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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8년 유엔은 남한정부만을 '한반도 유일 합법정부'로 인정했을까? 2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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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8년 유엔은 남한정부만을 '한반도 유일 합법정부'로 인정했을까? 2

Dog君 2019. 7. 4. 21:19

  누구도 속시원히 답해주지 않는 사소한 질문에 답하는 잉여력 터지는 역사학도의 잡글은 오늘도 계속됩니다.


  이번에는 '유엔결의안 제195호(III)’를 이야기하는데요, 사실 이에 관해서 미리 꼭 말해둬야 할 것이 있습니다. '유엔결의안 제195호(III)’의 해석문제는 여전히 이견의 여지가 많은 문제라는 점입니다. 앞의 글에서 제가 “역사학계의 정설定說”이라는 표현을 쓰기는 했지만, 사실 역사학계 내에서도 의견이 완전히 통일되었다고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문제를 꼭 진보와 보수의 (정치적) 차이로만 이해하지는 않기를 바랍니다. '유엔결의안 제195호(III)’의 해석 문제가 대체로 진보와 보수의 차이에 따라 구분되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그것과 100% 완전히 일치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진보와 보수로만 구분될 수 없는 복잡한 해석이 얼마든지 가능한 문제입니다.


  따라서 제가 앞으로 쓰는 글은 그냥 “‘유엔결의안 제195호(III)’를 ‘한반도 유일 합법정부’로 해석해서는 안 된다”라는 주장을 좀 더 상세하게 설명하는 것이라고 받아들여주시기 바랍니다.


총선거 독려 전단을 살포하기 위한 L-5 비행기 (출처: NARA, 국사편찬위원회 전자사료관)









  자, 뭐, 서론은 이런 정도로 하고...


  제가 앞선 글에서 '유엔결의안 제195호(III)’를 ‘유엔은 남한정부만을 한반도의 유일한 합법정부로 승인했다’로 해석해서는 안 된다고 단호하게 말씀드렸습니다. 얼핏 보면 저의 주장은 쉬이 납득하기 어렵습니다. 분명히 결의안에서 “this is the only such Government in Korea(그리고 이 정부는 한국에서 유일한 그러한 정부라는 것을 선언한다)”라고 써놨는데, 이거 그냥 ‘한반도 유일 합법정부’로 해석하면 안 되는 걸까요?






  네, 그렇게 해석하면 안 됩니다.






  자, 저 문장을 다시 꼼꼼하게 살펴봅시다. 국제법적인 효력을 갖기에는 어딘지 애매모호하다는 느낌이 드시지 않습니까? “유일한 그러한 정부(this is only such government)”라는 표현부터가 당장 눈에 거슬립니다. 북한정부를 제외한 남한정부만이 유일한 합법정부라고 말하고 싶었다면 그냥 '국가/민족를 대표하는 정부(national government)'라고 했으면 훨씬 깔끔하고 명확할텐데, ‘그러한 정부(such government)’라니, 나중에 해석을 어떻게 하라고 이렇게 애매모호한 표현을 썼단 말입니까.


  그 앞에 있는, 관계대명사 이후에 붙어있는 어쩌고저쩌고 하는 복잡한 표현들도 문젭니다. 그냥 ‘한국 전체(all Korea)’라고 했으면 깔끔할 것을 "유엔한국임시위원단이 선거를 감시하고 자문할 수 있었”던 곳이라는둥 “모든 한국인의 압도적 다수가 살고 있는 한국의 그 부분”이라는둥 이것저것 수식어가 복잡합니다.


  그냥 애초에 ‘남한 정부가 한반도 전체를 대표하는 중앙정부다!’라고 짧고 간결하게 쓰면 될 것을 왜 이렇게 길고 모호하게 써서 우리 머리를 아프게 하는 걸까요. 아오 시발.








  따라서 이 타이밍에서 우리가 던져야 마땅한 질문은 이것입니다.


   ‘유엔결의안 제195호(III)’는 왜 이렇게 모호하게 서술되었는가? 단정적으로 썼으면 명확할 것을, 뭐 이리 중언부언 말을 길게 써서 우리의 머리를 이리도 아프게 하는가?








  이렇게 애매모호한 표현이 사용된 이유를 찾기 위해서는 결의안의 채택 과정으로 가야 합니다.


