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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 경계 밖을 상상하는 힘 1 본문

잡史나부랭이

커피, 경계 밖을 상상하는 힘 1

Dog君 2019. 5. 8. 13:52

  징크스가 있습니다. 설레발을 치는 순간부터 일이 잘 안 됩니다. 아무리 잘 되고 있어도, 여기저기 설레발을 치는 순간 바로 슬럼프에 빠집니다. 거의 예외가 없습니다. 블로그에 올리는 글만 해도 그렇습니다. 블로그에 달리기에 자신이 붙는다는 글을 쓰자마자 곧바로 컨디션 난조가 오는 것도 그렇고, 이 카테고리의 바로 지난 글에서 쌓아둔 소재가 많다고 호언장담하고 두 달 넘게 글을 안 쓰고 있는 것도 그렇습니다.


나도 안될꺼야. 아마.


  하지만 언제까지 징크스만 탓할 수는 없습니다. 계속 이런 식으로 밍기적대다가는 정말 아무 글도 쓰지 못할테니까요. 대부분의 자료를 한국에 두고 오는 바람에 마땅히 글 쓸 상황도 못 되지만 억지로 힘을 내서 키보드를 두들겨보기로 했습니다. 이럴 때는 무엇이건 일단 시작하는 것이 중요하니까요.






  그래서 이번 주제는 커피입니다. 네, 커피. 활기찬 하루를 위한(...이라고 쓰고 ‘노역을 준비하는’이라고 읽어라) 모닝커피 한 잔, 점심 먹고 식후땡 한 잔, 저녁에 야근하며 졸음 쫓는 카페인 한 잔, 한국사람이라면 물 다음으로 많이 마실 것이 분명한 바로 그 액체.


  저도 참 커피를 좋아합니다. 많이 마실 때는 거의 입술에 붙이고 살다시피 했을 정도니까요. (하루에 대여섯잔씩 먹고도 밤에 잘 잤습니다! 하지만 나이가 들어서 그런가, 작년 정도부터는 점심시간 이후에 커피를 마시면 틀림없이 밤잠을 설칩니다. ㅠㅠ) 버얼써 몇 년 전에 초고를 쓴 이후 아직까지도 묵히고 있는, 틈날 때마다 아주 조금씩 자료를 모으고 있는 저만의 주제, 커피입니다. 그간 모은 생각과 자료만 잘 정리하면 꽤 길게도 쓸 수 있을 것 같은데... (아니 아니 설레발은 그만.)


  한 때는 커피를 진지하게 공부해볼까 하는 마음도 품었지만, 탁월하게 둔감한 미각 때문에 그건 안 되겠더군요. (뭐가 맛있는 커피인지 저는 여전히 잘 모르겠습니다.) 커피의 맛을 모른다면, 나는 그 대신 커피의 역사를 공부해보겠다고 마음 먹었습니다. 네, 저는 잉여력 터지는 역사학도니까요. 진지한 연구자라면 소재주의에 함몰된다는 비판을 받기 딱 좋은 주제지만, 뭐 어떻습니까. 저는 근본 없는 날라리 역사학도.


제가 너무나 사랑하는 이심의 커피.


  저는 그 중에서도 커피가 처음 전래된 조선 말부터 식민지기까지만을 다루려고 합니다. 해방 이후는 상대적으로 자료에 대한 접근성이 높고 각 커피 회사에서 정리한 사사社史도 많기 때문에 제가 따로 정리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거든요. 반면 조선 말부터 식민지기까지의 커피를 다룬 저서나 연구는 많지 않은 편입니다. 커피의 역사라고 하면 그냥 서양 커피의 역사를 말하는 경우가 많고, 한국 커피의 역사라고 해도 커피를 다룬 몇몇 책에서 잠시 언급하고 지나가는 정도가 대부분이죠. 물론 예외적으로 한국 커피의 역사만을 본격적으로 다룬 책이 있기는 합니다만, 자료의 폭이나 관점이라는 측면에서 역사덕후인 제 눈에는 살짝 못 미치는 느낌입니다. 그래서 언젠가부터 내 손으로 한국 커피의 역사를 정리하겠노라고 결심하고 조금씩 자료를 정리하는 중인데요, 하지만 저는 안 될 겁니다. 나는 게으르잖아요... 이러하가는 정말 포레버 안 될 것 같아서, 에라 모르겠다는 심정으로 이 참에 한 번 뭐라도 써볼랍니다.


  처음으로 해야 할 이야기는 ‘최초’에 관한 것입니다.






  먼저, 가장 먼저 커피를 맛본 한국인은 누구일까요?


