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g君 Blues...

스타벅스화 (유승호, 따비, 2019.) 본문

잡冊나부랭이

스타벅스화 (유승호, 따비, 2019.)

Dog君 2021. 5. 19. 15:38

 

  이런 한국인들이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찾아 나서는 ‘걸음마’를 시작했다. 비록 음료 한 잔을 고르는 일이지만 말이다. 젊은 세대들은 “빵 고르듯 살고 싶다”며 취미를 추구하는 넓게 보면 자신의 취미를 통해 쾌락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되고 있다. (…) 자기만의 것을 즐기려면 타인과 공동체의 인정이 따라주어야 한다.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시도할 때 곧바로 무시당한다면 사람은 주눅 들게 되고, 위험을 피해 타인들의 욕망을 따라가는 길을 선택한다. (…) 반면 자기의 기호를 한번 시험해볼까 하고 런던포그의 복잡한 커스텀을 주문할 때 그것을 즐겁게 받아주는 사람들이 있다면, 그 사람이 비록 매장의 파트너라 할지라도 상황은 달라진다.
  자신에게 최적의 메뉴를 찾는 작업의 시작은 공동체의 인정에서 시작된다. 그럴 때 탈물질주의자의 비율도 늘어나게 된다. 한국의 카페와 레스토랑에 채식주의자용 메뉴, 두유 제조음료, 동물복지 육류 등 ‘특이한’ 사람들을 위한 메뉴가 일반화될 때 그만큼 개인은 존중받게 되고, 그때에야 기호를 표현하는 진정한 개인이 탄생한다. 그때서야 대규모, 대도시, 대기업, 대박을 추구하는 인생으로부터 탈피하는 길이 열린다. 그렇게 세상은 변하고 있다. (34~35쪽.)

 

  스타벅스에는 익명의 사람과 진지하게 몇 시간을 보내는 토론 같은 것은 없다. 대신 그곳에 온 사람들과 스타일을 공유-런던포그 공동체-한다는 잠재적인 연대감이 존재한다. 그 장소의 정주민들은 아니지만 소셜미디어 속의 인물들과 끊임없이 서로를 드러내며 연대감을 확인하기도 한다. 홀로 있지만 홀로가 아니게 존재하는 사람들이다. (…)
  온라인에서 촉발된 네트워크 개인이 스타벅스에서 물리적으로 현현한다는 것은 새로운 형식의 자유를 불러온다. 내가 누구의 지시도 받지 않고 어떤 위력도 행사하지 않은 채 어떤 공간을 점유하고 있다는 사실이 일종의 자유감을 불러일으키는 것이다. (…)
(…) 그러나 나약한 개인이라도 공유하고 존중함으로써 서로 의지할 수 있는 네트워크 개인으로 거듭난다. 서로 지지대가 되어주면 버티는 힘이 생긴다. 스타벅스에서의 ‘공간 점유’는 이런 네트워크 개인을 상징한다.
(…) 근대의 커피하우스가 자율적으로 소통하는 근대의 주체들이 뛰어노는 ‘운동장’을 상징했던 것처럼, 스타벅스로 대표되는 우리 시대의 카페는 조각난 시간 속의 현대인들에게 ‘도피처’가 되고 있다.
  도피처에서 개인은 비록 일시적이지만 공간을 점유하며 조각난 삶을 접착하는 내러티브를 만들어간다. (…) (47~49쪽.)

 

  이탈로 칼비노의 말처럼, 도시의 경쟁력이란, “그들의 수중에 들어온 돈의 무게보다는 아낙들이 걸어놓은 건물 베란다의 이불 빨래의 색깔과 그 빨래 밑을 걸어가며 아낙들의 소맷자락을 힐끔 쳐다보는 총각들의 느린 걸음걸이”에 있다.
  경쟁력의 겉과 속은 다르다. 겉은 각종 통계 지표로 나타나지만 속은 활기찬 생명력, 즉 활력에 있다. (…) 이렇듯 표준화된 숫자보다는 체감과 경험이 일상에서 느껴지는 것이 문화다. 문화는 확연히 눈에 띄지는 않지만 사람들의 행동 리듬에 스며들어 일상을 결정한다. (73~74쪽.)

 

  걷기와 자전거의 도시 포틀랜드가 유명해진 이유도 이와 비슷하다. 다른 도시가 자동차를 위해 도로를 넓힐 때 포틀랜드는 자전거를 위해 도로를 넓혔다. 자동차가 다니기 어려워지자 사람들은 불편해했고 그 도시를 떠나갔다. 그러나 그런 도시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남아서 도시를 계속 그렇게 만ㄷ르어갔다. 그리고 수십 년이 흘렀다. 살기에 가장 불편했던 포틀랜드는 몇 해 전부터 미국에서 가장 살기 좋은 도시로 손꼽히기 시작했다.
  이제 포틀랜드는 미국에서 가장 자전거 친화적인 도시이자 책을 가장 많이 읽고 카페와 레스토랑이 인구당 가장 많은 ‘힙한’ 도시로 거듭났다. 도시의 일상은 생기와 대화가 넘쳐난다. 이제는 사람들이 너무 많이 모여들어 부동산이 폭등하는, 도시 전체가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을 걱정해야 하는 처지에 이르렀다. (…)
  포틀랜드 관광청 디렉터는 포틀랜드는 오래전부터 지역, 변방, 비주류, 독립 기업 등 자기 색깔을 유지하며 도시를 색다르게weird 만들어왔을 뿐인데, 2008년을 계기로 사람들의 보는 눈이 바뀌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2008년은 미국이 금융위기를 겪으면서 많은 사람들이 부와 명예라는 자본주의 이념에 대한 회의 또는 체념이 널리 퍼지기 시작한 시기였다. (…) 포틀랜드는 미국의 온라인매체 <보카티브>에서는 35세 이하 젊은이가 살기 좋은 도시 1위로 꼽혔다. 그 조사에서 뉴욕은 23위, LA는 순위권 밖이었다고 한다.
  포틀랜드가 매력적인 도시로 떠오른 이유는 불공정한 경쟁으로 불평등해진 세상과 너무 다르기 때문이다. (…) (94~95쪽.)

