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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비평 154호 (역사비평사, 2026.) 본문

잡冊나부랭이

역사비평 154호 (역사비평사, 2026.)

Dog君 2026. 5. 8. 10:15

 

  12.3을 민주주의(의 역사)의 관점에서 어떻게 보아야야 할까요. 대다수의 평론은 12.3을 과거로의 퇴행 내지는 미달성된 민주주의의 산물로 보는 듯합니다. 따라서 '내란 극복' 논의 역시 군부독재로부터 이어지는 일군의 세력을 청산하고 여전히 미완성 상태인 민주주의를 완성시키자는 정도로 귀결됩니다. 물론 '내란 세력'이 70~80년대 군부독재로부터 인적으로나 사상적으로 자유롭지 않은 것은 맞습니다. 하지만 또 그렇게 생각하고 나면 그간 우리의 민주주의는 아무런 진전도 없었던 것이냐, 87년의 성취는 대체 무엇이냐, 하는 등등의 질문이 꼬리를 뭅니다.

 

  『역사비평』 이번 호의 특집 '혐오의 역사와 극우정치'는 이런 점에서 독자의 눈길을 끕니다. 이 특집은 87년 체제의 성취를 있는 그대로 긍정하면서도 그 이면에 시장 질서의 공고화, 공동체의 파편화, 소수자에 대한 배제 등이 있음을 지적합니다. 이들 모순을 근본적으로 문제시하지 못한다면 12.3 같은 위기는 언제든 재발할 수 있다는 거죠. 너무 익숙한 근본주의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만 요즘 유튜브나 TV에 나오는 평론가들이 12.3의 의미를 두고서는 거의 판에 박힌 듯 비슷한 말들만 하는 것에 익숙해져서인지, 이런 이야기가 꽤 반갑게 느껴지네요. ㅎㅎㅎ

 

  그 외에도 '환경 문제에 맞선 지역민들' 특집에 실린 여러 사례연구와 '역사 파괴 운동'에 대항하기 위해 역사학의 목소리를 하나로 모을 수 있는 대표 조직을 제안한 기경량 선생님의 논문 등도 눈길을 끕니다.

 

  1987년 체제는 통상적으로 권위주의 독재의 종언과 절차적 민주주의의 제도화로 요약된다. 그러나 비판적 관점에서 이 시기를 재독해할 때, 87년 체제는 자본주의적 지배양식이 국가기구의 물리적 강제로부터 시장의 이데올로기적 포섭으로 재편되는 결정적 전환점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6월항쟁이 쟁취한 절차적 민주주의는 분명 국가권력의 자의적 행사를 제한하고 정치적 투명성을 제고하는 역사적 성과였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이 민주화의 공간은 자본에게 국가의 직접적 간섭으로부터 벗어나 사회 전 영역에 자신의 논리를 관철할 수 있는 '시장의 자유'를 선사하는 조건을 동시에 창출했다. 국가의 직접적 통제력이 약화된 공백 속에서 자본의 자율성은 급속히 확대되었고, '자유'라는 담론은 민주적 기본권의 보장이라는 의미에서 자본의 이동과 착취의 자유라는 의미로 점차 재편되어갔다. 이러한 맥락에서 87년 체제는 민주주의의 완성형이 아니라, 자본주의가 민주주의라는 외피를 입고 그 지배력을 더욱 정교하게 세련화한 '자본의 민주화·자유화' 과정으로 재해석될 필요가 있다. (이상록, 「한국 극우의 혐오정치와 대중심리」, 32쪽.)

 

