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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想나부랭이

진로 단상 3

Dog君 2011. 12. 30. 09:37
1-1. 중세 서양철학에서부터 내려오는 비유 중에 'Buridan's ass'라는게 있다. '뷔리당의 궁뎅이당나귀'란 뜻인데 이게 뭔고 하면 양쪽 길 끝에 당근(이나 건초)을 두고 갈림길에 배고픈 당나귀를 세워두면 얘는 양쪽에서 졸라게 고민하다가 결국에는 굶어죽을거라는 뭐 한귀로 들으면 말도 안 되는거 같지만 곰곰 생각해보면 딱히 틀린 것은 아닌 이야기. (한국사회는 주로 점심메뉴를 고를 때 이런 상황에 봉착하곤 한다)

1-2. 그래서 평소 지론 중 하나는 쓸데없이 고민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고 따라서 양쪽 사이에서 고민하느니 뭐든 하나 선택해서 밀어붙이는게 더 낫다는 것도 또 하나의 지론. 일단 하나 골라서 해봐야 똥인지 된장인지도 알 수 있는거고 시간낭비도 최소화할 수 있는거 아니냐. 졸라게 계획만 세우고 있어봐야 좋을거 뭐 있나. 어차피 계획대로 되지도 않더만 뭘.

2-1. 석사논문을 준비할 즈음부터 들었던 그 많은 고민들의 기저에 깔린 것은 결국 '돈'이었다. 돈 없으면 당장의 의식주도 해결이 안 되는 냉엄한 자본주의 질서에 내몰리다 보니 더 이상 연봉 700만원으로 허덕대며 살고 싶은 마음도 흩어지더라는거지.

2-2. 그러한 연유로, 적어도 연봉 700만원은 넘길 수 있는 일자리를 찾아보게 되었고 그렇게 자연스럽게 2011년을 소비했고 지금의 일자리에 앉아있다.

3. 일을 시작하고 나서야 깨달은 사실은 돈을 더 받는다는 것은 그만큼 업무의 강도가 세다는 뜻이고 스트레스도 많이 받는다는 것이었다. 내 부모가 어디 대기업 중견간부 이상이 되지 않는 이상 나 역시도 이 굴레에서 벗어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렇게 2011년을 하기 싫은 일들과 안 받아도 될 스트레스들과 함께 보냈다.

4. 기실 따지고보면 일을 했다고 해서 딱히 수입이 더 좋아졌다거나 내 주머니가 더 두둑해진 것도 아니다. 매일 같이 경기도 광역버스를 타다보니 차비하고 밥값하느라 출퇴근만으로도 매일 1만원 정도는 고정적으로 깨져나갔다. 돈을 좀 더 번다는 안도감에 씀씀이는 커졌는데 프로젝트 사이사이에 쉬는 시간에도 그 씀씀이는 그대로 유지되었으니 통장잔고가 버텨낼리가 있나. 1년의 시간이 지난 지금도 내 통장잔고는 10만원이 채 못 된다.

5-1. 하기 싫은 일이지만 종종 (순간적으로나마) 열정 비슷한 것이 확 타오를 때가 있었는데 전화 돌리고, 영수증 챙기고, 그래프 그리고, 무의미한 문장 만들다가도 문헌이나 논문 뒤져서 새로운 자료를 발굴해야 할 때. 지금 돌이켜봐도 가장 신이 났을 때는 그 때였다.

5-2. 잘 읽혀지지도 않는 책들을 낑낑대며 읽고, 잘 써지지도 않는 문장들을 낑낑대며 써서, 답변하기도 어려운 질문에 버벅대고, 그러다가 뭐라도 하나 기가 막힌 자료 하나 찾아내면 누구 하나 알아주는 사람 없어도 혼자서 끼얏호!하며 길가다가도 그 생각만 나면 배시시 웃던 대학원 때 생각이 났거든.

6. 굶어죽어도 도저히 그 재미는 포기 못하겠다. 나의 열정을 온전히 불사를 수 있는 일이 있는데 그깟 배고픈게 대수랴. 혹자는 그렇게 살면 지금처럼 계속 연애도 못할거고 결혼도 못할거라고 농반진반 말해서 좀 불안하기는 하지만은...

7. 좀 뜬금없는 글 하나.

學也 祿在其中矣
학문을 한다는 것은, 봉록이 바로 그 안에 있는 것이다.
『논어』 위령공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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