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g君 Blues...

서울리뷰오브북스 21호 (알렙, 2026.) 본문

잡冊나부랭이

서울리뷰오브북스 21호 (알렙, 2026.)

Dog君 2026. 5. 7. 17:10

 

  이런저런 시행착오들이 있었습니다만 이 계정은 저희가 책을 읽고 난 감상을 올리는 용도로 거의 정착이 된 것 같습니다. 여전히도 지성과 노력이 부족하다보니 널리 읽힐 글은 아닙니다만 그래도 여전히 어딘가에서 보석 같이 빛나는 역사책들을 찾아 읽고 부족하나마 감상을 나누는 것이 저에게는 아주 중요한 일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논문은 언제 쓰냐고 이놈아...)

 

  어김없이 좋은 서평으로 가득한 서리북 이번 호에서는 '뾰족한 서평'이라는 키워드에 사로잡혔습니다. 제가 이 계정에 쓰는 ('(서)평評'보다는 '(독후)감感'에 훨씬 가까운) 글들을 냉정하게 따져보면 '뾰족하다'는 기준에서는 한참 못미칩니다. 그보다는 '주례사 비평'에 좀 더 가깝지 않나 싶습니다. 아래 인용 글의 지적처럼 비판에 따르는 대가를 감당할 깜냥이 못되기 때문이겠죠. 다른 어떤 분야에 견줘도 너무 형편없이 쪼그라든 역사책 분야의 처참한 상황 때문에라도 지금 당장은 책의 장점을 어필하는 것이 더 필요한 시기라고 말하기도 하지만, 글쎄요... '냉정하지 못함'의 변명치고는 영 궁색하네요 ㅋ

 

  물론 여기서 말하는 '뾰족하다'라는 말이 단순히 비판적이라는 의미는 아닙니다. 덮어놓고 독설만 퍼붓는다고 좋은 서평이 아니라는 거죠. 그보다는 책의 논지를 정확하게 이해하고 책의 핵심적인 문제의식을 정확하게 짚어낸 후 이에 대해 가차 없이 평가한다는 의미입니다.

 

  '뾰족함'이 무엇보다 많이 필요한 분야가 바로 역사책 분야일지도 모릅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저자 개인일 수도 있고 역사학계 전반일 수도 있고...) 역사책은 사실관계를 충실하게 설명하는 연대기적 서술에 머무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해일처럼 몰려드는 사실관계의 바다 속에서 책의 논지와 저자의 문제의식이 선명하게 드러나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 거죠. 이럴 때 적절한 '평評'이 있다면 저자와 독자의 사이는 한층 가까워질 수 있을텐데, 이때 빛을 발하는 것이 바로 '뾰족함'이겠지요.

 

  그게 바로 제가 지향하는 것이기도 한데요, 그러려면 무엇보다 필요한 것이... 흠... (말잇못)

 

  트럼피즘이 득세한 미국의 현실에서 출발했지만, 이 책의 초점은 당면한 사회·경제적 문제에 대한 대응이 아니다. 1970년대, 뉴딜 질서의 붕괴에서 시작해 2016년 트럼프의 첫 대통령 당선까지 이어지는 산자유주의 질서의 흥망성쇠와 현재의 미국이 그런 거대한 흐름 가운데 어느 지점에 있는지를 건조하게 다룰 뿐이다. 책을 처음 읽었을 때 그리고 서평을 쓰기 위해 다시 들여다보면서 역시 역사학자의 관점으로 쓴 책이라 생각했다. 신자유주의 질서의 성립과 쇠퇴에 대한 서술에서 멈추고 대안 제시나 미래 전망으로 나아가지 않는다는 점은 독자에 따라 이 책의 명확한 장점으로 다가올 수도 있고 아쉬운 한계로 느낄 수도 있겠다. (유정훈, 「트럼프 시대에 관한 역사학자의 인식 - 『뉴딜과 신자유주의』」, 34~35쪽.)

 

  (...) 트럼프 2기의 상황을 보며 이를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싶어 『뉴딜과 신자유주의』를 서평 대상으로 선택했다. 이 주제에 관한 정치학자나 저널리스트, 현실의 정책에 참여했던 연구자들과는 다른 관점을 접할 수 있었다. 어쩌면 지금은 트럼프의 소셜미디어 포스팅 하나에 일희일비하기보다 거스틀 같은 역사학자의 인식을 염두에 두고 기회가 왔을 때 펼칠 아이디어를 다듬으며 버텨야 할 때일지도 모르겠다. 물론 지금 벌어지는 불의에 대한 감각을 잊어버리거나 당장 해야 할 일을 미루어 두자는 얘기는 아니다. 서평 원고를 마무리하는데, 미네소타주 미니애폴리스에서 이민자 단속에 나선 연방 정부 요원의 총격에 무고한 미국 시민인 간호사 알렉스 프레티(Alex Jeffrey Pretti)가 사망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기존 관념이 통용되지 않는 혼돈의 시대이고, 책 읽기와 서평도 그 영향에서 벗어날 수 없음을 확인하게 된다. (유정훈, 「트럼프 시대에 관한 역사학자의 인식 - 『뉴딜과 신자유주의』」, 38쪽.)

 

  김두얼 (...) 칭찬으로 가득한 서평을 흔히 주례사 서평이라고 부릅니다. 많은 사람이 뾰족한 서평을 보고 싶어 하지만, 세상에는 주례사 서평이 더 많습니다. 그 이유는 간단합니다. 비판은 감당해야 하는 대가가 크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뾰족한 서평으로 인한 손익 계산보다는 저는 이 서평이 정말 뾰족한 서평이었을지 아니면 모 교수님의 지적처럼 냉소 서평이었을지를 더 고민합니다.
  (...) 뾰족한 서평은 중요합니다. 냉소 비평과 뾰족한 비평을 구분하는 기준은 기본적으로 책의 핵심 문제를 얼마나 제대로 짚는지에 달렸습니다. 만일 어떤 책에 대해 제대로 된 이해도 없이 신랄한 문장을 나열한다면, 그것은 냉소 비평입니다. 하지만 책의 문제를 정확하게 평가하고 냉정하게 표현한다면, 언뜻 보기에 독설 같아도 가차 없는 평가를 담은 뾰족한 서평입니다. (「좌담 - 뾰족한 서평과 다정한 수다 사이에서: 우리 시대 '읽기'의 새 영토」, 91쪽.)

 

  김두얼 (...) 저처럼 책을 읽는 것이 직업인 사람들에게는 남모를 고통이 하나 있습니다. 독자분들에게 '이 책은 이러하니 꼭 읽으십시오'라고 한 권을 자신 있게 권하기 위해서, 실은 읽지 않아도 될 법한 책들을 산더미처럼 읽어야 한다는 점입니다. 실제로 읽는 책들 중 '와!' 하고 감탄하게 되는 책은 아주 일부분에 불과합니다. 그런 보석 같은 책을 찾아내기 위해 수많은 평범한 책을 통과해야 하는 것이죠. (...)
  일단은 무턱대고 읽어 보시기를 권합니다. 어떤 책이 좋은지에 대한 정보는 김겨울 작가님의 유튜브나 《서리북》 같은 매체를 통해 얻으시면 됩니다. 다만, 나만의 기준이 생기는 어느 지점까지는 다소 막무가내로 이것저것 읽으며 서점 매상을 올려드리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웃음) 이것이 제가 드릴 수 있는 가장 솔직한 답입니다. (「좌담 - 뾰족한 서평과 다정한 수다 사이에서: 우리 시대 '읽기'의 새 영토」, 106쪽.)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