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g君 Blues...
이동진의 부메랑 인터뷰 그 영화의 시간 (이동진, 예담, 2014.) 본문
1. 나는 역사학과 평론이, 인간의 (의식적인) 활동을 연구대상으로 삼는 2차 작업이라는 점에서 닮은 부분이 꽤 많다고 생각한다. 자연과학의 경우에는 그것의 연구대상이 되는 자연현상이라는 것이 완전히 인간의 의지 밖에 있는 반면, 역사학과 평론의 대상은 어디까지나 인간 활동의 결과물이다. (물론 뭐... 어거지로 갖다붙인 느낌이 마이 나겠지만... 쫌 이해해주라. 이 정도 밑밥은 깔아줘야 내도 다음 문단을 쓰지.)
2-1. 역사가/평론가의 연구대상이 되는 사건/영화는 사실 누군가의 의도의 산물이라면, 여기서 역사가/평론가의 해석의 범위에 관해 질문을 하나 던져볼 수 있다. 역사가/평론가의 해석의 범위가 창작자의 의도를 넘어서는 것은 타당한가? 하는 뭐 그런 질문.
2-2. 내 글솜씨가 영 엉망이라서 정리가 잘 안 되니까, 역사 속에서 예를 들어 설명하자면 이런 거다. 1894년의 갑오농민전쟁에서 농민군이 발표한 격문이나 실제 활동 내용을 살펴보면, 지금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반봉건이 어떻고 근대 지향이 저떻고 새세상을 꿈꾼 민중이 어쩌고저쩌고...하는 내용이 별로 안 나온다;;; 보국안민(補國安民)이라는 말에서 드러나듯이 그들의 지향은 (문자 그대로 해석하자면) 사실 전근대의 봉건질서를 더 강화시키려는 쪽에 약간 더 가까웠다. 그러면, 갑오농민전쟁의 성격은 봉건질서로의 회귀를 꿈꾼 반근대적이고 봉건지향적인... 뭐 그렇다는 건가?! 그러면 우리가 배운 갑오농민전쟁의 의의는 다 쌩구라였던 건가?!?!
2-3. 글타. 그렇게 단순하게 보면 안 된다. 그 역사적 실상이 얼핏 과거회귀적으로 보인다 하더라도, 아니 좀 더 보태서 실제로 그들이 의도했던 것이 과거회귀적인 것이었다 하더라도 갑오농민전쟁의 의의가 그것만으로 한정되어서는 쫌 마이 곤란하다. 농민군의 신분적 구성, 실제 활동 양상, 정치적 지향 등등을 종합해서 볼 때 그것은 과거의 민란과는 질적으로 다른 것이었다. 그러니까 어떤 사건의 의미를 짚어내는 것은 반드시 그 사건을 만들어낸 사람들의 몫이 아니라, 그것을 해석하고 읽어내는 역사가의 몫이기도 하다는 거외다.
2-4. 쓸데없이 말이 길어졌는데, 그러니까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창작자가 반드시 창작물/영화에 대한 해석의 특권을 가지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창작자가 좋은 창작물/영화를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단지 직관만 있어도 충분할 수 있지만 평론은 그것을 읽어내고 언어를 통해 설명하는 작업이다.
3-1. (전작인 '그 영화의 비밀'을 포함해서) 책을 읽으면서 의아했던 점은, 이동진의 영화해석을 두고 감독들이 "저도 그렇게까지는 생각을 못 했네요"나 "그렇게 볼 수도 있겠군요"라는 말을 참 많이 한다는 것. 그 말인즉슨 이동진의 해석은 감독이 의도하지 않았던/못했던 것에까지 미친다는 점인데, 이게 보기에 따라선 좀 묘하게 보일 수도 있다.
3-2. 감독의 매우 의도적인 창작활동의 결과물인 영화를 해석하는 데 있어서 과연 감독의 의도를 넘어서는 해석이 가능한가 하는 것. 좀 더 거칠게 말하면 본래 있지도 않았던 의미를 괜히 오버해서 뽑아내는 게 아닌가 하는 뭐 그런 생각이 들더라는 것. 그리고 이런 비슷한 일이 역사에서도, 특히 내 전공인 현대사에서 비일비재한지라 난 그게 참 궁금했다.
