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g君 Blues...
체공녀 연대기, 1931-2011 (남화숙, 후마니타스, 2024.) 본문

제목의 1931년은 강주룡이 을밀대에서 고공농성을 벌인 해이고 2011년은 김진숙이 영도조선소 크레인에서 고공농성을 벌인 해입니다. 둘 사이에는 80년의 시간 차이가 있지만 여성노동자의 고공농성이라는 점에서 꼭 닮았죠. 그리고 이 책은 두 사건을 시점과 종점으로 놓고 한국 여성노동운동의 역사를 연대기적으로 살펴봅니다. 그런데 이 책이 설명하는 여성노동운동의 역사는 단지 사용자(자본가계급)와의 투쟁만은 아닙니다. 이 책은 그에 더하여 여성노동운동에 대한 몇 가지 편견에도 도전합니다.
이 책이 맞서는 첫 번째 편견은 여성 노동자의 투쟁이 스스로의 주체적인 활동이 아니라 누군가 배후에서 조종한 것이 분명하다는 편견입니다. 여기에는 여성 노동자가 스스로 쟁의를 이끌만한 역량이 없을 것이라는 전제가 깔려 있습니다.(89쪽) 하지만 이 책에 따르면 강주룡 같은 여성노동운동의 주요 리더들은 이미 투쟁 이전부터 의식적인 좌파 활동가였으며 각각의 노동자 역시 정달헌 등을 매개로 한 사회주의 조직가들의 지원 없이도 파업을 벌였습니다. 여성 노동자들의 이러한 주체성은 공장 노동과 노동운동 참여를 통해 자존감을 고양시킬 수 있었던 개인의 경험(125쪽)과 근대적 사상과 반제 운동의 정치에 노출될 수 있었던 1920~30년대의 시대적 배경(149~150쪽)으로부터 비롯합니다. 여성노동자들의 이러한 주체성은 1950년대 부산의 조선방직 파업에서도 그대로 이어져 노동운동 내부에서 여성노동자들은 쉬이 무시할 수 없는 자부심과 자의식을 획득할 수 있었고 이후의 민주노조 운동 역시 젠더 정체성과 존엄성을 새삼 확인하게끔 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299쪽)
두 번째는 여성노동의 사회적·경제적 의미를 남성노동에 비해 부차적인 것으로 보는 태도입니다. "여공은 남자가 있으니 (...) 삯이 헐해도 상관없다"라는 한 기업인의 말은(61쪽) 이런 편견을 잘 보여줍니다. 대형마트 비정규 여성노동자의 파업을 다룬 영화 〈카트〉(2014)에도 이와 꼭 비슷하게 '반찬값이나 벌려고 나온 아줌마'라는 폄하가 나오는 것처럼, 이는 비단 식민지기에만 국한되지도 않습니다. 남성 노동자에게만 '생계수당' 혹은 '가족수당' 개념을 배타적으로 적용하는 식으로 구현되는 남녀임금차별은 이러한 편견의 결과이자 원인이죠. (남성 노동자에게 가계경제를 전적으로 부담하는 방식으로 만들어진 노동·가족질서에 관해서는 『현대 가족 이야기』(조주은, 2004)가 떠오르네요.) 하지만 〈카트〉에서 주인공 선희(염정아 분)이 "반찬값 아니고 생활비 벌러 나왔어요"고 맞받아친 것처럼, 여성 노동자는 많은 경우 가족의 주된 생계부양자였기에 이들의 노동은 결코 부차적인 것이 아니었습니다.