  누구나 할 법한 질문이고, 그래서 누구나 한번쯤은 귀동냥으로 그 답을 들어보신 적이 있을 겁니다. 흔히 한국 최초로 커피를 마신 사람으로는 조선의 왕인 고종이 거명됩니다. 커피가 전래된 시점에 조선의 왕이었으니까요. 그러니 외국의 신기한 문물 역시 고종이 가장 먼저 접했을 것이라는 추측은 상당히 합리적입니다.


  그러면 고종이 커피를 처음 맛본 시점은 언제일까요?


  여기에 대해서는 다소 의견이 갈리는 것 같습니다만, 가장 흔히 거론되는 것은 1896년의 아관파천입니다. 아관파천은 1895년 을미사변 이후 신변의 위협을 크게 느낀 고종이 러시아 공사관으로 피신한 사건입니다. 아관파천의 역사적 의미에 대해서는 일단 각설하고, 여기서 중요한 것은 고종이 러시아 공사관에서 생활하는 동안 러시아가 제공한 음식을 먹었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아마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커피를 접했을 것이라는 거죠. 평소부터 고종은 음료를 매우 즐긴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식혜를 그렇게 좋아했다고 하죠.) 그런 고종이라면 커피에도 곧 흥미를 느꼈을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런 앞뒤 사정을 다 감안하면, 꽤 설득력 있는 주장입니다.


  하지만 실제로 고종이 서양 음식을 접한 것은 아관파천보다 더 이른 시기의 일입니다. 1888년에 고종은 화재로 소실된 건청궁을 재건하는데요, (건청궁이 소실된 것은 1876년입니다.) 당시 고종은 건청궁의 인테리어를 서양식으로 바꾸려고 했습니다. 이때 건청궁의 인테리어를 맡은 사람이 궁내부 소속으로 외국인 접대 업무를 맡고 있었던 앙투아네트 손탁입니다. 앙투아네트 손탁은 당시 러시아 공사였던 카를 베베르의 처형妻兄이었습니다. 베베르와 함께 조선에 입국한 손탁은 입국 당시부터 왕실과 사이가 상당히 가까웠습니다. 건청궁 리모델링 후에 손탁은 건청궁에서 고종에게 서양식 요리와 커피를 제공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당시 손탁이 제공한 요리에 대한 기록이 이사벨라 버드 비숍의 『한국과 그 이웃 나라들』에 남아있습니다. 이사벨라 버드 비숍은 1895년 궁에 초대받았던 일을 회고하면서 “저녁식사는 수프, 생선, 메추라기, 야생오리, 꿩요리, 소고기말이, 야채, 크림, 설탕에 절인 호두, 과일, 적포도주, 커피 등 서구식으로 훌륭하게 나왔다”라고 썼는데요, 이 표현대로라면 손탁이 제공했던 서양요리의 수준은 꽤 높았던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아관파천 이전에 고종이 이미 커피를 즐겼을 것이라는 추측도 얼마든지 성립할 수 있습니다.


  앞서 고종이 음료를 꽤 좋아했다고 했는데요, 그 때문인지 고종은 커피 사랑은 상당히 각별했던 것 같습니다. 그의 그러한 취향을 노린 암살 시도도 있었는데요, 이른바 ‘김홍륙 독다 사건’이 그것입니다. 김홍륙(金鴻陸, ?~1898)은 러시아어 역관으로 고종의 총애를 받았던 사람입니다. 하지만 1898년에 친러파가 몰락하면서 관직에서 물러났고, 같은 해 8월 러시아와의 통상에서 거액을 착복한 사실이 드러나서 전라남도 흑산도로 유배를 가게 되었습니다. 김홍륙은 이에 원한을 품고 떠나기 직전 공흥식과 김종화라는 이에게 사주하여 고종이 마시는 커피에 치사량의 아편을 넣어 고종을 독살하려 했죠. 하지만 이는 미수로 그쳤고, 이에 가담했던 김홍륙과 공흥식, 김종화는 반역죄로 사형에 처해졌습니다. (2012년에 개봉했던 영화 ‘가비’가 바로 이 사건을 모티브로 삼고 있기도 하죠.)


'가비'라는 표현도 좀 따져볼 필요가 있지만, 그 얘기는 다음 기회에...


  자, 그러면 최초로 커피를 마신 한국인은 고종이라는 사실을 확인하면서 이번 회는 마치겠습니다...






