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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사람은 시계를 보지 않는다 (은희경, 창작과비평사, 1999.)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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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사람은 시계를 보지 않는다 (은희경, 창작과비평사, 1999.)

Dog君 2013. 3. 3. 15:06


1. 소설을 잘 몰라서 뭐라뭐라 평가하기는 어렵지만 '마이너리그'에서 던져준 기대감을 무너뜨릴 정도는 아니다.


  내 친구 중에는 세상의 인연이 다 번뇌라며 강원도 어느 절로 들어가다가, 시외버스 안에서 군인 옆자리에 앉게 되어 두 달 만에 결혼한 애가 있다. 인연을 끊겠다는 사람이수록 마음 깊이에는 사람에 대한 그리움이 강하다. 벗어나려고 하면서도 집착의 대상을 찾는 것이 인간이 견뎌야 할 고독의 본질인지도 모른다. <명백히 부도덕한 사랑> 中 (p. 17.)


  물론 죽은 사람에게는 내일이라는 시간이 오지 않지. 모두들 내일이 온다는 말을 희망이 있다는 뜻으로 쓰고 있어.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뜨리라, 우리에게 내일은 있다, 내일을 향해 뛴다...... 그런데 내일이 오는 것, 그것이 어떤 사람에게 희망이라는 걸까? 나에게 내일이란 시끄러운 유행가와 각종 헤어 제품의 독한 냄새와 드라이어의 열기 속에 선 채로 상한 머리카락들과 온종이 씨름하는 끝없는 시간일 뿐이야. 하루 한끼를 탈의실에 선 채로 순두부나 유부국수로 때워가며. 자신의 용모에 대한 손님들의 착각을 요령껏 부추겨야 되고, 게다가 요즘은 손님이 부쩍 줄어 원장의 신경질까지 견뎌내야 하거든. 하지만 그런 건 괜찮아. 그 정도 힘들지 않고 어떻게 돈을 벌겠어. 그보다는 말야, 내일이 와도 네가 내 곁에 없으리라는 사실, 그것이 나로 하여금 내일이라는 말을 희망의 의미로 쓸 수 없게 만드는 거야. 거꾸로 오늘 다음에 어제가 온다면 얼마나 좋을까. 너도 살아 있을 테고, 그리고 또 지나온 시절이 좋았던 건 결코 아니지만, 내가 이미 다 아는 일들이 닥쳐올 테니 적어도 두렵지는 않을 거 아냐. <행복한 사람은 시계를 보지 않는다> 中 (pp. 102~103.)


  트럭에 짐을 싣고 야반도주하듯 고향을 떠난 뒤, 낯선 도시에서 아버지는 외지에 나가고 어머니는 앓아누웠던 그 시절, 나는 열다섯 살이었다. 그 나이라면 불행을 느껴도 되고 어쩌면 약간 빗나가도 될 만큼은 문제의식이 있어야 했다. 그러나 나는 여전히 내 방식대로만 진지했다. 현실적인 고생에는 불행해하지 않았고 이제는 사춘기가 되었으니만큼 오직 '절대고독'과 '영혼의 오손'과 '치희의 상흔'과 '세련된 태타' 따위로만 고민할 뿐이었다. 싸르트르와 칼 힐티와 토머스 울프를 억지로 읽으며 박계형보다 재미없다는 불온한 생각이 순간적으로 스치는 바람에 소스라쳐 놀라곤 했던 그 시절의 나는 용돈을 쪼개 정음사와 을유문고의 전집을 할부로 들여놓는 일로써 인생을 이미 지적인 일에 투자하며 살고 있다는 자부심을 느꼈다. 당연히 그런 나를 웃기게 생각하거나 역겨워하는 친구들이 있었다. 지금이라면 나도 마땅히 나 같은 애를 역겨워할 것이다. 그러나 그때 나는 그런 친구들을 의식할 때마다 우수어린 표정으로 먼산을 바라보았다. <서정시대> 中 (p. 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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