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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의 사운드 (차우진, 책읽는 수요일, 2011.)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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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의 사운드 (차우진, 책읽는 수요일, 2011.)

Dog君 2017. 2. 12. 17:34


1. 음악은 음악만으로 기억되지 않는다. (내게 이 사실을 처음 일깨워 준 것은 김기원이다.) 몇 번씩이나 거듭 돌려들었던 노래나 CD를 새삼스럽게 다시 꺼내 들으면, 한참 그 음악을 들었던 때가 생각난다. 정태춘과 박은옥의 ‘92년 장마, 종로에서’와 브로콜리 너마저의 “보편적인 노래”를 들으면 마음 둘 곳을 모르고 배회하던 사근동 언덕길과 그 아래 건강원에서 나던 쌉싸름하면서도 퀴퀴한 냄새 같은 것이 기억나고, 에릭 클랩튼의 “Clapton Chronicles”를 들으면 인문대 5층 동아리방에서 김기원과 함께 기호논리학 문제를 푼답시고 화이트보드에 기호를 써내려가던 보드마카의 촉감이 느껴지고, 정재형의 ‘사랑하는 이들에게’를 들으면 독일 기차에서 창밖 풍경을 보며 진로를 고민하던 때가 떠오르는 식이다.


2. 평론가 차우진은 그런 이야기들을 모아서 “청춘의 사운드”라는 책을 냈다. 평론가답게 중간중간 앨범에 대한 전문적인 분석도 꽤 많이 들어가 있지만, 그보다 더 많이 들어 있는 것은 음악에 대한 느낌과 자기 이야기이다. 복잡한 반도체공학을 몰라도 스마트폰 쓰는데 아무 문제 없고 마트에서 장 볼 때 시장경제에 대한 냉철한 분석 따위 필요 없는 것처럼, 음악을 들을 때도 우리와 더 많이 관계하는 것은 복잡한 음악 이론이나 악기와 기기에 대한 전문지식이 아니라, 그 음악을 들을 때 우리가 처해 있던 상황과 우리가 보고 느꼈던 것들이다. 책을 읽으면서 내가 그 음악을 들을 때 보고 느꼈던 것들을 기억 속에서 끄집어 내어 견줘 보느라 즐거웠다.


3-1. “청춘의 사운드”의 문장은 솜사탕 마냥 성기다. 누르면 푹 들어가고, 후- 불면 흩어질 것 같다. 무언가를 좋다고 말하는 것을 넘어서 그것이 왜 좋은지를 설명하는 것인지를 ‘비평’/‘평론’이라고 한다면, 이 책은 그로부터 한참 벗어나 있다. 대신 책을 채우고 있는 것은 “저는 이 음악 들으면 이런 생각이 들던데요… ^^;;”하는 정도의 감상이다. 주장이나 논증과 달리 감상은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이니, 자기 감상과 견주는 것도 누구나 할 수 있다. 저자의 감상과 자기의 감상을 견주는 것, 그게 바로 ‘저자와 독자의 대화’가 시작되는 때 아닌가 싶다.


3-2. 문장 하나하나가 꼭 가져야 할 단어만을 품고, 전체 구조에 비추어 꼭 자기가 있어야 할 위치에만 있는, 차돌 같이 단단한 문장으로 채워진 책도 있다. 그런 책을 읽을 때는 단어 하나 문장 하나의 의미도 놓치지 않으려고 애쓰게 되고 자연스레 더 긴장하며 책장을 넘기게 된다. 밑줄도 많이 긋고 띠지도 더 많이 붙인다. 읽고 난 다음의 성취감도 크다. 단, 여기에는 중요한 전제조건이 있다. 그런 책(을 쓴 사람)과 ‘대화’하기 위해서는 나 역시도 그만큼 단단해져야 한다는 것. 그 책의 맥락도 알아야 하고, 책에서 다루는 내용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는 예습이 되어 있어야 한다. 그래서 전문서/학술서는, 읽는 행위 그 자체가 이미 전문가의 일이기도 하다.


4. 전문영역을 대중화하는 것에는 언제나 위험이 따른다. ‘대중화’라는 말의 뒷면에 전문가에 대한 조소 같은 것이 붙어 있는 경우(이런걸 ‘반지성주의’라고 하던가)도 많고, 대중화라는 것이 결국 “대중 영합의 풍속지”나 만들어내는 것으로 이어지는 경우도 꽤 여럿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읽고 배운 것을 더 많은 사람들에게 이야기하려는 시도를 포기할 수는 없다. 좀 속물적으로 보자면 그것이 새로운 ‘마켓’에 대한 고민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이 좋은 것을 우리끼리만 누릴 수도 없잖습니까. 역사학이 우리에게 줄 수 있는 통찰력이 어마어마하다고 믿는 나는, 더 많은 사람들이 연구자들의 고민과 성과를 공유했으면 좋겠다.


5. 음, 그런데… 분명히 음악 이야기로 시작했는데 어쩌다 글이 여기까지 왔지;;;


ps. 이 책은, 느닷없이 지난 금요일에 나를 방문한, 내 지인 중에서도 재미있게 살기로는 몇 손가락 안에 꼽히는 정주현형이 주었다. (물론 그냥 준 것은 아니다…) 속표지에 좀 낯간지러운 문구가 써있어서 내가 받으면 안 되는 책을 받았나 싶었지만, 중고로 산 책이라 그거 자기가 쓴 거 아니라는 답장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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