  결국 촛불혁명이 차별금지법의 문턱을 넘어서지 못한 것은 광장의 에너지가 불충분해서가 아니었다. 그것은 오히려 정치권이 여전히 자본과 다수 중심의 87년 체제의 문법에 안주한 채, 광장이 제시한 새로운 민주주의의 상상력을 제도 안으로 수용하는 데 실패했기 때문이다. 소수자의 목소리는 광장에서 충분히 터져 나왔으나, 그것을 법과 제도로 번역해야 할 정치가 부재했다.
  이 사실은 촛불 이후의 민주주의적 과제가 단순한 정권 교체나 절차적 민주주의의 회복에 머물 수 없음을 명확히 한다. 진정한 의미의 포스트 촛불 정치는 신자유주의가 구조화한 배제와 차별의 질서를 극복하고, 소수자의 권리를 사회적 합의의 조건이 아닌 민주주의의 전제로 재정립하는 '평등의 민주주의'를 향해 나아가야 한다. 광장의 민주주의가 제도의 민주주의로 완성되기 위해서는, 다수의 동의를 구하기 이전에 모든 구성원의 존엄을 보장하는 것이 국가의 책무임을 정치가 선언해야 한다.
  2024년 12월의 비상계엄 선포는 이 미완의 과제가 얼마나 절박한 것인지를 역설적으로 증명했다. 촛불혁명으로부터 7년이 지난 시점에 자행된 이 사태는 극우적 권위주의가 단순히 주변화된 정치 세력의 일탈이 아니라, 87년 체제가 내포한 구조적 모순이 특정한 위기 국면에서 언제든 재폭발할 수 있는 잠재적 에너지로 잔존해 왔음을 보여준다. 광장이 열어젖힌 가능성이 제도 안에서 봉쇄되면서 그 공백은 결국 권위주의의 귀환을 위한 정치적 공간으로 전화되었다. 이는 포스트 촛불의 과제가 단순한 제도 개혁의 수준에 머물 수 없으며, 신자유주의적 배제의 구조와 그것이 배양하는 혐오정치의 토대를 함께 해체하지 않는 한 민주주의의 위기는 반복될 수밖에 없음을 역사적으로 확인시켜준다. (이상록, 「한국 극우의 혐오정치와 대중심리」, 41~42쪽.)

 

  혐오정치의 핵심적 기능은 분노의 방향을 조율하는 데 있다. 불평등의 심화, 고용불안의 만성화, 자산 양극화의 고착 등 신자유주의 체제가 구조적으로 산출하는 모순들은 대중의 광범위한 분노를 축적시킨다. 혐오정치는 이 분노가 자본과 기득권을 향해 수직적으로 분출되는 것을 교묘하게 차단하고, 대신 그것을 사회적 약자를 향한 수평적 폭력으로 전환하여 소진시킨다. 분노한 개인들은 체제의 구조적 모순에 저항하는 대신, 자신보다 더 취약한 타자를 향해 공격성을 분출함으로써 일시적 심리적 위안을 얻는다. 그 결과 지배 질서는 근본적 비판에 노출되지 않은 채 재생산되며, 혐오는 체제를 안정시키는 보이지 않는 사회적 완충재로 기능하게 된다. 혐오가 정치 행위자들에 의해 전략적으로 생산되고 유통되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그것은 불만을 잠재우는 가장 값싸고 효율적인 통치의 수단이다.
  혐오 표현에 대한 법적 규제는 필요한 조치이나, 그것만으로는 혐오를 가능하게 만드는 구조적 조건 자체가 변화하지 않는다.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은 혐오라는 증상의 억제를 넘어, 그것을 산출하는 신자유주의적 사회 구조 즉 개인을 경쟁적 원자로 분해하고 불안을 일상화하며 연대를 구조적으로 불가능하게 만드는 체제에 대한 근본적 성찰과 변혁이다. 이는 곧 사회적 안전망의 실질적 확충, 자산 불평등의 구조적 해소, 노동권의 회복, 그리고 경쟁이 아닌 돌봄과 연대를 사회 조직의 원리로 재정립하는 정치적 기획을 의미한다. 무한경쟁의 논리에 잠식된 냉소를 거두고, 타자의 고통에 응답하는 공감의 능력과 파편화된 개인들을 다시 잇는 연대의 언어를 복원해야 한다. (이상록, 「한국 극우의 혐오정치와 대중심리」, 43~44쪽.)

