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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일기 2 - Highgate Cemetery East 본문

잡事나부랭이

영국 일기 2 - Highgate Cemetery East

Dog君 2019. 11. 18. 18:51

  지난 여름에 잠깐 파리에 갔다. 나에 대한 두 번의 소매치기 시도를 포함해 내 일행 중 한 사람이 당한 소매치기 때문에 파리에 대한 전반적인 인상은 매우 나빠졌고 그래서 가급적이면 다시 가고 싶지 않은 도시가 되긴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상적인 장소가 두 군데 있었다. 첫번째는 로트렉이 커리어 초기에 그렸던 인물화를 많이 보유한 오르세 미술관이었고, 두번째는 페르-라셰즈 묘지Cimetière du Père-Lachaise였다. 그리고 그중에서 굳이 우열을 따지자면 페르-라셰즈 묘지가 더 나았다.


  페르-라셰즈 묘지에 대해서는 다른 기회에 더 이야기하기로 하고... 페르-라셰즈 묘지를 계기로 유럽 도시의 공동묘지에 대해 꽤 호감이 생겼다. 다른 사람들의 유럽 여행기에서 공동묘지가 자주 언급되는 것을 보면서도 '뭐 저런 곳을 굳이...'하며 시큰둥했는데 막상 묘지에 가보니 거기만큼 많은 영감을 얻을 수 있는 곳도 드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역사를 수놓은 온갖 인물들이 비교적 좁은 공간에 빽빽하게 밀집한 곳이기 때문이다. 역사에 조금만 밝은 사람이라면 공동묘지에서 꽤 많은 영감을 얻을 수 있다.


  파리에 페르-라셰즈 묘지가 있다면 영국에는 하이게이트 묘지Highgate Cemetery가 있다. 영국, 그리고 런던에서 활약한 사람들이 여기에 여럿 묻혀 있다. 잠시 시간을 내서 하이게이트를 찾았다.


  하이게이트 묘지로 가기 위해서는 런던 지하철 노던라인Northern Line의 아치웨이Archway역으로 가야 한다. (바로 옆에 하이게이트Highgate 역이 있지만, 거기는 아니다.) 아치웨이 역에서 하이게이트 힐Highgate Hill과 휘팅턴 병원Whittington Hospital 쪽 출구로 나가면 된다.



  출구로 나와서 하이게이트 힐을 따라 올라간 다음, 휘팅턴 병원을 가로질러 다트머스 파크 힐Dartmouth Park Hill을 따라서 다시 오르막을 더 올라간 다음 워터로우 공원Waterlow Park을 가로지르면 하이게이트 묘지 입구로 갈 수 있다.


  여기서 주의할 점 하나. 구글지도에서 안내하는 경로에 따르면 워터로우 공원이 아니라 하이게이트 윙 병원Highgate Wing을 가로지르라고 나오는데, 그 길은 막혀 있다. 하이게이트 윙 입구 바로 옆에 워터로우 공원 입구가 있으니 그리고 들어가면 된다.


  하이게이트 묘지는 동쪽 묘역과 서쪽 묘역이 구분되어 있는데, 우리 같은 관광객이 주로 찾는 명사들의 묘는 동쪽 묘역에 있다. 동쪽 묘역은 성인 1인당 4파운드의 입장료를 받고, 어린이(6세 이하로 기억한다)는 입장료가 없다. 매표소에서 묘지 지도 챙기는 것을 절대 잊지 마시고.



  하이게이트 묘지의 슈퍼스타는 단연 칼 마르크스. 어찌나 사람들이 많이 왔는지 하이게이트 묘지에는 마르크스 묘의 위치를 알리는 표지판도 여기저기 많이 있어서 마르크스 묘를 못 찾을 일이 절대 없다.



  표지판도 표지판이지만, 이렇게 큼지막해서 수십미터 거리에서도 단박에 알아볼 수 있다. 금박으로 새겨진 문장은 저 유명한 "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공산당 선언)와 "그동안 철학자들은 세계를 이렇게 저렇게 해석했지만, 중요한 것은 세계를 변화시키는 것이다"(포이에르바하에 관한 테제, '포이에르바하'인지 '포이어바흐'인지...)이다.


  가운데 하얀 부분에는 여기에 누가 묻혔는지 적혀 있다. 칼 마르크스 본인과 아내인 예니 폰 베스트팔렌Jenny von Westphalen, 손자 Harry Longuet(어떻게 읽는지 모르겠다;;), 가정부였던 헬레네 데무트Helene Demuth, 딸 엘리노어 마르크스Eleanor Marx의 이름이 각각 생몰년과 함께 적혀 있다. 가정부가 왜 여기에 같이 있는지 좀 의아하긴 한데, 헬레네 데무트와 마르크스 가족의 관계는 우리가 흔히 상상할 수 있는 것 이상으로 돈독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헬레네 데무트에 관해서는 여기 참조)


  마르크스의 묘는 원래 이 자리는 아니고 다른 자리에 있었다. 처음의 자리는 매표소에서 나눠주는 지도에 'Marx (original)'이라고 표시되어 있다.



  여기에는 이렇게 써 있다.


  At this (???) were formerly buried Jenny von Westfalen, wife of Karl Marx, Karl Marx, Harry Longuet, their grandson, Helene Demuth. Their remains were removed and re-interred on 23rd November 1954 at the place nearby where a monument was erected on 14 March 1956.