세 번째는 1970년대의 노동운동에 대한 부당한 폄하입니다. 이 책은 1980년대 남성 주도 민주노조 운동이 앞선 시기의 운동을 경제투쟁에만 매몰된 조합주의적 운동으로 이데올로기와 철학이 결여된 것으로 치부했다고 지적합니다. 이는 남성 노동자의 투쟁성, 계급의식, 연대를 위한 역량과 1980년대 이후 노동운동의 과학성을 강조하기 위함이었습니다. 하지만 1970년대는 (그리고 저자의 전작이 다룬 1960년대도) 남성 노동자들이 타협적인 노동조합에 안주하거나 심지어는 노동운동을 탄압하는 데 일조한 반면 여성 노동자들이 가혹한 탄압에 맞서 민주노조를 지켜나간 시기였습니다. 오히려 이 책은 전투적이고 끈질겼으며 연대에 기초하여 전개되었던 1970년대 노동운동의 경험이야말로 비정규화와 외주화의 문제와 맞서야 하는 작금의 노동운동에 가장 큰 영감을 줄 수 있다고 역설합니다.(338~339쪽)
결국 이 책은 크레인의 김진숙을 거쳐 오늘의 우리로 돌아옵니다. 코스피 6,000이니 7,000이니 하는 환호가 요란한 이 순간에도 어딘가에서는 부당해고 철폐와 임금 현실화를 외치며 고공에서 농성하고 달려오는 트럭을 몸으로 저지해야 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이런 싸움은 늘상 '을'끼리의 전쟁으로 비화되곤 합니다만 그러한 파편화를 통해 정작 책임을 져야 할 '갑'은 성공적으로 몸을 숨기죠. 어떤 '을'의 권리가 확보될 때 또다른 '을'인 나의 권리도 함께 지켜진다는 사실, 그러니까 김진숙을 응원했던 희망버스가 보여주었던 연대의 정신을 실로 오래간만에 역사책을 통해 되새깁니다.
고무 파업 당시 핵심 쟁점은 과연 임금 삭감이 공장주들의 주장대로 불황과 외국 제품과의 경쟁이 심화되는 상황에서 조선인 소유 기업의 생존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조치인지 여부였다. 노동자들은 1930년대 조선에 암울한 현실로 닥친 비참한 빈곤의 실태를 호소하며 사람들의 공감을 자아내려 했다. 『동아일보』를 비롯한 이 시기 온건파 민족주의 언론의 일관된 전략은, 한편으로는 노동자들이 처한 참혹한 상황과 빈곤에 동정심을 보이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임금 삭감이 불가피한 조치였다는 고용주 측의 주장을 잘 전달하는 것이었다. 또 동정심 대 어려운 경제 현실이라는 이런 기본적인 내러티브와 더불어 '적색' 공포가 동원되었다. 수많은 선정적인 보도를 통해 이들 언론은 파업 배후에 과격 선동자들이 숨어 있다고 주장하는 식민 당국의 발표를 그대로 전달함으로써 이런 공포를 부추겼다.
이런 경제적·정치적 주장 외에도 여성의 돈벌이 능력 자체를 문제시하는 젠더 담론 또한 강력했다. (...) 한 기업인은 여성 임금에 대한 당시의 보편적 태도를 다음과 같이 정리했다. "여공은 남자가 있으니 ...... 삯이 헐해도 상관없다." 기업인들은 고무 일의 계절적 성격이 노동자의 연평균임금을 크게 낮춘다는 사실을 편리하게 외면했다. 또한 강주룡과 같은 많은 여성 노동자들이 가족을 부양하는 유일한 또는 주된 부양자라는 공공연한 사실도 무시됐다. 강주룡의 경우처럼 개별 기사로는 여성 노동자가 "아들 노릇"을 하는 경우가 보도되기도 했지만, 언론도 여성의 소득이 남성 가장의 소득을 보충하는 역할에 불과하다는 기존 가정을 문제 삼지 않았다. 이는 이로가 임금에 대한 젠더 의식에 기반을 둔 이해였으며, 당시의 '민족자본가'는 이를 재고할 이유가 없었다. (60~61쪽.)
