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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일기 3 - Ripley로 가는 길 본문

잡事나부랭이

영국 일기 3 - Ripley로 가는 길

Dog君 2019. 11. 26. 06:41

  20대 초반부터 에릭 클랩튼에 빠져 살았다. 요즘 트렌드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빈티지한 블루스 기반의 늙다리 기타리스트에게 내가 왜 그렇게 빠져들었는지는 나 스스로도 모르겠다. 아마도 그때가 한창 우울의 끝을 찍을 때라서, 뭐라도 좋으니 마음 줄 곳이 필요했던 게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는 한다.



  그때부터 에릭 클랩튼에게 무섭게 빠져들었다. 하나둘씩 앨범을 사모았고, 기타도 배우기 시작했다. 2007년과 2011년에 있었던 두 번의 내한공연 때는 연봉 600만원짜리 대학원생 주제에 30만원이 훌쩍 넘는 S석 티켓을 사고 그랬다. 돈 아깝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런 쌩쑈 덕에, 그래도 20대의 우울한 시기를 그럭저럭 견뎌낼 수 있었다. 마치 10대 후반에 이상은에게 빠져들었던 딱 그대로의 모습으로.








  에릭 클랩튼은 1945년 3월 30일 영국 서레이Surrey의 리플리Ripley라는 곳에서 태어났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한국을 떠나기 전에 구글 지도로 리플리를 찾아보니 의외로 런던에서 멀지 않은 곳이었다. 어지간해서는 여행을 즐기지 않는 성격 때문에 그 당시에는 내가 리플리에 갈 일이 과연 있을까 했는데, 영국 생활에 어느 정도 적응을 하고 나니 그 정도 거리를 못 갈 이유가 또 뭔가 싶었다. 숙박을 할 필요도 없었고 대중교통으로도 충분히 접근 가능한 거리였다. 그래서 하루 시간을 내어 리플리에 가기로 했는데... 음, 대중교통으로 접근이 가능하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아무 준비 없이 대충대충 다녀올 수 있는 곳만은 또 아니었다.


  사실 리플리에 가기 전에 여기저기 구글링으로 정보를 모았는데, 일단 한국어 웹에서는 관련 정보를 전혀 찾지 못했다. 사실 뭐, 한국에서 에릭 클랩튼이 대단히 인기가 있는 아티스트가 아니기는 하다. 그리고 영국에 온 한국인이라면 으레 비틀즈를 찾기 마련이고, 그도 아니면 오아시스나 블러를 찾는 것이 상례다. 나 같은 너드나 되어야 그 늙수구레한 기타리스트를 찾아다니는 거지... 암튼 이해가 안 되는 상황은 아니다. 그래도 혹시 모를 일이다. 이후에 또 나처럼 리플리를 찾는 한국인이 있을지.


  그래서 내가 모은 정보와 시행착오 등을 전부 다 정리해볼까 한다. 금방 정리될 줄 알았는데 막상 쓰고보니 내용이 길어져서 리플리 여행기는 두 번 정도로 나눠서 올리게 될 것 같다. 자, 그럼 리플리로 함 떠나볼까.








  리플리로 가기 위해서는 일단 영국 국철National Rail의 노선 중 하나인 South Western Railway를 이용해야 한다. South Western Railway는 런던의 워털루Waterloo와 복스홀Vauxhall, 그리고 한국인들이 많이 거주하는 윔블던Wimbledon과 레인즈파크Raynes Park를 지나므로 일단 노선부터가 한국인에게 유리하다고 하겠다. (코리아타운이 형성된 뉴몰든New Malden도 South Western Railway가 지나가긴 한다. 하지만 뉴 몰든은 South Western Railway의 한 지선에만 속하기 때문에 아래의 정보 중에는 해당되지 않는 것도 있으니 참고하시기 바란다.)


  먼저 워털루, 복스홀, 레인즈파크, 윔블던에서 South Western Railway를 통해 리플리로 가는 경로를 구글 지도에서 검색하면 아래의 4개 경로 중 하나가 나올 것이다. (아마 검색할 때마다 추천경로가 다를 것이다.)