 

  그러나 이 모든 분석에서 한 가지가 거의 완전히 누락되어 있었다. 바로 자본주의였다. (...)
  2025년 한 해 동안 한국 학계에서 생산된 극우 개신교 관련 문헌들을 살펴보면 이러한 경향은 더욱 두르러진다. 12·3 계엄 이후 극우 개신교를 다루는 연구들이 폭발적으로 증가했고, 그 많은 연구들이 이를 파시즘의 관점에서 접근해 그 정치적 위험성을 성토했음에도 불구하고, 정작 파시즘을 잉태한 자본주의적 토대에 대해서는 철저히 침묵하는 기이한 모순을 보였다. 안타깝게도 이들 연구에서 극우 개신교와 자본 축적, 즉 개신교로 대표되는 한국형 극우 파시즘과 위기에 처한 한국 자본주의 축적 체제 사이의 관계를 구조적으로 규명하려는 시도는 놀라울 정도로 부재했다.
  한국 학계의 상황은 도널드 트럼프의 재집권 이후 극우 정치의 부상을 설명하기 위해 학계가 크게 두 진영으로 갈라져, 사회문화적 요인뿐만 아니라 정치경제적 조건에 대해서도 치열한 논쟁을 벌이고 있는 미국의 경우와 뚜렷하게 대조된다. 미국에서는 비록 상대적으로 소수지만, 극우의 이념적 기원을 자본주의 정신 그 자체에서 찾는 대안적인, 즉 "두 번째 해석" 전통이 엄연히 존재한다. 특히 신자유주의의 역사에 관한 연구로 유명한 역사학자 슬로보디언(Quinn Slobodian)의 논의는 중요한 통찰을 제공한다. 그는 현대의 극우를 신자유주의의 거부가 아니라, 시장 원리를 인종·국적·젠더 등 위계적 범주와 결합해 재구성한 "불량 변종"으로 파악한다. 그에 따르면 극우의 '반(反)글로벌리즘'은 자본의 이동을 막는 것이 아니라 이민자와 노동력의 이동만을 선별적으로 통제하여 기득권의 이익을 보호하려는 '종족-경제(ethno-economy)' 논리에 기반한다. 그는 극우가 다자간 무역 거버넌스나 아웃소싱 같은 특정 요소는 폐기하지만 시장 경쟁 및 승자독식이라는 사회적 다윈주의 원리는 강화하며, 이를 인종·국적·젠더 등의 위계적 범주를 통해 번역하면서 탄생했다고 본다. (...)
  최근 국제 학계의 전반적인 연구 동향 역시 극우 파시즘의 부상을 문화적 반동이나 우파 정체성 정치의 산물로 보는 협소한 시각에서 벗어나, 이를 현대 자본주의, 특히 신자유주의의 구조적 위기와 깊이 연루된 현상으로 재해석하는 방향으로 흐르고 있다. 이러한 정치경제학적 전환을 주도하는 학자들은 기존의 주류 정치학이 극우를 민주주의적 규범으로부터의 일탈이나 인종주의적 문화 현상으로만 치부하며 경제적 토대를 간과했다고 비판한다. (...)
  그러나 한국 학계에는 이러한 "두 번째 해석" 전통이 현저히 약하다. 극우 개신교를 한국 자본주의 지배 논리의 역사적으로 특수한 "종교적 형식"으로, 또는 신자유주의적 축적 체제의 신학적 정당화라는 측면에서 체계적으로 분석하려는 시도를 찾아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그러한 연구의 부족함은 우리가 극우 개신교 현상의 가장 깊은 뿌리를 놓치고 있다는 것을, 따라서 효과적인 대응 전략을 수립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 (정용택, 「구원의 자본, 혐오의정치―한국 극우 개신교의 정치경제학, 1945~2025」, 53~55쪽.)

 

  (...) 이 시기 성매매 여성은 이미 회생 불가능한 과거로 고정되었고, '전통' 가족은 복원되어야 할 이상적 과거로, 미혼모는 일어나서는 안 되는 미래의 위험으로 호출되었다. 시간은 폭력이 아니라 자연 그 자체로 여겨지기 때문에, 필멸의 존재인 인간에게 시간 질서를 동원한 언어는 무엇보다 강력한 통치 장치가 될 수 있다. 생애는 되돌릴 수 없고, 기회는 유한하며, 적절한 시기를 놓치면 만회할 수 없다는 전제는 정상가족을 하나의 가능성이 아니라 유일한 경로로 자연화했다. 이 과정에서 생애주기에 어긋나는 결과는 개인의 실패나 결함이 되고, 이로부터 이탈하는 것은 되돌릴 수 없는 낙인이 된다. 여성의 삶은 영원히 잠정적이고 미완의 상태로 규정되기 때문에, 이들의 현실은 항상 교정되거나 완성되어야 할 단계일 뿐이다.
  그결과 현실에 존재하는 성매매 여성들은 여타 시민 주체의 시야에 등장할 자격이 없으며, 이미 실패한 과거로 고정된다. 낙태에도 반대하고 출산해도 사회구성원으로 용납하지 않는 논리는 혼인 관계 밖에서 이미 임신한 여성에게 가능한 선택지를 봉쇄한다. (...) (조민지, 「영원히 현재일 수 없는―1980년대 정상가족 규범의 '시간' 질서와 여성혐오」, 114쪽.)

