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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 그리고 날씨

Dog君 2019. 10. 14. 17:45


春夏以來, 旱勢太甚, 殿下焦勞、勤恤, 避殿、減膳, 祀典徧擧, (...) 理冤獄, 日不暇給

봄·여름 이래로 가뭄 기운이 매우 심하여, 전하께서 애써서 노력하시고, 부지런히 구휼(救恤)하시며, 피전(避殿)하시고, 감선(減膳)하시며, 사전(祀典)을 두루 거행하시고, (…) 원통한 옥사(獄事)를 다스리시기에 날로 겨를이 없으십니다.

- 각주 : 성종실록 성종1년(1470년) 6월 2일. 조선왕조실록 사이트의 번역을 내가 약간 다듬었다.


  조선시대의 아홉번째 임금인 성종이 즉위한 이듬해는 유독 가뭄이 심했다. 봄부터 여름까지 비다운 비가 오지 않았다. 특히 삼남지방의 가뭄이 심했다고 한다. 한창 곡식이 여물어야 할 봄과 여름에 이렇게 날이 가물었으니 문제가 보통 심각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대로면 그 해 소출에 문제가 생길 것이 뻔하니 국가재정에 구멍이 날 것이며, 당장 백성들이 하루하루 연명하기도 어렵다. 할 수 있는 무엇이라도 해야 하는 시점이었다.


  위의 글은 당시의 가뭄에 대해 사간원(司諫院) 대사간(大司諫) 김수녕(金壽寧)이 올린 상소문 중 일부로, 당시 조정에서 강구한 가뭄 대책을 열거하고 있다. 그런데 가뭄대책이라고 이야기한 것들이 어딘지 모르게 좀 이상해 보인다. 백성에게 곡식을 나눠주거나[救恤] 하늘에 제사를 올리는 것[祀典]이야 그다지 어색하지 않지만, 임금의 거처를 옮기고[避殿] 식사에 오르는 반찬 수를 줄이며[減膳], 옥살이[獄事]가 억울하지는 않은지를 살피는 것을 가뭄대책이라고 들고 나오다니, 아무리 조선시대라고 해도 좀체 이해가 가지 않는다. 반찬값이라도 아껴서 구휼에 한 푼이라도 더 보태고 싶었을까.


  거처를 옮기고 반찬을 줄이는 것이 가뭄 대책이 될 수 있는 것은 조선시대의 자연관 때문이다. 조선시대의 자연관에 따르면, 우주는 만물을 아우르는 거대하고 조화로운 세계다. 우리 인간 역시 이 우주의 일부임은 물론이다. 그런데 어떤 미지의 이유로 우주의 조화가 일시적으로 흐트러지는 경우가 가끔 생기는데, 그럴 때 가뭄이나 홍수, 천둥벼락 같은 기상이변이 발생한다. 따라서 이러한 기상이변을 멈추려면 우주의 조화를 회복시켜야 한다. 그런데 우주의 일부인 인간이 먹고 자는 것에 필요 이상의 욕심을 부리거나 부당한 옥살이 때문에 원통하고 억울한 마음들이 쌓여서는 우주의 조화가 회복될 수가 없다. 따라서 인간 역시 몸가짐과 행동거지를 바르고 조심스럽게 해야 하고, 특히 인간 중 으뜸인 임금이 솔선수범해야 한다. 즉, 거처를 옮기고 반찬 수를 줄이는 한편 사람들의 억울한 마음이 쌓이지 않도록 함으로써 몸가짐과 행동거지를 바르게 하려고 했던 거다.


  이런 식의 자연관이 성립할 수 있었던 것은 한국의 날씨가 그만큼 기상이변이 적고 ‘안정적’이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한국 기후의 특징은 유치원 시절부터 귀가 닳도록 들었잖은가. 봄 여름 가을 겨울 사계절이 뚜렷하다는 둥, 강수량은 여름에 집중되어 하상계수가 크다는 둥… 달리 말하면, 덥거나 춥거나, 비가 오거나 말거나, 어느 쪽으로든 확실하다는 거다. 더울 때는 아프리카보다 덥고, 추울 때는 시베리아보다 추우며, 장마철에는 1년 내내 내릴 비를 하루이틀만에 다 쏟아부어서 동네 하나둘쯤은 너끈히 떠내려보내는 날씨다. 학교에서 배울 적에는 사계절이 뚜렷해서 살기 좋은 기후라고 했지만, 뻥도 정도껏 치셔야지, 이런 혹독한 기후에서 우리 조상들이 어떻게 살아남았던 건지 정말 용하다.