 

(…) 스타벅스의 성공 비결을 한마디로 말하면, 사회적 통념에 반하는 낭만적 가치를 되살린 것이라 할 수 있다. 미국이 겪었던 거대한 인구학적 변화, 그리고 새로이 등장한 소비자들이 추구한 ‘문화적 세련미’는 과거 장인정신을 소환했고, 그런 낭만적 기억을 대중화시킨 스타벅스의 전략이 ‘커피와 카페 따위’를 세계적인 기업으로 만들었다. (…)
(…) 당시 미국은 값싼 양산 커피에서 벗어나 양질의 커피를 고가로라도 마실 수 있는 신중산층이 막 형성되던 시기였다. 명문대 출신의 이 엘리트층은 그저 많은 돈을 벌어들이는 것이 아닌 문화적 세련미와 교양을 추구했는데, 그에 잘 들어맞았던 것이 코스모폴리타니즘(세계시민주의)과 장인정신이라는 코드였다. (…)
  결국 스타벅스의 대성공은 대량 생산으로부터 초래된 대량 외로움의 시대에 장인, 유기농/자연, 만남 같은 낭만적 가치를 소환하고 이를 대중적으로 개조한 문화 전략의 결과다. 거대 도시의 대자본 물결에 휩쓸려 오랫동안 도시 한구석의 주변화되고 퇴행적인 스타일로 갇혀 있던 낭만적 가치가 스타벅스를 통해 주목받는 주제로 떠오른 것이다. (…) 낭만적 가치를 경쟁우위의 효율에 대항하는 무기로 쓰는 것이 아닌, 그것과 적절히 배합하는 전략이었다.
  그것이 잘 드러나는 것이 스타벅스의 상징인 커스텀 오더다. 스타벅스의 커스텀 오더는 소비자의 자기 표현, 자기 의지를 반영하면서도 동시에 개개인의 개별적이고 복잡한 요구를 ‘범주화’하는 데 성공한 사례다. 기업의 이익은 이익대로, 개인들의 자기 표현을 위한 환상은 환상대로 지켜주었다.
  소비란 필요를 충족시키기 위해서만 하는 것이 아니다. (…) 상품의 기능은 모든 사람에게 동일한 만족감을 제공하지만, 브랜드가 제공하는 경험은 각 소비자에게 고유한 것이고 언제든 소환 가능한 것이다. (…)
  커피를 마시는 문화는 이제 일상의 문화가 되었다. (…) 비록 커피 한 잔일지언정 개인 한 명 한 명이 ‘자신만의 커피를 마신’ 경험이야말로 카페의 부가가치를 높인다. (112~115쪽.)

 

  이제 소비자는 자신이 속한 집단을 중심으로 실천적·실용적 활동들을 이어가며 스스로의 정체성을 확보한다. (…) 주도적 지식에 의해 정당화되고 통제권력으로 훈육된 생산자 수준을 넘어서는 열성적, 기교적, 윤리적 소비자들에 의해 산출된 새로운 단계로서 후기근대 자본주의가 태동하는 것이다. 새로운 기술 개발로 생산성이 극대화되고 재화의 공급이 증가하며 소비자에게는 여윳돈이 생겨남과 동시에 판매자들 사이에는 새로운 경쟁의 장이 촉발되고, 이로부터 새로운 소비자들이 탄생하는 경제적 배경이 마련되었다. (…)
(…) 바우만이 지적했듯이, 급변하고 불안정한 사회의 개인들은 정체성을 소비로부터 획득한다. (…) 특정한 시대를 반영하는 소비의 패턴은 취향, 차별성과 연결되어 상징자본화하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집단주의적 지배에 저항하는 정체성 표현의 수단이 되기도 한다. (121~123쪽.)

 

  이제 소비 영역의 ‘실천적 전환practical turn’에 주목해야 한다. 개인의 자율성, 참여, 평등, 연대를 목표로 하는 ‘성찰적 근대화’의 개념을 통해, 개인이 행하는 소비가 점차 개인적 이익을 넘어서 동시대와 인류와 사회를 고려하는 인간가치 중심의 소비, 심미적이고 윤리적인 가치소비가 대두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가치기반 소비는 정체성을 찾아 공동체를 구성하며, 이를 통해 일상에서 생활정치를 실현하는 방식으로 진화하고 있다. (…) (145쪽.)
Comments