언론 보도와 법원 문서들은 정달헌이 강주룡을 비롯한 평원고무 파업 여공들의 배후라는 사실을 의심하지 않았다. (...) 여성 노동자의 지적 능력이 부족함을 전제로 한 이런 서사는 법원 문서가 의도치 않게 드러낸 증거 즉 강주룡이 이미 "좌익분자"였으며 "투쟁적" 노동자로 간주되고 있었다는 사실은 지워 버린다. 강주룡은 1930년 이미 고무 총파업을 겪었고, 이 시기 고무 여공들은 공산주의 조직가들과 아무런 연고도 없는 상태에서 파업을 벌였는데 말이다. 분명 정달헌이 체포된 후에도 평원고무를 비롯한 지역의 다른 공장들에서 파업 노동자 지원을 멈추지 않았던 태로 조직가들의 끈질긴 활동이 고무 노동자들 뒤에 숨은 '불온한 배후'에 대한 당국의 우려를 심화시켰을 것이다. (89쪽.)
사회주의 여성 활동가들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그들이 속한 '신여성'(또는 '신여자')이라는 범주가 어떻게 발전해 갔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신여성'과 '모던 걸'의 등장은 전 세계적인 현상이었다. 하지만 조선에서 그 개념이 논의되고 소비되는 방식은 같은 시기 일본과는 다소 달랐다. 일본에 비해 식민지 조선은 교육·취업·소비 등의 영역에서 '신여성' 또는 '모던 걸'로 살아가는 선택을 뒷받침할 수 있는 경제적 기반이 충분히 발달하지 못한 상태였다. 그 결과 지식 생산과 사회운동에 참여하는 여성의 수는 매우 적었고, 사회학자 김수진의 주장처럼 '신여성'과 '모던 걸'에 대한 논쟁은 당시 잡지 제작과 언론을 거의 완전히 장악하고 있던 남성 지식인들이 독점하고 있었다. 다시 말해, 식민지 조선에서 '신여성'과 '모던 걸'은 주로 민족주의적 검토의 대상 중 하나였다. 이들에 대한 논의는 여성을 둘러싼 제반 문제나 젠더 문제 그 자체보다는 근대성의 바람직한 성격이나 반식민지적 근대 주체에 대한 고민을 중심으로 진행되었던 탓에 여성 자신의 목소리와 페미니즘적 의제는 주변화될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재상상된 민족주의적 구상 속에서 신여성 주체의 바람직한 역할을 '구여성'이라 불린 여성 대중의 구원자로 규정되었고, 당대 여성운동에서도 그런 임무에 대한 광범위한 공감대가 형성돼 있었다. (...) (92~94쪽.)
1930년대 식민지 조선의 적색 노조 운동에는 기억에 남을 노동자 투쟁이 많았는데, 이 극도로 위험한 지하 반제 계급투쟁의 중심에 많은 여성 노동자들이 있었다는 점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강주룡의 눈부신 을밀대 고공 농성뿐만 아니라 처절한 단식투쟁, 충격적인 공장 "습격", 극적인 가두시위 등 잊을 수 없는 장면들을 만들어 낸 1931년 평원고무 파업은 여공 운동의 수준과 그들의 적극성을 보여 주는 대표적인 사건이었다. 을밀대의 지붕 위에서 강주룡은 그간 배움을 통해 획득한 지식, 그의 표현을 빌리자면 "내가 봬와서 아는 것"에 대한 자신감을 표현했다. 식민지 근대와 사회주의 근대의 지형에서 공장 노동과 노동운동 참여를 통해 얻은 '해방의 지식'과 그 지식에 대한 자부심으로 무장한 새로운 주체, 즉 여공 활동가들이 등장하고 있었다. 개인의 자존감을 크게 일깨운 혁명운동의 이런 측면은 강주룡과 같은 여성 노동자들이 왜 두려움을 무릅쓰고 노동운동가로서의 위험한 삶을 선택했는지 이해하는 단서가 된다. (125쪽.)
