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닥치고 정치 (김어준·지승호, 푸른숲, 2011.)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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닥치고 정치 (김어준·지승호, 푸른숲, 2011.)

Dog君 2011. 10. 8. 15:43


1-1. 얼마 전에 세미나 때문에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한 진보 성향을 문학비평계간지를 읽고 발제할 일이 있었다. 책을 읽는 내내 영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은 거기에 쓰인 단어들이 하나같이 마음에 와닿지를 않더라는 것. ‘87년 체제’, ‘연대’, ‘근대성’, ‘2013년 체제’... 아니, 아저씨들 많이 배우시고 똑똑하신건 알겠는데 그래서 이 말들이 지금 우리 사는거랑 상관이 있기나 한건가요?

1-2. 진보를 망하게 하는건 분열만이 아니다. 내 보기에 진보는 어려워서도 망한다. 아니 뭐 말은 많은데 이게 내 얘기를 하는건지 어디 올림푸스 산에 있는 얘긴지 알 수가 있어야 말이지. 그런 점에서 진보의 이야기를 (육두문자를 포함한) 일상의 언어로 풀어내는데 탁월한 능력을 보여주는 김어준의 존재는 소중하다. 졸라 쉽거든. ㅋㅋㅋ. ‘닥치고 정치: 김어준의 명랑시민 정치교본’은 그의 그러한 능력의 총집판 비슷하다.

1-3.
다시 말해 이 책을 졸라 짧게 축약하자면 바람과자먹고 구름똥 싸는 것 같은 진보의 언어를 지금 우리가 누리는 일상의 언어로 번역해준, 진보에 대한 김어준의 재능기부 정도로 정리하면 딱 맞다.

2-1. 범야권으로 분류되는 여러 정당들에 대한 솔직한 지적은 솔까말 나처럼 민주당에게조차 눈길을 줘본적 없는 이에게는 불편하게 다가오는 것도 사실이다. 진보정당이 현실적으로 정치적 무게감을 크게 가지지 못하는 상황에서 김어준의 지적이 틀린 것은 아니지만 민주당과 진보정당이 서로 손을 잡는 것은 감정의 수준에서 이미 거부감이 드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아니, 지금까지 길바닥에서 되지도 않는 개삽질하면서 피터지게 맞아가며 싸운게 누군데 거기에 민주당을 무임승차시켜야 하는가. 저 덩치만 졸라 크고 욕심만 많은 무능한 정당에게 코딱지만한 성과마저 뺏기면 그 얼마나 억울할꼬. (그래서 아마 이 책을 두고 며칠 내로 이런저런 설왕설래가 많아지지 않을까 싶다.)

2-2. 그 점, 김어준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노무현으로 천국이 오지 않았듯, 문재인으로도 천국은 오지 않는다니까. 맞다. 인간 세계에 천국은 없다. 하지만 노무현이 없었다면 이명박이 얼마나 나쁜지 몰랐다. 노무현으로 인해 되돌아갈 지점을 알게 된 것처럼, 문재인은 또다른 기준이 된다. 역사는 그런거다. 그런 기준을 가져보느냐, 못 가져보느냐.”라고 말한다. 섣불리 자신이 사회적 대안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2-3. 불편하다손 쳐도 이 책의 가치는 충분하다. 그리고 나 역시도 나보다는 김어준의 말이 더 설득력있다는거 인정한다.

3-1. 김어준의 가치는 단지 말을 쉽게 한다는데에만 있지 않다. 나는 아직 그보다 매체의 힘을 더 잘 활용하는 이를 보지 못했다. 한국의 진보는 여전히 이념의 선명성과 메시지의 진실성만으로 승부하려 하지만 그는 ‘미디어가 곧 메시지’임을 이미 십수년 전에 간파하였다. 미디어가 바뀐다는 것은 메시지의 문법 역시 바뀌어야 함을 왜 아직 한국의 진보는 모르는가.

“메시지는 이미 형식부터가 메시지인거야. 형식에 먹힌 메시지는 아예 전달조차 되지 않는다고. 그러면서 그 이념이 가진 선명성을 강조하면 할수록 대중들이 움직일 거라는 어마어마한 착각을 하게 되지. 애정을 가지고 지켜보는 나도, 그런 태도는 비련의 딸딸이라고 하지 않을 수가 없도다.”(pp.215~216)


3-2. 일찍이 인터넷의 가치에 눈을 뜬 그는 98년에 이미 딴지일보를 통해 저급한 육두문자와 포토샵을 통해 정치를 일상적 유희의 대상으로 만드는데 성공했다. 그리고 2011년 그는 다시 팟캐스트의 ‘나는 꼼수다’를 통해 정치의 유희화를 이룩하고 있다. 내 장담컨대, 늦어도 20년 내에 김어준은 학문적 분석의 대상이 될 것이다. 확신한다.

4-1. 대중정치는 무엇보다 직관적이고 즉물적이어야 한다. 어디 멀리 있는 추상적 가치를 정치적 의제로 설정하던 시대는 이제 끝났다. (적어도 20년 내에는 다시 안 올 거 같다.) 이명박이 그렇게나 잘 먹혔던 것도, 박정희가 아직도 서민들의 희망의 아이콘으로 남아있는 것도, 나치가 그렇게 강력한 체제를 구축할 수 있었던 것도 그들의 언어가 일상적 감성에 호소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4-2. 먹고 살기 힘들어? 그거 다 저기 저 외국인 새끼들 때문이야. 죽여버려. 그래도 힘들지? 이게 다 자기만 잘 살겠다고 파업하는 새끼들 때문이야. 나 찍어주면 주식도 오를거고 봉급도 오를거고 등록금도 깎아줄게. 일단 나 찍어.

4-3. 저기에 논리가 있길 하냐 뭐가 있냐. 얼마나 쉽고 간단하냐. 사람들은 저런 언어에 반응한다. 당장 배고픈 애 앞에서 세계경제위기가 어떻게 자본주의의 이윤율 저하가 어떻고 이러고 자빠져 있으면 안 되는 거다.

5. 책을 읽다보면 김어준이 던지는 몇 가지 (당시 시점으로서는) 정치예언들이 신기할 정도로 잘 맞아떨어지고 있어서 흠칫흠칫 놀랜다. 이 놀라운 능력은 분명 둘 중 하나다. 김어준의 예지력이 돋는거거나 예측을 한 수십개쯤 던져놓고 그 중에서 맞아떨어진 것만 책에 실었거나. (물론 나는 김어준이 절대 그러실 분이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절대 전자일거라 생각한다. ㅋㅋㅋ)

6. 다시 한번 강조하자면 이 책은 '진보에 대한 김어준의 재능기부'이다. 그간 진보 인사들이 졸라게 못 하던 것들을 너끈히 해내는 놀라운 책이다. 정치에 대해 잘 몰라도 누구나 부담없이 읽을 수 있는 놀라운 책이다.

덧. 개인적으로는 다음 대선에서도 여전히 민주노동당을 찍어야 하는지 살짝 고민하게 만드는 책이기도 하다.

덧2. 운이 좋았는지 예약구매를 할 수 있었다. 예약하면 뭐 김어준의 친필사인본을 준다고 했는데 정확히 말하면 친필사인이 인쇄된 것이다.

덧3. 아무리 참으려해도 잔뜩 후까시잡은 표지사진과 요 아래 사진의 간극은 참기 어렵다. 아래 사진은 김어준을 음해하려는 보수언론의 음모일 것이라 추측해본다. 참고로 이 사진은 책 말미에 덧붙은 김어준의 주장에 대한 내 반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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