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g君 Blues...
대한민국 악인열전 (임종금, 피플파워, 2016.) 본문
1. 나 이런 책 안 좋아한다. 세상을 선과 악으로 나누는 이분법. 그래, 이분법으로 나눠보면 편하기는 하다. 너 어느 쪽이야 하고 물어보기만 하면 되니까. 이 책에 실린 사람들이 나쁜 놈이 아니라서가 아니라 그런 자세가 문제의 본질을 흐릴 뿐만 아니라 문제의 해결도 불가능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이게 다 저런 새끼들 때문이야 라고 생각하고 나면, 성찰이나 반성이 들어설 자리 따위는 없다. 모든 잘못과 모순이 다 저 새끼 때문인데 내가 왜 반성을 하며 우리가 왜 성찰을 해. 저 새끼들이 악惡이니까 나는 당연히 선善이니까. '악의 평범성'? 악惡이 뭐가 평범해. 저런 악인들이나 저지르는게 악惡이지, 나는 괜찮아...라고 생각하면 우리는 영원히 악惡을 극복할 수 없다는 건 이제 뭐 상식이니까 이 정도로 이야기를 마치기로 하고. (또 한편으로, 이런 이야기만 주야장천 하는 것도 딱히 좋은 태도는 아니다.)
2-1.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쁜 놈은 나쁜 놈이다. 선과 악의 경계는 흐리다고 해서 악惡이 없는 건 아니니까. 가끔은 나쁜 놈들한테 야이 시발놈들아 하고 욕지거리를 해야 할 때가 분명히 있다. 한국근현대사라는게 허구헌날 털리고 뺏기고 두들겨맞고 하는 일들의 연속이어서 그런지, 이완용이니 하는 거물 말고도 동네 여기저기에서 나쁜 짓 했던 놈들이 꽤 많다. 그런 '소소한 나쁜 놈'들을 찾아내는 게 이 책의 목적 되겠다.
2-2. 아주 두껍지도 않거니와 내용도 어렵지 않아서 금방 읽을 수 있...는데 읽다보면 자꾸 짜증과 분노가 치밀어 올라서 소주라도 벌컥벌컥 아니면 하다 못해 냉수라도 한 잔 들이켜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 가끔 와서 생각보다 금방 읽히지는 않는다. 더 짜증나는 건 이 책에 소개된 대부분의 악인惡人이 제명대로 잘 살다가 죽었다는 건데, 이쯤 되면 이 책이 독자의 '열받음'을 자극해서 자연스럽게 소주 소비를 유도하려고 한 소주업계의 후원을 받은 것이 아닐까 하는 의심까지 든다고나 할까.
3. 이 책에 소개된 이들의 '악행'은 단지 개인의 '악행'에서 멈추지 않는다. 이들은 공통적으로 '친일(부일)'과 '반공'의 키워드를 공유하는데, 이 두 키워드는 해방 이후 한국 사회를 특징지은 키워드이기도 했다. 박노자는 한국 사회를 두고 "멸균실 수준의 반공주의"라고 했는데 그런 표현이 가능할 수 있었던 것은 김종원이나 노덕술 같은 이들의 악행이 있었던 덕분이었다. 그러니까 이들의 악행이 악행인 이유는 (그냥 폭력적이고 나쁜 일이어서 그런 것도 있지만) 그게 대한민국의 기본적인 가치들까지 깨부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4-1. 큰 힘에는 큰 책임이 따른다...는 건 스파이더맨 영화에나 나오는 이야기가 아니다. 이 책에 나오는 사람들은 '아니 뭐 그냥 나 하나 먹고 살려고 하다 보니 그래 됐지, 내가 그렇게까지 될 줄 알았나...'하고 변명하겠지만, 미안하지만 그건 변명이 아니다. 높은 지위에 올라서 사회적인 존중과 경제적 보상을 받아먹고 사는 사람이라면 자기가 하는 일이 사람들과 사회에게 얼마나 많은 영향을 주는지를 알아야 된다. 똑같은 구한말의 지식인이라도 누구는 독립운동가가 되고 누구는 친일파가 된다. 그 두 사람의 차이가 뭔지 곱씹어봐야 된다.
4-2. 물론 그것 우리 스스로에게도 적용되는 물음이다. 내가 하는 일이 그냥 나 하나만의 일일리가 없다. 내가 하는 일이 어떤 의미인지 절대 까먹지 말자...고 오늘도 생각.
덧. 68쪽에 관동대지진 당시의 사진을 인용하고 캡션을 "관동대지진 직후 학살된 조선인들. 여성은 일부러 하의를 벗겨 놓았다."라고 달아놨는데, 이것은 사실과 다르다. 이 사진은 2013년 초에 처음 보도가 된 것으로, 1923년 9월 4일 동경 아사쿠사에 있는 신길원공원에서 촬영한 것이다. 공원 근처의 유곽에서 일하던 여성이 화재를 피해 연못에 뛰어들었다가 죽음에 이르게 된 것을 찍은 사진이라고 한다. 자세한 내용은 아래 링크를 참조하시길.
https://www.facebook.com/pcshistory/posts/411109598973413
'잡冊나부랭이' 카테고리의 다른 글
바디무빙 (김중혁, 문학동네, 2016.) (0) | 2016.09.01 |
---|---|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 (존 르 카레, 열린 책들, 2005.) (0) | 2016.05.08 |
제노사이드와 기억의 정치 (허버트 허시, 2009, 책세상.) 한번더 (0) | 2016.05.07 |
감시와 처벌 (미셸 푸코, 나남, 2003.) (0) | 2016.04.30 |
전쟁과 인민 (한성훈, 돌베개, 2012.) (0) | 2016.04.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