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g君 Blues...
감시와 처벌 (미셸 푸코, 나남, 2003.) 본문
1-1. '고전'이라는 말의 뜻을 열거하다 보면, 저 아래 13번쯤에 "누구나 말하지만 정작 읽은 사람은 얼마 안 되는 책"이라는 의미도 있을 것 같다. '고전'이란 대체로 두께도 두껍고 문장도 난해하기 마련이어서 읽기엔 엄청 짜증나지만, 여기저기서 말들은 많이 하기 때문에 그것들만 주워들어도 마치 내가 그 책을 읽은 것만 같은 착각을 주는 책이다. 그런데 뭐 흥부가도 아니고 구비문학처럼 입에서 입으로 구전되다 보면 '고전'이 본디 가지고 있던 풍부한 가능성 같은 것들은 사라져버리고, 키워드 한두개만 남아서 텍스트를 앙상하게 만들어버리는 상황도 생기고 그런다. (물론 그렇게 해도 들킬 염려는 없다. 어차피 남들도 안 읽었으니까.)
1-2. '감시와 처벌'도 그렇다. 푸코 책이 좀 어렵냐. 누구나 푸코를 말하지만, 정작 푸코를 읽은 사람은 많지 않잖아. 특히 나처럼 동급최저 수준의 독해력을 가진 사람은 정말 죽을똥살똥 해야 그나마 '감시와 처벌'의 글자만이라도 읽어내는 정도다. 그나마 푸코의 다른 책은 시작할 엄두도 못 낸다. (푸코의 책을 읽다보면 '하얀건 종이 까만건 글자'라는 말의 의미를 정확히 이해할 수 있다.) 이 책에 대해 뭐라뭐라 쓰기는 하겠다만, 내가 이 책을 얼마나 잘 이해했는지는 솔까말 자신 없다는 점을 사전 변명으로 미리 좀 깔아놓고.
2. 푸코 하면 감시와 처벌, 감시와 처벌 하면 판옵티콘... 뭐 이런 공식 비슷한게 있는데 막상 책을 읽어보면 판옵티콘 이야기는 얼마 안 나온다. 다른 키워드들에 비해서 좀 더 중요해보이기는 하지만, 솔까말 그냥 빼고 생각해도 책의 대세에는 별 지장이 없다. 그르타. '감시와 처벌' 이야기할 때 '판옵티콘' 네 글자만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그 책을 안 읽고 그냥 읽은 척만 하는 사람이라고 봐도 무방하겠다. (아니면 읽었어도 그냥 글자만 읽었던가.)
3-1. '전쟁과 인민'에 대한 글에서 저자의 푸코 이해가 나의 그것과 좀 다르다고 했던 것은, '전쟁과 인민'이 말하는 '푸코 식'이라는 것이 단지 통제에만 포인트가 맞춰져 있기 때문이었다. 빈틈없이 잘 짜여진 국가권력이 개개인에게까지 직접 영향력을 미치고 복종을 끌어내고 하는 것은, 푸코가 말하는 체계 아니고, 그냥 '호화로운 신체형'이어도 가능하지 않나. 푸코가 말하는 권력이란게 그렇게까지 치밀한 것도 아니거니와, 무엇보다도 그건 비효율적이고 후진 방식이다.
3-2. 푸코가 이 책의 대부분을 할애해서 설명하고 있는 것은 통제나 복종 그 자체가 아니라 그 과정이다. 수형자의 교화를 위해 수형자들을 분류하고 정의하는 '지식' 체계를 만들어내고, '공간'을 분할하여, 수형자 개개인의 '신체'에 교화를 새겨넣는 과정 말이다. 그리고 거기에 이런 식의 권력이 등장하게 된 배경과, 그것이 다시 좀 더 다듬어지는 과정이 앞뒤로 붙어 있다. 동급최저 독해력이 읽은 내용만 해도 이 정돈데, 내가 미처 읽어내지 못한 것까지 더하면 얼마나 더 풍부해지겠나 말이다.
4. '감시와 처벌'을 읽고 나서 '우리는 이렇게 촘촘하게 잘 짜여진 감시망을 절대로 벗어날 수 엄써. 우리에겐 출구가 엄써 시발 ㅠㅠ'하고 생각하면, 푸코가 참 슬퍼할 것 같다는 느낌적인 느낌이 든다. 설마 그런 무기력한 결론을 내려고 권력의 탄생에서 완성에 이르는 과정을 한 책에 걸쳐서 장확하게 쓰지는 않았을 거 아닌가. 나는 푸코가 우리에게 말하고 있는 것이 권력의 작동 방식이고, 그것을 통해 권력의 파해법도 자연스럽게 나올 수 있다고 본다. 권력은 소유하거나 양도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신체 각각을 거점으로 작용하는 것이라고 하면서, '비행'의 영역을 놓고 너네들 알아서 타자화시키라고 만들어 둔 것이라는 푸코의 (난해하고 장황한;;;) 말이, 그냥 하는 소리가 아닐 거라는 거지. 어쩌면 푸코는 권력(의 작용)을 부수는 힘이 당신들 하나하나의 신체에 이미 있는 것이라고 말하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요컨대, 범죄의 존재는 다행스럽게도 '인간성의 강인함'을 나타내며, 그런 만큼 실제의 범죄에서 보아야 할 것은 유약함이나 질병이라기보다는 굽힘없이 솟구치는 에너지, 즉 모든 사람들의 눈에 이상한 매력으로 비칠 수도 있는 '인간 개인의 강력한 저항'이다. "우리들에게서 마비된 감정과, 반쯤 꺼진 열정을 일깨우는 범죄가 없다면, 우리는 무질서 속에, 다시 말하면 무력증 상태에 계속 머물러 있을 것이다." 따라서 범죄는 흑인해방의 경우처럼, 때에 따라서는 우리 사회의 해방을 위해서도 소중한 정치적 수단이 될 수 있다. 흑인해방이 범죄 없이 성공할 수 있었을까? (중략) 규율에 대한 불복종은 사회의 무질서한 행위이기도 하고, 또한 제한할 수 없는 권리의 주장이기도 한 모호한 형태로 부각된다. 그런데 법원이 범법행위로 규정한 모든 위법행위들을 그는 피고의 자리에서 힘차게 자기주장으로 바꾸었다. 이를테면 주거의 부재를 방랑성으로, 주인의 부재를 자립으로, 노동의 부재를 자유로, 일과의 부재를 밤낮의 충만함으로 바꾸어 표명했다." (pp. 440~441.)
5. 이렇게 생각하고 나니 이제 판옵티콘도 달라 보인다. 흔히 판옵티콘은 빈틈없이 꽉 짜여진 일망감시체계처럼 이해되지만, 판옵티콘은 생각보다 허약한 체계이기도 하다. 판옵티콘이 판옵티콘이기 위해서는, 중앙감시탑이 늘 비어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덧. 2016년 초에 번역개정판이 나왔다. 구체적으로 어느 부분을 고쳤는지는 모른다. 아주 예전에 감시와 처벌의 번역에 대해 선배한테 이야기를 들은 적은 있는 데 기억이 안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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