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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문점은 왜 판문점일까 (4)

Dog君 2019. 2. 15. 20:32

  누가 보건 말건 그저 나 하나 재미있자고 쓰는, 그래서 문장도 개판이고, 그런데 퇴고도 제대로 안 하고 막 쓰는, 잉여력 터지는 역사학도의 판문점 TMI 시간, 오늘이 마지막입니다. 




  지난 시간에 휴전협정 조인 이후에 살짝 반전이 있다는 것까지 말씀을 드렸죠. 그 반전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휴전협정 조인식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네, 바로 이 사진이 휴전협정 조인 당시의 모습입니다. 교과서에도 나오고 관련 연구서에서도 많이 인용되기 때문에 우리에게 무척 친숙한 사진입니다. (이 사진에 대한 상세한 정보는 국사편찬위원회 전자사료관을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이 때 휴전협정을 조인했던 건물은 사실 휴전회담을 벌였던 그 건물은 아닙니다. 휴전협정 조인을 위해서 별도로 더 큰 건물을 따로 지었고, 바로 거기에서 휴전협정을 조인한 것이죠. 아래 사진에서 빨간색 원 안의 건물이 휴전회담을 진행했던 건물이고, 아래에 한창 지어지고 있는 건물이 바로 휴전협정을 조인한 건물입니다. (이 사진에 대한 상세한 정보는 국사편찬위원회 전자사료관을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이 때 지어진 건물이 바로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그 판문점이구나... 하고 생각하시겠지만, 그게 그렇지가 않습니다.








  응? 이게 무슨 말인가? 내가 아는 판문점이 판문점이 아니면 내가 아는 판문점은 무엇이고 사진 속의 판문점은 또 무엇인지 판문점이 판문점이 아니면 또 무엇이란 말이냐... 하는 주화입마의 경지에 빠질 수도 있습니다. 특히 저 같은 잉여력 터지는 역사학도에게 이건 너무 치명적인 반전... (나만 그런가...)




  휴전협정을 조인한 판문점 건물, 그러니까 위의 사진에 있는 건물은 지금의 판문점에서 북쪽으로 몇백 m 정도 떨어진 곳에 있습니다. 이 건물은 현재 북한에서 ‘평화박물관’이라는 전시시설로 사용 중이라고 합니다. (다음지도에는 ‘북한평화박물관’으로 나오고 구글맵에는 ‘휴전회담 조인장’으로 나온다.) 당연히 남한에서는 방문이 불가능하고(월북이여, 월북...), 다만 멀찍이 눈으로 확인할 수는 있는 정도이긴 하죠. 




  그 지역을 구글 지도로 찾아보시면 아래와 같습니다.




  위 사진의 초록색 원 안에 '정전협정조인장'이라고 된 곳이 휴전협정이 조인된 바로 그 건물입니다. 그리고 현재 우리가 흔히 '판문점'이라고 부르는 곳은 빨간색 원으로 표시한 곳이죠. 가운데에 파란선은 사천강을 표시한 것입니다. 애초의 '판문점'은 사천강의 북쪽에 있었지만, 현재의 '판문점'은 사천강의 남쪽에 있다는 것을 알 수가 있죠.






  휴전협정이 조인된 '판문점'이 사천강 북쪽의 북한 영토로 편입되고, 대신 새로운 '판문점'이 사천강 남쪽에 지어진 것에는 다 사정이 있습니다. 

   

  잘 아시다시피, 당시 휴전선은 휴전협정 발효시점에 양측이 군사적으로 접촉하고 있는 선으로 결정되었죠. 그런데 막상 휴전협정을 조인하고 보니, 아이고 이를 우짜나, 휴전회담장이 휴전선 북쪽에 있더라는 겁니다;;; 그래서 휴전협정 조인 이후에 남쪽으로 1km 정도 옮긴 지점인 사천강 남쪽에 새로 판문점의 위치를 잡았고, 이게 지금의 판문점 공동경비구역이 된 것입다. 






  그리고 1편에서 참고로 사천강을 건너는 다리, ‘판문교’라고도 하고 ‘판적교’라고도 하고 ‘판문점 다리’라고도 했던 그 다리가 바로 판문점에 있는 ‘돌아오지 않는 다리’입니다. ‘돌아오지 않는 다리’라는 이름은, 한국전쟁 때 포로로 잡혔던 사람들이 이 다리를 통해 송환되었다고 해서 붙은 이름인데, 이른바 ‘판문점 도끼만행사건’ 전까지는 사천강을 건너는 유일한 다리였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 사건으로 ‘돌아오지 않는 다리’는 폐쇄되었습니다. 그리고 북한이 그보다 북쪽에 ‘72시간 다리’를 세우면서 현재 이 다리는 이동용으로는 사용되지 않는 상태라고 합니다. 








  이것으로 잉여력 터지는 역사학도의 판문점 TMI는 끝입니다. 제가 늘어놓은 TMI가 늘 그러하듯이, 이번 이야기 역시 그렇게 재미있거나 흥미롭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한적한 농촌마을 ‘널문리’가 휴전회담을 계기로 역사적인 ‘판문점’으로 탈바꿈했다는 기존의 상식이 훨씬 더 드라마틱하죠. 하지만 저는 언제나, 그러한 드라마틱한 서사가 가진 함정을 경계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제대로된 한자 지명도 없었던 시골동네’라는 서사는, 조선이 지방을 제대로 파악하거나 관리하지도 못했던 무능한 국가였다는 이야기로 이어지기 십상입니다. (물론 제가 과민하게 반응하는 걸 수도 있습니다만...) 


  제가 늘어놓는 TMI의 목적이 바로 거기에 있습니다. 모든 시대를 꿰뚫는, 명쾌하고 드라마틱하며 전형적인 단 하나의 명제 따위는 없으며, 우리가 별 의심 없이 받아들이는 역사적 명제가 실은 2019년을 살아가는 현대인의 편견에 따라 만들어진 것일지도 모른다는 의심 말입니다. 






  자, 아무도 관심 안 가지고 저 혼자 끄적거리는 잉여력 대폭발 TMI 쑈는 앞으로도 계속 됩니다. 잉여로운 생활을 한지 꽤 된 덕분에 이런 TMI를 꽤 여러 개 모아놨거든요.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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