(...) 언론이 파업 여공의 단식에 몰두하는 데에는 다른 이유도 있었던 것 같다. 여성 노동자들이 얼마나 의지가 강하고 놀라울 만큼 용감해 보였는지를 이야기하는 대신, 그들의 투쟁을 "비오는 저녁 거리"에서 본 "처절한 광경"이라는 이미지를 통해 기술하는 것은 이들의 전투적이고 급진적인 투쟁을 훨씬 더 다루기 쉬운 이야기, 즉 사회의 동정이 필요한 무력한 하층민의 이야기로 바꿔 놓는 효과가 있었다. 즉, 파업 이야기를 '여성'의 이야기로 서술하면서 평양 사회의 조선인 소유 기업과 조선인 노동자 사이의 계급 갈등이라는 핵심 문제를 주변화할 수 있었던 것이다. 민족주의 신문들은 이렇게 인도주의적 접근법과 모두에게 익숙한 신파적 서술 방식을 통해 식민지 자본주의 질서에 대한 여성 노동자들의 도전이라는 심각한 문제를 비참한 삶에 울부짖는 가난한 여자들의 이야기로 바꿔 놓고 노동문제와 젠더 문제를 모두 교묘하게 회피하는 데 성공한다. (141쪽.)
이 고무 여공의 활동가적 주체성과 무장 게릴라 운동을 비롯한 만주 경험 사이의 관계에 주목해 보면 1920, 30년대 조선에서 여성 주체성이 어떻게 진화해 왔는지를 새로운 관점에서 볼 수 있다. 특히 급속한 산업화와 중국·소련과의 근접성으로 인해 주민들이 일찍부터 외국의 근대적 사상과 관행에 노출돼 있던 북부 지역은 급진적 운동이 발달해 강주룡과 같이 확장된 인식 지평을 가진 노동계급 여성이 출현할 수 있는 조건을 갖추고 있었다. 강주룡은 열네 살부터 스물네 살까지(1914~24년경) 만주에서 생활하면서 일제의 잔인한 반란군 토벌 작전 중국인·조선인·일본인 사이의 민족 갈등, 만연한 빈곤과 빈번한 무력충돌의 현실을 비롯해 조선인 만주 이주와 반제 운동을 둘러싼 정치와 맞닥뜨렸을 것이다. 강주룡은 더 큰 세상을 보았고, 반제국주의 전쟁에 참전하며 많은 시련을 이겨 냈다. 조선의 북녘에서 만주로, 그리고 다시 서북으로 돌아오는 삶의 여정을 통해 강주룡은 정치의식뿐만 아니라 주체적인 자아의식을 획득해 갔을 것이다. 강주룡은 평원고무 파업 직전 적색 노조 운동에 얽히기 시작한 시점이 아니라 그 훨씬 이전부터 정치의식을 키우기 시작했을 가능성이 높다. (149~150쪽.)
(...) 조방의 여성 노동자들은 남성 노조원들로부터 "여동지"로서 존중 받는 위치에 서게 되었다. 이 말은 조방 쟁의 때 대한노총 내에서 전진한 그룹 편에 섰던 전국철도연맹 위원장 김주홍이 사용한 표현이다. (...) "여동지"는 여성이 활동가로서 보여 준 자주적 역량과 노동운동에서 그들이 수행한 역할에 대한 일정 정도의 인정과 존경심을 반영한 말이었다. 김주홍 같은 노조의 고위 간부가 조방 여성들을 주저 없이 '동지'라 부르고, 안종우 노조 위원장이 여공의 리더십에 칭찬을 아끼지 않은 것은 조방 여성 노동자들의 투쟁 역량이, 아직 전체 사회에 공유된 인식은 아니라 해도, 당대의 노동운동 지도자들에게 깊은 인상을 심어 주었음을 보여 준다.
그러나 파업 여공에 대한 이런 인정과 존중은 조방 파업이 끝난 후 노동운동 진영에서도 언론에서도 대부분 사라졌다. 조방 쟁의 당시 언론 보도에서 여성들의 목소리는 그 중요한 역할에도 불구하고 1930년대 평양 고무 파업 때에 비해 잘 들리지 않았다. 남성 지도자들의 회상을 통해서 그나마 우리는 흰 저고리와 검정 치마를 입은 '여동지들'이 파업을 조직하기 위해 작업장을 도는 인상적인 장면이나 끈질기고 전투적인 투쟁으로 강일매를 위협하는 여공 서사를 접할 수 있을 뿐이다. 하지만 여공의 주체성과 역량의 수준을 엿볼 수 있게 해주는 그런 자취들조차 시간이 흐르면서 거의 사라졌다. (...) (214~215쪽.)
