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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8년 유엔은 남한정부만을 '한반도 유일 합법정부'로 인정했을까? 1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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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8년 유엔은 남한정부만을 '한반도 유일 합법정부'로 인정했을까? 1

Dog君 2019. 7. 2. 01:16

  커피 이야기를 계속 쓰고 싶었지만 자료를 모두 한국에 두고 왔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닫는 바람에 이를 어쩌나 하고 어리버리 하고 있다가 생각난 주제, 남북관계 한창 좋을 때 물들어온 김에 노젓는 마음으로 잡은 주제, 오늘은 이른바 ‘한반도 유일 합법정부’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우선 이 기사부터 읽어보시죠.


[조선일보] '한반도 유일 합법정부' 뺀 교과서 집필진의 이상한 해명


  한번쯤 들어보신 적이 있는 이야기일 겁니다. 1948년 남한과 북한이 각각 정부를 수립한 후 유엔이 결의안을 통해 남한정부만을 한반도에서 유일한 합법 정부로 승인했는데, 어찌된 일인지 역사학계에서는 이 내용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교과서 집필 기준에서도 이 내용을 자꾸 빼려고 한다...는 이야기 말입니다. 신문기사나 칼럼, 사설 같은 데서 인용하는 유엔결의안 원문을 봐도 남한정부만이 한반도에서 유일한 합법 정부라고 정확하게 명시한 것 같은데 왜 대다수 역사학자들은 그게 아니라고 말하는 걸까요?






  그에 대한 역사학계의 반론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이 문제에 관해서 박태균 선생님과 신주백 선생님이 신문에 기고하신 글이 있기는 합니다.


[한겨레신문] 박태균 - [시론] 유엔의 48년 ‘유일 합법정부’ 승인 38도선 이남인가, 한반도 전체인가


[경향신문] 신주백 - [시론]‘한반도 유일 합법정부’ 문제와 역사교육






  그런데 말입니다... 분량에 제한이 있는 신문기고라서 그런가, 어딘지 모르게 불친절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그래 뭐, 주장이 뭔지는 알겠는데 말입니다, 우리 같은 보통사람이 이해하기에는 근거가 좀 적고 설명이 너무 짧다는 느낌적인 느낌 말입니다. 어디 술자리에서 이걸로 말싸움이라도 붙었을 때 상대를 압도할 수 있는 그런 결정적인 한방이 없는 그런 느낌도 있구요. 하아, 이걸 어떻게 해야 하나...


  어떡하긴 뭘 어떡합니까 ㅋㅋㅋ 시간 많은 잉여 역사학도인 제가 활약할 시간이 온거죠. 그래서 제가 이 문제 함 정리해보겠습니다.









1948년 5월 10일 총선거 (출처: NARA, 국사편찬위원회 전자사료관)




  모든 문제의 시작은 1948년 12월 12일 제3차 유엔총회에서 채택된 '유엔결의안 제195호(III)’입니다.




  여러분도 익히 잘 아시다시피 남한정부는 1948년 8월에 공식적으로 수립되었잖아요? 이때 남한정부를 유엔이 정식으로 승인하는 내용이 담긴 것이 바로 이 결의안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결의안은 한국현대사에서 매우 중요합니다. 


  '유엔결의안 제195호(III)'의 원문은 여기에서 확인하실 수 있는데요, 총 9개 항 중에서 제2항에 문제의 ‘한반도 유일 합법정부’에 대한 언급이 나옵니다. 원문을 그대로 옮겨보겠습니다.


2. Declares that there has been established a lawful government(the Government of the Republic of Korea) having effective control and jurisdiction over that part of Korea where the Temporary Commission was able to observe and consult and in which the great majority of the people of all Korea reside; that this Government is based on elections which were a valid expression of the free will of the electorate of that part of Korea and which were observed by the Temporary Commission; and that this is the only such Government in Korea;


  문제가 되는 부분을 한국어로 번역하면 아래와 같습니다. 참고로 아래 번역은 이영훈의 『대한민국 역사』(기파랑, 2013.)에서 인용한 것입니다.


2. 유엔한국임시위원단이 선거를 감시하고 자문할 수 있었으며 모든 한국인의 압도적 다수가 살고 있는 한국의 그 부분에 대해 효과적인 통제권과 관할권을 갖는 합법적 정부(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었다는 것, (...) 그리고 이 정부는 한국에서 유일한 그러한 정부라는 것을 선언한다.




  문제는 이 문장이 크게 두 가지 의미로 해석된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두 입장은 한참을 피터지게 싸우고 있고, 우리는 두 입장을 각각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가 오늘의 핵심입니다. 자, 그러면 이 문장에 대한 해석이 어떻게 나뉘는지를 정리해보겠습시다.


  먼저 1번 입장입니다. 1번 입장은 이 문장을 유엔결의안을 한반도 내에서 합법적인 절차를 거쳐 수립된 정부는 남한정부가 유일하다는 뜻으로 해석합니다. 즉, 남한만이 ‘국제사회’에서 한반도를 대표하는 국가로 인정받았다는 뜻이죠. 따라서 이 해석에는 북한 정부는 ‘국제사회’에서 정식으로 인정받지 못한 존재라는 전제가 깔려있습니다. 짐작하시겠지만 대체로 보수적인 정견을 가진 분들이 이 해석을 지지합니다.


  다음은 2번 입장입니다. 2번 입장은 유엔결의안이 한반도의 특정한 "부분에 대해... 통제권과 관할권을 갖는" 정부가 수립되었다고 명시했다는 점에 주목합니다. 유엔결의안이 한반도 전체에 대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죠. 유엔이 남한만을 승인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남한정부가 한반도 전체를 대표하는 것은 아니라는 겁니다. 따라서 이 결의안은 어디까지나 유엔이 선거를 감시했던 지역만을 대상으로 한다는 거죠. 2번 입장이 대체로 현재 역사학계의 정설定說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좀 더 깔끔한 이해를 위해서 위의 주장을 각각 하나의 문장으로 요약해보겠습니다.




  1번 주장 : 남한과 북한 중에서 유엔이 승인한 것은 남한정부 뿐이다.

  2번 주장 : 유엔은 남한정부가 한반도 전체를 관할(대표)하지는 않는다고 보았다.




  이렇게 쓰고 보니 뭔가 좀 이상하지 않습니까?




  그렇습니다. 이렇게 정리하고 보면 1번 주장과 2번 주장은 서로 대립하지 않습니다. 1번 주장이 성립한다고 해서 2번 주장이 성립하지 않거나 혹은 그 반대의 경우이거나, 그런 것이 아닙니다. 1번 주장과 2번 주장은 얼마든지 양립할 수 있습니다.


  어? 그러면 “'유엔결의안 제195호(III)'는 남한정부만을 한반도의 유일한 합법정부로 승인했다”라고 한 1번 주장이 맞다는 건가요?






  아닙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저는 (북한 빼고) 남한만이 유엔의 승인을 얻었다는 사실이 맞다고 했지, '유엔결의안 제195호(III)'를 '남한정부만이 한반도에서 유일한 합법정부다'로 해석해도 괜찮다고는 안 했습니다. 와, 무슨 말장난을 뭐 이따위로 하냐 싶으시겠지만 잠시만 마음을 진정하시고 제 말씀을 좀 들어보시지 말입니다. 다음편에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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