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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일기 4 - Ripley에서 한 일 본문

잡事나부랭이

영국 일기 4 - Ripley에서 한 일

Dog君 2019. 11. 26. 17:48

  런던에서 리플리로 가는 방법은 지난 번에 썼으니 그것을 참고하시고...


  이번에는 리플리로 간 진짜 목적, 에릭 클랩튼의 흔적을 찾아보기로 한다. 하필 내가 간 날 날씨가 궂어서 사진 상태는 전반적으로 구리다.









  에릭 클랩튼의 출생에 얽힌 이야기는 음악 팬 사이에서는 꽤 유명하다. 에릭 클랩튼은 2차대전이 끝나기 직전 영국을 거쳐간 캐나다 공군의 에드워드 월터 프라이어Edward Walter Fryer와, 마을에 살던 패트리샤 몰리 클랩튼Patricia Molly Clapton의 사이에서 태어났다. 당시 에드워드는 유부남이었던데다가 마을을 곧 떠났기 때문에 사실상 패트리샤는 미혼모였다. 1945년 3월 30일 에릭 클랩튼이 태어났을 때 패트리샤는 불과 16살이었다.


2001년에 발매된 Reptile은 에릭 클랩튼의 유년시절 사진을 커버로 썼다.


  당시 영국에서도 미혼모와 '사생아'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강했기 때문인지 패트리샤는 마을에서 아이를 키우지 못하고 마을을 떠났다. 대신 에릭 클랩튼의 부모 역할을 한 것은 외할아버지 잭 클랩Jack Clapp과 외할머니 로즈 클랩튼Rose Clapton이었다. 그래서 에릭 클랩튼은 꽤 철들기 전까지 잭 클랩과 로즈 클랩튼을 부모라고 생각했고, 패트리샤는 누나인 줄로만 알았다고 한다.


  성姓인 클랩튼Clapton에 대해서도 더 설명할 것이 있다. 위의 이야기를 잘 보면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 어머니의 성이 좀 이상하다. 에릭 클랩튼이 패트리샤 클랩튼의 성을 따라간 거야 그렇다 쳐도, 패트리샤 클랩튼은 왜 잭 클랩의 성을 따르지 않고 로즈 클랩튼의 성을 따랐을까. 이것은 외할머니와 관련되어 있다.


  외할머니인 로즈 클랩튼의 원래 이름은 로즈 미첼Rose Mitchell이었다. 하지만 1927년 레지널드 세실 클랩튼Reginald Cecil Clapton과 결혼하면서 클랩튼으로 성을 바꾸게 되었다. 패트리샤는 그 둘 사이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패트리샤 클랩튼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하지만 레지널드는 1932년 폐결핵으로 세상을 떠났고, 남편을 잃은 로즈는 고향인 리플리로 돌아왔다. 그리고 리플리에서 만난 잭 클랩과 1942년에 결혼했다. 잭 클랩과 결혼한 후에도 로즈와 패트리샤는 클랩튼이라는 성을 유지했던 것 같고, 그런 연유로 에릭 역시 클랩튼이라는 성을 쓰게 되었다.









  자신의 고향마을인 리플리에 대해서 에릭 클랩튼은 자서전에 이렇게 썼다. (자서전 영어판의 1장은 여기서 확인할 수 있다.)


  Ripley, which is more like a suburb today, was deep in the country when I was born. It was a typical small rural community, with most of the residents being agricultural workers, and if you weren't careful about what you said, then everybody knew your business.

  리플리는 오늘날로 치자면 교외 같은 곳이지만 내가 태어났을 때만 해도 완전 시골이었다. 전형적인 농촌 마을로 주민들 대부분이 농업에 종사했고, 말조심을 하지 않으면 금세 소문이 퍼져 모두가 알았다. (에릭 클랩튼 저, 장호연 역, 『에릭 클랩튼』, 마음산책, 2008, 17쪽.)


