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g君 Blues...
통합진보당 단상 본문
1-1. 우리는 왜 정당을 만들었을까. 정치학 원론 같은거 안 배워봐서 잘 모르겠지만 대충 이해한대로 설명하자면, 직접민주주의라는게 현실적으로 안 되는 거니까 일단 유권자의 의견을 대리하여 표현하기 위한 단체로 '정당'이란걸 만들어놓은게 아닐까나.
1-2. 그런데 정치적 의견이라는게 사람마다 다 다른거다. 너랑 내가 다르고 부모자식이 다르고 일란성 쌍둥이끼리도 다르다. 비슷해 보이더라도 똑같은건 없다. 그러면 그 다양한 정치적 의견의 갯수에 따라 정당을 다 따로 만드나? 당연히 아니다. 이게 무슨 허례허식 쩌는 한정식집도 아니고 가짓수가 마냥 많아질 수는 없는거잖아?
1-3. 그래서 우리는 선택을 한다. 이미 존재하고 있는 여러 정당들이 내놓은 정책들을 잘 따져보고 자기 생각이랑 가장 가까운 정당을 선택한다. 사람들이 지지정당을 선택하는 원리는 바로 그거다. 완전히 똑같은걸 찾는게 아니라 그나마 비슷한 것을 찾고 조금 다른 것이 있어도 그런건 그냥 넘어가는거다. 그런게 간접민주주의지?
1-4. 아 맞다. 하나 빼먹었다. '현실성'(혹은 당선가능성)이란 것도 있다. 결국 정치란 것도 선거란 것도 기본적으로는 1등 먹은 하나만 골라내는 행위란걸 생각하면 내가 찍은 애를 어떻게든 당선시키는 것도 상당히 중요한 행위이다. 물론 이게 지금 당장 당선되어야 한다는걸 의미하는건 아니다. 내가 찍을 이 놈이 나아중에라도 당선이 될 정도로 자라날 싹수가 있냐 없냐가 중요한거다. 선거란게 당장 한두번만 바라보고 하는건 아니잖아.
1-5. 나의 생각과 얼마나 가까운가. 그리고 그 정당이 (나중에라도) 당선될 가능성이 있는가. 그 두 가지 정도의 기준을 가지고 우리는 지지하는 정당을 고른다. 이걸 굳이 이해의 편의를 위해서 수학적으로 표현하자면 기대값이라고 할만하겠다. 당첨률이 50%인, 당첨금이 1만원인 복권이 있다 치자. 아 그런데 그 옆에 당첨률이 10%인, 당첨금이 10만원인 복권이 있네. 전자의 기대값은 5000원이고 후자의 기대값은 1만원이다. 음 그렇다면 가장 합리적인 선택은 후자를 고르는 거지.
2. ...라는 정도로 쉽게 생각해 왔다. 이건 거꾸로 말하면 별 고민을 안 했다는 뜻이기도 하다. 한 10년간 내내 말이다. 그러다가 지난 어느 술자리에서 모씨가 당신은 왜 그 정당을 지지하오 라고 물었을 때 뭐라고 자기변명을 한참 늘어놨던 것 같은데 그러고 돌아오는 길 내내 마음이 무거웠다. 나 그동안 아무 생각없이 그냥 관성처럼 지지해왔던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학위논문 논평해줄 때 처음 느꼈던건데 이 사람 참말로 예리한 사람이다. 가끔 보면 무슨 관심법이라도 배웠는지 미처 생각 못 했던 곳만 예리하게 파고들어오는거보면 대단한 사람 같다.)
3. 나는 진심으로 통합진보당(민주노동당)이 집권하는 것이 당장의 내 삶에도 퍽 이로울 것이라 생각한다. 아니, 생각했다. 당선가능성만 놓자면 응당 한나라당이나 민주당을 찍어야 옳겠으나 암만 생각해도 걔네들은 그냥 도찐개찐 같다. 물론 이명박이랑 노무현이 똑같다는건 아니지만 그 차이가 위에 말한 복권의 기대값의 차이를 상쇄할 정도는 못 된다고 (내 나름대로) 생각한거다.
4. 그런데 요즘 통합진보당을 보니 통합진보당도 역시 도찐개찐 같다. 난 당첨금의 차이가 좀 큰 줄 알았는데 안 그런거 같다. 얘네들이 말했던 '진보'라는건 대체 뭐였을까. 내가 정의의 사도니까 내가 집권하면 진정한 해방세상 올테니까 중간에 문제 좀 있어도 다 괜찮다고 생각하는걸까. 수단에 좀 문제가 있더라도 그 결과가 정의로우면 무조건 오케바리인걸까. 이런 애들이 집권해서 대통령하면 (내가 기대해왔던 것처럼) 내 살림살이 좀 나아질까.
5. 통합진보당 중앙위원회를 인터넷 생중계로 보고 있다. 가관이다. 지금은 사람들이 몰려 들어 중앙단상을 아작내고 있는 중이다. (21:43)
6. 그들이 해야 할 일도 많고 그들을 기다리는 곳도 많다. 아직도 노동자들이 줄지어 자살하는 곳이 있고, 일하는 사람들이 연이어 백혈병으로 죽어가도 딱 잡아떼는 회사가 있고, 일터로 돌아가고 싶은 사람들이 텐트 치고 나앉은 곳이 있다. 국회에 가서 싸울거 싸우고 얻어낼거 얻어내라고 국회의원 뱃지 달아준거잖아. 그거 갖고 싸우라고 달아준건 아니잖아. 그런데 왜. 왜. 왜 그러니 왜.
7. 실망이다. 아니, 절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