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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봉 정도전의 건국철학 (김용옥, 통나무, 2004.)

Dog君 2012. 1. 9. 14:53


1-1. 지난 해에는 초여름부터 초겨울까지가 요 근래 보기 드물 정도로 상태가 메롱메롱한 상태였는데 특히 늦여름 이후부터는 가히 멘붕 직전의 아슬아슬한 줄타기가 계속되었고...

1-2. 상황이 그러하다보니 대학원에 두고 온 공부 생각도 좀 나고 막 그랬는데 마침 도올 김용옥이 EBS에서 중용 강의를 했는데 짤리고 뭐 어쩌고저쩌고 하는 일들이 생겨서 그럼 그거나 찾아볼까 했는데 2011년판 중용 강의는 없고 2004년판 한국사상사 강의가 있네. 꿩 대신 닭이고 이 아니면 잇몸이니 그거나 다운받아보자 싶어서 챙겨봤는데...

2. 도올 김용옥이야 이름만 많이 들어봤지 글을 읽어본 적도 강의를 들은 적도 없...는건 아니고 예전에 도덕경 강의만 띄엄띄엄 본 기억이 나는 정도에 불과해서 그이의 사상에 대해서 아는 바가 없던 차였는데 그 특유의 하이톤으로 가끔 웃기는 소리나 좀 해주면 스트레스 풀기에 좋겠다 싶어서 싹 정주행했다. 그런데 개그코드가 달라서인지 별로 웃기지는 않더라. 되려 뜬금없이 터져나오는 환호성이라든지 박수 같은걸 보면 대체 이 사람들이 이걸 이해는 하고 박수를 치는건가 하는 생각이 더 많이 들더란거지.

3. 그런데 또 한편으로 의외의 통찰력이 있는 강의였다. 한국사상사를 강의하며 '포스트' 뭐시깽이 하는 단어 따위 쓰지 않았지만 그의 강의는 탈근대의 문제의식과도 맞닿는 바가 있었고 어려운 역사철학적 개념들을 쉬이 풀어내는데도 탁월한 효능을 보여주었다. 어느 정도였냐면 내가 나중에 역사 관련 강의를 하게 되면 꼭 이대로만 따라 해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으니까. 그러다보니 그 강의의 교재 중 하나였던 이 책을 골라든 것은 당연한 수순이지. (물론 그 과정에서 그 어떤 역사학자도 탈근대의 문제를 제기하지 않았다는 열변은 좀 과장 아니 거짓말입니다요. 역사학하는 사람들도 그렇게 게으르진 않습니다 선생님.)

4. 정도전이고 최한기고 최제우고 다 떠나서 김용옥이 계속 하고 싶어서 몸부림치는 이야기는 한국사상사의 지적 성취를 어떻게 현재적 관점에서 재해석하고 그것의 의미를 취해 내느냐는건데 시국에 관해 이야기하는 것을 꺼리지 않고 아울러 단어 선택도 꺼리지 않는 김용옥의 성격으로 볼 때 이것도 뭐 당연한 이야기라고 할까나.

5. 한번 더 정리를 하면 김용옥이 그 하이톤의 목소리로 땀 삐질삐질 흘리면서 하고 싶은 이야기는 한국사상사를 지배했던 성리학이라는 철학이 기존에 생각했던 것처럼 전근대적이고 퇴행적인 이데올로기가 아니라 조선이라는 왕조를 600년 가까이 지탱해온, 대단히 안정적이고 완결성이 높은 이념체계였고 따라서 그 문제의식만큼은 지금 이 순간까지도 유효하다는 것. 이후 강의에서 최한기의 기학과 최제우의 동학을 성리학의 연장선상에서 해석하고자 부단히도 노력한 것 역시 뭐 대충 그런 이야기.

6. 그런저런 의미에서 재미도 있고 의미도 있는 강의였고 책도 그러했는데 이거 문제는 길이가 좀 심하게 짧다는거. 판형 자체도 좀 작거니와 실제 내용도 주석이나 해석없이 표점작업 해놓은 불씨잡변 원문을 실어놓은걸 제외하면 120쪽 내외니까 음... 연구서치고는 다소 짧다고 하겠다. 그래서 오늘 아침에 출근하면서 집어들고 나와서 출근길 지하철과 버스에서 좀 읽고 점심 먹고 좀 남는 시간에 읽고나니 그냥 땡. 아니 이건 책 두께의 문제가 아니라 비정상적으로 긴 내 출근시간이 문제인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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