  짐작할 수 있는 것처럼, 이 결의안을 주도한 것은 미국이었습니다. 미국은 남한 정부가 한반도 전체를 대표하는 '중앙정부(national government)'가 되기를 기대했고, 결의안에도 그런 표현이 사용되기를 기대했습니다. 미국이 남한정부를 후견하고 있었으니까, 미국으로서는 너무 당연한 선택이죠.


  그런데 영국, 호주, 인도, 캐나다 등의 국가가 여기에 반대했습니다. 우선 유엔이 관할한 총선거, 그러니까 1948년 5월에 실시한 총선거에 북한 주민이 참여하지 않았고, 남한 정부가 실제로 통치하는 영토 역시 한반도의 남쪽 절반이기 때문에 남한 정부가 한반도 전체를 대표한다고 볼 수 없다는 것이 주된 이유였습니다. 따라서 영국, 호주, 인도, 캐나다 등은 'national government of Korea'나 'all Korea' 같은 표현이 결의안에 들어가서는 안 된다는 입장을 완강히 고수했습니다. (이 내용은 김영호 - 「미국의 대한민국 정부 승인 정책에 관한 연구」와 김정배 - 「미국과 유엔의 대한민국 '정부' 승인의 역사적 함의」를 주로 참조했습니다.)


  이들 국가가 미국의 의도에 반대한 이유까지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영연방 소속 국가라는 점에서 2차대전 이후의 헤게모니 다툼이 반영된 것이 아닐까라는 짐작 정도를 해 볼 수는 있겠습니다만 이것도 어디까지나 저의 추측일 뿐 그에 대해서는 별도로 더 공부를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일단 여기서는 ‘유엔결의안 제195호(III)’를 채택하는 과정에서 자본주의 진영 내부에서도 여러 이견이 있었다는 점 정도만 확인하고 넘어가도록 하죠.








  그러니까 ‘유엔결의안 제195호(III)’의 애매모호한 표현은 미국 외에도 영국, 호주, 인도, 캐나다 등의 의견을 절충한 결과라는 겁니다. 따라서 ‘유엔결의안 제195호(III)’에서 ‘한반도 유일 합법정부’라는 단어만 똑 떼어와서, 혹은 ‘유엔결의안 제195호(III)'의 “in Korea”를 굳이 “한반도 전체에서”로 번역해서, 한반도 전체에서 남한만이 유일하고 배타적인 권위를 가진 정부라는 식으로 해석을 하면 안 된다는 거죠. 그러한 해석은 결의안의 의도와 맥락에서 한참 벗어나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해석이 성립하기 어려운 이유는 그것 말고도 더 있습니다. ‘유엔결의안 제195호(III)’를 ‘한반도 전체에서 남한만이 유일하고 배타적인 권위를 가진 정부이다’라고 해석하면 결의안 이후에 벌어진 몇 가지 상황을 설명하기가 어렵습니다. 예컨대 아래와 같은 상황 말입니다.


  1) 한국전쟁 당시 유엔 안보리의 결정은 ‘북한이 침략을 멈추고 38선 이북으로 돌아갈 것’이었다.

  2) 인천상륙작전 이후 38선 이북으로 북진北進할 때, 유엔은 남한정부의 38선 이북에 대한 관할권을 인정하지 않았다.

  3) 휴전 이후 1년여 동안 수복 지역의 관할권을 유엔이 행사했다.

  4) 1973년 6.23선언에서 박정희 대통령은 남한과 북한이 따로 국제기구에 가입할 것을 제안했다.

  5) 1991년 남한과 북한이 유엔에 별개의 국가로 가입했다.


  만약 남한 정부가 한반도 전체를 대표하고 관할하는 존재라면, 1)부터 5)까지의 상황은 생길 수 없습니다. 그러니까 유엔은 물론이고 남한 스스로도 남한 정부가 한반도 전체를 대표하는 정부라고 생각하지 않았던 것이죠.


  말이 길어졌는데요, 한 문장으로 요약하자면 이렇다는 겁니다.






  ‘유엔결의안 제195호(III)'에서 유엔은 남한정부만을 정식승인하기는 했지만, 남한정부가 한반도 전체를 관할(대표)한다고 보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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