여성에게 안정적인 공장 일자리가 부족했던 당시 상황을 고려할 때, 조방 여성 노동자들이 해고의 위협에도 불구하고 노사 투쟁의 최전선에서 수개월을 버텨 낸 것은 대단한 일이었고, 이런 점이 "죽어도 좋다"는 태도로 싸우는 여공들에 대한 남성 노조 지도자들의 감탄과 존경심을 증폭시켰을 것이다. 이런 행동에서 우리는 이들이 역사적으로 중대한 의미를 지닌 싸움의 한복판에 선 일하는 여성으로서―그리고 그 중에서도 드문 기회를 차지한 대공장 엘리트 노동자로서―가졌을 자부심과 자의식을 상상해 볼 수 있다. 조방 여성들이 20년 전 선배 여성 노동자들의 투쟁과 해방 직후 조방 노동운동의 자랑스러운 역사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었는지는 확인할 길이 없지만, 과거 여공 투쟁의 역사가 남성 노조 활동가들로 하여금 여공을 선뜻 '동지'로 인식할 수 있게 한 문화적 조건을 마련해 주었을 가능성이 크다.
동시에 1951~52년의 조방 쟁의는 분회 및 전국 단위에서 남성 지도부 주도로 진행되었다는 점 역시 주목해야 한다. 식민지기와 달리 이 시기 남한에서는 정부가 승인한 대한노총만이 산업 노동자 집단의 유일한 대표로서 정부와 상대할 수 있었다. 여성의 관점에서 볼 때, 조직 노동운동의 제도화와 세력 강화가 가져온 중요한 결과 중 하나는 여성의 역할이 평조합원으로서 남성 지도부에 의해 동원되는 보병의 역할로 축소되었다는 것이다. 조직을 체계화한 전평 운동에서 이미 이런 경향이 나타나고 있었다. 조방 사례와 같이 사회적으로 관심을 끌었던 노동쟁의의 경우, 여성들이 실제 전투력을 제공했음에도 불구하고 대한노총의 남성 지도자들이 상황을 지도·통제했고 언론은 그들에게 관심을 집중했다. 여성이 지배적인 사업장에서의 파업도 더 이상 '여공 파업'으로 묘사되지 않았다. 물론 남성 노도 지도자들이 여공들의 기여를 높이 평가하기는 했지만, 현존하는 문서 자료에서 여성의 목소리를 찾기는 쉽지 않다.
1930년대 부르주아 민족주의 언론과 지식인들은 적어도 이론적으로는 미래 민족국가의 구성원으로 인정되는 여성 노동자들의 절박한 외침에 주목했다. 그리고 여성들의 투쟁성은 높이 평가되고 기록으로 남았다. 당시 공산주의 적색 노조 이론가와 활동가들은 여성 노동자들이 파업 노동자로서 보인 역량을 높이 평가했고, 혁명을 위해 싸우는 프롤레타리아 보병으로서 그들의 잠재력에 기대를 걸었다. 반면, 1950년대에는 국가가 노동조합운동을 인정하고 제도화하는 한편 남성이 전국, 지역, 사업장 수준에서 노조 지도부를 독점했고 여성 노동자들은 주변화되었다. (218~220쪽.)
민주노조 운동을 통해 여성 노동자들은 노조 활동가로서뿐만 아니라 '여성' 노동자로서 새로운 주체성을 형성했다. 민주노조를 건설하고 유지하는 과정에서 여성들은 과거에는 당연하다고 여겼던 계급 위계뿐만 아니라 젠더에 대해서도 점점 더 많은 질문을 하게 되었다. 이 시기 민중운동가들과 이론가들은 대부분 젠더에 기반을 둔 착취와 억압을 주된 문제로 인식하지 않았지만, 민주노조의 여성 운동가들은 학계나 일반 대중의 이해보다 훨씬 높은 수준의 젠더 의식을 보여 주었다. (293쪽.)
