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g君 Blues...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공지영, 푸른 숲, 2005.) 본문
1. 사람은 다 사람.
2. 그래야 나도 사람.
3. 근데 그게 엄청 어렵지.
고모가 노파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내가 삼양동 할머니의 집까지 차를 몰고 가는 동안 할머니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녀는 제가 혼자 지은 깊은 침묵의 방에 들어가 있는 듯했고, 진실로 중대한 일 앞에서 자신과 정직하게 대면하고자 고민하는 인간이 언제나 그렇듯이 그녀의 행색과 교양과 이런 것에는 아무 상관도 없이 위엄과 품위를 지니고 있는 듯했다. 오늘이 지나고 나면 그녀는 또 구부러진 허리로 빈 병과 신문지를 모아 자신의 통장에 3,150원이라든가 2,890원 같은 숫자를 찍겠지만, 돈이 많은 사람들을 보면, 그들의 쌀말이나 고기 근을 가지고 오면 어쩔 수 없이 비굴한 표정을 짓겠지만, 그 순간 그녀의 얼굴은 어떤 황후의 것보다도 찬란한 휘광에 쌓여 있는 듯했다. 오히려 그 옆에 앉아 있는 모니카 고모가 더 범속한 할머니 같았다. 그녀는 하느님의 아들이라는 예수도 겨우 마지막 순간 쥐어짜며 했던 그 말, 그 용서라는 것에 어린아이처럼 천진하고 겁없이 도전했고, 인간으로서 패배했으며 심지어 자신이 패배한 이유가 오만이었다는 것까지 알고 있었다. 그러니 그 순간, 내 마음속으로 그녀는 이미 성녀의 월계관을 쓴 거 같았다. 그것은 그녀의 지난 과거와 다가올 미래 그 어떤 것과도 아무 상관이 없을 터였다. 내가 이제껏 인간에게 이런 점을 본 적이 있었던가. 내 주변에서 언제나 그 사람은 쭉 그렇게 살고 이 사람은 쭉 이렇게 살았다. 모니카 고모조차 그랬다.
대체 어쩌자고 이 할머니는, 그녀의 말대로 배운 것도 없고, 아는 것도 없고, 신앙심도 없는 이 할머니는 그를 용서해보려고 했을까. 수많은 책이 출판되어 용서하라, 용서하라 해도, 성서 이래 수많은 신학자들이 목에 핏대를 올리며 외쳐도 인간이 아직도 넘어서지 못하는 그 일을 이 할머니는 대체 무슨 무모함으로 도전하려 했던 것일까. 그것은 어떤 위대한 단순함이었을까? (pp. 137~138.)
"목사나 신부나 수녀나 스님이나 선생이나 아무튼 우리가 훌륭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중에 위선자들 참 많아. 어쩌면 내가 그 대표적 인물일지도 모르지...... 위선을 행한다는 것은 적어도 선한 게 뭔지 감은 잡고 있는 거야. 깊은 내면에서 그들은 자기들이 보여지는 것만큼 훌륭하지 못하다는 걸 알아. 의식하든 안 하든 말이야. 그래서 고모는 그런 사람들 안 싫어해. 죽는 날까지 자기 자신 이외에 아무에게도 자기가 위선자라는 걸 들키지 않으면 그건 성공한 인생이라고도 생각해. 고모가 정말 싷어하는 사람은 위악을 떠는 사람들이야. 그들은 남에게 악한 짓을 하면서 실은 자기네들이 실은 어느 정도는 선하다고 생각하고 있어. 위악을 떠는 그 순간에도 남들이 실은 자기들의 속마음이 착하다는 것을 알아주기를 바래. 그 사람들은 실은 위선자들보다 더 교만하고 더 가엾어......" (pp. 158~159.)
"(전략) 기사가 당신을 다 말해준다고 생각해본 적 없어요. 신문 기사에는 사실은 있는데 사실을 만들어낸 사실은 없어요. 사실을 만들어낸 게 진짜 사실인데 사람들은 거기에는 관심이 없어요. 사실은 행위 전에 이미 행위의 의미가 생겨난 것인데. 내가 어떤 사람을 죽이려고 칼로 찔렀는데 하필이면 그의 목을 감고 있던 밧줄을 잘라서 그가 살아나온 경우와 내가 어떤 사람의 목을 감고 있는 밧줄을 자르려고 했는데 그 사람의 목을 찔러버리는 거...... 이건 너무나도 다른데, 앞의 사람은 상장을 받고 뒤의 사람은 처형을 당하겠죠. 세상은 행위만을 판단하니까요. 생각은 아무에게도 보여줄 수도 없고 들여다볼 수도 없는 거니까, 죄와 벌이라는 게 과연 그렇게나 타당한 것일까. 행위는 사실일 뿐 진실은 늘 그 행위 이전에 들어 있는 거라는 거, 그래서 우리가 혹여 귀를 기울여야 하는 것은 사실이 아니라 진실이라는 거...... 당신 때문에 나는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다는 거지요. (후략)" (pp. 204~205.)
* 2005년 4월에 1쇄를 찍고 2007년 1월에 154쇄를 찍었다. 이렇게 많이 찍어낸 책은 처음 사보기도 하지만... 대충 4, 5일에 1쇄씩 부지런히 찍어낸 셈이다. 이 책도 아마 찍어내는 속도보다 팔리는 속도가 더 빨랐던 그런 책이리라.
'잡冊나부랭이' 카테고리의 다른 글
좀비들 (김중혁, 창비, 2010.) (0) | 2013.03.06 |
---|---|
베니스에서 죽다 (정찬, 문학과 지성사, 2003.) (0) | 2013.03.05 |
행복한 사람은 시계를 보지 않는다 (은희경, 창작과비평사, 1999.) (0) | 2013.03.03 |
마이너리그 (은희경, 창작과비평사, 2001.) (0) | 2013.02.23 |
태초에 술이 있었네 (김학민, 서해문집, 2012.) (0) | 2013.01.0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