 안 쓰는 표현으로 ㅋ) '감계주의感係主義'라고 하는데요, 동서양을 막론하고 역사에 접근하는 흔한 자세 중 하나거든요.
하지만 그 과정에서 반드시 유의할 것은, 당대 혹은 현재의 권력 구도에 맞춰서 생각이 제한되어서는 안 된다는 점입니다. 당대의 선택지가 제한되었다고 해서 그 시기를 '역사'로 반추하는 우리 생각의 선택지까지 제한될 필요가 없으니까요. 지금 현실의 권력에 역사를 바라보는 시선이 종속되어서는 안되는 것도 물론입니다. 개항기를 예로 들자면, 당대의 정치적 선택은 쇄국과 개방으로 한정되어 있었겠지만 그 시기를 바라보는 지금 우리까지 쇄국과 개방 중 하나만 골라야 하는 것은 아니라는 거죠. 우리는 흥선대원군도 고종도 아니니까요. 당대의 역사에 대한 해석 역시 지금의 정치적 구도에 맞춰서 진보와 보수로 두부 자르듯 구분될 필요가 없습니다. 무수히 많은 생각과 해석들을 서너 개의 선택지로 정리하는 것은 선거 같은 특수한 국면에서나 가능한 일이지 성숙한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일반적으로 추천할만한 일이 아닙니다. 그렇게 나뉜 진영 구도 안에서, 나와 다른 진영에 속한 이들을 비판하기 위한 용도로만 역사를 이용하는 것도 바람직하지 못하구요. 그런데 안타깝게도 황현필의 『요즘 역사 : 근대』는 그런 점들을 거의 유의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이 책은 역사를 해석하는 데 있어서 선택지를 한정하고 그 중 하나만 고를 것을 줄곧 요구합니다. 예컨대 "동학농민운동에 역사적 정당성을 부여한다면, 민비 일족을 지지할 수 없다"(179쪽) 같은 서술은 역사를 통찰력을 얻는 근간이 아니라 특정한 세력을 선택하는 정치행위처럼 이해하는 듯 보입니다. 역사를 정正과 사邪의 대립으로 정리한 후, 정正의 자리에는 동학농민운동과 의병전쟁 등을 놓고 사邪의 자리에는 민씨 척족이나 친일파 등을 배치하는 거죠. 이들 사邪의 세력은 "잠재적으로 친일 매국의 유전자가 존재하는 인간들"(136쪽) 내지는 "명에 사대하고, 청에 의지하고, 일본에 굴복하고, 다시 미국에 사대하는 이 망할 놈의 사대 DNA"(111쪽)를 가진 이들로 지목됩니다. (그런데 "DNA"라고 했으니 저자 자신도 그에 속하는 것 아닌가요;;) 이는 현재의 정치에도 그대로 이어져서, 앞서 말한 사邪의 집단은 "분단 세력"(5쪽)"과 철지난 반공주의(291~292쪽), '정치를 시끄럽게 하는 "역사에 무지한 사람들"'(4쪽)의 형태로 여전히 현존한다는 것이 이 책의 세계관입니다. (대원군부터 한일병합까지를 다루는 이 책이 분단과 반공을 문제시하는 것도 많이 뜬금없습니다만...)
특히 이들 사邪의 배후에 놓인 외세, 즉 일본에 대해서는 한국을 식민지배했다는 '결과'를 과거로 무한히 소급하여 일본을 규탄하고 일본의 악습을 인종적·생물학적으로 본질화하는 태도(박훈, 『한국인의 눈으로 본 근대 일본의 역사』, 204쪽)를 시종일관 견지합니다. "일본은 강자를 빨리 인정할 줄 아는 민족성이 있다"(67~68쪽)거나 "우리가 처음으로 문호를 개방한 나라가 하필 일본이라는 것은 자존심이 상하는 일"(100쪽)처럼 맹목적이다 싶을 정도로 일본에 대해 적개심을 드러내는 서술은, 좀 세게 말하자면, 이영훈의 '반일종족주의' 같은 레토릭에게 너무 좋은 먹잇감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결국 "조선의 선비들은 왜 을미사변의 복수를 위해 왜왕의 부인을 죽이려는 시도조차 하지 못했을까? (...) 에도성의 담을 넘어가는 한국인과 한국인에게 끌려나오는 왜왕 내외의 모습을 상상해 본 적이 있다"(181쪽)는 서술에까지 이르면... 이 이상 책을 계속 읽는 것이 괴로울 정도입니다.
