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g君 Blues...
위대한 개츠비 (F. 스콧 피츠제럴드, 문예출판사, 2005.) 본문
1. 남자는 자고로 여자를 잘 만나야 한다는 고래적 속설을 다시 한 번 확인하면서... 하긴, 여기에 나오는 남자들도 별 다를 것 없지.
그는 데이지한테서 한 번도 눈길을 데지 않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는 그녀의 사랑스러운 눈이 보여주는 반응의 정도에 따라 자기 집의 물건들을 죄다 다시 평가했던 것 같다. 어떤 때는 자신의 소유물들을 멍한 눈길로 찬찬히 돌아보기도 했다. 그녀라는 존재가 눈앞에 실재하는 놀라운 사건이 벌어진 이상 이제는 아무것도 더는 현실감을 주지 않는다는 듯이 말이다. 한번은 계단에서 굴러 떨어질 뻔하기도 했다.
그의 침실은 어느 방보다도 소박했다. 순금의 화장 세트로 장식한 화장대 부분만이 예외였다. 제이지가 좋아하며 브러시를 집어 버리를 빗어 내리자 개츠비는 자리에 앉아 눈을 가리고 웃기 시작했다.
"이거 정말 이상한 일입니다, 형씨." 그가 유쾌하게 말했다. "안 되겠어요…… 해보려고 해도……."
그가 이미 두 가지 단계를 통과했다는 것이 뚜렷했고, 이제 막 세 번째 단계에 들어서고 있었다. 처음의 당황스러움, 그리고 까닭 없는 기쁨을 지나 이제 그는 그녀가 그 자리에 있다는 사실에 대한 놀라움에 사로잡혀 있었던 것이다. 그때까지 그는 너무 오랫동안 그 생각만으로 꽉 차 있었고, 끝까지 그것만을 꿈꾸었으며, 이를 악물고―말하자면, 상상할 수 없을 만큼 극도의 긴장상태에서― 그것을 기다려왔었다. 이제 그 반작용으로 그는 너무 많이 감긴 시계태엽처럼 풀리고 있는 중이었다.
곧 제정신을 회복하고 그는 특허품인 커다란 옷장 두 개를 열어 보여주었다. 그 안에는 양복이며 실내복, 그리고 넥타이와 셔츠가 벽돌을 쌓아 올린 것처럼 열두 겹으로 차곡차곡 쌓여 있었다.
"영국에서 옷을 사 보내주는 사람이 있습니다. 봄가을로 철이 바뀔 때마다 물건을 골라서 보내주지요."
그는 셔츠 더미를 끄집어내어 하나씩 우리 앞에 내던졌다. 엷은 리넨 셔츠, 두꺼운 실크 셔츠, 고급 플란넬 셔츠가 떨어질 때마다 접힌 부분이 펴지면서 갖가지 색으로 어지럽게 테이블을 엎었다. 우리가 탄성을 내지르는 동안 그는 셔츠를 더 많이 가져왔고, 부드럽고 값비싼 셔츠 더미는 점점 더 높이 쌓여갔다. 산호색, 푸른 사과색, 라벤더색, 옅은 오렌지색 줄무늬, 소용돌이무늬, 체크무늬 셔츠들, 그리고 인디언 블루로 그의 이름의 머리글자 도안이 새겨진 셔츠들이 줄줄이 나왔다. 갑자기 데이지가 기이한 소리를 내지르며 셔츠에 머리를 파묻더니 엉엉 울어대기 시작했다.
"정말 멋진 셔츠들이에요." 그녀의 흐느낌은 두껍게 쌓인 셔츠더미에 파묻혀 나직하게 들려왔다. "슬퍼져요. 이렇게…… 이렇게 멋진 셔츠는 본 적이 없거든요." (pp. 126~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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