4. 책을 읽는 내내 가졌던 궁금증의 실마리는, 이동진의 빨간 책방 57회에서 풀렸다.
그러니까 통찰을 가르칠 수 있는가의 문제인 거에요. 분석은 가르칠 수 있어요. 근데 어… 예를 들면 어떤 좋은 영화가 있다고 쳐봐요. 굉장히 좋은 영화가 있을 때, 이제 평론가들끼리 서로 의견이 붙었다고 쳐봐요. 그러면 좋은 영화일 때, 좋은 영화는 딱 보면 알거든요. 근데 그, 딱 보면 아는 건 통찰이겠죠. 그런데 왜 좋은가를 설명하는 게 평론이잖아요. 근데 어떤 사람이 어떤 영화를 단순히 딱 보고 이걸 통찰의 영역으로 평론을 넘기는 순간 평론 자체가 예술화하는 거에요. 그런데 예술화한다는 게 반드시 좋은 건 아니거든요. 그런 측면에서 보면 어떤… 그 예술이 얼마나 훌륭한가 하는 감식안이라는 것을 통찰에만 너무 기대게 되면 저는 사실은 굉장히 게으른 평론이 된다고 생각하거든요. (《빨간 책방》 57회〈생각의 탄생 1부〉 中.)
5-1. 베드신의 횟수를 센다든지 하는 식의, 일견 과도해보이는 해석은 단지 숫자에 대한 강박이나 무의미한 통계적 유희로만 이해되어서는 곤란하다. 아마도 그것은, 어떤 영화가 왜 좋은지를 설명해내기 위한 영화평론가의 성실한 분투의 과정인지도 모르겠다. '그 영화의 비밀'까지 포함해서 1500페이지에 달하는 긴 인터뷰는, 자신의 영화세계에 대한 감독의 자기웅변일 뿐 아니라 영화에 대한 통찰을 평론의 영역으로 옮기기 위한 한 평론가의 지난한 투쟁의 결과물이리라.
5-2. 댓글과 블로그와 트위터와 페북에서 어마어마한 양의 텍스트들이 쏟아져 나오는 시대다. 그 덕분에 평론이나 역사학이라는 것도 개나소나누구나 써낼 수 있는 인상비평 정도로만 여겨지는 시대이다. 그렇기에 (정작 저자 본인은 이 책에 대해 그렇게 말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이만한 성실의 결과물에 대해 우리는 좀 더 경외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6-1. 비슷한 맥락에서 여담을 좀 덧붙여 볼까. 이 책을 읽으면서 내가 특히 재미있었던 것은, 감독조차 의도하지 못했던 의미를 이동진에 질문하는 순간이 과연 언제 오는가를 기다리는 데 있었다. 그런 면에서 가장 난공불락이었던 감독은 (공교롭게도 가장 마지막에 배치된) 이명세 감독이었다. 이동진의 거의 모든 질문에 '어, 그래 그건 그런 의미야' 하고 다 대답하고 있으니까. 아, 그렇다면 결국 이동진의 해석/분석은 감독의 의도를 넘어서지 못하는 것인가... 뭐 그런 생각을 하면서 책장을 덮으려는 순간!
이명세_ 나는 이번 인터뷰에서 결코 나를 꾸미지 않을 거라고 결심하고 왔어. 나 스스로를 정확히 바라보면서 내가 알았거나 느꼈던 것만을 이야기하려고 해. 지금 그 질문에 대한 내 정확한 대답은 왜 그런지 나도 모르겠다는 거야. 듣고 보니 분명히 내가 그렇게 장면을 짰던 것 같긴 한데, 그건 나도 모르는 내 무의식과 관련이 있을 것 같아. 그런 장면에서 내가 다가가서 보고, 다 본 뒤에 돌아서서 가는 느낌이 있었던 것은 확실한 것 같아. 나머지는 나도 잘 모르겠어.
6-2. 불과 50페이지를 남겨두고 나온 요 한 마디에, 나 혼자만의 짜릿함.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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