  그러니까 여기에는 예니 폰 베스트팔렌, 칼 마르크스, Harry Longuet, 헬레네 데무트가 묻혀 있었고, 1954년에 지금의 자리로 이장했다는 것이다. 그러면 엘리노어 마르크스는 1954년에 이장하면서 합장했다는 이야기가 된다. 그런데 엘리노어 마르크스에 대한 한겨레21의 기사에 따르면 엘리노어 마르크스가 하이게이트에 묻힌 것은 1898년에 그가 죽고 30여년 뒤라고 했으니(대략 1930년대쯤) 시기가 안 맞다. 20년 정도 차이가 있는데, 여기에 대해서는 더 이상 내용을 찾지 못했다.


  독일 출신인 마르크스가 왜 런던에 묻혀 있는지 궁금할지도 모르겠다. 혁명을 꿈꿨던 마르크스는 1850년대에 런던에 정착해서 여생을 마쳤다. 그가 자본론을 저술한 것도 영국에서의 일이다. 흔히 그의 삶은 매우 가난했다고 알려져 있지만 꼭 그렇지도 않았던 모양이다. 순전히 엥겔스 덕분이다. 그에 관해서는 이 기사를 참조.






  하이게이트 묘지에는 칼 마르크스 외에도 눈여겨 볼만한 사람들이 더 있다.






  첫번째는 에릭 홉스봄Eric Hobsbawm.



  20세기를 대표하는 마르크스주의 역사학자다. 한국에는 이른바 시대3부작(혁명의 시대, 자본의 시대, 제국의 시대)으로 잘 알려져 있다. 사실 에릭 홉스봄의 책은 세 번 도전해서 세 번 다 실패했다. 좀 어렵다... 수준도 아니고 애초에 독해 자체가 안 됐다. 그나마 『만들어진 전통』의 한 꼭지를 겨우 읽어내긴 했지만, 그것도 '까만건 글자 하얀건 종이' 수준이라 제대로 읽고 이해한 것은 아니다. (그것만 그렇겠냐만은;;)


  묘비가 참으로 심플하다. 이름과 생몰년 외에 다른 수식 없이 HISTORIAN이라고만 써있다. 물론 그의 삶을 표현하기 위해 굳이 다른 말을 더 붙일 필요가 없기도 하다. 그의 묘는 칼 마르크스의 묘 바로 곁에 있다. 견실한 마르크스주의자로 평생을 살았던 그답다.



  그냥 떠나기 뭐해서 연필을 꺼내 묘비 앞에 내려놓고 왔다. 책에 밑줄 긋고 메모할 때 쓰는 연필이다. '연말'부터는 무슨 일이 있어도 열심히 공부하겠노라고, 기왕이면 내 이름 달린 글도 여기저기 좀 쓰고 그러겠노라고 다짐하고 왔다.






  크리스 하먼Chris Harman의 묘도 있다. 칼 마르크스의 묘 바로 맞은 편이다. 그 역시도 견실한 마르크스주의자였다. (좀 더 정확하게는 국제사회주의International Socialism 계열의 활동가이자 저술가였다.) 한국에도 여러 권의 저술이 소개되어 있다.



  내가 처음으로 읽은 마르크스주의 책이 바로 그가 쓴 『쉽게 읽는 마르크스주의』였다. 얇은 책이지만 내용이 꽤 단단해서 거의 20대 내내 곁에 두고 필요할 때마다 조금씩 들춰봤다. 지금이야 그때에 비해 많이 우경화됐지만, 어쨌거나 지금 내 생각의 일정 부분을 그에게 빚지고 있기도 하다. 그가 여기에 묻혀 있으리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는데 의외의 장소에서 우연히 그를 다시 만났다.


  에릭 홉스봄의 묘에서 꼭 그랬던 것처럼, 여기도 그냥 떠나기 뭐해서 팔에 차고 있던 세월호 팔찌를 그의 묘비에 얹어두고 돌아왔다.






  칼 마르크스의 묘로 가는 길에는 사회진화론으로 잘 알려진 허버트 스펜서Herbert Spencer의 묘도 있다.



  인간사회의 다양한 군상을 진화evolution의 이름 아래 줄지운 것이 바로 사회진화론이다. 흔히들 다윈의 진화론을 사회에 적용한 것을 사회진화론이라고들 생각하지만 사실 스펜서의 사회진화론은 다윈의 진화론과 별개로 다듬어진 이론이다. 다윈이 『종의 기원』에서 '진화'라는 표현을 쓰지 않았던 것은 물론이다. 『종의 기원』 초판에는 그 대신 '변화를 동반한 계승(descent with modification)'이라는 표현이 등장하고, 6판에 '진화'가 도입된 것은 스펜서의 영향이다. (장대익이 번역하여 2019년에 출간된 한국어판 『종의 기원』이 초판을 저본으로 한 이유 중 하나가 그것이다.)


  세상 모든 인간사회를 진화, 즉 진보의 이름 앞에 우열을 나눈 사회진화론은 당대 제국주의 침략의 이론적 기반이었다. 그리고 그 제국주의에 저항했던 많은 활동가들은 마르크스주의를 자신의 이론적 디딤돌로 삼았다. 사회진화론의 스펜서와 마르크스주의의 마르크스가 지척에 묻혀 있는 것도 아이러니하다. 하긴, 마르크스주의도 따지고 보면 사회진화론의 자장 속에 있다고도 할 수 있으니 완전히 아이러니라고만 말하기도 힘들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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