  역설적이게도 그 때문에 기상이변이 상당히 적다. 천둥벼락이 칠 정도로 비가 오는 날이래봐야 1년을 다 해서 며칠 되지도 않고, 비가 많이 오는 시기와 비가 적게 오는 시기도 대충 예측할 수 있다. 실록에는 무지개만 떠도 그걸 기상이변이라고 일일이 다 적어놨는데, 그런 것도 빈도가 적어야 때때마다 피전을 하니 감선을 하니 호들갑도 떨 수 있는 거다. 사흘이 멀다 하고 날씨가 변덕을 부렸다면, 우주의 조화는 개뿔, 날씨라는게 원래 그런가보다 하고 평소처럼 먹고 자고 그랬겠지.


  반면에 영국의 날씨는 변덕이 아주 심하다. 심해도 너무 심하다. 구름 한 점 없이 맑다가도 불과 10여분만에 구름이 끼고 비가 쏟아진다. 그리고 또 10여분만에 언제 그랬냐는 듯이 비가 그치고 말간 하늘이 보인다. 현관을 나서기 전에 파란 하늘을 보고 기분 좋게 출근에 나섰다가도 전철로 목적지에 도착할 즈음에 비가 주룩주룩 내려서 낭패를 당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그런 변덕이 하루 중에도 몇 번이나 반복된다. 번개만 번쩍 해도 당장 우주의 조화를 걱정했던 조선시대의 선비가 영국에 왔다면 당장에 버킹엄궁으로 달려가 도끼상소라도 올렸을 것이다. “전하, 부디 피전감선하시어 몸가짐을 바로 하시고, 사전을 거행하소서!”


  (여기서 잠깐 알려주고 싶은 영국 생활의 팁 하나. 우산 없이 지하철에서 내렸을 때 혹은 건물을 나설 때 우산 없이 비가 쏟아져도 당황할 필요가 없다. 영국 날씨는 변덕이 심하기 때문에 어지간해서는 비가 20~30분 이상 지속되지 않는다. 당황하지 말고 잠시만 기다리면 이내 비는 잦아든다. 잊지 말자. 영국의 비는 소나기의 연속일 뿐이다.)


  그런데 날씨가 인간의 행동거지와 관련이 있다는 조선시대의 자연관이 꼭 틀린 것 같지도 않은 것이, 영국의 고약한 날씨가 영국인의 심성에도 영향을 주었다는 이야기가 상식처럼 퍼져있다. 유럽에서도 영국인은 손꼽히게 무뚝뚝하다고들 하는데, 영국에서 며칠만 살아보면 이 궂은 날씨 밑에서 밝은 심성을 유지하기란 대단히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그나마 해가 긴 봄과 여름은 그래도 좀 낫지만, 늘상 흐린 하늘에 눅눅한 공기까지 곁들여진 가을과 겨울은 고역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날씨가 이러니 폐병으로 요절한 소설가와 음악가가 부지기수라고 했고, 빨래를 널어도 바삭바삭하게 마르는 법이 없다고 했다. 영국인들 스스로도 이런 날씨를 너무 싫어해서 영국의 어느 여인은 파리에 있는 자기 여동생에게 이렇게 편지를 썼다고도 한다. “잉글랜드의 모든 어리석음은 분명히 이 험악한 날씨가 가져오는 찬 기운 때문이야. 파리의 청명한 날씨와 다른 많은 편리함을 누릴 네가 부러워.” (설혜심, 그랜드 투어, 웅진지식하우스 2013, 59~60쪽.)


  물론 한국을 떠나기 전부터 영국 날씨의 악명은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 하지만 솔직히 까놓고 말해서, 영국 날씨가 제아무리 궂어봐야 한국보다 더 하겠나 싶다. 미세먼지 때문이다. 미세먼지 앞에서는 애초에 날씨가 좋고 나쁘고를 논할 필요가 없다. 해가 떠도 맑지 않고, 맑아도 외출을 못하니 이게 어디 사람 사는 건가. 한국에서는 한 시간 정도 조깅을 하고 들어오면 귓바퀴 뒤쪽에 자글자글하니 흙먼지가 만져질 정도였다. 세상 어디에 이보다 더 나쁜 공기가 있을까! (아까 버킹엄 궁에 도끼상소하러 가셨던 선비 양반, 지금 거기서 그러고 계실 때가 아닙니다!)


  그나저나 이 글을 쓰는 10월 중순 현재, 맑게 갠 런던의 아침하늘을 본 것이 언제인지 기억도 가물가물하다. 며칠째 아침 조깅을 못했다. 하루종일 실내에만 틀어박혀 있자니 몸도 찌뿌둥하고 머리도 덩달아 둔탁해지는 것 같다. 나라도 버킹엄궁에 가서 상소하면 날씨가 좀 나아지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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