 

  일반적으로 민사소송에서 손해배상이 성립하려면 ① 가해행위가 존재해야 하고, ② 가해행위와 손해 발생 간에 인과관계가 인정되어야 하며, ③ 인과관계에 대한 입증 책임이 피해자인 원고에게 있다는 것이 판례상 확립된 원칙이다. 그러나 공해소송은 피해자가 인과관계를 입증하기 어렵다는 문제점이 있다.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일본에서는 1960년대부터 이른바 '개연성 이론'이 등장해 광범위한 지지를 받았다. 개연성 이론이란 공해 사건에서 원고가 인과관계의 개연성만을 입증하면, 피고 측이 명확한 반증을 제시하지 않는 한 가해행위의 인과관계를 인정하는 법리를 말한다. 1970년대 한국 법조계에서는 개연성 이론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를 놓고 논쟁이 벌어졌다. 이러한 이유로 공해소송은 1심, 2심, 3심을 거치면서 판사마다 견해가 달라 판결이 바뀌는 경우가 많았다. (강성호, 「1970~90년대 순천만 어민의 생존권 투쟁과 공해소송」, 213쪽.)

 

  (...) 기사연의 조사에 따르면, 1978년부터 1984년까지 온산공단 입주 공장들이 배출한 공해물질에 의한 대기오염과 수질오염 피해 건수는 27건, 농작물과 수산물 피해보상액은 15억 7,787만 4,000원이었다. 피해 건수나 피해보상액은 생각보다 많지 않은데, 이는 주민들이 오염 문제의 원인을 특정하거나 피해 상황을 과학적으로 증명하는 것이 매우 어려웠기 때문이다. 1978년 5월의 한이석유 관련 사례에서도 확인할 수 있듯이 국립수산진흥원의 피해 감정액은 약 10억 원이었지만, 실제 지급된 보상금은 20%에도 미치지 못했다. 이는 다른 경우에도 비슷했다. 실제 주민들이 체감한 피해는 드러난 숫자보다 훨씬 더 심각했을 것이고 적은 보상에 대해서 불만을 가졌을 가능성이 높다. (정계향, 「공해와의 공존을 강요당한 사람들의 대응―온산지역의 공해 문제와 주민운동을 중심으로」, 242쪽.)

 

  그간 정치권 인사들이 제도권 역사학자들보다 사이비역사학자 및 사이비역사 단체와 친밀한 관계를 형성하게 된 이유는 그들이 훨씬 더 조직화되어 있기 때문이다. 민주주의 제도하의 정치인들은 선거에서의 득표율 확보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정치권력이 조직화되고 세력을 갖춘 집단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것은 구조적으로 당연하다. 따라서 역사학자들의 목소리를 통합하여 한국 사회와 정치인들에게 호소력 있게 전달하고 정책적 영향력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세부 전공 단위로 분리되어 있는 학회들의 한계를 넘어 역사학 분야의 대표성과 권위를 확보할 단일 조직이 만들어질 필요가 있다. 예컨대 한국의 모든 역사학자들이 포함된 통합적 기구인 '한국역사학자협회' 혹은 역사학자뿐 아니라 역사 교사, 학예사, 공공 역사가 등 역사 관련 종사자들까지 총망라한 '한국역사협회' 같은 기구를 구상해볼 수 있다. (기경량, 「정치권력에 밀착한 역사 파괴 운동에 대한 제도적 대응」, 33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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