  그만큼 작은 마을이었다는 뜻이다. 저 설명은 지금도 여전히 유효하다. 마을을 가로지르는 대로를 중심으로 몇 개의 가게와 주요 시설들, 그리고 그 주변으로 주거지역이 있으며, 숲과 목초지가 마을 외곽을 둘러싸고 있다. 마을에 하나 있는 커리 식당을 제외하면, 토박이 외의 다른 인종을 찾기도 어려운 곳이다. 즉, 나 같은 이방인 관광객이 하나라도 마을에 들어오면 곧바로 티가 나는 그런...








  가장 먼저 갈 곳은 에릭 클랩튼이 어린 시절을 보낸 집이다. 2007년에 나온(한국어판은 2008년에 나왔다) 그의 자서전에서 에릭 클랩튼은 리플리에 살던 시절의 집의 위치와 주소를 이렇게 밝히고 있다.


  My family lived at 1, the Green, a tiny house in Ripley, Surrey, which opened directly onto the village Green.

  우리 가족은 서리 주 리플리의 그린 가 1번지에 살았다. 비좁은 집이었고 문을 열면 바로 빌리지 그린이 보였다. (에릭 클랩튼 저, 장호연 역, 『에릭 클랩튼』, 마음산책, 2008, 13쪽.)


  여기에 나온 주소를 따라 그린 가 1번지(1, the Green)로 가면...









"거주자 외 출입금지"


  거주자 외에는 출입을 금한다는 표지판이 좀 유난스럽게 보일 수도 있지만, 에릭 클랩튼 고향을 보겠다고 여길 찾은 사람이 단지 나만은 아닐 것이다. 에릭 클랩튼과 무관하게 리플리는 여전히 영국의 평범한 시골마을이고 여기에 사는 사람들의 일상 역시 그대로 존중받아야 하기에 저런 표지판이 있는 것도 아주 이해가 안 가는 것도 아니다.


  오가는 사람도 없으니 표지판 무시하고 몰래 들어갈까 하기도 했지만, 스쳐지나가는 평범한 여행자인 나에게 여기 사람들의 일상을 방해할 권리는 없으니 일단 여기서 더 들어갈 수는 없었다. (나중에야 알았지만, 이 결정은 아주 잘한 결정이었다.)








  그렇다고 이대로 포기하기엔 좀 아쉬워서 다른 길을 찾아봤더니 리플리 크리켓 클럽Ripley Cricket Club 쪽으로도 접근이 가능한 것으로 나온다. (위키피디아에 따르면 리플리는 크리켓의 전통의 깊은 곳이라고 한다.)



  그리고 구글 지도에서 그린 가 1번지를 검색하면 리플리 크리켓 클럽 바로 옆의 이 집이 나온다.



  잔디밭 쪽으로 현관이 난 2층 집이니 자서전의 묘사와도 일치한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이 집은 에릭 클랩튼의 집이 아닐 가능성이 매우 높다. 유튜브와 플리커에서 찾은 자료들은 다른 집을 지목하고 있기 때문이다. (유튜브, 플리커)


  특히 에릭 클랩튼의 자서전에서 자기 집과 인접했다고 한 '빌리지 그린village Green'은 리플리 크리켓 클럽의 서쪽 블럭에 있는 것으로 나온다. 따라서 에릭 클랩튼의 집 역시 리플리 크리켓 클럽의 서쪽 블럭에 있다고 보는 것이 더 합리적이다. 하지만 이쪽 역시 "거주자 외 출입금지" 표지판이 붙어 있기 때문에 더 이상 들어가는 것은 단념했다.


  여기 사람들의 일상이 여행자로서의 내 호기심보다 훨씬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아쉬움을 뒤로 하고 다음으로 갈 곳은 St. Mary's Church. 에릭 클랩튼의 개인사와 밀접하게 관련된 곳이다.



