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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진의 부메랑 인터뷰 그 영화의 시간 (이동진, 예담, 2014.)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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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진의 부메랑 인터뷰 그 영화의 시간 (이동진, 예담, 2014.)

Dog君 2014. 1. 26. 16:22



1. 나는 역사학과 평론이, 인간의 (의식적인) 활동을 연구대상으로 삼는 2차 작업이라는 점에서 닮은 부분이 꽤 많다고 생각한다. 자연과학의 경우에는 그것의 연구대상이 되는 자연현상이라는 것이 완전히 인간의 의지 밖에 있는 반면, 역사학과 평론의 대상은 어디까지나 인간 활동의 결과물이다. (물론 뭐... 어거지로 갖다붙인 느낌이 마이 나겠지만... 쫌 이해해주라. 이 정도 밑밥은 깔아줘야 내도 다음 문단을 쓰지.)


2-1. 역사가/평론가의 연구대상이 되는 사건/영화는 사실 누군가의 의도의 산물이라면, 여기서 역사가/평론가의 해석의 범위에 관해 질문을 하나 던져볼 수 있다. 역사가/평론가의 해석의 범위가 창작자의 의도를 넘어서는 것은 타당한가? 하는 뭐 그런 질문.


2-2. 내 글솜씨가 영 엉망이라서 정리가 잘 안 되니까, 역사 속에서 예를 들어 설명하자면 이런 거다. 1894년의 갑오농민전쟁에서 농민군이 발표한 격문이나 실제 활동 내용을 살펴보면, 지금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반봉건이 어떻고 근대 지향이 저떻고 새세상을 꿈꾼 민중이 어쩌고저쩌고...하는 내용이 별로 안 나온다;;; 보국안민(補國安民)이라는 말에서 드러나듯이 그들의 지향은 (문자 그대로 해석하자면) 사실 전근대의 봉건질서를 더 강화시키려는 쪽에 약간 더 가까웠다. 그러면, 갑오농민전쟁의 성격은 봉건질서로의 회귀를 꿈꾼 반근대적이고 봉건지향적인... 뭐 그렇다는 건가?! 그러면 우리가 배운 갑오농민전쟁의 의의는 다 쌩구라였던 건가?!?!



2-3. 글타. 그렇게 단순하게 보면 안 된다. 그 역사적 실상이 얼핏 과거회귀적으로 보인다 하더라도, 아니 좀 더 보태서 실제로 그들이 의도했던 것이 과거회귀적인 것이었다 하더라도 갑오농민전쟁의 의의가 그것만으로 한정되어서는 쫌 마이 곤란하다. 농민군의 신분적 구성, 실제 활동 양상, 정치적 지향 등등을 종합해서 볼 때 그것은 과거의 민란과는 질적으로 다른 것이었다. 그러니까 어떤 사건의 의미를 짚어내는 것은 반드시 그 사건을 만들어낸 사람들의 몫이 아니라, 그것을 해석하고 읽어내는 역사가의 몫이기도 하다는 거외다.


2-4. 쓸데없이 말이 길어졌는데, 그러니까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창작자가 반드시 창작물/영화에 대한 해석의 특권을 가지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창작자가 좋은 창작물/영화를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단지 직관만 있어도 충분할 수 있지만 평론은 그것을 읽어내고 언어를 통해 설명하는 작업이다.


3-1. (전작인 '그 영화의 비밀'을 포함해서) 책을 읽으면서 의아했던 점은, 이동진의 영화해석을 두고 감독들이 "저도 그렇게까지는 생각을 못 했네요"나 "그렇게 볼 수도 있겠군요"라는 말을 참 많이 한다는 것. 그 말인즉슨 이동진의 해석은 감독이 의도하지 않았던/못했던 것에까지 미친다는 점인데, 이게 보기에 따라선 좀 묘하게 보일 수도 있다.


3-2. 감독의 매우 의도적인 창작활동의 결과물인 영화를 해석하는 데 있어서 과연 감독의 의도를 넘어서는 해석이 가능한가 하는 것. 좀 더 거칠게 말하면 본래 있지도 않았던 의미를 괜히 오버해서 뽑아내는 게 아닌가 하는 뭐 그런 생각이 들더라는 것. 그리고 이런 비슷한 일이 역사에서도, 특히 내 전공인 현대사에서 비일비재한지라 난 그게 참 궁금했다.