(...) 여성 조합원들에게 민주노조 사수 투쟁은 계급적 이익 추구 이상의 의미가 있었다. 여성 노동자들은 민주적 회의, 교육 프로그램, 그룹 활동, 시위, 농성, 국가 폭력과 사측에 의한 폭력을 경험하며 주체성의 변화를 겪는 동시에 노조 활동을 통해 사업장 문화와 주변의 일상을 변화시키고 있었다. 노동운동에 몸담았던 이들 중 많은 이들은 자신들이 노조 활동을 통해 '노동자'임에 자긍심을 갖게 되었고 '공순이'라는 단어가 강요한 고통스러운 열등감을 극복할 수 있었다고 증언한다. (...) (299쪽.)
(...) 1970년대 민주노조 운동을 비난하고 여성들의 투쟁을 폄하하는 담론은 1980년대 내내 힘을 발휘했다. 심지어 이 담론은 1987년 이후 더 깊이 뿌리를 내려 남성 주도 민주노조 운동 '신화'의 일부분이 된다. 김원은 이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 작업을 통해 그 신화의 '만들어진'invented 성격을 해부한다. 이에 따르면, 1987년 노동자 대투쟁 이후 운동의 주도권을 장악한 대기업 남성 노조원에게는 노동운동의 지배 세력으로서 자신들의 위치를 공고히 하기 위한 새로운 서사("새로운 남성 노동자의 상징")가 필요했다. 남성 영웅 전태일이 "모든 노동운동의 상징"으로 떠올랐고, 남성 노동자의 투쟁성, 계급의식, 연대를 위한 역량이 여성의 그것보다 훨씬 강하다는 판단을 수용한 새로운 담론이 형성되었다. 새로운 노동운동사에서 남성 노동자의 부상은 과거의 약점을 극복하고 "과학적" 이론에 바탕한 전투적인 투쟁으로 나아가는 바람직한 발전으로 그려졌다. 이런 신화 쓰기 과정에서 여성 노동자와 그들 투쟁의 주변화는 당연했다. 김원은 1987년 이후의 지배적 담론이 1970년대 민주노조 운동에 대해 제기하는 핵심 주장을 다음과 같이 세 가지로 요약한다. 첫째, 많은 한계를 지닌 여성 노동자 주도의 민주노조 운동은 1970년대 민주노조 운동의 "질적 발전의 장애 요인"이었다. 둘째, 1970년대 민주노조 운동이 지닌 조합주의나 경제투쟁 중심성 등은 "단기 고용 여성 노동자들의 한계에서 기인"한다. 셋째, 1970년대 민주노조 운동은 "이데올로기 혹은 철학이 결여된 물질적 빈곤에 대해 반응한 운동"이다. 김원은 이런 시각이 페미니즘적 시각으로 문제에 접근한 사회학자 이옥지와 인류학자 김현미 등 소수의 연구를 제외하면 당시(2006년)까지 발간된 대부분의 문헌들에 팽배해 있다고 분석한다.
이렇게 1970년대 여성 노동자들의 역사는 노동운동의 주도 세력이 된 남성 노조원의 관점에서 다시 쓰였고, 1970년대 여성 노동자 운동의 이른바 '한계'라는 관념이 노동운동과 노동 관련 학술 문헌에서 상식이 되었다. 여성 주도의 운동에서 남성 주도의 운동으로의 '진보'라는 생각은 한국 노동운동 안팎의 진보적 지식인들 사이에서 남성 중심적 사고의 습관과 쉽게 공명하며 안착했고, 따라서 여성 활동가들이 아무리 부당하다고 느낀다 해도 이에 대해 공개적으로 문제를 제기하기는 매우 어려웠다. (...) (326~328쪽.)
