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로 단상 1

1-1. 석사를 마칠 즈음 계속 공부를 해야 하나 고민을 많이 하였다. 학위논문을 쓰면서 스스로의 부족함도 많이 느꼈거니와 GRE를 준비하며 돌아본 (역사공부에 필수라 할만한) 외국어실력도 형편없었기 때문이다. 틈틈이 하던 일에 GRE 공부까지 겹쳐 하루하루 허덕대던 끝에 목표한 점수를 얻어냈지만 시험을 보고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어쩌면 내 길은 공부가 아닐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1-2. 능력 문제도 있었지만 또 하나의 문제는 돈이었다. 어찌어찌 학비까지는 집에서 보태어주셨지만 그 외에 대학원생의 수입이래봐야 뻔한 것이었다. 연구보조원하면서 매달 나오는 60만원이 조금 못 되는 돈으로 3년 반을 버텨냈다. 가외수입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어쨌든 지금 생각해보면 좀 기특하기도 하다. 그 돈으로 생활비하고 학원비하고 각종 공과금 치르고 저금까지 했으니 지금 생각해도 어떻게 했는지 신기하다.

1-3. 아, 그 즈음엔 우스갯소리로 이 문구 많이 인용했었다.

則無恒産, 因無恒心.
항산(恒産)이 없으면 항심(恒心)도 없다.
『맹자』 양혜왕편.

2. 그래서 일을 하기로 했다. 그게 돈 문제도 해결해주고 역사학을 사람들에게 돌려주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이런저런 프로젝트에 연구원으로 이름을
올리고 그전까지 해왔던 것과 다른 일, 다른 책, 다른 글을 하고 보고 쓰기 시작했다. 그렇게 약 9개월 정도가 지난 지금이다. 그간의 이야기는 다음에 쓰기로 하고.

3. 나는 몰랐다. 맹자의 저 구절 바로 앞에 이런 구절이 있다는 사실.

無恒産而有恒心者, 惟士爲能.
항산(恒産)이 없어도 항심(恒心)을 가질 수 있는 것, 오직 선비만이 할 수 있는 것이다.
『맹자』 양혜왕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