  …일리가 없습니다. ㅎㅎㅎ


  조선이 개항을 한 것이 1870년대의 일이고, 이미 1880년대부터 많은 서양인이 외교나 선교를 목적으로 조선에 머무르고 있었다는 점을 생각하면, 1880년대 후반이나 되어서야 최초로 커피를 마신 조선인이 나왔다는 주장을 쉬이 수긍하기는 어렵습니다. 커피는 서양에서도 매우 인기있는 기호품이었고 커피를 즐기기 위해 필요한 물품도 비교적 단촐하다는 점을 생각하면, 당시 조선에 있던 서양인을 중심으로 커피 문화가 보급되었으리라고 추측하는 것이 오히려 더 합리적입니다.


  아니나 다를까, 고종 이전에도 커피를 마셨다는 기록을 종종 찾을 수 있습니다.


  먼저 조선에 머물렀던 서양인의 기록에서 커피에 관한 언급을 찾아봅시다. 먼저 찾아볼 것은 퍼시벌 로웰이 쓴 『조선 : 조용한 아침의 나라(Chosön : The Land of the Morning Calm』입니다. 여기서 로웰은 "1884년 1월 어느 추운 겨울 날 조선 고위 관리의 초대를 받아 조선의 최신 유행(latest nouveaute)이었던 커피를 마셨다”라는 기록을 남겼습니다. 그리고 1885년 조선에 부임한 영국 영사 칼스(W. R. Carles) 역시 묄렌도르프의 집에 묵으면서 커피를 제공받았다는 기록을 남겼습니다. 제가 이 시기의 문헌에 대해 공부가 짧은 탓에 많은 기록을 살피지는 못했지만, 일단 이 정도만으로도 고종 이전부터 이미 커피가 한국사회에 퍼져 있었음을 짐작하기에는 부족하지 않습니다. (조선을 찾은 서양인이 남긴 커피에 대한 기록은 네이버 캐스트의 '조선, 커피를 탐하다: 한국 커피 역사의 기원을 찾아’라는 글을 참조했습니다.)


  서양인 말고 조선인 중에도 커피에 대한 기록을 남긴 이가 있습니다. 당시 조선인 중에서 서양문물에 대해 가장 친화적이었던 윤치호가 주인공입니다. 그는 거의 평생에 걸쳐 일기를 남겼는데요, 그 가운데 커피에 대한 언급이 있습니다. 가장 오래된 것은 1885년 6월 6일의 일기입니다. 여기에서 윤치호는 "오후에 (...) 커피·우유과자·빵 등을 사가지고 오다.”라고 했는데, 이로 미루어보면 이미 이 시점에 윤치호는 커피를 일상적인 기호품으로 마시고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데이터베이스에 해당 일기의 국역본이 있습니다.) 1885년 10월 25일에는 "전증노다루(前增老茶樓)로 가서 커피 한 잔을 마시고 서원으로 돌아오다.”라고 했고,(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데이터베이스에 해당 일기의 국역본이 있습니다.) 1886년 3월 14일에는 "커피 찻집에 가서 두 잔 마시고 서원으로 돌아오다.”(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데이터베이스에 해당 일기의 국역본이 있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이상으로 한국 최초로 커피를 마신 사람이 누구인지를 찾아봤습니다. 세간에 알려지기로는 고종이 그 주인공으로 알려져 있고 꽤 설득력도 있는 이야기입니다만, 이미 그 이전부터 커피에 대한 기록이 있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아주 구체적으로 누가 어떤 경로로 커피를 한국에 소개했는지는 여전히 알 길이 없지만, 고종이 최초로 커피를 맛본 사람이 아닌 것만은 확실합니다. 그러니까 한국 커피의 역사는 적어도 1880년대 중반부터는 시작되었다고 보는 것이 옳겠습니다. 물론 새로운 자료가 더 발굴되면 한국 커피의 역사는 더 길어질 수 있습니다. 어쨌거나 커피는 우리가 아는 것보다 훨씬 더 이른 시점에, 우리가 아는 것보다 더 널리 퍼져있었던 것이 분명합니다.


  그런데 제가 마지막에 인용한 윤치호의 일기는 한 번 더 곱씹어 볼 필요가 있습니다. 1885년 10월 25일의 일기에서 '전증노다루前增老茶樓’라는 커피가게를 언급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이 당시 윤치호는 갑신정변 때문에 상해에 머무르고 있었기 때문에 이 가게 역시 상해에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1880년대 중반에 이미 상해에 커피가게가 있었다면 이웃나라인 조선에도 커피가게가 있지 않았을까요? 그렇다면 조선의 커피가게는 언제 처음 생겼을까요?


  잉여력 터지는 역사학도의 TMI 대폭발쑈, 다음 회에는 조선 최초의 커피가게를 찾아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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