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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문점은 왜 판문점일까 (2)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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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문점은 왜 판문점일까 (2)

Dog君 2019. 2. 12. 16:04

  지난 시간에는 ‘판문점’이라는 표기가 1951년 이전부터 사용되고 있었다는 사실을 자료를 통해 밝혔습니다.


  그렇다면 '‘판문점’이라는 지명은 1951년에 휴전회담 과정에서 만들어진 것이다'라는 말은 대체 어디서 나온 걸까요. 2편에서는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가보도록 하겠습니다.






  '‘판문점’이라는 지명이 1951년 휴전회담 과정에서 만들어졌다'라고 서술하는 책들은 한결같이 하나의 근거를 지목합니다. 바로 1995년에 남북회담사무국에서 펴낸 『판문점수첩』입니다. 바로 이 책 8쪽에서 관련된 내용을 확인할 수 있는데요, 원문을 그대로 옮기면 이렇습니다.


  새로운 회담장은 널문리의 점막(店幕) 앞 콩밭에 지어졌다. 그런데 새로운 휴전회담의 장소가 된 「널문리」를 중국측이 한자로 표기할 수가 없어 회담장소인 널문리와 회담장 부근에 있던 점막(店幕)을 합쳐 판문점(板門店)으로 표기하기로 하였다. 이리하여 「판문점」이라는 지명이 탄생하게 된 것이다.


  이 내용은 우리가 1편에서 지목했던 그 오해, 그러니까 휴전회담 과정에서 ‘판문’이라는 한자 표기가 생겨났다는 오해를 그대로 담고 있습니다. 이 책은 다시 이 내용의 출처로 배우리의 『우리 땅 이름의 뿌리를 찾아서』(토담, 1994, 170쪽.)를 지목하고 있습니다만 안타깝게도 아직 제가 이 책을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이에 대한 추적은, 눈물을 머금고 (흑) 일단 여기서 멈출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판문점 수첩』의 바로 다음 문단에 의외의 내용이 이어집니다.


  판문점의 지명유래에 대해 북한쪽은 다른 주장을 하고 있다. 즉, 판문점은 널문리에 있는 가게 이름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서울과 개성을 오가던 길손들이 판문교 부근에 있는 가게를 판문점으로 불렀고 이것이 차차 마을이름으로 되었다는 것이다. 8.15 이전에 만든 개성군면지(開城郡面誌) 제5권을 비롯하여 여러 기록들에서 판문점이라는 이름이 나오는데, 판문점을 지나서 판문교를 넘어서면 진서면과 군내면에 이른다고 하였다는 것이다.


  우리가 1편에서 검토한 내용대로라면 위의 내용이 역사적 사실에 보다 더 가깝습니다. 그러니까 ‘판문’이라는 지명이 한국전쟁 이전에 이미 사용되었다는 것이죠.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이 책에서는 이것을 '북한의 주장'으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이게 어쩌다가 '북한의 주장’이 되었는지는 알 도리가 없습니다. 『판문점수첩』은 이 '주장'의 근거로 리정근이 쓴 『판문점』(조선로동당출판사, 1986, 14쪽.)을 들고 있습니다만 이 책 역시 제가 아직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북한에서 나온 책이니까 ㅠㅠ)


  출처를 더 파고들지는 못했지만 여기서 더 중요한 것은 정부에서 발행하는 공식 간행물인 『판문점 수첩』에서 이걸 ‘북한의 주장’으로 만들어버렸다는 사실입니다. 명백한 사실관계를 따지는 문제가 아니라, 남과 북의 주장이 서로 엇갈리는 것이라고 해버린 것이죠. 이렇게 되면 문제가 많이 달라집니다. 『판문점 수첩』에 근거하여 판문점의 지명 유래를 설명한 다른 책들로서는 굳이 ‘북한의 주장’을 '역사적 사실'로 인용할 필요는 없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상황을 염두에 두면, '1951년 이전에 ‘판문’이라는 지명이 사용되었다'라는 명제는 역사적으로 타당한 명제임에도 불구하고 ‘북한의 주장’으로만 간주되면서 자연스럽게 기각되었다...라는 추측이 가능해집니다.


  물론 제가 검토하지 못한 자료가 남아있기 때문에 더 파고들어갈 여지가 남아있긴 합니다만, 이 글은 어디까지나 저의 잉여력이 허락하는 한도 내에서만 쓸 생각이므로 이에 대한 더 깊은 탐구는 일단 여기서 중단하려고 합니다. 그러니까 판문점에 대한 썰은 여기서 끝.








  …이라고 하고 그냥 끝내자니 뭔가 좀 많이 아쉽습니다.


  기왕 시작한 거, 한 가지 질문을 더 던져 봅시다.






  서울과 개성을 잇는 길 위에 있었던 한적한 농촌마을을 휴전회담 장소로 선택한 이유는 대체 뭘까? 라는 질문입니다.




  판문점이 길가의 작은 마을에 불과했다면 왜 굳이 여기서 그 중차대한 휴전회담을 했냐는 거죠. 이 동네에 뭔가 대단한 비밀 같은 거라도 있는 걸까요? 설마 우주의 기운이 모이는 곳이 바로 판문점인 건가요?! 아니면 그냥 순전히 우연에 의해서 결정된 걸까요? (마치 38선을 그을 때처럼 말이죠.)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제가 찾았습니다. (으하하하하) 역사학계의 그 누구도 주목하지 않았던 그 비밀, 제가 다음 편에서 말씀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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