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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식의 종말 (제레미 리프킨, 시공사, 2002.)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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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식의 종말 (제레미 리프킨, 시공사, 2002.)

Dog君 2014. 3. 9. 06:29



1. 이 책에서 내내 다루고 있는, 육식의 문제가 어쩌고 저쩌고 하는 것들이야 굳이 여기서 중언부언할 필요 없을 정도니까 생략.


2. 이 책을 읽고 나서 2014년 현재의 우리가 채식을 한다는 것이 육식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을 의미한다거나, 육식을 한다는 것이 육식의 문제를 심화시키는 것이다...라는 식으로, 기계적으로 이해하면 좀 많이 곤란할 것 같다. (이 책이 나온 것이 1993년이니 벌써 20년 전의 일이다.)


  미국인들은 신분, 성공, 성취의 명확한 경계선을 설정하는 쇠고기의 상징적인 힘을 눈여겨보았음이 분명하다. 모국에서는 쇠고기가 귀족과 상인층의 식탁에만 올랐기 때문에 맛볼 기회가 거의 없었던 유럽의 이주자들에게는 '지글거리는 쇠고기 스테이크, 육즙이 풍부한 고기 조각, 큼지막한 고깃덩이가...... 뻣뻣하게 풀을 먹인 칼라, 폭 넓은 고급 나사 코트, 실크 모자만큼이나 부의 징표로 보였을 것이다.' 따라서 19세기 미국의 부유한 노동자들은 '매일같이 쇠고기 스테이크'를 먹음으로써 '미국인 노동자'로서 새롭게 고양된 신분을 과시했다. 그런가 하면 철도 인부들과 건설 노동자들은 '대장장이의 용광로 불꽃에 새빨갛게 단 부삽을 올려놓고' 거기에다 스테이크를 구워 먹기도 했다.

  많은 이민 집단들이 쇠고기 문화에 합류함으로써 자신들의 식사 습관을 미국화하려고 안간힘을 썼다. 따라서 경제적인 이유로 스튜 요리를 권했던 당시의 사회개혁자들의 말은 귀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대신 그들은 '미국에서의 성공의 징표 중 하나가 구운 쇠고기나 스테이크를 먹는 거라고 확신하면서' 쇠고기를 위해 다른 필요한 것들을 희생시켰다. 19세기와 20세기 초에 쇠고기는 오늘날 자동차 소유가 그러한 것처럼 강력한 성공의 이미지를 불러일으켰다. 대다수의 이주자들은 쇠고기 문화에 합류하는 것을 미국 중산층에 들어가는 필수적인 통과의례이자 뭇 사람들이 가장 부러워하는 최고의 목표로 생각했다. 스테이크와 구운 쇠고기를 지속적으로 먹을 수 있다는 것은 사실상 '바람직한 삶'의 일부분이 되었음을 인정받는 일종의 심리적 보험과 같은 역할을 했다. (pp. 294~295.)


3. 과연 2014년 현재 이 이야기는 현실에 얼마나 정합하는가. 분식집에서 5000원짜리 제육덮밥 먹고, 맥도날드에서 5000원짜리 햄버거 세트를 먹는 것이 정말 "고양된 신분을 과시"하는 수단이거나 "강력한 성공의 이미지"일까. 아마 반대일 것이다. 가난한 비정규직 노동자가 채식주의자로 산다는 이야기 들어본 적 있나.


4. 그러니까 '육식의 종말'이, 육식으로 내몰릴 수밖에 없는 가난한 계급에 대해서, 채식을 선택할 수 있는 경제력을 가진 부유한 계급에게 도덕적 우월감을 심어주는 용도로 악용되면 그거 쫌 마이 곤란하고, 저자의 본래 의도에서도 한참 벗어난 일이지 싶다. 돈 없어서 제육덮밥으로 끼니 때우는 것도 억울한데 거기다 대고 지구 온난화와 식량 부족과 뭐 기타 등등의 원인이라고 몰아세우면 씨발 그게 말이 되겠냐. 열심히 일한 노동자가 봉급날에 가족들하고 모처럼만에 갈비 좀 뜯어보겠다는데, 거기다 대고 '육식의 종말'이 어쩌고 저쩌고 하고 있으면 그보다 더한 지랄 이단 옆차기도 없지 않겠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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