이 책은 급기야 출처가 불분명한 선정적 이야기까지 손에 집히는 대로 막 집어던지는 지경에까지 이릅니다. 임오군란 당시 몸을 피했던 민비가 한강 건너 어느 마을에서 왕비를 욕하는 노파를 보고 기억해두었다가 환궁한 후에 그 마을 사람들을 모두 학살했다는 이야기(107쪽)은 어디에서 나온 이야기인지 출처를 찾기 어렵습니다. 저 역시도 민비가 가혹하게 비판받아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출처도 불분명한 이야기를 그를 '학살자'로 만들고 싶지는 않습니다. 이 책이 표현하고 싶은 것이 민비의 정치적 선택에 대한 냉정한 비판인지 아니면 그저 단순한 혐오인지, 저는 도통 모르겠습니다.
선정적이기로는 "우범선이 민비를 시간(屍姦)했다는 설도 있다"(172쪽)는 서술이 으뜸입니다. 차마 입에 담기도 힘든 이 내용은 2000년대 초 소설가 김진명이 발견하여 국내에 보고한 이른바 '에조 보고서'에 나오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이를 그대로 신뢰하기는 어렵습니다. 이시즈카 에이조(石塚英藏)가 남긴 서간이 존재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김진명이 자신의 소설 『황태자비 납치 사건』에서 인용한 '에조 보고서 453호'라는 이름의 문서는 존재하지 않으며 여기에 담겼다고 하는 윤간·시간 관련 내용 역시 김진명의 상상력이 크게 작용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백번 양보해서 그 내용을 모두 인정한다 하더라도, 우범선이 이를 행했다는 내용은 아닙니다. 이는 아마도 "윤간 및 시간이 이뤄진 현장에 우범선이 있었다"는 내용(위키피디아 '우범선' 항목, 검색일: 2026년 5월 5일)을 저자가 "우범선이 시간을 했다"로 변용한 것이 아닌가 의심됩니다. (이 책 외에는 그런 식으로 쓰인 텍스트가 없습니다.) 그러니 이는 안그래도 출처가 불분명한 낭설을, 저자가 자기 상상력까지 더하여 부풀린 결과로 보입니다.
이런 것들에 비하면 세도정치기를 헌종과 철종 대의 30년이라고 했다가(11쪽) 얼마 안 가 순조까지 포함한 60년이라고 하며(27쪽) 스스로 갈팡질팡한다거나, 이제는 당대의 사료로는 가치를 거의 인정받지 못하는 폐정개혁안 12개조를 인용(149~150쪽)한다거나, 단발령과 상관 없는 사진을 단발령 사진이라고(185쪽) 한다거나 하는 것들은 그저 사소한 실수로 넘어갈 수 있는 정도입니다. (물론 이 역시 역사학을 직업으로 삼은 이로서의 엄정함을 잃었다는 비판은 면키 어렵습니다.)
제가 일전에 같은 저자의 『황현필의 진보를 위한 역사』에 대해 감상을 쓴 후에 들었던 여러 반응 중 하나는 '왜 이렇게 정색하고 반응하느냐'였습니다. 독자는 물론이고 동료 연구자들도 그런 반응을 전해주었는데요, 저 역시도 이 책의 여러 아스트랄한 서술들을 읽으면서 '내가 이런 글을 굳이 정색하고 다룰 필요가 있나' 하는 생각을 여러 번 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 책에 담긴 사실관계의 오류와 진영논리 등이 역사학은 물론이고 민주주의의 원칙에도 위배된다고 생각하기에, 저자와 마찬가지로 역사학을 직업으로 삼은 사람으로서 몇 마디 말을 보태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더욱이 이 책이 상당히 높은 판매고를 기록하기도 했고, 저자 또한 사회적 영향력이 적지 않기에 그런 걱정은 더 큽니다. 그러고보니 저자가 최근에 꽤 중요한 직함을 얻었다는 소식도 들었습니다. 저의 걱정이 그저 그의 책에 대한 우려로만 그치기를, 그의 공적인 발언까지 우려하는 일은 생기지 않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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