  1991년 뉴욕의 아파트에서 4세의 나이로 실족사한 에릭 클랩튼의 아들 코너 클랩튼Conor Clapton이 묻힌 곳이다. 당시 에릭 클랩튼은 거의 알콜중독에 가까운 생활을 하고 있었는데(그나마 약물은 끊은 상태였다고 하지만, 양주를 매일 2병씩 깠다고;;), 코너의 죽음을 계기로 알콜도 거의 끊었다고 전한다. 그리고 그 아픔을 담은 노래 'Tears in Heaven'을 통해 재기에 성공하기도 했다. 2000년대 초반에는 코너를 잃은 아픔 때문에 더 이상 이 노래를 부르지 않겠다고 선언하기도 했지만, 최근에는 다시 부르고 있다. (2013년 크로스로드 기타 페스티벌 라이브는 여기서 들을 수 있다. 그가 평소에 애정하는 레게 리듬이 가미되어 꽤 이채롭다.)


  이 교회는 그가 결혼식을 올린 곳이기도 하다. 에릭 클랩튼은 사실 여성 편력이 좀 심한 편이다(;;). 자서전에는 여자랑 잔 이야기가 하도 많이 나와서... (삐-) 뭐 암튼, 2002년에 지금의 아내인 멜리아 맥케너리Melia McEnery와 정식으로 결혼했는데, 당시 에릭 클랩튼이 56세, 멜리아가 25세였다. 두 사람은 2002년 1월 1일 이 교회에서 조용하게 결혼식을 치렀다. (멜리아 맥케너리는 한국계로 알려져 있다. 외할아버지인지 외할머니인지는 확실치 않다. 몇몇 한국어 페이지에는 어머니가 한국인으로 되어 있지만, 그건 틀린 정보다.)








  다음으로 갈 곳은 에릭 클랩튼이 다닌 초등학교 차례다. 자서전에 따르면, 그가 다닌 초등학교는 마을회관village hall 맞은편의 리플리 영국 국교회 초등학교Ripley Church of England Primary School라고 했다. 마을회관과 학교는 여전히 같은 자리에 그대로 남아있다.


리플리 마을회관










  에릭 클랩튼에 관해서 돌아볼 장소는 이 정도가 전부다. 에릭 클랩튼이 아무리 난다긴다 하지만, 그가 태어난 동네까지 삐까뻔쩍하게 갈고닦을 정도는 아닌지라 리플리는 여전히 보통의 평범한 시골 마을의 모습 그대로다. (뭘 기대한거야...) 내가 리플리에 간 것은 월요일이었는데 동네 식당의 절반 정도는 월요일에 문을 열지 않는 탓에 딱히 더 갈 곳도 없었다.


  하는 수 없이 Pinnock라는 동네 카페에서 잠시 몸을 녹이기로 했다.




  모르긴 몰라도 이 동네에서는 펍 같은 역할을 하는 카페 아닌가 싶다. 동네 사람들이 모여서 수다 떨면서 서로 안부도 확인하고 밥도 먹으며 시간 보내는 그런 곳. 여기 역시 전부 다 백인들 뿐이고 이국에서 온 이방은 나 하나 뿐;;




  드립으로 내려준 커피는 무척이나 맛있었다. (에스프레소 머신은 없었다.) 콜롬비아 엑셀소로 주문했는데 (이건 한국에서 아직 못본듯) 적당히 가벼운 맛이어서 신맛에 약한 나한테도 아주 딱이었다. 라즈베리가 들어간 초코 브라우니도 눅진한 것이 일품이었고. 역시 몸 녹이는데는 단쓴조합이 최고다.


  그리고 미리 알아둔 버스시간에 맞춰 버스정류장으로 나오면서 리플리 여행은 끝.








  ...인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버스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는데, 지나가던 인상 좋은 할머니가 갑자기 말을 걸었다.


  "아까부터 동네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던데, 특별히 찾는 사람이나 장소 같은게 있는 거니?"

  "그래, 네가 아까 사진 찍었던 그 교회에 대해서는 알고 있어? 에릭 클랩튼의 아들이 거기에 묻혀 있지."


  여기까지 들으니 살짝 좀 긴장이 됐다. 할머니가 무서웠다는게 아니다. (악의는 전혀 없어 보이는 선한 얼굴이었다.) 워낙에 작은 동네라 나 같은 이방인은 금방 티가 났다는 거고, 그 이방인을 쫓는 시선도 그만큼 많았다는 거다. 아까의 표지판을 무시하고 여기저기 막 들어가고 그랬으면, 어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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