4. 책을 읽는 내내 가졌던 궁금증의 실마리는, 이동진의 빨간 책방 57회에서 풀렸다.


  그러니까 통찰을 가르칠 수 있는가의 문제인 거에요. 분석은 가르칠 수 있어요. 근데 어… 예를 들면 어떤 좋은 영화가 있다고 쳐봐요. 굉장히 좋은 영화가 있을 때, 이제 평론가들끼리 서로 의견이 붙었다고 쳐봐요. 그러면 좋은 영화일 때, 좋은 영화는 딱 보면 알거든요. 근데 그, 딱 보면 아는 건 통찰이겠죠. 그런데 왜 좋은가를 설명하는 게 평론이잖아요. 근데 어떤 사람이 어떤 영화를 단순히 딱 보고 이걸 통찰의 영역으로 평론을 넘기는 순간 평론 자체가 예술화하는 거에요. 그런데 예술화한다는 게 반드시 좋은 건 아니거든요. 그런 측면에서 보면 어떤… 그 예술이 얼마나 훌륭한가 하는 감식안이라는 것을 통찰에만 너무 기대게 되면 저는 사실은 굉장히 게으른 평론이 된다고 생각하거든요. (《빨간 책방》 57회〈생각의 탄생 1부〉 中.)


5-1. 베드신의 횟수를 센다든지 하는 식의, 일견 과도해보이는 해석은 단지 숫자에 대한 강박이나 무의미한 통계적 유희로만 이해되어서는 곤란하다. 아마도 그것은, 어떤 영화가 왜 좋은지를 설명해내기 위한 영화평론가의 성실한 분투의 과정인지도 모르겠다. '그 영화의 비밀'까지 포함해서 1500페이지에 달하는 긴 인터뷰는, 자신의 영화세계에 대한 감독의 자기웅변일 뿐 아니라 영화에 대한 통찰을 평론의 영역으로 옮기기 위한 한 평론가의 지난한 투쟁의 결과물이리라.


5-2. 댓글과 블로그와 트위터와 페북에서 어마어마한 양의 텍스트들이 쏟아져 나오는 시대다. 그 덕분에 평론이나 역사학이라는 것도 개나소나누구나 써낼 수 있는 인상비평 정도로만 여겨지는 시대이다. 그렇기에 (정작 저자 본인은 이 책에 대해 그렇게 말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이만한 성실의 결과물에 대해 우리는 좀 더 경외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6-1. 비슷한 맥락에서 여담을 좀 덧붙여 볼까. 이 책을 읽으면서 내가 특히 재미있었던 것은, 감독조차 의도하지 못했던 의미를 이동진에 질문하는 순간이 과연 언제 오는가를 기다리는 데 있었다. 그런 면에서 가장 난공불락이었던 감독은 (공교롭게도 가장 마지막에 배치된) 이명세 감독이었다. 이동진의 거의 모든 질문에 '어, 그래 그건 그런 의미야' 하고 다 대답하고 있으니까. 아, 그렇다면 결국 이동진의 해석/분석은 감독의 의도를 넘어서지 못하는 것인가... 뭐 그런 생각을 하면서 책장을 덮으려는 순간!


이명세_ 나는 이번 인터뷰에서 결코 나를 꾸미지 않을 거라고 결심하고 왔어. 스스로를 정확히 바라보면서 내가 알았거나 느꼈던 것만을 이야기하려고 . 지금 질문에 대한 정확한 대답은 그런지 나도 모르겠다는 거야. 듣고 보니 분명히 내가 그렇게 장면을 짰던 같긴 한데, 그건 나도 모르는 무의식과 관련이 있을 같아. 그런 장면에서 내가 다가가서 보고, 뒤에 돌아서서 가는 느낌이 있었던 것은 확실한 같아. 나머지는 나도 모르겠어.


6-2. 불과 50페이지를 남겨두고 나온 요 한 마디에, 나 혼자만의 짜릿함.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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