노동운동의 새로운 주체로서 비정규직 노동자를 논의할 때 학자들과 활동가들이 신자유주의 구조 조정의 결과로 여러 형태의 비정규 노동이 급증하는 현상의 '새로움'에만 시선을 고정하고, 그것이 오랫동안 한국 경제를 뒷받침해 온 노동시장 분절과 성별 분업의 역사와 관련돼 있을 가능성에는 충분한 주의를 기울이지 않은 건 분명하다. 또한 비정규직화 현상을 정의할 때 젠더를 주요 분석 범주에서 제외함으로써 오늘날 노조 운동은 젠더 문제를 마주하고 풀어 갈 좋은 기회를 놓치고 있다. 이런 결과들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선 새로움에 대한 주장을 좀 더 면밀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사실 다양한 형태의 비정규직 노동은 20세기 내내 한국에서 자본주의 전략의 필수적인 요소로 사용돼 왔다. 비정규직 노동의 활동은 최근의 신자유주의적 구조 조정과 함께 새로 시작된 일이 아닌 것이다. 대다수 여성 노동자에게는 특히 그랬다. 이들에게는 비정규 고용이 일상적이었고, 공장노동자나 은행 직원처럼 정식 고용계약을 맺을 만큼 운이 좋은 여성들도 결혼과 함께 고용이 종료되는 것이 관례였다. 여성이 주축이 된 몇몇 노조들에서 있었던 결혼 퇴직제 폐지 운동은 여성에게 사실상 비정규직을 강요하는, 성별화된 노동시장 구조에서 벗어나기 위한 노력이었다. (335쪽.)
사실 1970년대는 남성 노조원들에게 수치스러운 시기다. 그 기간 여성 노동자들은 가혹한 탄압에도 불구하고 꿋꿋이 민주노조를 지켜나갔던 반면 남성들은 대체로 침묵하거나 오히려 이들을 탄압하는 데 일조했다. 1987년 이후 남성 중심의 조직운동이 주류가 되면서 과거 여성들이 이끈 민주노조 운동의 한계를 강조하고 여공 투쟁의 역사를 평가절하하는 데 성공했지만, 1970, 80년대 여성 노동자들이 온갖 역경을 딛고 중요한 노조 운동을 발전시켰고 그 과정에서 그들의 투쟁성, 지구력, 리더십을 입증했다는 사실을 부인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현재 민주노총 남성 노조 지도부를 더욱 당혹스럽게 하는 것은 여성 노동자들이―이제는 서비스 산업 비정규직의 위치에서―1970년대의 자매들처럼 신자유주의적 조치에 맞서 전투적이고 끈질기며 민주적이고 창의적인 투쟁을 벌일 수 있음을 다시 한 번 입증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민주노총이 주도하는 노조 운동은 21세기의 여성 노동자들과 1970년대 여공들 사이의 연결성을 보지 못하거나 무시함으로써, 여성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싸움을 돕고 남녀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운명을 호전시킬 수 있는 소중한 기회를 놓치고 있다. 오늘날 불안정 노동은 여성을 넘어 남성으로, 또 중소기업을 넘어 대기업으로까지 확대되었다. 따라서 이런 새로운 상황은 자본주의의 지나친 이윤 추구에 맞서 다양한 위치에 선 노동자들이 폭넓은 연대 투쟁을 벌일 수 있는 새로운 조건을 만들어 내고 있다. 여성 노동자들이 한 세기에 걸친 투쟁에서 일관되게 보여 준 연대의 정신과 투쟁성을 조직 노동운동이 인정하고 받아들인다면 오늘날 우리가 한국에서 목도하는 노동운동의 쇠락 추이에 제동을 걸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것이 1970년대 여성 주도 노조 운동의 역사가 중요한 이유이고, 최근 수십 년 동안 학자, 활동가, 당시 투쟁에 참여했단 여성들 사이에서 그 역사가 치열한 기억 전쟁의 현장이 되어 온 이유다. (338~339쪽.)