  1) 워킹Woking행 South Western Railway를 이용, 워킹Woking에서 하차 -> 462번 버스를 이용해 리플리 도착


  2) 워킹Woking행 South Western Railway를 이용, 에셔Esher에서 하차 -> 715번 버스를 이용해 리플리 도착


  3) 길드포드Guildford행 South Western Railway를 이용, 클랜든Clandon에서 하차 -> 463번 버스를 이용해 리플리 도착


  4) 길드포드Guildford행 South Western Railway를 이용, 런던로드London Road에서 하차 -> 462번 혹은 715번 버스를 이용해 리플리 도착


  검색할 때마다 결과가 달라지는 것은 리플리를 오가는 버스가 굉장히 적기 때문이다. 특히 462번과 463번 버스는 1~2시간에 1대꼴로 운행한다. 그 외에 추가로 1시간에 1대꼴로 운영하는 715번을 포함한다 해도, 리플리를 오가는 버스는 많아봐야 30분에 1대꼴이다. 그렇기 때문에 언제 검색하느냐에 따라 어느 버스노선을 이용하는 것이 나은지가 달라지는 것이다;; (런던에서 가깝다고는 하지만 확실히 촌구석인 모양이다;;)


  낭패를 당하지 않으려면 구글 지도에서 미리 출발시간을 일정에 맞게 세팅한 다음에 노선을 확인하는 것이 좋다. 아니, 필수다. 다음에 이야기하겠지만, 리플리는 아주 작은 마을이고 에릭 클랩튼과 관련해서도 그다지 볼 것이 많지는 않기 때문에 특별히 다른 일이 더 있지는 않은 이상 마을을 둘러보고 커피 한 잔 마시는데 2시간이면 충분하다.


  그러니까 리플리에서 대략 2시간 정도 머무른다 생각하고 들어가는 시간과 나오는 시간을 미리 계획해두는 것이 비용이나 시간면에서 확실히 유리하다.


  참고로 나는 4번 경로로 리플리에 들어갔고, 나올 때는 3번 경로를 이용했다.


런던로드 역 승강장.


런던로드 역 버스 정류장.


런던로드에서 출발하는 462번 버스 시간표.


런던로드에서 출발하는 462번 버스 시간표.








  여기서 하나 주의할 점은 런던 바깥에서는 오이스터 카드가 무용지물이라는 사실이다.


  오이스터 카드가 안 먹히면 당장 버스를 탈 때부터 문제가 된다. 462번과 463번 버스는 화이트버스Whitebus라는 회사에서 운영하는데, 이들 노선은 오이스터 카드를 이용하지 않는다. 물론 런던의 시내버스와는 달리 버스에서 직접 표를 살 수 있으니 이건 큰 문제가 아니다. 진짜 문제는 결제가 비접촉식contactless 카드나 현금으로만 가능하다는 점이다. 즉, 한국에서 가져가는 일반적인 신용카드로는 결제가 안 된. 현금을 꼭 준비해야 한다.


  버스를 타고 기사에게 표를 사겠다고 이야기하면 기사가 행선지를 먼저 물은 다음 편도로 할지 왕복으로 할지를 물어본다. 나는 나올 때도 462번을 이용할 생각이었으므로 왕복표를 구입했다. 런던로드와 리플리 구간의 왕복요금은 5.5파운드다.



  왕복표는 위와 같이 생겼다. 그냥 카드전표처럼 생겼지만, 엄연한 버스표다. 당연하게도, 여행이 끝날 때까지 절대로 버리면 안 된다.


  다만, 715번 버스의 경우 화이트버스가 아닌 다른 회사에서 운영하는 노선이라서 (그런 것으로 알고 있다.) 따라서 나와는 다른 방식으로 요금 결제가 이뤄질 수 있으니 이 점 꼭 염두에 두시기 바란다.