2017년 9월 서울대학교 여성학협동과정 특강 초청 강연에서 김진숙이 들려준 이야기와 답변은 서로 얽힌 두 가지 문제―비정규직과 정규직 노동자 사이의 연대의 필요성과 한국 노조 운동의 젠더 문제―에 대한 그의 생각이 그간 어떻게 발전해 왔는지 보여 준다. 강연에서 그는 만연한 성희롱과 저속한 성적 언사에 시달렸던 자신의 직장 생활 경험을 회상하며 최근에야 그것을 '여혐'(여성 혐오)이라는 개념으로 표현할 수 있었다고 한다. 한 학생의 질문에 답하며 그는 음담패설을 날리는 사람들이 평소 자신을 도와주고 믿어 주던 선량한 '아저씨' 노동자들이었기 때문에 당시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몰라 갈등을 겪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학생들에게 모두가 이것이 왜 문제인지 "끊임없이 얘기해야" 하며, 나서고 떠들고 "그래야지 세상이 바뀐다"고 당부하면서 그것이 그가 트위터에 "어설프기는 하지만" 매일 여성과 관련된 얘기를 쓰려고 노력하는 이유라고, 그리고 그것은 과거에 자신의 말에 상처받았던 누군가가 있었다는 것을 모른 채 살았고 외면하기도 했던 데 대한 "자기반성"이라고 덧붙였다.
그날의 강연을 김진숙은 자신이 "여성 노동자였고, 지금도 여성 노동자로 살고 있"다는 말로 열면서 공장노동자로서 겪었던 착취와 성적 폭력의 실상을 자세히 묘사했다. 그리고 그는 이런 질문을 던졌다. "이 [여성] 노동자들은 뭐가 되어 있습니까?" 그가 제시한 답은 이랬다. "다 비정규직이 되어 있지요. 지하철에서 청소용역 노동자들, 학교에 청소하시는 노동자들 다 그 시절에 그렇게 일했던 노동자들이에요." 그는 강연을 마무리하며 앞으로 노조 운동이 가야 할 방향에 대한 명확한 처방을 제시했다. 현재 노조 운동의 한계 중 하나는 40세 이상의 남성 정규직 중공업 노동자들 위주의 운동이라는 점이고, 이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주도하는 운동으로 극복될 수 있다는 것이었다. (...) 357~358쪽.)
당시 김 지도위원의 모습 중 특히 한 장면이 뇌리에 남아 이 책을 쓰는 내내 영향을 미쳤다. 워싱턴 대학교 교내에서 열린 한 워크숍에서 방청객으로 한구석에 앉아 나를 포함한 학자들의 토론을 통역을 통해 경청하고 있던 그가 손을 들고 짧지만 인상적인 발언을 했다. 토론자들이 자신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건 알겠는데 정확히 무슨 말을 하는지 전혀 이해할 수 없다는 요지였다. 이 말이 내게는 자신과 같은 노동자들이 내세우는 대의에 공감한다고 공언하면서도 실제 그 당사자들이 접근하기 어려운 언어로 말하는 고학력 엘리트 지식인들에 대한 깊은 의심에서 나온 항의로 느껴졌다. 그 장면이 내 마음속 깊이 자리 잡아 여성 노동자를 연구하는 나는 누구인가를 계속 묻게 만들었다. (...) (370~371쪽.)
'잡冊나부랭이'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역사비평 154호 (역사비평사, 2026.) (0) | 2026.05.08 |
|---|---|
| 서울리뷰오브북스 21호 (알렙, 2026.) (0) | 2026.05.07 |
| 요즘 역사 : 근대 (황현필, 역바연, 2024.) (1) | 2026.05.06 |
| 지금 당장, 정의 실현 (황준서, 오월의봄, 2025.) (1) | 2026.05.05 |
| 지금부터 조선 젠더사 (하여주, 푸른역사, 2025.) (0) | 2026.05.03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