  위에서 말한 것처럼, 돌아올 때는 3번 경로를 이용했다. 3번 경로로 돌아오건 4번 경로로 돌아오건, 리플리에서 출발하는 버스정류장은 같다. 나는 462번 버스를 타고갈 요량으로 정류장에서 한참을 기다렸는데 어찌 된 일인지 462번 버스가 안 왔다;; 좀 늦은 것도 아니고 그냥 안 왔다;; (야임마들아...)


  어쩔 수 없이 잠시 뒤에 온 463번 버스를 타고 3번 경로를 이용하기로 했다. 463번 버스를 타고, 아까 산 왕복표를 제시하니 그냥 무사통과했다. 버스 기사가 굳이 문제를 삼았다 해도, 462번과 463번이 같은 회사 노선인데다가, 원래 생각했던 4번 경로보다 버스 구간이 더 짧기 때문에 큰 문제가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기사가 그렇게 주의깊게 검사하지도 않는다.


  463번 버스로 클랜든 역으로 이동한 후, South Western Railway를 이용해 윔블던으로 돌아왔다. 여기서 주의할 점이 또 있다.








  첫번째. 클랜든 역이 굉장히 외진 역인데다가 (거의 시골 간이역 수준이다) 463번 버스가 굉장히 빨리 달리기 때문에 잠시만 정신을 놓고 있다가는 정류장을 그냥 지나치기 십상이다. 어찌나 빨리 달리는지 버스 안내방송이 채 나오기도 전에 정류장을 지나치는 일도 있다;; 그러니 안내방송을 기다리지 말고 스마트폰의 구글 지도로 현재 위치를 실시간으로 확인하면서 잽싸게 하차벨을 눌러야 한다. 나는 그렇게 한다고 했는데도, 그냥 지나칠뻔했다;;


  두번째. 클랜든 역에서 런던으로 돌아올 때는 오이스터 카드가 안 먹힌다;; 런던에서 출발할 때는 오이스터 카드로 잘 찍고 왔는데 그게 무슨 말이냐 싶겠지만, 리더기에 암만 찍어도 유효한 티켓이 아니라는invalid ticket 메시지만 뜬다. 물론 런던 바깥의 South Western Railway에서는 표를 사지 않아도 승강장 진입과 열차 탑승이 가능하지만, 준법정신 투철한 한국인이 그럴 수는 없는 노릇이다. 결국 티켓을 사야 한다는 말이 되는데, 여기서 또 하나 주의할 점이 있다.


  세번째. (다른 곳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클랜든 역은 티켓판매부스를 오전에만 잠깐 운영하기 때문에 오후에는 판매부스에서 티켓을 살 수가 없다. 대신 무인발권기를 이용해서만 티켓을 살 수 있다. 그런데 463번 버스를 타고 클랜든 역으로 올 때는 역사驛舍를 거치지 않고 바로 승강장으로 들어가기 때문에 무인발권기를 찾기가 어렵다. 그럴 때는 절대 당황하지 말자. 먼저 육교로 반대편 승강장으로 간 다음, 역사를 돌아서 역사 정문 쪽으로 가면 무인발권기가 있다. 여기서 윔블던으로 가는 성인편도권을 사면 무려 7.6파운드;;


  7.6파운드면 한국 돈으로 만원이 넘는다;; 영국의 대중교통비용이 비싼 것은 유명하지만, 이 정도면 너무 비싼 거 아닌가 싶다. 애초에 출발할 때 역에서 왕복권을 끊어서 왔으면 좀 더 싸게 올 수 있었는데, 나는 초행길이라 그걸 몰랐던 것이다. 갈 때 오이스터 카드로 지불한 것과 올 때 편도권으로 지불한 것을 합하면 13파운드(대략 2만원)가 넘는다;;








  주절주절 길게도 썼다. 리플리로 떠나는 한국인을 위한 핵심만 간추리면 아래와 같다.


  1) 구글 지도로 미리 일정을 정확히 정해두자. 버스의 배차간격이 길기 때문이다.


  2) 현금을 미리 준비해두자. 버스에서는 한국 신용카드가 안 먹힌다.


  3) 열차와 버스 모두 왕복권으로 다녀오면 좀 더 싸게 다녀올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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